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466

나 어린 시절의 기억

마당과 뒷뜰이 넓은 집이 있었다. 장독대에는 어릴때 내 키만큼이나 큰 장독에 누런 메주와 빨간 고추 새까만 숯가락이 둥둥 떠다니던 새까만 간장독 뜨거운 햇살에 잘 익은 고추장 항아리에 어느 날 날아드는 새까만 눈먼 풍뎅이가 있는 날은 온종일 그 녀석을 장애아로 만들어 놓고 놀던 우리 집 안마당. 그리고 장독 뒤의 벽돌 담벼락은 가끔 형님이 연 날린다고 올라가서 늘 흔들 흔들. 집을 새로 짓는다고 형님과 내가 그 담을 손으로 밀어서 쓰러뜨려 버렸을 정도로 허술한 담이 있었다. 뒷 뜰에는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분 꽃, 피마자 등의 꽃들이 자랐고, 때로는 돼지감자라는 씨알이 무척 굵은 감자를 심기도 했다. 특히 누님이 그 화단을 잘 가꾸어 해마다 가을이면 씨앗을 모으느라 신경을 쓰기도 했다. 마루에서 ..

내고향 인천 달동네 화수동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 합창단 친구의 아들이 결혼식한다기에 결혼식 참석하여 축가부르는 것 보다 오랜만에 내 고향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기분좋게 했다. 미리 다음 지도의 도로검색기능으로 내가 살던 집은 그대로인 것을 확인해 보았지만 그래도 직접 가봐야지. 결혼식 후 동생부부와 같이 찾아가는 내고향 화수동. 인천의 대부분 동네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알아 볼 수 없도록 변했지만 내 고향 화수동 달동네는 거의 변함이 없다. 길을 찾아 가는 것도 새로 생긴 도로와 변해 버린 주위 환경으로 도무지 방향을 못 잡을 정도라 네비게이터의 안내로 따라 찾아 간 내 고향. 이 곳에서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결혼하고나서야 떠나왔다. 이전에는 어느 집이나 모두 대문을 열어 놓고 ..

Dixit Dominus 공연, 2022. 9. 4

2022. 9. 1 ​ 세라믹팔레스홀의 앞자리에 혼자 연주를 들으며 내 얼굴에는 계속 미소가 흐른다. ​ '그래 이게 내가 원하는 음악이야.' ​ 내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주 단체가 콜레기움 보칼레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서울이다. 초기에는 대우합창단이 좋았고, 이후 모텟트합창단 그리고 이제는 내 딸이 연주자로 있는 이 연주 단체다. ​ 주로 고음악을 연주하는 이 연주 단체는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레퍼터리들을 주로 연주한다. 아빠의 음악 취향 때문인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유학을 다녀온 딸도 이 연주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이번 연주는 처음 가보는 세라믹팔레스홀이라 집에서 거리가 좀 멀었지만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있어 접근은 어렵지 않았다. ​ 오늘 연주하는 곡은 모두 영국 작곡가들의 곡..

깜짝 선물 - 여행비

직장 다니던 시절.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니니 집에는 늘 여러 나라들의 지폐와 동전들이 가득했다. ​ 유로화로 통일되기전 80년대 유럽으로 출장가서 돌아다닐 때 각나라마다 화폐가 달랐지만 다른 나라로 가면 그 돈을 환전하지 못하고 그냥 나가버렸고, 이 후 유로로 통일된 뒤 한참 뒤에 잊었던 스위스, 프랑스, 독일, 체코 등의 지폐 한 웅큼을 발견했다. 그 돈을 국내 외환은행에 가지고 갔지만 오래 되어 환전할 수 없었다. 혹시나 그 후 유럽으로 출장가는 직원에게 환전이 가능한지 요청했는데 그 친구도 바빠서 못하기에 유니세프 박스에 다 넣은 것 같다. ​ 이후 다른 나라들 화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나라는 공항에서 출국하는 외국인이 체류 후 사용하고 남은 현지 돈을 바꾸어 주지 않는 나라도 있어 나중에 필요없..

영화 'Labor Day'

넷플릭스로 본 영화 Labor Day 미국의 노동절 연휴 기간 중에 일어난 어느 가정의 이야기다. ​ 바람을 핀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해 어린 아들 헨리와 둘이만 마을의 외곽에서 살고 있는 아델 (케이트 윈슬렛)은 남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매일 매일 생활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치장도 하지 않고 집도 가꾸지 않아 지저분하다. 가끔 아들과 마트에서 식생활을 위해 물건을 사는 것도 모두 요리가 필요없는 Junk Food 들이다. ​ 어느 날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귀가하기 위해 자기 차를 타는데 갑자기 피를 흘리는 남자가 차 안에 들어와 빨리 떠나라고 협박하기에 어디로 가느냐며 물었더니 아델의 집으로 가자고 윽박지른다. 알고보니 그는 탈옥범이었다. 곧 여기 저기 수배령이 내리고 검문이 심했다. ​ 어쩔 수 없이 ..

빵칼과 아버님

아침에 빵칼로 빵을 썰다가 문득 아버님이 그리워졌다. ​ 생전 직장생활만 하신 아버님은, 다른 사회생활이 거의 없으셨고, 그 어디에도 아버님의 사진 속에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을 보면 여행이라는 것도 해 보신 적이 없는 분이다. ​ 전체 식구 9명을 먹여 살리려면 그렇게 개인의 사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국가의 기간산업인 제철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인 용광로옆에서 평생을 사셨으니 용광로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아버님께 휴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약주를 좋아하셨지만, 아무리 취하셔도 다음 날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출근하는 일은 절대 건너뛰는 적이 없으셨다. ​ 어머님도 여행사진은 오래 전 동네 어른들과 창경궁에 개나리 배경으로 사진 찍은 것이 유일한 사진이다. 그런 아버님께서 어느..

선생님 저도 암환자였어요

몇 년 전 가끔 용인에 있는 호스피스병원에 시간을 내서 혼자 다녔었다. 그 곳에서는 내가 30년 동안 노래하던 부부 합창단의 여자 단원 한 분이 의사로 계셨기 때문에 무언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집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가끔 할일 없는 휴일이나, 혹은 휴가 때 이틀 정도를 시간내어 그 분의 주선으로 환자들을 돌 보는 일을 했다. ​ 그런데 처음에는 환자들이 있는 방은 요양전문가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청소를 하고, 주방일을 돕는 정도였지만, 몇 번을 찾아 가서 눈에 익으니까, 큰 지식이니 훈련없이도 환자를 돌보는 일도 맡았고, 환자들을 목욕하는 일과 환자복을 갈아 입히도 일도 거들고 혹은 막 임종한 환자의 처리도 거들었다. ​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는 사실..

[영화]로얄 어페어

2022. 3 ​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자주 뒤적이는 것이 넷플릭스. 그 많은 영화들 가운데서 늘 먼저 관심을 갖는 것은 적어도 이름이 알만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이고, 가능한 영화가 실화를 다룬 것이라면 좋고, 그 영화의 다른 사람들 평을 잠시 읽어보고 영화보는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게 선택한 영화 18세기 덴마크 왕정시대의 실화인 로얄 어페어. 주연 배우인 매즈 미켈슨도 덴마크 사람이고, 그 상대역인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스웨덴출신이다. 배우들도 이 영화에 대한 출연이 무척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영화제목이 왕가의 스캔들이라는 표현보다 어페어라는 의미가 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 '러브 어페어'같은 감동을 줄까 하는 기대때문이다. 편집증이 있는 왕족의 크리스티앙에게 시집을 오는 영..

[영화]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원제 'Hope Gap'인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러브 어페어의 그 청순한 어네트 베닝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불과 몇 사람밖에 관객이 없는 광화문 씨네큐브의 넓은 공간의 한 구석에 콕 박혔다. ​ 처음 화면에 나오는 낯 익은 여자. 누구지? 알고보니 나이든 어네트 베닝. 검색해 보니 나보다 2살 적은 58년 개띠다. 러브 어페어가 1995년 영화니, 무려 27년전의 30대 말에는 정말 꽃과 같았었는데... ​ 장성한 아들은 외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남편 에드워드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그리고 시를 엮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부인 '그레이스' 부인은 모든 일에 욕심이 있고 자신이 있다. 자식도 ..

나도 모르는 나의 습관

오늘 낮에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은 일요일만 낮잠자더라" "그래? 나 그거 못 느꼈는데..." 그리고는 내 방에 들어와 앉아 있다가 졸려서 잠시 낮잠 잤다. ​ 직장다니던 시절 아내가 내게 불만이... "당신은 도대체 힘들다는 소리를 안해, 그래서 내가 자꾸 눈치를 보게 돼" ​ 내가 그랬나? 아마 그건 내 삶의 철학인것 같다.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나 힘들다'는 표현은 하지 않겠다는...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겨우 그거 하고도 힘드냐?'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일까? ​ 내가 과묵한 것은 아닌데 적어도 저녁 퇴근하여 집에 와서는 "나 힘들어 그러나 아무것도 시키지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남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 혼자 트레킹을 많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