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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박달재길 및 제천 투어

carmina 2016. 11. 16. 10:41



2016. 11. 15


지난 밤 68년만에 보는 슈퍼보름달이 뜨더니 하늘의 모든 구름을

먹어버려 그런것인지 오늘 하늘에는 종일 구름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하늘을 보고 보통 코발트빛이라 하던가.

울고넘는 박달재길의 나무 위로 보이는 하늘은 모두가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충북 제천에서 일부 편의를 제공하는 공정여행 팸투어를 위해

도보여행 카페회원들과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떠났다.


공정여행이란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도 모든 먹거리나 물건들을 모두 차에 싣고 가서

여행가는 지역에서 소비가 없다면 그건 민폐나 다름없다.

그 지역에서 수확하여 만든 음식을 먹고 각종 재료나 제품을 구입하는 여행이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논 밭은 모두 여름내 간직했던 자기 색깔을 모두 하늘에 주어버리고

썰렁한 무채색의 갈색과 논에 방치해 놓은 곤포 사일리지 하얀색 뿐이다.


박달재는 노래를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천등산에 있다.

왜 울고 넘었을까?  통속적이나 재미있는 러브 스토리가 이 곳에 있다.


박달이라는 청년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곳에서 금봉이라는

젊은 처녀를 만나 사랑을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나 장원급제했지만

고향으로 갈때는 처녀를 잊어버리고 내려가버리니 금봉이 낭군을 기다리며

이 길을 오르내리며 울다가 한이 맺혀 죽고 박달은 나중에야 찾아와

목놓아 울었지만 지나간 일. 그러다가 금봉의 환상을 보고 따라가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졌다는 전설의 고향이 바로 이 박달재다.


그래서 금봉이 울고 넘었다 해서 노래 가사도 그렇게 시작한다.


박달재로 가기 전에 버스가 잠시 독특한 불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찾았다.

성각스님이라는 분이 오랜 세월동안 거대한 죽은 느티나무 안에

부처님의 제자 500나한을 새겨넣었고 또 다른 느티나무는

그 안에 기어 들어가야 볼 수 있는 화려한 금빛 부처상을 새겨 넣었다.

주위에 목각으로 전시된 각종 조각품을 보면 이 스님의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인 작품들인지 짐작할 수 있다.


느티나무에 새겨진 불상을 보고 참 독특하다 싶었는데

스님이 기거하는 목굴암 바위와 세멘트로 만든 건축물이라 조금 아이러니했다.


이 곳은 또 우리의 역사속에 거란족을 물리친 김취려장군이 대승을 거둔 곳이라

기념비도 여기 저기 세워져 있다.

주위에 볼 것이 많아 이 곳에서 천천히 걸으며 역사적인 장소를 보고 언덕을 오르며

전시된 목각을 보며 시간을 보내도 좋은 곳이다.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천시에서 새로 만든 박달재길이 시작된다.

주론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일부인 박달재길은 시작부터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아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아침부터 산골이라 추워서 껴 입은 옷들이 불편할 따름이다.

그 가파른 길에 낙엽이 잔뜩 쌓여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300m정도 올라가니 트럭하나 다닐 정도의 평평한 임도가 이어졌다.

낙엽이 질펀하게 깔려 있고 차도 최근에 다닌 적이 없는지

길에는 바퀴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아 오로지 트레킹을 위한 길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옹기 종기 모여 길을 걷는다.

이 길을 금봉이가 울고 넘었을까?

언덕위로 보이는 푸른 소나무는 계절을 잊고 살지만

산 아래 보이는 낙엽송들은 계절따라 색깔을 바꾸며 멋을 내고 있다.

저 낙엽들이 온 산의 대지로 스며들어 흰 눈이 될 것이다.

나무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데

인간도 나이들면 젊은 시절의 화려함은 아낌없이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살아야

노후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젊은 시절 자가용으로 주로 여행을 다니고 콘도미니엄만 이용했는데

이젠 대중교통과 두 발로 걷기를 좋아하고 싼 시골집 숙박을 주로 이용하여

낭비를 줄이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다리 힘이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자연 속을 걸으며 내 인생을 보내고 싶다.


산그림자 길게 그은 언덕길을 돌아 길벗들이 발길이 흐르고 있다.

낙엽송사이를 숨바꼭질하고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그 멀리 보이는 첩첩산들이 하늘이 맑은 까닭에 오늘은

끝이 보이지 않고 아주 멀리 산골마을까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이런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화목을 잘라 놓았는지 집 근처 쌓인 나무에 이건 내 것이다 하고

작은 무당벌레들 모형을 나무 위에 올려 놓아 표시해 두었고

집 앞 기둥에는 나무토막으로 작은 강아지를 만들어 놓아

주인대신 집지키기를 하고 있다.


임도는 족히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간 것 같다.

그 뒤로는 하산길인데 올라갈 때는 바닥의 낙엽만 보았는데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묵화같이 멋진 풍경이었다.

푸른 하늘아래 빛을 잃은 전나무들이 밝은 갈색으로

누가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지 하늘과 대적하고 있다.

전나무는 푸르름을 간직했을 때도 아름다웠는데

그 푸르름을 모두 잃어도 역시 아름답다.

하늘로 곧게 뻗은 기상은 그대로 간직하고

그렇게 멋지게 나이들고 싶다.

아...나도 전나무를 닮고 싶다.


억새가 전나무와 어울려 더욱 빛이 난다.

나이들어 흰머리를 가지고 싶었다.

직장다니던 시절에는 머리 염색을 하다가 이제까지 거짓치장을 한 것이 싫어

은퇴생활을 시작한 지난 4월부터는 염색을 하지 않으니

머리칼이 자라면서 염색했던 부분이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고 이 후

흰머리가 나는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았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해야만 했다.  

내게 자유를 달라. 흰머리가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저렇게 햇빛에 반짝거리는 은빛 억새머리칼을 갖고 싶다.


한참을 내려오니 목적지인 배론성지에 도착했다.

1801년 순조시대 신유박해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이 곳으로 숨어 들어왔다. 지형이 배의 밑바닥을 닮았다 해서 배론이라 하는 곳에

많은 신부님들의 묘지가 있고 기념비가 있다.


산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피정의 집이다.

천주교의 피정이라는 것에 늘 관심이 많았다.

세상의 모든 일에서 떠나 모든 잡념을 버리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마치 예수님이 40일동안 산상기도를 하신 것처럼

어느 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훌쩍 가장 검소한 몸과 정신으로

오랜동안 지내고 싶다.

내게는 지난 봄의 산티아고 트레킹이 그런 피정의 일부였다.

세상의 모든 일에서 떠나 오로지 한달동안 걷기에만 몰두했고 그 과정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고 감사의 축복을 받았다.

카톨릭교인들에게는 산티아고 트레킹을 권한다.

매일 매일 머무는 곳의 성당에서 드리는 거룩한 미사와

1000년동안 순례자들이 걸었던 놀라운 체험을 해 보길 권한다.


배론성지의 건물도 배의 모양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성당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어느 때 기회되면

들어가 조용히 찬양을 부르고 싶다.


많은 카톨릭 교인들이 이 곳으로 순례를 오고 있다.

우리가 이 곳에 머무를 때도 버스는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기와지붕으로 만든 가옥에 들어가 기념장소를 돌아보았다.


넓은 잔디밭 끝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동상이 바닥에

뉘어져 있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머리위에 'INRI, 즉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라틴어 팻말을 보니 경건해진다.


버스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서 시골 음식재료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서

작고 깨끗해 보이는 은행알을 샀더니 덤으로 한 주먹을 더 얹어 주셨다.

사람들은 나물과 된장과 야콘 등 이것 저것 구입했다. 


배론 성지를 나와 제천쪽으로 가다가 언젠가 친구들과 들른 적이 있는

암석공원에서 잠시 쉬고 어탕으로 유명한 '가람'이라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즐겼다. 제천에는 지방의 음식이 좋은 식당에 약채락이라는 칭호를

주어 맛있고 믿을만한 식당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 곳이 그런 곳이다.

반찬은 깔끔했고 인근 청풍에서서 잡은 생선으로 요리한 어탕은 맛이 있었다.

메뉴 중 가장 비싼 것은 쏘가리 매운탕으로 무려 12만원에 달한다.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젠 한국에서 쏘가리 잡기가 정말 어렵다하니

이렇게 비싼 것 같다. 귀한 것이니 맛있겠지.


식사를 하고 맑은 호수가 보기 좋은 청풍호의 풍경을 보며

국궁체험을 하기 위해 식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옥순정을 찾았다.

남산이나 제주도 올레길 트레킹을 할 때 국궁장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한 번도 쏴보지는 않았는데 오늘 기회가 생겼다.


무려 145m나 되는 곳까지 쏘지는 못해도 우리 일행을 위해 몇 십미터 앞에

표시판을 해 두었다. 옥순정 주인이 우리나라의 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설명하고 활을 만드는 재료의 구성에 대해 세밀하게 설명한 후

한 사람앞에 10발씩 2번을 쏠 기회가 주어졌다.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과녁을 맞추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정중앙 옆의 노란 표식에 맞추면 선물을 준다하니 더 열심히

활 시위를 당겼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었기에 힘든가 보다 하고

다음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첫발을 쏘아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금방 어느 정도 세기로 어디를 조준해야 하는지 감이 왔다.

올림픽때 한국궁사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자세다.

활을 쏘고 움직이지 않고 팔도 수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번째 활 부터는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로 활을 쏘았더니

활 시위를 당기는대로 과녁을 맞출 수 있었다.

10발을 쏘아 7발을 과녁을 맞추고 2발은 노란색 그리고 한 발은 정 중앙의

멧돼지그림에 맞추어 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우리가 체험을 한 후 주인이 직접 145m거리의 표적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그 멀리까지 화살이 날아가는 것도 보이고 표적에 맞는 소리가 들렸다.

활처럼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스포츠도 없을 것 같다.


국궁체험을 하는 비용은 10발에 3000원이고 20발에 5000원 하니

흔하지 않은 체험을 고려할 때 그다지 비싼 비용은 아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카약체험

청풍호를 보는 것으로,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맑은 호수를 배를 타고 직접 노저어 가보자.

카약을 하는 곳에 가서 카약을 타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수바지와 구명조끼를 챙겨 입었다.

2인 1조로 배에 올라 천천히 그러나 열심히 노를 저으며 세월을 낚았다.

잔잔한 호수위로 가끔 주인이 탄 모터보트가 일부러 만들어 내는

파도에 카약의 흔들림을 즐겨 보기도 한다.

맑은 물위에는 산꼭대기에서 지는 해의 은빛이 길게 드리워져 눈이 부시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유명한 삼시세끼의 무대가 되었던 옥순봉으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카약체험 가격은 만원이며 청소년과 단체는 특별할인이 있다.


벌써 해가 많이 기울었지만 오늘은 갑자기 준비된 다른 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떡메로 떡만들기 체험.

제천의 산야초 마을에서 우리를 초대하여 떡체험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마당 한가운데  무릎위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크고 넓은 돌 위에

방금 쪄낸 찹쌀을 붓고 그 위에 뽕잎가루를 뿌리고 다시 익힌 찹쌀을 한 번

올려 놓고 섞은 뒤 우리 일행들이 돌아가며 큰 나무떡메로 내려쳤다.

내려치는 것도 방법과 요령이 있었다. 그다지 오래 치지 않았는데

찹쌀은 금방 찰진 인절미가 되었고 옆에 준비한 콩가루에 묻혀 먹으니

금방 만든 떡이고 내가 만든 떡이라 생각하니 정말 맛있었다.

이런 체험가격을 물어보니 인원에 상관없이 재료를 포함해서 6만원이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가는 떡을 마트에서 파는 가격으로 비교하니

상당히 저렴한 비용이었다.


길벗들은 그 곳에서 파는 약초들을 구입하고 오늘 여행을 끝냈다.


가끔 이런 공정여행을 통해서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도와가며 사는 여행생활도

의미있을 것 같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들을 보람있게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안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이 참 깨끗해 보였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