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민통선 걷기

carmina 2011. 11. 6. 00:06

 

강화 민통선 걷기 (2011. 11. 5)

 

강화를 여러번 다니다 보니, 이런 기회도 생기는구나.

민통선을 걷는다. 민간인 통제 구역.

사람들이 안 나녔던 곳이니 얼마나 자연이 잘 보호되어 있을까?

우리나라 DMZ는 통일이 되더라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을만큼

지난 60년동안 보존된 천혜의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대를 상당히 많이 했다.

혹시 길을 걷는데 지뢰가 있는건 아닌지..

야생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 하지도 않고 주위를 뛰어 다니지는 않는지..

숲이 많이 자라 내 키보다 큰 갈대 숲 사이를 걸어가는건 아닌지..

정말 가 보고 싶은 곳인데 휴전선 DMZ 관광코스는 외국인에게만 관광이 허락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외국에 이민가서 그 나라 시민권을 딴 뒤

한국에 와서 외국인 신분으로 DMZ 관광을 다녀왔다.

 

그렇게 기대했던 DMZ. 

그러나 아쉽게도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했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신 꼴이 되어버렸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자.

 

사단법인 강화 나들길에서 주관하는 민통선걷기를 위해 한달 전부터 신청을 받았다.

선착순 150명까지 받는단다. 회비도 온라인으로 입금하고..

 

이 곳 강화나들길을 걸으면서 한 번도 실명을 쓴 적이 없는데

신원이 확인되어야 갈 수 있다기에 실명으로 신청했다.

실명을 쓰니 누가 참석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왜 이리 매번 토요일마다 비가 오는지 올해는 아무래도 비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인터넷으로 날씨를 봐도 내일 날씨예보는 변함이 없다.

우비를 챙기고 우산을 챙겼다. 예비 양말도 챙겼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어젯밤에 오던 비는 그쳤다.

강화로 달리는 길도 쾌적했다.

 

모이는 장소는 1코스의 중간에 있는 연미정.

1코스를 걸어보았기에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 곳에 주차가 안된단다.

강화대교 근처의 갑곶돈대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나들길을 걸을 때 차를 가지고 간 적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차를 가지고 달렸다.

평소 부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승용차로 오니 1시간도 안되어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누군가 배낭을 메고 내가 가는 길을 가기에 태워 주기도 하며

갑곶돈대에 도착하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임시로 운행중인 첫 버스를 타고 연미정 도착.

연미정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분위기를 띄우고자 나들길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들길의 사계. 아직 못 가본 계절이 겨울이다. 올 겨울엔 어느 코스를 다녀볼까?

연미정에는 벌써 진행팀이 와서 천막을 치고 내가 속한 조에 조장이 참가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줄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내 이름이 표시된 비닐 봉투에 배낭 뒤에 부착하는 배너와, 명찰과, 노란 조끼와 깃발이 담겨있다.

이 봉투에 핸드폰의 밧데리를 빼고 집어 넣고 카메라도 집어 넣으란다.

떡을 간식으로 주고 마실 물과 막걸리도 제공했다.

 

연미정은 양쪽에는 커다란 수령 500년의 나무가 지키고 있어 참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간 나들길에 한번 정도 만났던 얼굴들이 가을낙엽처럼 우수수 몰려온다.

몇 개월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고 지난 주에 만났던 이도 있고..

 

커다란 행사이다 보니 인천시장, 강화군수, 해병대 사단장 등등...

얼굴 내밀어야 하는 이들이 총동원 되었다.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노란 색의 물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걷는 것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움직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척 다른 날이다.

연미정 바로 옆에 해병대초소를 통과하는데 초소 근무자가 안경을 썼다.

내가 젊었을 때는 해병대는 눈 나쁘면 못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력은 상관없나 보다.

 

이 초소만 지나면 모든게 군시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버스 정류장도 있고 멀리 마을도 보인다.

강화에 사는 사람 말로는 이곳에 사는 사람과 연고만 있다면 언제든 들어 올 수 있다 한다.

하긴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민통선 안에 사는 주민이라 해서 세상과 떨어져서 살 수 있는건 아니겠지.

추수한 논이 있고, 자가용도 다닌다.

 

길가에 작은포도같이 생긴 야생열매들이 가득 피었다.

먹는건가?  이게 뭘까?

 

위에 철조망을 겹겹이 둘러 싼  철책선이 견고하게 앞을 막고 있다.

잠깐 보았을 뿐인데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이제껏 보아오던 강화의 염하강이라 불리는 바다와 사뭇다르다

불과 이 곳에서 몇 백미터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남쪽은 무언가 부산히 움직이고 살아 있는 곳인데

이곳은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건너편에 보이는 산에도 인조건축물의 흔적이 없다.

기러기들이 떼를 열을 지어 날아가고, 조용한 산은 잔잔한 바다에 투영되어 커다란 데깔꼬마니의 예술을 보여준다.

나도 그렇게 느끼지만 옆의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평화롭다.

그래.. 평화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평화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이렇게 가만히 두어도 평화를 느끼는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평화가 깨진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가인과 아벨처럼..

 

오늘은 참으로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애들 학교도 쉬게 하고 같이 나온 엄마와

아들과 함께 걷는 엄마. 동창생들,  강화도민들.. 

 

철책을 따라 걷는다.

지난 밤 비가 와서인지 철책 옆 길이 질퍽하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무언가 잘 못된 것을 알았다.

우리가 보고자 했던 것은 지도상에 나와 있는 철책넘어 황해도 개풍군인데

철책은 뚝위에 있는데 뚝이 보통 사람들의 키보다 더 높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철책넘어 빈 하늘 뿐이다.

 

자주 기러기들이 무리지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수면을 낮게 날아가는 기러기들..

그 무리들이 날라간 하늘에 커다란 구름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길의 왼편에 커다란 천막같은 것이 말려 있어 처음엔 이게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얼핏 저 것때문에 군인들이 고생많겠구나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면 군인들이 철책 뚝이 무너지지 않도록 천으로 뚝을 막는구나.

이 긴 철책의 뚝을 동시에 막을려면 얼마나 힘들까?

갑자기 나도 35년전에 군인이었음을 생각하니 그 들이 모습이 생각나 안쓰러웠다.

 

가을이 오니 색색깔의 여름꽃들이 모두 지고, 가끔 코스모스와 끝없이 이어지는 억새 그리고 갈대가

갑자기 터져 나온 낯선 이방인들을 지켜보고 있다.

긴 여름이 끝나니 꽃들의 화려한 색깔대신 많은 무리들의 옷색깔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길을 걷는다.

또 흥얼 흥얼 노래를 부르며..

 

많은 무리들이 내 앞길을 구름처럼 막고 있으니 차라리 기대했던 오른편의 철책 넘어보다

왼편의 평온한 마을과 텅빈 논을 보는게 낫겠다.

우리가 강화에서 걷고 싶은 곳은 숲길과 바닷길인데 이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철책 바로 옆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면 무척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우리 같은 많은 무리가 걸으며 그 길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욕심도 내지 못하겠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가 아닌 북도 삼백리를 간다.

가다 쉴 곳도 없고, 그늘도 없다.

어쩌다 앞서 가는 정치인들이 건너편 관측을 위해 초소위에 올라가 본 곳에 잠깐 올라가 건너편을 보았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긴 사람대접을 못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니 충분히 그럴만 하다.

 

지난 정권에 얼마나 많이 저 곳에 퍼부어 주었던가.

돈과 쌀과 건설자재와 수많은 것을 퍼부어 주었지만

그 들은 우리에게 포탄과 협박 그리고 살인을 퍼부어 주었다.

그런 그 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렇게 노란 옷을 무리지어 걷는 모습이 저 편 언덕의 초소에서 선명하게 보일텐데

그들은 우리를 무엇이라 생각할까? 

한국에 노란 조끼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걷고 있으니

'혹시 노란색이 상징인 민주당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건가' 하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멀리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화문석마을이 보인다.

 

9시 30분경에 출발하여 거의 2시간을 걸었던가?

조편성으로 무리지어 걷던 사람들이 이젠 조 편성도 무너지고 슬슬 불평이 터질때 쯤

화문석마을에 도착. 점심을 기다린다.

그런데 식당에 준비는 된 것 같은데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조금 후 아까 연미정 높은 곳에 섰던 이들이 도착하니 입장이 허용되었다.

 

다같이 막걸리로 건배하고,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나와 사람들이 불평을 얘기한다.

혹시 왔던 길로 다시 가는 것이냐고..

 

얼핏 들으니 다른 길로 갈 것 같단다.

다른 길이라면 차가 다니는 길밖에 없을텐데...일행들이 올 때처럼 답답한 뚝 옆을 걸을바엔

차라리 차 다니는 길이 낫겠다며 이구동성으로 성토한다.

 

그런 요구사항이 통했는지 돌아오는 길은 논길 밭길을 택한다.

멀리서 보니 그래도 저 넘어 북한땅이 보인다.

비온다고 걱정하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멀리 개성의 송악산도 보인다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하게 송악산인지는 모르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이 아닐까 한다.

 

돌아가는 코스는 논길을 질러 가는 길이니 올 때보다 조금 빠른 것 같다.

쉴 곳도 없으니 그냥 뙤약볕 길에 앉아 쉬고, 준비해 간 간식 먹을 기회도 없다.

오늘은 11월 초인데도 날씨가 무척 덥다.

집에 오며 뉴스를 들으니 104년만에 11월에 이렇게 덥기는 처음이라 한다.

 

맑은 가을 하늘에 창조주가 구름빛의 백물로 일필휘지로 아름다움을 그려 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이제 작은 언덕 고비만 넘어가면 출발점인 연미정인데 선두를 억지로 쉬게 한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차도로 나가기 전에 모두 단체사진을 찍고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줄 알고 얼른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풍경을 하나 찍으니 옆에 서 있던 군인이 제지한다.

 

연미정으로 향해 가는데 멀리서 농악소리가 들린다.

우리 일행을 반기러 오는 농악대.

깃발을 들었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 학생들이다.

그 맨 앞에 사물놀이의 대명사 김덕수씨가 특유의 모습으로 일행을 반긴다.

 

이것도 좋으네

일행을 반기는 농악대와 북청사자놀이를 위한 흰색의 사자.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농악대 아이들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고

사자탈을 썼던 아이들도 너무 더운지 탈을 벗고 같이 걷는다.

 

연미정에서 커다란 국악잔치가 벌어졌다.

문화관광위 소속 국회의원이 공연 전에 올라와 자기가 특권이 있으니

예술 종합학교에 자기 마음대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단다.

잔디에 앉아 있던 누군가 그 소리를 듣고는  

'그게 누구 돈인데 당신 마음대로 써' 하며 중얼거린다.

마음속으로 손뼉을 쳐 댔다.

 

연미정 앞의 넓은 공간에 길을 같이 했던 이들 외에 많은 강화도민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사물놀이와 창과 농악이 질펀하게 진행될 때 여행객들은 넓은 잔디밭에 편하게 앉아

11월의 첫 휴일을 즐긴다.

 

오늘 행사를 주관한 강화군청은 오늘 행사에 군 보안상 문제가 없도록 조심해 주면

내년에도 행사를 갖겠다는 말을 했지만 아무래도 내년도 올해같은 코스와 일정이라면

굳이 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언가  민통성 길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기대에 걸맞는 변화가 있어야 다시 한 번 오고 싶지 않을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있기에 행사가 끝나면 주차장인 갑곶돈대까지

가는데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몇 몇 아는 이들과 먼저 일어나 나오니 강화주민인 한 분이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나서다가 핑계김에 가까운 선원사길에 있는 '들꽃'이라는 전통찻집에 들러

맛있는 대추차로 오늘의 행사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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