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겨울속 봄날 트레킹 - 석모도 상주해안길

carmina 2016. 1. 31. 16:33



2016. 1. 30


상주해안길을 다 걷고 석모도 선착장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길가에 각종 해산물 말린 것과

강화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앞에서 기웃거리다가

생선이라면 최고의 반찬으로 아는 내 눈에 작은 조기 말린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 와 아내에게 사도 되느냐고 확인받고

만원에 한 무더기 가득 담아 주는 조기를 집에 오자 마자

튀겨 먹으니 통통한 살이 고소하게 입안으로 들어 온다.

역시 걷는 것은 이런 부수입이 있다.


지난 주 거의 열흘동안 영하 18도 정도의 혹한이 계속 되다가

잠깐 추위가 누그러진 토요일.

집에 아내가 손님을 많이 초대해서 1박한다기에

토요일에 정기도보를 가야하는지 망설이다가

내가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기에 서둘러 나들길 게시판에

참석 댓글을 달고 새벽에 집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몸이 둔하다. 내가 너무 걱정해서 옷을 많이 입었나?

그래도 섬에 가면 추울거야 하고 스스로 핑계를 만든다.


사람들이 모진 추위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

석모도가는 배를 타는 외포리 선착장은 한가하기만 하다.

사람이 적으니 새우깡도 적은 듯 배가 떠나자마자 배의 난간으로

날라오는 갈매기떼들이 오늘따라 더 많아 보인다.

그리고 대개 손에 있는 새우깡을 나꿔 채지는 않는 편인데

오늘은 그런 장면을 몇 번을 보았다.

아마 갈매기도 혹한에 평소 먹던 새우깡보다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작은 아이가 손에 새우깡을 들고 있다가 갈매기가 나꿔채다가 손까지 물었는지

아파서 쩔쩔 매고 있다. 이것도 주의해야 할 안전문제구나.


그다지 많지 않은 승객들이 갈매기와 함께 모두 즐거워 하고

낯선 여행지에 대한 관심으로 지도를 보며 안내를 받고 있다.

여행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낯선 곳, 낯선 것,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무엇이던지 새로 시작하는 것은 사람을 조금 흥분하게 만든다.


지척에 보이는 석모도 선착장 저편에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이 다리가 건설되면

배 운항이 교동처럼 없어질 것이고 갈매기도 생태환경을 달리 해야 할 것이다.


선착장에서 상주산으로 가는 소형 버스가 가는 길에

다리의 완공일정에 맞추어 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듯

산이 깎여지고 큰 바위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 섬이 크게 바뀔 것 같다.


오늘은 상주해안길을 역으로 걷는다.

요즘같은 날씨에 순방향으로 걸으면 바닷가 긴 둑길을 걸어야 하는 오후에

바람이 강해 걷기 불편하니 바람이 약한 오전에 걸어야 한다는 리더의

안내가 없으면 아마 조금 고생했을 것 같다.

루트만 안다고 리더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끔 오던 남자길벗 한 분이 건장한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와 같이 걸으니

오늘따라 등산복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 같다. 

마을에서 내려와 둑길로 가는 길 저 편에 오리들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몰려 오니 참새들도 신이 났다.

자연이 깨어나고 있다. 우리들의 두터운 등산화로 힘차게 걷다 보면

대지도 깨어나리라.


길가 어느 집 앞에 영화 에이트빌로우에 보았음직한

남극이나 시베리안 눈길에서 썰매를 끌어야 하는 허스키 개들이

줄에 묶여서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개들에게는 질주의 본능과

썰매를 끄는 강한 파워가 있을텐데 

인간의 소유욕 때문에 그 본능을 잃어 버렸을 것이다.

 

둑길로 올라서니 이전보다 길이 넓어진 것 같다.

겨우 사람 몇 명 지나가야만 했던 좁은 길이 이제 승용차 한 대 정도는

지나갈 정도로 넓혀 놓았다. 잘된건가 아니면 안된건가.


왼쪽으로 넓은 벌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오른 쪽에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자연의 화음을 이루고 있다. 평소 강화도의 바닷물은 밀물일 때

넓은 갯벌 때문에 별로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비록 작은 파도임에도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상하다.


둑 옆에 넓은 하천이 새로 생겼다.

추위에 얼고 눈이 덮여 아이들이 있다면 신나게 썰매를 즐겼을 것 같다.

둑을 만드는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

만약 눈이 왔다가 녹아 땅일 질척거리면 이 길은 걷기 힘들 것 같다.

봄이 오고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좀 나아질려나..


넓은 벌판 끝에 쯤에 어느 집에서 잡풀을 태우는지 하얀 연기가

구름되어 하늘로 퍼지고 있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면 연기 냄새도 날텐데

바람은 저편 산위로 날아가고 있어 구수한 냄새가 없다.


바닷가 저편에 자주 걷던 망월벌판의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이 보이고

석모도와 강화도를 잇는 교각이 이제 공사가 많이 진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딴 곳 바닷가에 빨간 지붕의 횟집이 있어 눈을 끈다.

그 이쁜 집에 지붕이 다 쓰러져 가는 가옥 한 채가 그 멋진 풍경을

보며 눈쌀 찌푸러지게 한다. 그 집 앞에도 이전에는 없던 커다란

팻말에 이 곳에서 어떤 드라마 촬영했다고 크게 사진을 찍어 놓았다.

요즘은 이렇게 드라마에 한 번 나오면 그런 사실을 무척 강조해

영업에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고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암거래도 있다 한다.


그저 한없이 외줄로 뻗은 길.

가도 가도 쉴 곳도 없고 그냥 무아지경으로 걸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 길에 방점하나 찍으려는 듯 길가 한가운데 철조망 구조물을 만들어

조롱박을 키웠는지 지난 가을에 열매를 맺었던 조롱박들이 겨울을 지나면서

썩어 들어가는 채도 매달려 있다.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조롱박도 썩어도 조롱박이다.

어떤 조롱박은 썩어들어가면서 해골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렁 주렁 매달린 썩은 박들을 그대로 두고 

적당한 작품 이름을 붙여 설치예술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더 넓은 시야로 바다 건너편 산들을 보니 아침안개와 운무로

섬이 구름속에 떠있는 듯해 마치 샹그릴라를 연상케 한다.

내게 샹그릴라는 어디일까?

아마 무소유가 편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것 다 버리고 등산배낭하나 메고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다.

가다가 노잣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며칠이나 몇달동안 또 여행길을 떠나고

그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굳이 수없이 많은 살림살이 물건이 없이도

세상을 즐겁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길가에 하천을 관리하는 구조물 앞에 석모도 상주해안길 기념 표식을 만들었는데

구조물이 후에 만들어진 것인지

자연을 배경으로 세워졌어야 할 표식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걸었나?

멀리 둑길이 끝나는 곳의 집들이 보인다.

길을 새로 만든다고 기존 다니던 길을 커다란 콘크리트 관으로 막아 놓았기에

일부러 기존 길로 들어서다 문득 길바닥에서 거액의 돈(?)을 발견했다.

오만원짜리를 인쇄하여 맏는 안경닦이포.

이렇게라도 돈을 가지면 만족할까?

내가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돈을 인쇄하여 만든 방석이다.

아마 돈방석깔고 앉으라는 뜻이겠지만,

돈을 지상만등주의로 생각하는 그 의도들이 싫어

어느 은행카드에서 새해 광고 인사로 하는 '부자되세요'라는

말도 무척이나 싫다.


어쨋든 많은 돈을 길에서 주웠다.

그 돈으로 내 안경을 씻어 자연을 보는 시야나 맑게 할련다.


이제야 제대로 둑다운 둑길을 걸어간다.

두명이 손잡고 걸어가면 딱 좋은 둑길.

이런 길에서 걷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멀리 보이는 예쁘게 지어놓은 펜션이 꽃밭같아 좋다.

그 둑길에서 또 다른 것을 주웠다.

나무 망치. 그 주변에 도토리를 수확한 듯 도토리 알을 빼내고

남은 모자껍질이 무수히 깔려 있다. 망치로 얼마나 많이

나무를 두들겨 팼는지 망치 끝이 문드러져 있다.

그러니 나무는 얼마나 더 충격을 받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열매를 내어주어야 하는 조물주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만 하겠지.

망치를 내년에도 쓰라고 나무위에 걸쳐 놓았다.


잠시 쉬며 단체로 온 남자들이 배낭에서 꺼내는 각종 생막걸리로

갑자기 쉬는 시간에 판이 벌어졌다. 잠시 쉬며 한 모금이 아니고

한 병씩 마셔도 될만한 양이다. 그런 맛에 오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지 않으면 그것도 즐거움이다.

1인당 막걸리 한 병 정도야 큰 주량도 아닐 것 같다. 


이제부터 상주산길을 에둘러 가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상주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온통 거대한 바위로

쌓여 있어 마치 인수봉같이 가파르다. 용기있는 산악인들 같으면

저 곳에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군침을 흘릴 만 하다.


시멘트 길을 한참을 올라가다가 바닷가 둑길을 걷는데

북에서 바다를 건너와 귀순할려는 사람들이 신호를 알리기 위해

바닷가에 매달아 놓은 종을 앞서 가는 사람이 호기심에 쳐 봤는지

종소리가 들린다. 급히 종을 치지 못하게 막았다.

혹시 군인들이 진짜 귀순자가 있는지 뛰어 올 수 있으니..

군부태 옆이라 사람들이 살지 않아서인지 너른 공간에

억새가 물결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지금은 그 억새도 바람을 겨우내 막아내느라 억새의 은빛 털이

집나간 강아지 털처럼 그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다. 


산길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낙엽이 두텁게 쌓여 걸으면 발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 길은 특별히 작은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나무 몇 그루를 엮어 얼기 설기 만들어 놓은 작은 다리들이 연이어 있어   

숲길을 걷는 정겨움이 있다.


종일 햇빛을 받지 못하는 응달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회색의 바위가

흰색으로 변했다. 만약 눈이 녹아 얼음이 되었다면 걷기에 조금 불편했을텐데

눈이 녹지않은 채로 그대로 있어 눈에 대한 갈증을 조금 풀어 주고 있다.


상주산을 돌아가는 숲길을 1시간을 넘게 걸어야 겨우 반대편 길이 나온다.

지난 해 여름 무더위때 이 답답한 숲길을 걸으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직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게 된다.


반대편 북쪽의 벌판의 넓은 공간에 볏짚을 뭉쳐 만든 사일리지가 햇빛을 받아

하얀 보석처럼 빚나고 있다. 평화로움이란 이런 것일까?


상주산을 돌아가는 길에 비탈진 아스팔트 길이 힘든지

아이와 같이 온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억지로 끌러 당기며 올라가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이런 어려운 길을 같이 걸었던 아이라면

이 다음에 엄마가 힘이 들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어려운 길을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긴 아스팔트 고갯길을 넘어 우리가 2시간 전에 걸었던

반대편 벌판위로 오리들이 정확한 간격으로 파란 하늘을 

천천히 날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가득 들어 온다.


아까 처음 길을 걸을 때 보았던 무너진 집보다 더 무너진 집이

이 쪽 길에도 있다. 흙집도 사람이 살면 절대 무너지지 않지만

그 흙집에 온기가 떨어진 채 그냥 오랜 세월 방치하면

이렇게 저절로 무너진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랑을 잃고

오랜 동안 혼자 사는 사람도 그렇게 될 것만 같다.


점심을 특별히 우리 일행을 위해 주문 해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간장게장과 묵 무침과 참기름 소스로 맛을 낸

꽁치조림으로 맛있게 먹고는 오늘의 일정을 끝냈다.


걷기에 부족한 사람들이 석모도 선착장까지 걸어가고자 했으나

거기까지 멀어서 어렵다 했더니 포기했다. 아마 선착장까지

걸어도 인도가 없는 도로로만 걸을 수 있기에 불가능할 것이다.


하늘이 봄색깔로 변하는 것 같다.

코로 들어오는 바람 속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다음 주에 입춘이니 아마 이제 봄 기운이 천천히 대지속으로 그리고

내 등산복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