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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화수부두 이야기

carmina 2014. 5. 8. 16:49


거친 삶의 현장을 꼽으라면 시장 한복판, 어촌의 포구, 비지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생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인부들이 있는 곳 등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거칠지 않으며 매우 뜻 깊지 않다. 낭만은 더욱이 없으며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렇더라도 삶이 있다. 사람이 있고 묘한 매력을 풍긴다. 다만 다가가려면 도덕적으로 무장돼야 한다. 너무 미화해도 안 되고 소개된 글을 보고 찾았다가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바닷가 도시인 인천을 확인시켜주는 여러 가지 시간의 흔적 가운데 도심 포구가 있다. 인천 중구의 화수부두와 만석부두, 북성부두다. 매우 거칠고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던 곳들이다. 한때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번화가이기도 했다. ‘인천을 탐하라’(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발간)는 이를 “아, 옛날이여! 흘러간 만선의 꿈”이라고 노래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찾아들기 어려울 만큼 잊혀진데다 공장들 틈바구니에 끼어 바다의 정취도 포구의 기능도 거의 잃었다. 갈매기의 울음과 파도소리를 대신해 공장의 거친 소음이 귀를 메운다. 얕은 비린내와 시원한 바닷바람은 간데없고 메케한 냄새, 숱한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더욱 친숙하다. 어쩌면 이들 포구는 애이불비(哀而不悲), 즉 슬프기는 하나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경지를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흘러간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초라하나마 오늘의 생활을 끈끈하게 이어간다. 조화되지 못한 역사, 보살핌받지 못한 삶이 묘하게 착생한 듯한 신비로움마저 느껴진다. 매서운 바람 속에 눈발이 흩날리던 날 찾은 포구는 더욱 살풍경했다. 이들은 일반 관광객보다는 삶의 독특한 정취나 흔적을 찾는 사진작가들, 글쟁이들을 주로 맞는다. 낚시철이면 이곳에서 떠나는 낚싯배를 타려고 모이는 이들도 있다.


공장의 벽 사이로 뚫린 좁을 길을 빠져나가면 비로소 부두가 얼굴을 내민다. 외지인이라면 경인선 전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내려 만석고가를 지나 두산인프라와 동부제강 사잇길을 찾으면 부두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화수부두다. 부두를 따라 뭍 쪽으론 아직 일제식의 가옥들과 판잣집, 쪽방들이 일부 남아있어 과거 개항 후 일제시대와 동란을 거치면서 몰려 살게 된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볼 수 있다. 주민이라야 몇몇 노인네들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공판장과 어시장이 매우 컸던 1970년대에는 조기를 가득 실은 배들이 부두에 서로 배를 대기 위해 다툼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이 매립되어 큰 배들은 들어오기 힘들고 그나마 작은 고깃배들도 거의 없다. 그 옛날을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힘든 형국이다. 아직도 배를 고치는 철공소들이 있는데 ‘한성닻’ 철공소는 화수부두가 번성했을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바다는 사람을 먹여 살렸고 인천 부두는 인천을 먹여 살렸다.





만석부두는 화수부두의 지척이다. 화수부두와 마찬가지로 공장에 둘러싸여 있다. 해체된 노후 선박들과 수리되는 배들도 손쉽게 볼 수 있다. 똥바다, 괭이부리로 불리기도 하여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1985년 영종도와 작약도로 가는 배 선착장이 월미도와 연안부두로 옮겨지면서 부두의 번성기가 끝났다. 지금은 낚시꾼들에게 낚시 배를 빌려주는 것으로 부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만석부두에서 조개를 캐러 나가던 사람들이나 낚시꾼들만이 이곳 선착장에서 배를 탄다.


월미도 방향 대한제분 공장을 찾아 작은 골목을 돌아가면 ‘북성부두 선착장 입구’라는 팻말이 보인다. 대한제분 담벼락을 끼고 10여m 들어가면 왼쪽으로 너 댓 평 크기의 횟집들이 10여 개 다닥다닥 붙어있고 오른쪽 바다 개펄에는 배가 몇 척 걸려 있다. 배가 들어 올 때면 어찌도 그리 잘 아는지 쭈꾸미, 꽃게, 가재, 꼴뚜기, 망둥이를 사러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때는 배에서 직접 생선을 살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며 겨우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인데도 김장철엔 어김없이 새우젓 사는 사람들로 꽉 찬다. 김장철에 북성부두에서 새우젓을 사면 인천 토박이고, 소래서 새우젓을 사면 외지인이란 소문이 떠오른다.


화려하고 번듯한 것들만이 인간을 매혹하지 않는다. 힘들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힘이 되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이래저래 ‘구석’을 찾는 꾼들에게는 놀거리, 볼거리, 마실거리의 핑계가 된다. 도심 부두를 순례하다보면 화도진공원, 화도진도서관, 화수성당을 만날 수 있다. 좀더 멀리에는 달동네박물관이 있다. 출출하다면 만석고가 밑 할머니쭈꾸미집(773-2419), 돌밥 전문점 가연(763-3615), 북성부두 입구 바다회집(766-4704)에 들를 일이다.





 * 위 내용은 최근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상임회장 이흥우)가 시범사업의 하나로 발간한 ‘인천을 탐하라’의 일부를 원용한 것이다. ‘인천을 탐하라’는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인천관광코스 21가지를 엄선해 묶은 안내서로 인천관광코스개발사업(단장 이명운)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출처 : 정순호
글쓴이 : 아탕 정순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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