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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번 제주도여행 (2002)

carmina 2015. 12. 9. 10:02

 

(사라진 싸이 미니홈피 글에 있는 글을 찾아 옮깁니다.)

 

2002년 11월

 

제주도 여행기

 

 

남들이 내가 제주도를 아직 가보지 못했다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토록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정작 코 앞의 해외는 가지 못가느냐고

마음만 먹으면 후딱 다녀 올 거리를 왜 그리 망설이느냐고..

 

그래..마음만 먹으면 적어도 제주도 정도는 그냥 후딱 다녀올 만 했다. 비행기요금이야 많지도 않지만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충분하니까 언제든 마음만 내키면 다녀올 수 있지. 그러나 아직도 가지 못했던 이유가 첫째 1 2일에 다녀오기는 너무 아까운 지역이고 2번째 이유는 다른 곳은 혼자 여행을 가도 괜찮겠지만 제주도는 아무래도 부부가 같이 가야 할 곳이나 아내는 그렇게 국내의 여행이나 다닐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주말을 끼고 간다고 해도 주일을 필히 다니는 교회에서 지내야 하는 아내의 원칙의 벽에 늘 부딪혀 제주도라는 계란은 깨져야 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고, 이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갔기에 가게를 하루나 이틀쯤은 비워도 될 것 같았기에 다시 아내에게 시도.

다음달 결혼 기념일에 맞추어 제주도 가자.

안돼 여전히 아내는 철옹성이다.

장모님 모시고 가자

어머님? 아내가 솔깃해 진다.

혼자 중얼거리며 엄마가 가실려나…”

세상에..어머니라는 한마디에 아내는 순식간에 넘어간다.

혼자 방안으로 들어가 어머님과 통화하더니

가신대

그럼 교회 빠져야 하는데, 아니 빠지는 것이 아니고 제주도 가서 주일예배 드려야 하는데?

제주도에 아버님 피란시절에 다니던 교회가 있대. 거기 가보재.

일정은 순식간에 잡혔다.

11 15일 금요일부터 결혼 기념일인 16일을 지내고 주일인 17일 돌아 오는 것.

금요일을 어차피 빼먹을려면 아침부터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해서 난 내 노트북을 껴 안고 작업에 들어갔다. 대한항공 사이트 접속해서 인터넷으로 예약. 지난 번 온 가족 미국여행하고도 얼마간의 마일리지가 남았으나 딸까지 데리고 가야하니 4만마일이나 필요한데 가능할려나. 4만마일이 조금 안되네. 델타 마일리지도 있고, 아내의 마일리지도 조금 있으니 사용하면 되겠다 했는데 마일리는 2명이 같이 갈 경우는 규정의 90프로를 적용한단다.

그럼 4명이 36000마일. 오케이.. 가능하다.  아침비행기로 가서 주일날 저녁 비행기로 온다.

 

콘도를 예약하자. 내가 가지고 있는 콘도가 제주도에도 지점이 있으니 가능하지. 콘도는 제주도의 서해안에 있으니 또 한 번 뚝 딱 2 3일을 예약해 버렸다.  인터넷을 뒤져 제주도 여행의 코스를 잡아 본다. 인터넷에는 제주도에 관한 여행사이트가 많아 지도가 아주 상세히 나와 있다.  각종 도로 및 관광코스까지 굳이 여기 저기 뒤져보지 않아도 정보가 대개 비슷하다. 인터넷으로 렌터카를 예약했다. 60시간에 맞추어 그리 비싸지 않은 중형차를 예약. 이제 갈 준비 끝.

 

어느 날 저녁 같은 동네의 합창단원과 식사 중 우리 제주도 간다 했더니 그 집도 이번 여름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것을 이번 기회에 사용하고 싶다 해서 같이 가자고 하기에 오케이. 일행이 갑자기 8명으로 늘었기에 콘도에 방 추가가 안될 것 같아 50평 정도의 펜션으로 예약. 비용은 콘도보다 훨씬 비싸지만 방도 많고 서귀포에 있다하니 이동에 여러가지 잇점이 있을 것 같았다.

 

2 3일을 여행가기 위해서 아직 일에 익숙치 않은 아르바이트생을 위해 떠나가 며칠 전부터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핸드폰이 있으니까 언제든 연락할 수 있으니 안심은 되겠지만 이런 일이 흔치 않으니 고객들도 이해해 주리라.  이렇게 평일에 여행을 다녀 본적이 언제련가.

 

떠나기 이틀 전에 두 가족이 모여 사전 코스를 논의했다.  무언가 특별한 곳을 찾으려는 이와 제주도를 처음 가는 나에게는 일반적인 코스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맞서다가 내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출발 당일, 아직 지난 밤의 어둠도 가시지 않았는데 우린 벌써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 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기분좋게 출발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개구쟁이 아이가 비몽사몽인지 조용하고 여자아이들 끼리 모여 무슨 이야기인지 머리를 맞대느라 바쁘고

 

탑승수속을 마치고 시간이 남기에 아침식사를 즐기다가 출국장으로 천천히 들어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별도 수속이 없을 것 같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겠다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짐 검색이 시간이 많이 걸리느라 서둘러야 했다. 탑승구도 1.  맨 끝이다.

 

걷기 불편한 장모님에게 청사내 장애인용 차를 이용하라고 아내에게 얘기했지만 걷는 것이 좋다고 사양하더니 결국은 청사 마이크로 부지런히 우리 일행의 이름이 불려지고 있다.  빨리 타지 않으면 비행기 문을 닫는다고.

 

허둥지둥 대며 승무원에게 미안한 얼굴로 탑승. 자 떠나자. 오랜만에 기내 잡지인 모닝캄을 즐긴다. 이전같으면 주로 미주를 여행하느라 기내에서 방영하는 영화리스트부터 보았는데 이젠 그렇게 영화를 볼 정도로 긴 여행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지만 이렇게 평일에도 개인여행을 떠날 수 있는 현실은 흡족하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싶었는데 벨트 매고 아내가 연신 맛있다고 감탄하는 기내 커피한 잔 마실 시간에 제주도에 도착해 버렸다.

 

! 제주도

이 가까운 곳을 오기 위해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던가?  신혼여행도 이 곳 오는 비용이 부담이 되어 철도여행을 해 버렸고, 그 뒤로도 여름 휴가 때나 연휴 때 이곳으로 오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보았지. 수많이 사람들이 제주도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해도 나는 막연히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실제 결행을 하지 못한 바보였어..

 

전화로 예약한 렌터카 회사에서 알려준대로 5번 주차장에 가니 같은 색깔 같은 모델의 EF소나타 2대가 나란히 내 이름을 차창에 써 놓고 기다리고 있다.  한대를 60시간 빌리는데 13 4천원. 그리 비싸지 않은 금액이라 큰 차 한 대를 렌트할려던 생각을 바꾸어 두대로 정했다. 큰 차를 타면 뒤에 앉은 사람은 차 문도 못 열고 밖의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테니..

 

자차보험까지 지불하고 첫 번째 코스인 용두암을 찾기 위해 공항밖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사우디나 멕시코에서 흔히 보았던 야자나무가 가로수로 잘 정리되어 있어 반가왔다. 그토록 진절머리가 나도록 보아온 나무가 굳이 열 몇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이야. 제주도에서 나의 첫 친구가 야자나무구나.

 

제주도하면 늘 보여지는 사진, 용두암..용암이 바다까지 흘러 내려와 갑자기 식는 바람에 생긴 기암의 모습이 용처럼 보였다 해서 용두암..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바위에 수많은 설화를 가져다 붙였다.

 

차가운 바닷물에 굳어버린 용암의 덩어리가 어찌 그리 용이 날라갈 것 같은 형상을 만들었는지 가까이 다가가서 툭 치면 용이 까만 바위를 박차고 날라 갈 것만 같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니고 암룡타정(岩龍打睛)인가?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니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우르르 밀려 온다. 중국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그들의 우리 자연을 어떻게 생각할 까 하는 걱정 중국에는 더 웅장한 기암괴석들이 많고 더 볼 거리들이 많은데 그들이 우리의 관광자원이 너무 빈약하다고 놀리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있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곳이 더 가고 싶은 곳일텐데

 

바람이 세차다. 제주도에 바람이 많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바닷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치는 소리가 유난히 철석거린다.  비록 서울의 날씨같이 차가웁진 않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 몸이 움츠려진다.  아이들도 춥다고 종종걸음쳐서 차로 달려가고..

 

다음은 제주시 가까운 곳에 있는 도깨비도로를 목표로 하고 길을 잡는다.  도깨비도로. 다른 지방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도로가 제주도에 몇 군데 있다.  차가 비탈길로 저절로 올라가는 현상.  물론 그 기현상에 대한 내막이야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알고 있지만 그 현상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한림방향으로 가다가 신비의 도로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깨비라는 말을 쓰기가 거북해서인가? 도심지를 막 벗어나자 마자 조그만 오솔길이 나타나고 앞에 가던 차가 멈춰 서더니 운전하던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데 차가 뒤로 밀리고 있다. 

! 저 사람이 왜 저래. 사이드 브레이크 잠그지 않고 내렸나 보네.  이러다가 아무리 저속으로 밀리지만 차에 흠집나면 수리비 물어 줘야 하는데..하며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앞의 차 운전수는 싱글벙글하며 차를 따라 뒤로 오고 있다.  그러다가 차가 계속 밀리자 허둥대며 저절로 밀리는 차에 급히 올라타고는 앞으로 진행한다. 아하..이곳이 도깨비 도로구나.

 

나도 조금 앞으로 간 뒤 기어를 중립에 놓고 가만있으니 분명이 내 앞에 보이는 길은 내리막길인데 내 차가 뒤로 밀려 올라가고 있다. 허참 차에서 내려 내 눈으로 뒤로 밀리는 내 차를 본다.  도깨비도로를 확인하고 옆에 차를 주차하고는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 본다.

분명히 지금 외길은 아래쪽으로 완만한 경사진 비탈길인데 물병을 길에 놓자 저절로 언덕위를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고 그렇고 그 큰 버스도 언덕을 밀려 올라가고 있다.

 

도깨비 도로의 진실은 주변 환경의 역현상에 있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 토사를 낮게 성토해 놓았고 나무도 일부러 낮게 심어 놓았기에 도로는 언덕일지라도 주변의 환경이 모두 언덕에서 내려가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착시현상을 만들게 한다. 간단히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뒤를 보면 제대로 된 도로의 높낮이를 볼 수가 있다.

 

주변에는 잘 꾸며진 관광상품점은 없어도 제주도의 특산물인 보리빵을 만들어 파는 이가 도깨비도로 테스트용 물통과 자전거를 빌려 주고 있고, 관광객이 많이 몰려 오는 곳인지라 화장실도 외딴 곳임에도 불구하고 잘 꾸며져 있어 관광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도깨비도로를 나와 해안도로를 타고 금릉석물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해안도로로 나오니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진다.  가슴이 트이게 펼쳐진 제주 앞바다와 해변의 까만 화산바위에 부서지는 파란 파도들, 그리고 더욱 인상적인 것은 해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풀들..  그 색깔의 단조로움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한적하고 잘 닦여진 도로에 자전거 여행을 위한 도로도 준비되어 있고 과속하지 않도록 군데 군데 무인카메라가 많이 있지만 이런 멋진 곳에서 과속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도무지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앞서 가는 차에 핸드폰으로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하려 하는데 마음이 통했는지 그 차도 우측 깜빡이를 키며 차를 옆으로 댄다. 차 문을 열고 나오니 비록 찬 바람이 세지만 그 바람마저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트인다. 내 머리카락이 환호하며 바다를 강하게 맞아 들이고 있다. 

 

모닥불같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바다. 지금 그 바다가 한없이 푸르게 내 앞에 뻗어 있다. 아주 길고 끝없는 도로를 보는 것 같은 기분, 날라 갈 것 같은 기분, 팔을 벌려 날라가 본다.  혼자 왔다면 아마 차가운 바람을 안고서라도 그 곳에 오래 앉아 멍하나 바다와 하늘과 파도를 바라 보고 있을만한 곳이었다.

 

금릉석물원, 돌을 가지고 온갖 제주도의 풍물을 조각해 놓았다. 돌하르방은 물론이고 해녀의 모습, 그물짜는 아낙네들의 모습, 동물들, 부처와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스턴섬의 석상까지도 가득 채워 놓았다.  금릉석물원 초입에 돌산을 깍아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 부처를 모셔 놓았다.  , 이 곳에 부처만 없었다면 공명도 테스트할 겸 신나게 찬송가나 가곡을 불러 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밖은 차가움이 감도는데 동굴 안은 밝혀 놓은 전등때문인지 훈훈하다.

 

단체관광 온 사람들을 위하여 조각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이곳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 옆에 일부러 따라 붙었다. 베틀을 짜는 아낙네들 옆에 사내가 엎드려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제주도는 여자들이 모든 궂은 일을 다 한다. 따라서 남정네들은 이렇게 일하는 아낙네들 옆에서 장난이나 걸고 있다. 어떤 조각은 방안에서 옷을 갈아 입는 아낙네의 몸을 몰래 훔쳐보는 남정네를 그려 놓은 조각도 있고, 제주도의 유명한 똥돼지를 표현한 듯 뒷간에서 일을 보는 아낙네의 밑에서 돼지가 입을 벌리고 똥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재미있는 조각도 보인다.  화산암이 많은 곳이기에 당연히 화산암으로 조각해 놓은 것이 많다.

 

금릉석물원 구석에 일반인들에게 공개용이 아닌 듯한 동물이 하나 구석에 있다. 낙타. 제일 먼저 혹이 하나인 낙타의 슬픈 눈과 내 눈을 맞춘다.  먼 모래사막과 열사의 나라에 있어야 할 낙타가 이 곳에서 지금 추위에 떨고 있다. 

 

금릉 석물원을 나오니 모두들 출출한지 밥부터 먹자고 아우성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식당이 나오겠지 하는 우리의 익숙한 사고관념은 이곳에서 별로 통하지 않는다. 제주도는 해안도로에 식당이 별로 없다.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혼자 감격해 했다.

 

해안도로에 식당이 많으면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음식쓰레기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비닐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려, 제주도 사면 바닷가가 서해안이나 한강처럼 지저분할텐데 이 곳은 식당이 없으니 바닷가는 물론 주변 환경이 저절로 깨끗해진다.

 

자연이 자연다워지는 길은 사람이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인가?  아무리 세상에 유독성 물질이 많지만 사람처럼 맹독성을 가진 것이 있을까? 자연 파괴는 물론이고 인간과 인간의 심성까지 마구 부수어 버리는 인간의 본능. 

 

해물 뚝배기를 먹고 싶어하는 친구가 한참 식당을 찾다가 겨우 차귀도로 가는 길에 식당팻말을 보고 우회전.  바닷가에 잘 다듬어진 동네, 평일이라 그런가? 바닷가 식당들은 손님대신 썰렁한 바람으로 가득 채워 있다.  주차장도 한산한 식당들 앞에서 우린 어른 들 먹을 것 보다 애들이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식당들마다 붙어 있는 갈치 조림.. 그래 그게 낫다.

 

어른 5명 아이들 3명인데도 우린 5인분만 시키고도 배불리 먹었다. 갈치 조림, 해물탕 하나 그리고 옥돔 구이 하나 시켜 점심을 맛있게 포식하고자 어디로 갈까나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갈까나..  송악산, 산방산.  그래..그곳으로 가자.

산 위에서 바다를 보면 아름다울거야.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다가 우린 또 멈춰 버리고 만다. 너무도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에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그만 공터 앞에 커다란 검은 바위들이 파도를 막고 있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바람 하나만으로도, 파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있고 멋있는 장난감이 될 수 있을텐데 왜 아이들의 도심 속의 자연을 느끼지 못하는걸까? 

 

지푸라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혼자 노는 어린 꼬마,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 포말 속으로 들어가며 즐거워 하는 아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좋다. 하긴 아이들도 아름다운 자연 중의 하나이리라..다듬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두툼한 옷을 입은 태공이 파도 앞에서 낛싯대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점심을 먹어서인지 졸립다. 앞서가는 차가 해안도로의 어느 지점으로 올라간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 그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바다를 구경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  지금 제주도에 와 있다 하니 용건을 얘기한 후 전화를 끊고는 조금 이따 전화가 다시 온다.

형 도무지 배가 아파서 못 듣겠다.

그래? 그럼 오늘 밤 비행기 타고 와, 잘 방은 넉넉해

안돼요..못가요..내일 일을 해야 해요.

졸립다..차를 세워 놓고 잠시 잠을 청한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다.

모든 집들이, 모든 밭들이 돌로 담을 쌓고 경계선을 쌓았다. 어쩌면 그렇게 정교하게 담을 쌓을 수 있을까? 바람에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낮은 돌담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그냥 올려만 놓으면 되는 담인가? 돌을 가능한 네모지게 만들어야 제대로 될터인데, 쌓여 있는 돌들은 굳이 네모가 아니라도 작은 것 큰 것들이 제법 어우러져 길에 줄을 잇고 있다.

 

오른쪽에 해변 왼쪽에는 산방산이다.  산방산은 백록담의 분지를 덮었던 돌이 이곳까지 날라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상층의 모양이 둥글다. 아이들과 걷기 불편한 장모님이 계셔 산은 포기하고 오른 편의 해변으로 내려섰다.  이름하여 용머리 해안.

언덕을 내려가다가 아내는 붕어빵을 사 들고는 나누어 준다.  용머리 해안 입장료 2200.

아니, 겨우 해안하나 보는데 2200? 너무 비싼 것 같다.  일행들과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포기하는 측으로 의견이 모아지다가 해변에서 올라오는 다른 관광객에게 물어 보았다.

해변이 어떠냐 했더니 너무 아름답단다. 

그래..내려가자.

 

바위 계곡을 내려가니 갑자기 봇물 터지듯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바람이 온 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바다에서 해녀가 자맥질을 하고 있다. 무언가 건지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해녀는 자꾸 물속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를 반복하고 바로 그 옆에는 금방 잡아 올린듯한 멍게와 소라를 팔고 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이곳의 체감온도는 거의 북극추위를 느끼게 한다.  이 곳 용머리 해안의 바위는 수억년을 통해 만들어진 것처럼 바위의 단층이 뚜렷하다. 켜켜이 시루떡처럼 무늬가 있는 바위층과 수 천년 파도를 맞으며 날카로운 바위가 무디어지고 부드러워진 모습 그래도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잡아 올린 회를 안 먹으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아 넷이서 쪼그리고 앉아 만원어치를 시켰다.  소라가 얼마나 맛있던지 입에서 씹히는 맛이 달콤 쌉싸름하다.

 

너무 추워 갈 길을 재촉한다. 바위에는 커다란 공룡발자욱 같은 것이 군데 군데 나있다. 진짜 공룡발자욱인가? 아니면 저절로 만들어진건가?  계속되는 단층바위옆을 걸어가는데 칼날 같은 바람이 모두를 날려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불어와 여자들은 바위를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 어린 아이정도는 가볍게 날려 버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다.

 

해안선을 돌아오니 바람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조용해 졌다.  인위적인 바람인가?  아니면 그 모진 바람을 저 바위가 모두 막아내고 있는건가  바닷가에 자갈보다는 작고 모래알보다 굵은 작은 돌들이 가득하다.  이건 아무래도 인위적인 것 같다. 

 

해변의 화장실도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깨끗하다.  제주도는 역시 관광도시구나.

 

차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다가 돌하르방을 파는 가게가 있어 선물용 돌하르방 가격을 물어보니 이곳에서만 특별히 싸게 주는 거라며 약간 사시가 있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곳에서 안사면 손해 볼 것 같은 어투로 사가란다.  애들 것이랑 해서 몇 개를 샀지만 역시 이 곳만 싸게 파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올라오면서 또 먹을 것을 챙긴다. 귤이랑 펑튀기랑 하긴 여행에는 먹는 것이 빠지만 심심하다. 귤은 1000원만 주면 한 봉투를 준다. 용머리해안에서 올라와 친구네 가족은 아이에게 말을 태워 준다. 말타는 것 2000원, 본인이 카메라로 사진 하나 찍는 것 1000.

 

용머리 해안을 빠져 나와 이젠 중문관광단지로 방향을 돌렸다. 애들이 있으니 테디베어박물관에 가자고. 테디베어. 곰인형을 어떤 식으로 전시해 놓았을까?  멋진 유리건물로 만들어진 테디베어는 유럽식의 박물관처럼 입구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마당의 벤치에 커다란 테디베어를 놓고 기념 촬영도 하게하고 주차장도 상당히 잘 정돈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가 입장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다.  6000, 안에 들어와서는 애들만 들여 보낼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테디베어를 각종 영화의 주인공으로 분장시켜 놓은 것들, 테디베어 창시자의 역사, 전세계 유명한 사람을 테디베어 인형으로 표현해 놓은 것들..

 

하긴 관광객을 위하여 이런 것도 필요하리라.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에 디즈니랜드 장난감 소품들 전문점이 있듯이..

 

박물관 안에 카페가 있는데 테이블 하나에 사람만한 테디베어 인형들이 둘러 앉아 차를 마시는 연출을 해 놓았다. 이런 것이 누구 아이디어일까?  이런 아이디어를 배워 두리라.

 

박물관을 나오니 어스름 어둠이 깔렸다.  이젠 동물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 우리도 오늘의 숙박지인 로얄펜션으로 가는 길을 찾았으나 앞서 가는 차가 자꾸 길을 헤맨다.  펜션이 외진 곳에 있는지 몇 번을 찾아 다니다가 어느 곳에 가서야 겨우 안내인 오토바이가 나와 길 안내를 한다. 바위로 담을 해 놓은 주택들 사이로 들어가 연립주택 같은 건물이 펜션이란다.

 

실내가 상당히 넓었다. 방이 4.  거실도 넓고, 아이는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있음에 좋아한다.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할까 의논하다가 취사도구가 다 있으니 밖에 나가 장을 봐서 먹기로 하고 제주 5겹살 돼지고기를 사다가 신나게 포식하고는 새벽부터 설친 잠 때문인지

한꺼번에 피곤이 몰려 와 초저녁에 슬그머니 침대로 사라져 버렸다.

 

 

 

 

제주 여행 2일째

 

서귀포에서 보낸 하룻밤이 너무 뜨거웠다. 지난 밤 펜션의 난방시스템을 봐달라 했더니, 진짜 확실히 봐준 모양인지 밤새 잠자리가 뜨거워서 혼났다.  습관대로 아침 7시에 일어나니 장모님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인기척을 내신다.  나도 나이들면 이렇게 잠이 없어 지겠지 

 

지도를 펼쳐 놓고 오늘 하루는 어디로 가야할지 미리 도상여행을 해 보고 아침을 라면과 빵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밥으로 대충 때운다. 

 

모두 새로운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고, 출발.  여자들이 있어서 그런지 출발은 늘 늦다.  여행은 일찍부터 해야 제대로 하는건대

 

오늘은 주로 한라산 주변을 돌아보기로 합의했다.  우선 숙소인 서귀포 주변의 관광지부터 찾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이 덜 불어서 제주도 특유의 따뜻한 날씨로 아침공기를 맞는다. 

 

정방폭포.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대형 버스가 보이고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계단도 잘 정리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가니 눈 앞에 커다란 폭포가 보인다. 시원하게 내려 쏟아지는 폭포, 이런 폭포를 볼 때마다 몇 년 전 아내와 여행한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폭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하니 이런 폭포가 조그마하게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국토 아닌가?  강물이 여행을 끝내고 바다로 떨어지는 그 마지막의 고단함이 이 곳에서 소리내어 부서진다.  그 여정을 축하해 주는 듯 폭포 아래에는 물방울과 햇빛으로 생긴 조그만 무지개가 가로 걸쳐 있다. 

 

무지개의 끝은 없다 하는데 이 곳에서는 무지개의 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난 아주 예전에 무지개의 끝을 본 적이 있었지. 군대 졸병 시절 전방에서 방카 작업을 할 때 어느 날 여름 소나기가 한 바탕 지나가고 난 뒤에 산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쌍무지개가 떴다.  그런데 그 무지개의 끝 하나가 어느 마을에서 시작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곳에 귀인이 태어났을까?  무지개는 점점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때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딸이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지 자꾸 폭포 쪽으로 올라간다.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넓은 바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딸 한명의 몸 무게야 견딜 수 있겠지.  폭포에 버금가는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일행들이 동조를 하지 않아 무산. 난 왜 이럴까? 왜 이런 아름다운 자연만 보면 노래하고 싶은걸까? 어쩔 수 없는 병인가?

 

정방폭포를 나와 인근의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다. 몇 개월 전 그토록 온 천지를 떠들썩하게 한 월드컵열풍에 이곳 제주도도 떠들썩 했건만 지금 오늘은 이 대로변에  적막감만 감돌고 넓은 주차장은 차 몇 대만 뎅그마니 남아 주인 없는 공간을 지키고 있다. 

 

제주 월드컵 경기장은 황포돛대를 상징화 한 것 같은데 제주의 거센 바람에 돛대는 모두 날라가 버리고 앙상한 골격만 지붕을 얹혀져 있다.  오히려 지붕이 덮힌 것보다 지붕 벗겨진 것이 보기 좋으니 어찌된 일인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녹색의 축구장이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함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텅빈 관중석, 관중도 없는데 함성이 들릴까?  ..그러나 함성이 들렸다. 짝짝 짜짜작 대~한민국,  관광 온 단체 손님들이 가이드의 구호에 맞추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나도 따라서 손뼉치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광화문에서 이 소리를 몇 날 동안 얼마나 크게 외쳤던고. 

 

제주 월드컵 경기장은 지상이 맨 꼭대기로 되어 있다. 즉 경기장은 한 참 아래로 내려 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층으로 내려가니 사진 전시회가 있고 각종 월드컵관련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선수들의 대형 사진을 세워 놓고 제주 월드컵 경기장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때의 감동들이 눈에 선하다.

 

월드컵 경기장을 나와 다음은 어디로 갈까나.  주상절리. 안내서에는 제주도의 최고의 절경이라 일컫는 곳. 어떤 곳이기에 그럴까? 지도에는 나와 있는데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다. 대포항 근처라 했는데 도무지 주상절리라는 말을 찾을 수가 없어 가다가 횟집에 물어 보니 어디 공사현장으로 가라 했는데 막다른 길로 들어서고 다시 한 번 물어 어느 길로 가라 하는데 가다 보니 역시 찻길이 없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도로표시라고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원위치하여 찾아 간 곳이 배가 닿는 대포항, 어느 친절한 아저씨가 자기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오토바이를 타고 앞장선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이게 제주도가 관광도시의 면모를 자랑하는 시민들의 응집력인가?  대포항으로 가다가 지나친 신축중인 대형건물인 제주 국제 회의장 옆 길에 비 포장도로 앞에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고 아저씨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간다.  고맙수다(감사합니다의 제주사투리) 비포장도로 저 끝에서 대형관광버스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 곳이 맞나보다.  역시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상절리 입구로 가니 입구는 잘 정리되어 있다. 아마 제주 국제 회의장을 새로 건설하느라 주상절리 입구가 잠시 이렇게 형편없이 바뀌었나 보나. 그렇다고 팻말까지 다 없애버리면 처음오는 사람은 어떻게 찾노? 

 

주상절리, 계단을 조금 내려가는 순간 제주의 끝없는 비경에 혀를 내 둘렀다. 이렇게 멋진 곳이 있을 수가 있나.  금릉석물원이 인간이 만든 조각전시회장이라면 이곳은 신이 만든 석물원같다. 어쩌면 바닷가에 저렇게 육각모의 조각을 자연이 만들어 냈을까? 끝없이 기암 괴석이 널려 있는 제주도엔 온통 신의 조각품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각모의 돌기둘이 겹겹이 놓여있는 저 주상절리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건가?  파도가 돌을 부수어서 만들었다면 돌이 둥근형일텐데 이 곳은 모두 사각모 혹은 육각모다.  바닷가에 있는 낮은 바위는 그렇다 치다. 그러면 저렇게 사각 육각모의 기둥을 벽에 세운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주상절리를 보며 어릴 때 보았던 석영 운모 조각이 생각난다. 반짝 반짝 빛나는 다각형의  돌들, 또한 돌을 손으로 문지르면 벗겨지는 운모.  그런데 그건 작은 돌이려니 그렇다 치자. 이곳은 몇 백톤이나 될 듯한 돌이 저렇게 일정하게 깎여 나갈 수 있나?

 

공룡의 발톱으로 내려 긁은듯한 흔적,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바위들의 정렬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찍을 수 있도록 전망대에 발판을 해 놓았다.  발 아래 펼쳐진 기하학적인 바위들을 보며 할 수 있는 이라곤 탄성밖에 없다. 제주의 여러 곳을 다닐 때마다 기분 좋은 것은 그 비경들에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곳 주상절리의 바닷가에도 비닐 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 관광지에 매점이 많지 않아서이리라.  만약 이런 관광지 근처에 각종 먹을 것을 파는 매점들이 많다면 어디 가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사고에 깊이 박혀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그냥 지나치지 않을텐데 이런 점에서 제주의 성숙된 관광정책을 높이 사고 싶다.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 오는 주상절리 해안에서 어느 외국여자가 혼자 구경을 와 열심히 관광가이드 책을 보고 있다. 저런 모습이 내 이전의 모습인데..

전망대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니 해녀들이 일할 준비를 하고 있기에 사진찍어도 되느냐며 양해를 구했더니 찍지 말란다.  제주도의 해녀들은 대개 오토바이나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타고 해변으로 나오는데 거의 나이가 많고 그림에서 본 검은 색의 잠수복, 바구니 비슷한 해먹을 들고 있다.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던가..  늘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 해녀들의 표정은 웃는 표정이 없다.  힘든 노동때문인가 아니면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때문인가

 

점심식사를 위해 찾아간 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오는 곳인지 주차장도 넓고 친구가 찾던 해물뚝배기를 하는 식당인데 입구에 제주도 말로 혼저 옵서(어서 오세요)라고 크게 써 있다.  제주도는 널린게 밀감인지 식당의 뒷마당에서 밀감나무가 있고 식사 후 손님들이 마음대로 밀감을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광주리에 밀감을 가져다 놓고 마음대로 먹고 가져가도록 배려해 놓았다.

 

해물탕과 공짜 밀감 몇 개로 배를 채우고 한라산 방향으로 향했다.  당초 친구와 계획하기로는 둘째날 남자들 둘이서 한라산등반을 계획했는데 여자들도 반대하고 차를 2대로 움직이니 형편이 안되어 계획이 무산되었다. 다음에는 한라산 등반을 해 보리라.  제주도의 한라산은 도로 사정이 좋아 능선을 사방으로 드라이브가 가능하도록 잘 닦여져 있다

 

특히 올해에는 제주도에서 전국체전이 있기에 유명도로를 재포장하여 도로는 더욱 깨끗해 보였다.  정방폭포에서 나와 1100고지로 가는 도로를 탔다.  도로는 마치 우리를 위한 듯이 단장되어 있었고 완만한 경사가 운전하는 기분을 더욱 유쾌하게 돋구었다.

 

구비 구비 돌아가는 양 옆으로 산림이 우거져 있어 비록 늦은 가을이라 푸르름은 덜했지만 나무들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일본 후지산은 활화산이라 아직도 산의 내부에 용암이 끓고 있어 산의 나무가 거의 죽어 있고 토양도 검은색인데 한라산은 사화산이라 나무나 흙이 모두 살아 있다. 

 

1100고지로 올라가는 중간 쯤에 전망대를 하나 마련 해 놓았다. 망원경과 주차장이외에는 아무 시설도 없지만 그냥 서귀포를 내려다 보고 바다를 멀리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가슴을 트이게 했다.  가까운 곳에 목장이 있어 말들이 풀을 천천히 거닐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고, 도로 곳곳이 노루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비록 노루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정겹기만 하다.

 

어제의 세찬 바람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이곳은 높은 곳인데도 바람 한 점 없다. 두터운 옷을 벗어버리고 모두 가벼운 차림으로 오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망원경도 보고 높은 바위도 올라가 보고, 넓은 시야를 가진 것만도 이렇게 좋은 것을

늘 사방 세멘트 콘크리트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앞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우회전하여 따라가 보니 넓은 주차장이 있다. 매표소에서 우리의 구성원이 이상해 보였는지 이곳은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이란다. . 이곳을 왔어야 하는데 잘못 들어온건지 아니면 제대로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차를  조금 더 달리니 1100미터 고지 휴게소가 나온다. 사슴의 형상과 곰의 동상이 자연속에서 같이 녹아 있다. 고지라 그런지 바람이 차갑다. 휴게소의 2층에 올라가니 바로 눈 앞에 한라산이 보인다.

 

저곳을 가고픈데올라가고픈데.. 한라산의 억새풀 속을 걸어가야 하는데..

눈 덮힌 한라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난 왜 이 곳에서 쳐다보고만 있나.. 오호 통재라..

한라산거기 그대로 있거라..다음에 올 때는 꼭 내가 백록담을 찾아가리라..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한라산의 북쪽 도로를 달리니 도깨비도로가 또 나온다.  이 곳에는 도깨비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선을 그어 놓았다. 분명 눈 앞에 보이는 도로는 오르막길인데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으니 차가 슬슬 위로 올라간다.  이곳도 역시 보리빵을 팔고 아내와 친구의 부인은 보리빵에 흠뻑 빠져 있다. 

 

특이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좋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일요일 같으면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아 오면 붐빌까?

 

아이들이 말을 타고 싶어 한다기에 앞서 가는 친구차가 자꾸 승마장을 찾으려 노력한다. 인근 목장에 있지 않을까 하고 방문한 곳은 명도암 관광휴양목장,  아주 넓은 초원에 양 몇 마리가 편안히 쉬고 있고 양 우리에 어린이가 들어가 같이 놀고 있다. 이 곳에서는 유리건물 안에 예식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제법 동화적인 분위기에서 결혼예식을 올릴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차에서 내리자, 대형 풍차가 달린 네델란드식 건물이 사진찍기를 유혹하고 그 옆에 전통제주 가옥을 마련하여 툇마루에 앉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여기 저기 달린 글을 보니, 각종 TV 연속극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노라고 안내판이 붙어 있다.  매스콤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가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이슬맺힌 초원을 맨발로 걷는 기분은 어떨까? 연속극에만 가능한 것일까?

 

이곳에서도 말을 타기는 힘들었다.  농장을 나와 한라산 북쪽으로 가는데 제주기술대학이 보인다. 이 높은 곳에 대학이 있다니 학생들은 이 곳까지 늘 버스로 통학하나? 이해가 힘들다.  하긴 이 세상에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으니..

 

산굼부리로 가는 도로가 거의 환상적이다. 도로 양옆에 빼곡한 나무들. 캐나다가 이랬었지. 시간만 있다면 이 도로를 좌우로 계속 오가고 싶다. 아님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던가.

빨리 한라산을 돌아 서귀포로 가야하기에 산굼부리는 가지 못했다. 이렇게 군데 군데 빼먹고 돌아다녀야 다음에 제주도 다시 올 때 갈 곳이 있어 기대가 생기는 것이겠지.

 

한라산의 동쪽을 돌아간다.  제주 공항에서 렌터카를 할 때 주의 사항이 70키로 이상 달리지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단속이 많으니까 도로를 달리면서 보니 얼마나 과속감시 카메라가 많은지 70키로 이상 달릴 수도 없을 정도다.  그것도 모자라 경찰차의 이동단속 카메라도 많으니..

 

마주 오는 승용차가 하이빔을 번쩍거린다. ..앞에 경찰 단속이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조금 가다보니 경찰이 카메라를 놓고 기다리고 있다. 

 

서귀포로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오른 편에 이기풍목사 선교기념관이라고 있다.  누구일까? 장모님에게 이런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신다. 이기풍 목사님을 어떻게 아느냐며..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 이기풍 목사님과 관련된 분이 계셨다고 아내에게 누구 누구 아느냐며 나도 모르는 이름들을 줄줄이 말씀하신다.  앞서 가는 차가 기념관을 그냥 지나치는데 아무 말씀 안하시기에 나도 잠자코 있었다. 

 

기념관을 조금 지나니 소인국 박물관이 있는데 이 곳은 아마 미니어쳐들을 전시해 좋은 것놓은 것 같다.  친구는 아이들도 있으니 이 곳에 잠시 들렀다 가자기에 얼른 우린 장모님 보시고 인근의 선교기념관을 다녀 올 테니 우리 딸과 같이 들어갔다가 오라고 얘기하고 차를 돌려 다시 기념관으로 향했다.

 

썰렁한 기념관 앞에 남자 두 분이 일을 하고 계신다. 기념관을 보고 싶다 했더니 건너편 빌딩을 가르치며 전기를 올리고 보고 나올 때는 전기를 꺼달란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감사하다고 한다.  되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을.. 

 

이기풍목사님은 우리 나라 최초의 목사님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일제 시대에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이신 그 분의 기념관에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올 때의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어로 쓰여진 성경과 각종 교회 자료들, 갓을 쓴 교인들, 조선시대의 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빛 바랜 사진들, 펜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 쓴 교회 공과들이 생소하다. 

 

기념관이 있는 빌딩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예배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세미나를 할 수 있는 세미나 실과 숙소들이 있어 이 곳에서 교인들의 수련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기념관을 돌고 나오니 장모님이 무척이나 감격해 하신다. 이런 곳까지 구경하게 되니 나보고 고맙다고 연신 말씀 하시기에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다시 소인국으로 돌아와 커피한잔을 뽑을 시간에 안으로 들어갔던 친구일행이 걸어 나와 우린 다시 방향을 서귀포로 돌렸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모두의 소원이 제주의 지천에 널려 있는 감귤을 한 번 따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곳곳에 감귤수확체험이라고 쓰인 간판을 볼 때마다 차를 멈출까 말까 망설였기에 우린 오늘의 마지막 방문처로 감귤을 직접 딸 수 있다는 귤림성으로 찾아갔다. 

 

귤림성의 주차장엔 대형 버스가 몇 대 주차되어 있어 이 곳을 찾는 방문객이 많다는 것을 실감케한다.  안내를 맡은 이가 우리를 감귤밭으로 안내하고 조그만 열매다는 가위를 전해 주며 가지와 열매를 상하지 않게 따는 법을 가르쳐 주며 따보라고 하기에 너도 나도 감귤따기에 열을 올렸다. 감귤따는 비용이 얼마냐 했더니 무료란다. 대신 가실 때 감귤을 사가지고 가면 된다고.. 

 

감귤따는 체험을 하고 우리 일행을 커다란 온실로 안내한다. 그 곳에는 분재 전시회장인데 얼마나 규모가 큰지 온실에 들어 서는 순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수없이 많은 바위의 분재들이 손질이 잘 되어 전시되어 있고 그 옆 온실에는 석란과 동충하초가 아주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가꾸기도 쉽지 않을텐데, 하나의 가치가 몇 만원 몇 십만원 홋가한다니 이 곳의 분재들의 재산 가치는 금방 계산이 안 될 정도다. 

 

귤림성에는 감귤을 가지고 여러가지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낸다. 감귤식초, 감귤주, 감귤 초콜렛, 감귤차 등등..  감귤뿐만이 아니라 버섯으로 만든 각종 화장품, 향수 등등  우리도 물건을 하나씩 샀다.  손에는 아까 따온 감귤들을 들고  제주도를 다니며 우리 차에 감귤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귤은 흔하다.

 

이젠 서서히 해가 저물고 저녁꺼리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 저녁은 기어코 제주도의 특별 요리를 먹어야 한다. 오늘은 우리의 결혼 17주년 기념일이니까..

 

갈치 회를 찾아 친구가 여기 저기 달렸다. 렌터카 회사에서 준 안내 지도에 나와 있는 갈치 회 전문 식당을 찾아 개구쟁이 아이가 있어 이층의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갈치 회와 갈치 조림 그리고 곁들여 나온 꽁치구이와 고등어.. 우린 모두 저녁시간이 한없이 즐거웠다.

 

숙소로 돌아와 애들은 또 자기네들끼리 놀기에 바쁘고 우리 두 부부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대로 보내기가 아쉬워 차를 가지고 인근 카페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 밤에 나와 하늘을 보니 보름달 주위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서울에서는 잃어버린지 오래된 카시오페아좌, 북두칠성, 북극성 등등

차에 기대어 한참동안 별을 바라 보며 제주에서의 이틀째 밤을 보냈다.

 

 

제주 3일째

 

오늘은 주일..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 일출을 보고싶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차를 가지고 밖으로 나갈까? 이곳 지리도 잘 모르는데 어제 펜션관리자 이야기만 듣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다.

 

침대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쉬움에 일어나 거실에서 밖을 보니 거실에서 보이는 바다에 이제 막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서둘러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베란다로 나갔다. 해가 뜬다.  이토록 선명하게 해가 뜨는 것을 본적이 있던가?

 

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그 추위를 무릅쓰고 동해를 응시했건만 일출은 늘 구름속에 가려서 보지 못했고, 2년 전 보길도에서 바라본 일출 또한 역시 구름이 많이 가려 제대로 된 일출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제주도 펜션의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이렇게 선명할 줄이야..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해가 뜬다. 매일 매일 뜨는 태양인데 왜 이리 오늘은 크게 보이는 것일까? 왜 이리도 빨갛게 보이는 것일까?  이른 아침 경인 고속도로를 달릴 때 수없이 보아온 일출이건만 아파트와 건물 들 사이로 보이는 일출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 보이는 일출은 비록 앞에 낮은 집들이 있지만 바다에서 직접 떠오르는 저 태양이 왜 이리 나를 감탄시키는건지..  행여 남이 깰세라 조심 조심 셔터를 눌러댔다. 셔터를 누르면 마치 그 소리에 태양이 나오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 갈 것 만 같은 착각속에

 

..저 모습은 인터넷에서 년초에 수없이 보아오던 장관이네..내가 그러한 장면을 직접 카메라에 담다니혼자 흥분해 버렸다.

 

아침은 간단히 빵과 커피로 때웠다.  오늘은 제주도의 동쪽을 둘러 보는 날로 정하고 주일이니 예배도 봐야 한다.  모두 짐을 챙기고 출발우리 딸은 여전히 앞의 친구 차에 올라탄다. 말동무가 있는 여자애가 있기에

 

길을 따라 가다가 아무래도 제주도의 특산물은 감귤을 미리 사놓아야 할 것 같아 길가의 감귤포장센터로 보이는 곳에서 감귤 2박스를 샀다. 1박스는 장모님용, 1박스는 우리 집용인데 우리집것은 장모님이 우리에게 선물하셨다.

 

예배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어 인근의 신영영화박물관을 찾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한국에서의 영화 박물관이라는 것이 그다지 자료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자료는 볼품이 없었다. 신영이라는 이름은 영화배우 신영균씨에서 따 온 것이고 전시내용은 영화포스터 대본, 배우들이 기증한 몇가지 물건들, 등등..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포스터가 빨간 마후라.  ..10살도 안 된 어린 내가 내 생애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다른 장면은 기억에 하나도 안 남아도 조종사를 적지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축구공 같은 틀을 만들어 전투비행기가 그 틀을 매달린 조종사와 함께 나꿔 채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물관에는 영화의 역사, 영화가 만들어지는 원리라던가, 만화영화의 원리, 지하에는 영화에 사용하는 이조시대 어가들을 전시해 놓았고, 기타 여러가지를 도구를 이용하여 준비해 놓았는데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이런 초라한 물건으로 입장료를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은 인상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건물 밖에 최근에 히트한 한국영화나 외국영화들의 마네킹을 만들어 사진 촬영장소로 제공한 배려도 있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밖으로 나오는 계단에서 바라본 바다와 그 해변의 파란 잔디 밭에 할리우드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죠스 모형과 공룡모형들이 오히려 더 보기 좋았다. 차라리 입장료 없는 이 곳이나 볼걸

 

주일 예배시간이 11시라면 우선 제일 먼저 교회를 찾아야 한다.  만약 예배를 거른다면 앞으로 이런 주말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신혼여행으로 경주에 갔을 때 우리 부부는 이른 아침 일어나 인근 교회를 찾아 둘이 예배를 드려야 했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강릉으로 주말 여행 갔을 때도 주일 아침 서울행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주일예배를 못 드렸고, 미국 동부로 둘이 여행갔을 때도 주일을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는 곳에서 보냈는데 근처에는 교회가 없어 둘이 성경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주일 예배를 대신해야만 한 기억이 여행할 때마다 아내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특히 목사님의 부인인 장모님이 주일예배를 불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서둘러 교회를 찾았다.  시내로 들어와 큰 길에서 트랙터를 몰고 가는 아줌마에게 교회를 물으니 가까운 곳에 장로교회가 있단다. 아이고 다행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11월의 3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드리기에 우리가 여행객의 신분으로 찾아간 곳도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유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 대표들이 나와 감사의 헌물을 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순서 중 장년들이 농부 차림에 지게에 가득 가을 과일들 채소들, 열매들을 싣고 하나님 전에 바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교회 들어갈 때 헌금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예배가 끝난 뒤에 헌금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하기에 다음 주에 우리 교회에 2주일치 헌금하는 것으로 위안하고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해물 칼국수집을 물어서 찾았으나 실패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접어 들었다. 바닷가에 가면 무언가 있겠지 하고..

 

제주도에서 본 특이한 제주색깔은 주홍빛.  제주의 온 시내에 감귤을 키우고 있다. 감귤 농장이 따로 있겠지만 어느 집이나 조그만 공터만 있으면 마당에 감귤나무가 있어 온통 제주의 색깔이 감귤의 나뭇잎 색과 주홍빛, 바다의 파란 빛깔, 화산암의 까만 색, 그리고 억새풀의 하얀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단순하면서도 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해안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한적해서 좋고 바다를 보면 볼수록 싫증이 안나니 이 바다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어야 바다가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바다 옆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도 아직도 바다가 좋다. 비록 수영은 잘하지 못하지만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이 좋고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바다의 갯내음과 비릿한 생선내음이 좋고 바다의 푸르름이 좋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지 못해 앞서 가는 차에 제주민속촌에 가면 먹을 것이 있을 테니 굳이 식당을 찾지 말자 했더니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해변도로를 가다가 바로 제주 민속박물관을 찾았다.  이 곳은 어떤 곳일까?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기 전에 안에 식당이 있음을 확인하고 큰 문을 통해 들어선다. 모두들 배가 고파서인지 식당이 제일 먼저 눈에 보이고 안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바라 볼 생각도 안하고 식당으로 우르르..

 

늘 애들이 있으니까 음식도 적당히 시켜야 한다.  도토리 묵 하나를 시켰는데 도무지 묵 하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이라 일하는 아가씨를 불러 항의했으나 그냥 항의에 불과했다.

 

이런 곳의 음식은 왜 이리 다른 음식점과 틀릴까?  별로 맛있지도 않은 식사로 끼니를 때우고 민속촌을 구경한다.  민속촌은 용인 민속촌처럼 여러가지 가옥의 형태에 따라 구분해 놓았는데, 제주 특유의 대문인 가로막대가 한 개 놓여 있을 때 두개 그리고 세 개의 의미가 틀리다는 것을 알았다. 가로 걸린 나무의 숫자에 따라 주인의 출타시간이 대충 알린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웃었다. 

 

어느 가옥을 가니 수없이 많은 장독이 준비되어 있다. 종가집인가?  일년에 많은 제사와 행사를 치루어야 하는 집의 장독대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만해도 많이 필요하고 각종 김치들을 종류별로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어렸을 때 우리 집 장독에 대한 어머님의 노력이 생각난다. 장독을 닦고 철마다 장독 안에 들어있던 것을 모두 남아 있는 양에 따라서 작은 독으로 옮기고 또 큰 독에는 새로 담근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보관하고우린 고추장 독에 빠진 풍뎅이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왜 풍뎅이는 고추장독에만 빠지지?

 

문주란이란 꽃을 보고는 꽃이 문주란이란 이름답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문주란이란 가수가 왜 꽃같지 않은지 혼자 생각하며 웃는다.  제주 민속촌의 대부분 화장실 옆에는 돼지우리가 있어 돼지가 바로 뒷간 바로 밑에까지 와서 사람의 따끈한 배설물을 바로 먹도록 해 놓았다.

 

어느 집에 가니 커다란 박이 지붕에 놓여 있어 이 지방에 박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케 해 준다.  해녀들의 부유물로 사용하는 박이 이 곳에선 참 많이 필요하리라.

 

제주 민속촌의 전시 구조는 용인 민속촌과 상당히 비슷하다.  단지 제주도의 특유한 것이 눈에 뜨일 뿐  예를 들면 애기 구덕이라던가, 허벅, 제주 갈옷 등등.. 바람많은 고장이라 지붕은 튼튼하게 엮어 놓았고, 어부가 많기에 집집마다 어구(漁具) 하나씩은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하다. 

 

특이한 것 하나는 제주도는 이조시대 선비들의 귀양지로 많이 이용되었기에 유배중인 선비들이 생활하는 집들 주위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시나무 때문에 도망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시나무는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민속촌내의 장터에서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와 감자전과 부침개를 하나 뚝딱 해치우고 코끼리 차를 타고 정문으로 곧장 나와 버렸다. 

 

, 다음은 어디인가점심도 먹었겠다.  해안도로를 운전하는데 무척 졸립다.

 

섭지코지로 갈까나.. 어쩌면 제주도의 지명들 이름은 이렇게 특이할까.  산굼부리, 섭지코지, 남원큰엉, 김녕미로, 주상절리 등등 

 

제주도는 경치가 워낙 좋아 어디든 TV나 영화의 배경이 많다. 섭지코지도 어느 국내 TV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낮은 언덕이 길게 뉘어져 있는 섭지코지에 도착하니 3일동안의 연속 운전이 힘들어서인지 무척 졸립다. 아내가 옆에서 이 곳에서 쉬고 가잔다.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차 머리를 바다로 향하고 바다를 보며 길게 누웠다.  얼마쯤 잤던가. 해변을 보니 우리 아이들이 바닷가 돌에서 놀고 있다. 혹시나 위험할까 봐 밖으로 나와 애들보고 나오라고 소리친다.  친구일행은 아직 젊어서인지 섭지코지의 언덕으로 올라가버렸다. 비는 부슬 부슬 오고 차에서 잠시 나간다는 생각 때문에 웃옷을 걸치지 않아서 몸이 오슬 오슬 한기가 온다. 

 

얼른 차 안으로 돌아와 친구 일행을 기다린다.  저 위에 뭐가 있나..

섭지코지에 주차장에 아낙네들이 무언가를 까서 손님들에게 팔고 있다. ..성게네..그 비싼 성게알을 한 그릇에 만원..우와..먹을까 말까..  먹고는 싶구만 비는 부슬 부슬 오고 모두들 떠날 채비를 끝냈는데 아쉬워라..

 

..우리 다음은 성산일출봉을 가자.  어느 시인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 라고 했는데 이곳을 말함인가?  멀지 않은 곳 성산 일출봉의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제주도 큰 섬에서 해뜨는 곳이 가장 가까운 곳. 성산 일출봉 시를 하나 옮겨 적어 볼까?

 

설교하는 바다 (이생진 시집에서)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을 보고 우린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저 높은 고지에 다녀 오기위해서는 아이들과 장모님을 차 안에 그냥 두어야 하고, 벌써 시간이 늦고 날씨가 흐려서 어둠이 오는 것 같고, 그 곳에 다녀 오면 올라가는 시간이 지장이 있을까봐 우린 성산일출봉을 다음 제주여행을 위해 남겨 놓는 여유를 부린다.

 

성산일출봉 입장료가 굳었다. 우리 커피 마시자.

입구 옆의 상가에서 맛있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랜다. 

 

이젠 어둠 속 길을 달려 쉬임없이 제주로 올라간다. 제주로 가는 도로방향 표시가 계속 2시 방향을 가르키더니 어느 순간부터 11시 방향으로 바뀌었다. 차가 조금씩 붐비기 시작하고 제주도에 어둠이 밀려온다. 이제 우리 여행도 끝나나 보다.  잘있거라 바다여..

 

렌터카 반납시간은 저녁 8, 그 전에 제주시에서 저녁을 먹자.

앞서가는 차가 어디론가 열심히 찾아가더니 골목 골목을 찾아 간 곳은 거부 한정식.  갑자기 이름에서 지갑사정을 생각하게 한다.  예상보다 지출이 더 컸는데 거부 한정식이라니그러나 입구에 들어서자 식당규모에 놀라고 가격에 놀랐다.  이 곳은 중국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그 넓은 곳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제주의 특산품이 똥돼지를 주요리로 한다. 이미 친구가 전화로 얘기해 놓은 듯 우리 자리가 준비되어 있고 메뉴선택도 필요없이 보쌈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일인당 6000원인데 상이 넘칠 정도로 반찬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고기를 얼마나 싸게 파는지 돼지고기 8근에 30000. 언뜻 보니 포장도 잘되어 있기에 돼지고기를 좋아하는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하나 구입했다.

 

이제 제주여행 끝.. 렌터카를 이상없이 반납하고 어둠속의 제주를 날라 육지로 육지로..

 

안녕..제주여..내 조만간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