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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청보리밭 (2009. 5.1)

carmina 2009. 7. 7. 16:53

 

보리축제라고 하면 별로 느낌이 오지 않을텐데 '청'이라는 말한마디로 금새 의미에 새로움이 부여되었다.

 

물론 보리의 색깔이 청색은 아니지만 녹색이라고 녹보리라고 하는 것보다 청보리라고 하는 것이 어감상 더 부드럽고 신선함이 느껴진다.  녹차를 청차라고 하면 느낌이 어떨까?

 

2009년 근로자의 날.

 

1박2일 여행을 계획했지만 무산되고 4월 30일 밤 늦게까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저녁에 한 밤 중에 우연히 아침 신문을 보니 주말 섹션에 청보리축제를 알린다.  내일 여기나 가야겠다.

 

 

고창 청보리축제.

 

부천-전주-고창-축제장까지 가는 길은 무척 멀다

며칠 전 다녀온 싱가폴 출장만큼이나 긴 시간이 요구된다.

반면에 오는 길은 축제장-고창-서울-전철로 부천을 선택해 시간을 절약했다.

 

버스가 익산쯤에 왔을 때는 굳이 청보리 축제가 아니더라고 고속도로 옆에는 보리의 물결이 출렁이고, 멀리 보라색 꽃으로 찬란한 오동나무 꽃과, 모내기철을 준비하는 농부의 꾸부정한 모습이 그 어느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답다.

 

남녘으로 갈수록 유난히 묘목재배장, 나무시장이 많아 잘 정리된 나무들을 보며 자꾸 내 노후를 그려보는 것은 내 생활이 초조해서인지..

 

고창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정류장에 줄지어 앉아있는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 해외를 돌아다니며 현지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아내는 전문사진사는 이런 장면을 놓치지 않을텐데...

 

 

 

그 어디를 가도 도심지에 온 사람들과 시골 사람들은 마치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피부색이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걸음걸이가 다르다.

 

여행은 언제나 이렇게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갈 교통편을 기다리며 보는 다른 세상도 즐겁다.

 

자주 오지 않는 시내버스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예정된 출발시간은 정확히 지켜진다.

 

 

자리에 앉아서 여유있게 시골풍경을 구경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촌로들로 인해 자리를 내 주었는데, 차가 출발한지 조금 지나 신호등에 걸려 멈추어 있는데 자리에 앉았던 할머니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런 내 정신 봐. 보따리를 그냥 두고 왔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도무지 불안감도 없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꾸부정한 허리에 나무가지를 깍아 만든 지팡이를 의지삼사 허위 허위 버스가 왔던 길을 돌아가시는 모습이 왜 그리 평화스러워 보이던지..

 

시골로 향해 가는 버스. 그리고 양 옆으로 펼쳐지는 시골마을들. 1960년 말 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몰아붙인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나라 시골집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초라(?)한 초가집이 모두 번듯한 스레이트 집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통치자는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러나 그렇게 바뀐 스레이트 지붕이 이젠 마을의 디자인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추한 건물로 변해 버렸다.

 

성냥갑같은 집들의 모습이 도심지에선 성냥갑 아파트로 바뀌고 이젠 정부도 각성해 디자인감각이 없는 아파트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단다.

 

시골은 그보다 훨씬 더하다. 모든 집들이 마치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툴바에 나오는 집모양 같이 되어 버렸다.

 

각설하고..

 

고창 청보리 축제장 입구에 나같은 도심지에 손 젊은이들이 내려서 걷는 길가의 잡초는 여느 도로의 이름도 모르는 잡초가 아니고 모두 보리를 심어 놓았다.

 

청보리축제를 주관하는 학원농장이라는 곳에서 이렇게 꾸며 놓았겠지만 발상의 전환이 상큼해서 좋다.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는 왼쪽와 오른쪽에 이미 청보리 밭의 서곡이 펼쳐진다. 어디 감히 다른 색이 침범하지 못할 녹색의 푸른 화음.

 

  

 

  

 

 

 

 

 

 

 

 

 

 

내 나이또래의 다른 남자들은 이런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곳에서 쇠막대로 잔디를 패고 있지만 난 오래된 내 랜드로버와 청바지 그리고 배낭하나로 세상을 즐기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잘 정돈 된 녹색의 푸르름. 그 푸르름 사이에 길이 있는지 관광객들이 입은 각종 옷들이 녹색밭의 꽃이 되어 버렸다.

구부러진 길을 지나가 더 넓은 보리밭이 펼쳐진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좋다..

 

 

 

우선 배가 고파 먹거리를 찾는다. 다행히 여느 계절 축제장처럼 주소도 장소의 특이성도 없는 먹거리장터는 없다.

 

다만 넓은 잔디에 가설된 무대에 모여든 관광객들을 상대로 경연대회를 여느라고 시끄럽긴 하지만 그 정도는 눈감아 줄수 있다.

 

 

 

주로 보리를 이용한 보리밥집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보리밥보다는 다른 메뉴를 찾다가 눈에 뜨이는 메뉴. 보리짜장. 물어보니 밀을 사용하지 않고 보리만으로 면을 뽑았단다. 오케이 이거 시도해 볼까?

 

밀가루 같지 않고 찰진면은 없지만, 그래도 구수함이 느껴진다. 면뿐이 아니고 짜장도 조금 특이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짜장이 싸구려중국집 짜장이라 실망.

 

그리고 고창만의 특별한 복분자 쥬스와 복분자주를 파는 곳이 많다. 보리떡도 팔고, 보리대를 펼쳐서 만든 미술작품이 눈을 끈다.

 

자. 이제 먹었으니 보리밭을 거닐어 볼까?    

  

조금 떨어져 있는 나무 그늘 밑에서는 소풍을 나온 가족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을 즐기고 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본다. 누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발을 멈추게 된다. 보리의 싱싱하고 꼿꼿한 모습들이 저절로 한번 만져 보고 싶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 지평선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하늘과 맞닿은 언덕에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회색빛의 산외에는 보이는 것이라는 보리밖에 없다.

 

보리밭 사잇길은 모두 황토흙으로 늘 청소를 잘 해 두는 탓인지 지저분한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비록 고운 흙은 아니지만 평평하고 길에 날카로운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길을 걷는 것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벗은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비록 발가락 사이의 무좀은 좀 있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그리고 발톱도 험한 고생을 별로 하지 않은 듯 깨끗하다. 맨발로 흙길을 걸어본적이 언제던다.  가끔 아주 작은 돌들이 발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견딜만하다. 갑자기 통증이 온다. 발가락에 쌀만한 뾰족한 돌하나가 박혀있다. 피는 안난다. 걷기를 계속한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부러워한다. 자기들도 저렇게 해 보자고 말은 해 보지만 아무도 실행하는 이는 없다.  어떤 이는 나를 보고 익히아는 최희준의 노래를 부른다. 맨발로 걸었다 ~

 

구비 구비 돌아가는 보리밭 저편에는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해 유람하는 관광객이 있어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보행길 곳곳에 작은 조형물들을 세워놓아 연인들은 사진찍기것도 즐겁다. 보리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긴 줄로 막아 놓았지만 억지로 막지는 않는지 보리밭속으로 들어가는 곳에 보행의 흔적이 있다.

 

 

어떤 곳에는 보리밭의 일부러 짓이겨진 곳은 아무래도 일부러 사진끽위해 들어간 곳으로 보인다. 정말 많은 연인들이  그 안에 들어가 멋진 포즈들로 사진을 찍는다. 서로 안기도 하고 갖은 부러운 모습으로 추억을 만들고 있다.

 

직원인 듯 보이는 사람이 관광객사이로 들어가 보리피리 만들어 부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보리밭 사잇길로 뉘이 부르는 소리있어..

어쩌면 윤용하씨가 이 곳을 보고 작곡한 것일까? 

 

대중가수 한 명이 이 노래를 불러 국내 인기차트에 오를 때 내심 무척이나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클래식음악이 대중인기가요차트에 오를 수 있는지..

 

그렇게 보리밭사이를 맨발로 걸어다니길 한시간여..

기분이 좋다. 살갗으로 느껴지는 흙의 감촉과, 보리밭속으로 들어가 밟는 풀의 느낌.

 

봄철외에는 이 곳이 별로 인기없겠구나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보리밭사이사이로 밀을 심어 놓아 가을에도 눈빛의 메밀밭을 찾도록 배려해 놓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영화 동막골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포스터가 붙어 있고, 그 외 여러가지 드라마와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푸르름을 넘어선 깨끗함. 그리고 잘 정돈된 녹색의 화원, 하늘과 맞닿은 녹색의 선, 여느 지방축제장같지 않은 심플함. 사람들이 많지 않으면 정자에 길게 누워 낮잠도 자고 싶은 충동을 가질 정도로 기분이 좋다.  이런 맛으로 여행을 다닌다.

 

길가에 황토민박이라고 써 붙인 농가 아궁이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다. 시간만 있다면 내려가서 불가에 앉고 싶다.

 

 

 

이 곳 학원농장을 들어오는 대중교통수단은 상당히 열악하다. 아까 이 곳에 들어올 때 버스기사에게 물어보니 막차가 오후 4시 정도에 있단다. 고창에서 이곳까지는 한 30분 정도 걸리지만 6시 버스표를 예약해 놓았기에 막차를 타야만 한다.

 

이런 곳에서는 승용차 여행이 제격인데..혼자 승용차 타고 여행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사치같아 이렇게 힘들지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거의 대부분이 자강용을 이용해 이 곳을 빠져 나가는데 나 혼자 버스를 타러 도로를 걷는다. 그 도로의 길가에도 모두 보리를 심어 놓았다.  넓은 보리밭에서 무언가 후다닥하고 날라가는데 얼핏 보니 꿩 2마리. 카메라 집어 드는 순간을 놓쳤다.

 

사람 뜸한 길을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시골의 시원한 바람에 같이 몸을 실어본다.

 

이곳까지 와서 선운사를 가보지 못함이 아쉽다.

 

20년전에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라는 노래하나에 이끌려 찾아온 고창 선운사. 다음에 기회되면 승용차로 여유있게 찾아오고 싶다.

 

안녕..정감있는 고장. 고창. 무언가 내 마음의 일부분이 이 곳에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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