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이제 막바지인 셋째주 토요일.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리산 둘레길 12코스를 걸어야 할 시간인데
걷기를 계획할 때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이번 지리산행은 포기.
대신 늘 가는 나들길을 택했다.
그래도 그 곳에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으니...
나들길 10개 코스중에 아직 못가본 코스가 7코스와 4코스
이번에 계획된 코스는 7-1 코스이지만 중간까지는 같이 걸어가니
중간 쯤에 헤어져 나 혼자 7코스로 걷기로 했다.
오늘은 저녁에 강화군립합창단의 공연이 있다하기에 승용차를 이용.
내 차가 초지대교에 접근할 무렵 갑자기 이상한 이가 길을 걷고 있음을 본다.
얼굴을 가릴만한 커다란 삿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에 죽장인 듯 막대기를 하나 집고
초지대교쪽으로 가고 있다.
자기 멋에 사는 분이구나.
그 사람은 유행에 따라 이러 저리 쓸려다니는 세상사람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을까?
강화로 들어가는 하늘에 수없이 많은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이리 저리 몰려 다니고 있다.
마니산입구를 지나니 바로 화도시외버스 터미날
이전에는 마니산만 올라갈 생각을 했지 걸을 생각은 전혀 못했다.
대학시절 자주 올라 갔던 마니산에
수없이 많은 돌계단이 생긴 뒤로 너무 힘들어 마니산행은 가급적 지양한다.
오늘은 어제까지 비가 와 날씨가 좀 쌀쌀했던지,
평소보다 참여 인원이 적었다.
아무렴 어떠랴...그 길은 내가 내 혼자 힘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7코스는 화도시외버스터미날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가 아침에 쪄 왔다고 출발하기도 전에 따끈한 고구마를 나누어 준다.
늘 준비운동을 리드하는 분이 제대로 된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
지난 여름 7-1 코스를 걷느라 한번 걸었던 길이기에 작은 개울물 하나 눈에 익다.
그러나 여름에 맑게 흐르던 물길은 멈추었고, 이틀동안 내린 비로 길에도 흙이 덮혀 있다.
날씨가 쌀쌀해 손이 시렵다.
이젠 복장이나 배낭안의 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들도 겨울용으로 바꾸어야겠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할머니들이 배추를 잔뜩 쌓아 놓고 김장을 준비하고 있다.
김장이란 것을 해 본것이 아득한 세월이다.
결혼 이후로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릴 때 대가족인 우리 집은 김장하는 날이면 온 형제들에게 미리 통보해 놓았다.
그 날은 다른 계획을 절대 잡지 못한다.
하루 전에 무를 깍고 썰고, 배추를 나르고 자르고 절이고
김장하는 날은 종일 약 300포기의 배추를 나르며 온갖 심부름을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골 할머니들 뿐이다.
저렇게 힘들게 김장을 해 놓으면 도회지의 아들, 딸들이 차를 가지고 와 모두 쓸어가겠지?
지난 여름 아스팔트에 구멍을 뚫어 놓고 보수하던 길은 깨끗히 포장되어 있고
내가 가는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멀리 보이는 건너편 산에는 밝은 햇빛이 비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 비가 왔으면 많이 추웠을 것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내리성당을 지나는 이 동네는
오래 된 집들과 새로 지은 아담한 집들이 공존하고 있다.
농촌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이 깨끗할 수 없다.
늘 흙을 묻히고 들어가야 하는 집 앞 마당은 지저분한게 당연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새로 지은 집들은 흙의 흔적이 안 보인다.
모두 외지인들이 사는 집들이나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의 집들일 것이다.
동네의 감나무도 높은 곳에 열려 있는 감들은 손을 못대고 있는지
일부러 새들을 위해 남겨 두었는지 따기를 포기한 것 같다.
어느 멋지게 지은 집 담에 오가피열매들이 가득 열려 있다.
이게 여러모로 많이 쓰일텐데 용도를 몰라서 못따는건가 아니면
그냥 냅두는 건가.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양심이 있는 까만 열매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 몰지각한 이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에 쇠사슬을 쳐 놓았는데
그 쇠사슬을 나무에 못을 박아 고정시켰다. 모두 이를 보고 안타까와 한다.
비록 내 집 땅에 있는 나무겠지만 그래도...이건 아니잖아..
바람이 분다.
하늘의 회색빛 구름도 이동이 빠르다.
멀리 김포 쯤의 산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단지 멀리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자연 속에 있으니 모든 것들이 나를 기분좋게 한다.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낙엽이 가득 쌓여 있다.
와삭 와삭 낙엽을 밟고 올라가는 느낌.
이 글을 보는 이들...지금이라도 가을 산길을 걸어보고 싶지 않을까?
오늘 걸어가는 길은 모두 이렇게 낙엽을 밟고 걷는다.
이래서 같은 길을 철 따라 와 봐야 하는 것인가 보다.
겨울엔 어떤 모습일까?
낙엽을 발로 쓸어 모아 보니 금방 눈덩어리처럼 커졌다.
겨울엔 진짜 눈덩어리를 만들고 싶다.
7코스는 이렇게 호젓한 숲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차 하나 정도 다닐 만한 숲길이 온통 낙엽으로 쌓여 있고
그 자연의 소리나는 길을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무리지어 걷는다.
벗어나기 싫은 숲길 끝에 파도치는 바다가 모습을 보인다.
나는 당연히 바다가 그러려니 했는데
강화도민들인 이렇게 파도치는 바다를 보기 힘들다 한다.
김포와 강화 사이의 염하강이라 불리우는 바다는 파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 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바다에 파도가 친다.
동해안이나 남해안에 가면 당연하게 보이는 하얀 포말의 파도도 이 곳에선 드문 일이다.
아직 점심 먹을 때가 아닌데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 약속해 놓은 식당에 거의 다 와간다.
생각해 보니 지난 번엔 이렇게 빨리 온것 같지 않은데 왜 이리 빨리 왔을까?
날씨가 쌀쌀해지다 보니 걸음들이 빨라져 다른 날보다 거의 30분정도 빨리 온 것 같다.
하긴 여기까지 오면서 땀도 흘리지 않은 것 같다.
식당으로 가기 전에 갯벌의 억새밭에 들어가 나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본다.
멀리 파도가 밀려 온다. 파도가 치니 바닷물이 들어 오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어릴 적 갯벌 바다옆에서 자란 나는 동네 아이들과 갯벌에 나가 놀다가
물이 들어오면 빨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육지로 돌아와야 하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걸어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내 걸음 속도보다 밀물의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자연은 절대 내가 아는 상식으로 대해선 안된다.
올해 저 바닷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그리고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한 나라를 완전히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바닷물 뿐이냐. 허리케인이 미국을 휩쓸어가고
화산이 폭발해 온 유럽의 항공망을 마비시키고 최근엔 태국에 비가 많이 와
수도 방콕을 완전히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자연에 대해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오늘 지난 어느 곳도 산을 완전히 깍아내어 돌산이 직각으로 서 있는 걸 보고
만약의 경우 무너질 모습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갯벌식당으로 찾아가는 길 옆 밭에 탐스런 파가 금방이라도 건드리면 소리를 내며 부러질듯이
탱탱한 모습으로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장화리의 갯벌식당 (032-937-8880), 지난 번에도 너무 맛있게 먹어 기억에 남는 곳인데
오늘 메뉴인 대구 볼테기탕도 여간 맛있는게 아니다.
특히 망둥어찜, 순무, 밴뎅이젖, 간장게장, 깻잎, 뜨끈한 두부찜과, 시금치 등등..
각종 밑반찬들이 주 메뉴보다 더 맛있어 모두 몇 차례씩 더 시켜다 먹을 정도로 만족한다.
포만감에 모두 붉게 물든 얼굴로 다시 길을 떠나자.
잡풀이 자란 황량한 북일곶 돈대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
바람이 늘 조용하던 바다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일렁이는게 바다 뿐이랴.
갈대도 춤을 추고, 겨우내 푸른 빛을 자랑했던 풀들도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서로 얼크러 설크러 춤을 추고 있다.
바람불어 좋은 날.
그 바람을 뚫고 멀리 갯벌로 천막같은모양의 물체가 이동하고 있다.
물어보니 갯벌체험을 나가는 사람들을 싣고 나가는 트랙터라 한다.
갯벌이 여러모로 어민들에게 도움을 준다.
뚝을 걷고, 숲길을 걷고, 바닷가에 가득한 물결무늬의 돌위를 걸어간다.
바람이 거셌던지 바닷가의 풀들도 모두 바람결에 따라 일렬로 누웠다.
갯벌 조망대에서 잠시 쉬고 길을 걷다가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
뚝의 세멘트 바닥에 내가 가는 길과 일행이 갈 길을 표시해 두었다.
이젠 예전처럼 홀로 걷는 길.
길을 다녀 본 이가 내가 갈 길은 거의 모두 세멘트길이라고 언질은 주지만
어차피 한 번은 다녀야 할 길 같아 모두에게 인사하고
혼자 흐느적 거리며 눈뚝길을 걸어갔다.
산을 넘어야 한다.
그 산을 가로 지르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산에 도로가 생기니 산이 피폐해 진다.
수없이 많은 펜션들. 거의 집단으로 몰려 있다.
펜션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잘 다듬어진 커다란 바위들이 흩어져 있고
여기 저기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긴 길을 걸어왔는데도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니 땀이 흐른다.
지난 여름 지리산의 마근담으로 올라가는 길처럼 가도 가도 세멘트 언덕길이 끝이 없다.
겨우 한 고비 넘었는가 싶었는데 걷기 중인 어떤 중년의 남녀가
그늘 밑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즐기고 있다가
인사하며 지나치는 나를 보고는 금방 따라갈께요 하고 화답한다.
펜션이 많다 보니 자주 승용차와 공사용 트럭이 지나가고
길은 더 단조로와 진다.
다시 올라가는 수고는 있겠지만, 차라리 저 언덕 밑에 계곡으로 길을 내면 되지 않을까?
펜션에 편하게 쉬기 위해 오는 사람들
더 편한 일도 많이 한다.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던 많은 소주병들을 길 옆에그냥 내버렸다.
산을 깍아 바위를 채취하고 그 바위로 다른 사람들어 오지 말라는 담을 쌓아 놓았다.
자연속의 것들을 재정비해 놓은 것인가?
나중에는 자연이 스스로 사람들 들어오지 말라고 바위로 담을 쌓아 놓을 것 같다.
이 길은 아마 나들길 중에서 가장 불편한 길일 것 같다.
흙을 밟고 숲을 거닐고 싶어하는나들길 사람들.
세멘트길을 오래 걸으면 발바닥도 불편하다.
고개 정상쯤에 있는 펜션앞에 묶여 있는 개한마리가 내가 지나가니
멀리서부터 사납게 짓다가 앞을 지나갈 때 쯤엔 나에게 확 달겨 든다.
물론 줄에 매어 있어 그러헥 하지 못했지만
갑자기 등골에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른다.
내가 스틱을 가지고 있다 해서 어찌 성난 개와 싸울 수 있으랴.
마을공동묘지인듯한 곳에 분봉없이 묘비 번호를 새긴 돌들만 땅에 심어 놓았기에
일부러 찾아 내려가 보았다. 번호만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온갖 상상을 다 해 본다.
허름한 집 옆 커다란 양은 솥에서 김이 무럭 무럭 나고 있다.
저 안에 뭐가 익어가고 있을까?
언덕을 다 내려왔는지 아까 오전에 지나쳤던 길이 보였다.
그런데 화살표 방향이 하나로만 되어 있어
이길로 오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 실수 할 것 같다.
길을 가다보니 아침에 같은 장소에서 김장을 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다.
가까이 가서 무얼하시는지 보니, 할머니 한 분은 탈곡된 콩가지들 속을 헤집어
미처 빼내지 못하여 콩깍지 속에 남아 있는 콩들을 하나 하나 찾고 계셨다.
탈곡해 버린 것, 그냥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하나 하나 다시 확인하는 시골 할머니들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농부부부는
다 추수하고 남은 밭에서 버려진 알곡들을 줍고 있는 가난한 농부들이라고..
7코스를 마치고 완주 도장을 팡 찍었다.
이제 4코스 하나 남았다.
7-1코스로 간 사람들은 코스가 길어 아직 도착하지 못했고
그 들 중 일부가 이 곳에 승용차를 두고 떠났기에 일찍 도착한 내가
그들을 찾아가 이곳까지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7-1코스 종점인 동막으로 찾아갔다.
7-1코스 완주도장을 찍어 주는 대련호 횟집 아주머니가 나보고 낯이 익다고 아는 체를 한다.
하긴 벌써 이 분 보는게 세번째이니 그럴 법도 하다.
나들길을 걷는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와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때론 모르는 것들이 있어 미안하다고 한다.
수고비를 받는 것도 아닐텐데 이런 곳에 무언가 작은 혜택을 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일행 중 리드하는 한 분이 그 집에서 강화 갯벌 낙지 몇 마리를 사면서 고마움을 대신했다.
걷기를 모두 마쳤으나 저녁에 강화에서 강화군립합창단 공연이 있다기에
온김에 가보자 하고 가기 전에 일행들 몇 분과 강화 읍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늘 나오는 분 중 한 분이 오늘 집에서 김장이라고 같이 못 걸었는데
식사하러 나오면서 김장배추 쌈과 양념을 가지고 와 정말 식당 메뉴인 돼지갈비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이런 인정이 좋아서 자꾸 이곳에 오게된다.
강화문예회관으로 찾아가니 공연장에 일반인보다 군인들이 더 많다.
이런 자리가 군인들에겐 너무 좋은 자리다
불꺼진 관객석에서 실컷 졸 수 있으니...
군립합창단인데 강화의 고장에 맞는 창작곡을 몇 개 부르는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창작곡 특히 위촉곡을 연주하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바람불어 좋은 날...
강화가 너무 좋아져서 큰일 났다.
이러다 은퇴하면 강화로 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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