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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시립합창단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carmina 2014. 12. 23. 16:46

 

 

2014. 12. 18

 

누구나 들뜨는 크리스마스

그런데 만약 캐롤이 없다면 크리스마스 느낌이 어떨까?

 

어릴적 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이브는 늘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저녁에 모두 모여서 선물교환을 하고 기타치며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고

밤새 새벽송을 돌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부터 그 행사가 없어져 버렸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특별히 행사를 갖지 않았고

내가 성가대 지휘를 하며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해도

주로 저녁 예배시간에 했기 때문에 이브는 늘 조용히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가 부천으로 이사오면서 옮긴 교회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규모 전교인 찬양대회를 하고 끝나면 새벽송을 다니는데

그러다보니 우리 가족들과 같이 지내는 성탄이브가 아니라

새벽송을 돌고 오면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뿐인 허전함때문에

회의를 느낀 뒤로는 교회행사를 빠지고 아이들과 이브에 시내로 나가 저녁을 같이 먹고

심야 음악회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그런 특별한 날 도심으로 나가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무리만 보고

주님의 탄생이 없는 크리스마스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교인들은 탄식하는데 그래도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부천시립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연주는 조금 특이했다.

크리스마스때는 누구든지 보고싶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에 나오는 음악 중 몇 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해

평소 악기로만 듣던 귀에 익은 음악이 합창으로 들려 온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반갑다.

 

언젠가도 아내와 둘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종대강당에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지 인형 발레곡을 감상한 적이 있다.

그 해는 참 뿌듯한 마음을 가졌었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부천시민회관이 아이들과 부모들로 가득차고

아이들은 연주전부터 시끄러웠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면서 조용해 지고 비록 움직이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연주에 방해되는 아이들은 없었다.

 

어커스틱 밴드와 같이 부르는 가스펠 마니피캇트

보통 중세음악에 많이 나오는 마니피캇트를 재즈로 편곡한 곡이다.

마리아를 찬양하는 음악이니 캐롤로 분류될 수도 있다.

 

재즈로 편곡되었기에 재즈 발성을 기대했고

흐느적거리고 느끼한 음악을 기대했는데

공연장의 어수선함과 혼자만 마이크로 노래하는 솔로의 큰 소리 하나로

다른 합창의 리듬이 묻혀지는 것이 아쉬웠다.

음향시스템만 좋다면 모두 훌륭한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 합창단이니

마이크를 하나씩 주고 제대로 재즈리듬으로 흔들고 노래했다면

외국의 유명 재즈합창단같은 화음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막간 연주로 가졌던 어커스틱 밴드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봉고 연주자의 리드로 객석의 한 아이를 불러내어 캐스터너츠를

같이 연주하게 하는 이벤트를 벌여 좋은 인상을 주었지만

여러 악기를 이용한 캐롤의 다양함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어둠속에서 시작된 영화 시스터 액트에 나오는 음악들

이제 막 대학을 입학했다는 학생이 이미 대학공부를 다 마친

학생같은 실력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 유명한 노래 해피데이...

우리 합창단에서도 몇 번 불렀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만큼의 자유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건 아마 흑인들의 타고난 리듬감을 태생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게다.

지금 이미 뛰어난 학생이 해피데이의 솔로부분을 부르는데도

여전히 영화에서 보았던 흑인 꼬마의 리듬에는 못 미친다.

흑인들은 몸 자체의 골격이 달라 일반 걸음걸이에서도 엇박자의 리듬이 있다.

 

3년전 내가 암수술을 하고 나온 뒤 합창단의 3가족이 이 노래를 가지고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음악회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딸이 이 노래를 잘했는데도 역시 리듬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무대위의 이 학생도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흑인영가를 불러본 지가 오래되었네..

 

갑자기 무대에 꽃이 피었다.  

내가 11년동안 다녔던 부천의 기둥교회 찬율팀 꼬마들이

멋진 크리스마스 복장을 차려입는 합창단원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영화 풋루스에서 미국의 어느 보수적인 마을에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것을 금지한다.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인

목사님이 춤은 추면 마약을 하게 되고 나쁜 짓에 빠져들기 쉽다는

이유로 금지시킨 춤. 그러나 외지에서 온 젊은이의 논리있는 반항

성경에도 하나님 찬양을 춤으로 표현했다고..

춤을 추기에 찬율이라 한다.

그럼 어떤 모습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표현일까?

그리고 가사없는 그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은 다행하게도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춤이라

어떤 표현이던 보기 좋으면 오케이다.

특히 아이들의 춤이니, 그냥 나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아이들의 발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독일에 유학가 있는

딸이 보고 싶었다.

발레리나를 전공하던 이모의 딸이 부러워 시작한 발레.

나도 딸이 안쪽으로 모아서 걷는 걸음습관을 고쳐주고자

발레를 권장했었다. 그리고 첫번 큰 무대가 지금 꼬마들이 춤추는

부천시민회관이었다.

발레를 전공하고자 원했던 어느 해 발등을 다치는 작은 교통사고로

발레를 포기하고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합창단원들이 여러가지의 대형으로 남성합창 여성합창의 화음을 들려준다.

부천의 초등학교 합창단원들과 같이 부르는 캐롤.

아이들과 같이 부르는 캐롤.

청년시절의 추억들이 새록 새록 되살아 나고 있다.

강화도 시골교회에서 시골 아이들과 부르던 캐롤

인천의 창녀촌에서 도망나온 사람들이 모여 이미용기술을 배우는 곳

어쩌다 잘못된 만남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후 애기를 낳은 후 입양하기 위해

모여 있는 미혼모 숙소.

산업공단에 일하는 여공들, 중고등학생들, 교회 청년들. 등등.

그 들과 캐롤을 부르며 지냈던 내 젊은 시절이 그립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내가 무언가를 잊고 살고 있구나 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그래도 여유있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길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