말러 5번 그리고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한국사람들은 뭐가 좋다하는 소문은 무척 빠르다.
그게 아마 우리나라가 IT 강국때문이 아닐까?
길을 가면 수없이 많이 보이는 광고물들..
그 중에 음악 관련 홍보물을 보면 기분이 좋다.
몇 개월 전 언듯 본 파보 예르비
이미 매스콤에선 몇 개월 후의 공연 홍보에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일찍 예약하면 조금 싸다는 단맛에 끌려 예약.
바이올린을 하는 딸에게 힐러리 한을 바로 앞에서 보여주기 위해
합창석에서 바이올린 독주자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 선점.
첼로를 하는 딸을 둔 친구는 수석첼리스트가 잘 보이는 건너편 합창석 선점.
6월 11일 월요일 뒷 부분에 약간 빈자리를 제외하곤 예당은 가득찼다.
마치 바비인형같은 모습의 힐러리 한이 찰랑이는 치마를 입고 등장하여
귀에 너무 익숙한 멜로디의 멘델스존을 연주한다.
그런데...문득 내가 빠져드는 건 음악이 아니라
연주자와 지휘자의 교감이었다.
마치 영화처럼 무아의 경지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비록 서로 손은 마주 잡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음악을 주고 받는 모습이 마치 엷은 안개속에서 춤을 추는 남녀 영혼의 모습으로 보였다.
멘델스존의 바협이 이리 짧았던가. 순식간에 알레그로, 안단체, 비바체의 시간들이 지나고
앵콜로 바하의 무반주 파르티타와 또 다른 하나도 바하곡인 듯
피아니시모의 가느다란 선율로 예당 가득한 시선들과 귀를 모두 블랙홀처럼 흡수해 버린다.
에스토니아태생의 미국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고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말러 5번.
미리 씨디를 사서 몇 번 들어보며 예습을 했다.
그러나 1악장 트럼펫의 첫음을 듣는 순간
역시 '음악은 현장이야' 하는 대명제에 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듯한 긴 호흡의 트럼펫 음이 퍼져나가고
서서히 온갖 악기를 든 검은 무리들의 지휘자와 같이 무대에서 물결치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들이 거의 그렇듯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선율들이 퓨전음식처럼
군데 군데 맛깔스러운 맛이 톡톡 튀져 나온다.
바이올린무리들이 거대한 움직임으로 강한 비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제 1 바이올린, 제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수석만이
연주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수석들의 저력이 보였다.
3악장에서 호른 수석만이 자리를 더블베이스쪽으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바로 내 앞에서 연주하게 되네
세상에..이렇게 호른의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말러 5번의 연주는 호른 독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들을만 하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4악장에서 하프의 곡선만큼이라 여리디 여린 몸매의 단원이 요정처럼 하프의 현을 뜯는다.
피아니시모...피아니시모.. 지휘자는 자주 손을 입으로 가져대며 단원들에게
튀지 말 것을 강조한다.
여린 소리라 편하게 들려야 하고 풀어져야 할 내 몸이 피아니시모의 긴장에 오그라든다..
그러다가 어느 덧 마지막 5악장에 가서는 풀밭에 놓여진 기분으로 돌아왔다.
푸른 벌판에 양의 무리들이 이리 저리 몰려가며 풀을 뜯는 가운데 내가 파란 하늘을 보며 누워 있다..
저 하늘에 내가 영원히 거할 곳이 있을까?
모든 악기가 힘차게 클라이막스를 달릴 때 내 몸이 터져 버렸다.
도대체 몇 번이나 커튼 콜을 받는건가?
지휘자도 보답이라도 하듯 3곡의 앵콜로 비싼 관람료를 아깝지 않게 만든다.
공연시간이 거의 3시간에 가까워 너무 늦었지만
이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친구 부부와 가까운 일식집에 가서
뜨끈한 우동 한 그릇과 찬 아사히 맥주 한 잔으로 부풀었던 내 마음을 추스려야만 했다.
이 연주 하나로 몇 개월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Thank you for the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