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2014년 서울싱잉커플즈 35회 정기공연 "사랑으로"

carmina 2014. 11. 26. 22:08

 

 

2014. 11. 23

 

 

 

 

아내가 공연 뒷풀이후 밤늦게 들어와 지인으로부터 받은 공연축하 꽃다발을

커다란 꽃 항아리에 옮겨 담으면서 오늘 부른 노래를 흥얼거린다.

인생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일까?

 

공연 뒷풀이는 치킨집이 흥청거릴 정도로 떠들썩했다.

이사장과 지휘자, 그리고 공연 첫 출연한 부부들이

이미 충분히 감동받은 공연의 흥을 의자 위에 올라가 말하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궈졌다.

거기에다가 비록 오랜 해외 생활로 공연에는 참가 못했지만

단원 한 명이 뒷풀이 비용을 모두 부담하니 사람들이 기분은 더 업되었다.

충분히 그래도 좋을만한 우리 모임.

 

1990년부터 지휘하셨던 분이 2년 전 사퇴하고 지난 해 국내에서 알아주는 전문작곡가가

지휘봉을 맡았지만 1년만 하고 물러 나신 뒤로 새로 영입한 부천시립합창단 지휘자인

조익현 선생님.

 

년초부터 그 해의 레퍼터리를 정해 악보의 제본이 한달만에 완성되어

연습을 시작한 적이 있었던가?

처음엔 초견으로 노래하는 우리를 보고 잘한다 잘한다 감탄하더니

두 세 번 연습만에 본색이 드러났다. 음이 떨어진다. 플랫 플랫 플랫.

노래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듣는 꾸중...플랫 플랫.. 그리고 생소리..

나이가 먹은 우리들인지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1년 내내 플랫을 들은 것 같다. 특히 소프라노는 더욱 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합창을 남녀가 섞여서 연주하고 그대로

다른 합창을 노래했는데 종래의 파트별로 앉아 노래할 때보다

플랫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무척 신기해하더니

결국 첫 스테이지는 남녀가 섞여서 연주를 했다.

그랬더니 어수선할 줄 알았던 분위기속에서 합창의 새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독특한 발성법. 얼굴 속의 공간을 이용한 발성.

수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연습 전에 잠깐의 준비운동을 하는 전통도 생겼다.

언젠가 합동공연한 일본 합창단들이 연습시작 전에 몸을 푸는 것을 보며

저렇게 해야 몸이 악기인 노래를 제대로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눈여겨 보았는데 이젠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하루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껏 시도해 보지 않았던 레퍼터리들이 생겼다.

빠른 3박자 리듬으로 시작되는 이건용씨 작곡의 '문을 열어라'

그것도 첫 곡으로 연주회의 문을 연다.

이제까지 첫곡을 이렇게 외치는 노래를 해 본적이 있던가?

연습시간에 늘 습관처럼 오가던 지휘자와 단원들간의 농담도 사라졌다.

 

곡 중에 우리가 도무지 소화하기 어려웠던 '예레미야 애가'라는 곡은

여름에 합창단 내 중창대회에 지정곡으로 선택해 누구나 당연히 연습하게 했다.

그 덕에 그 어려운 박자와 발음들을 모두 완벽하게 놓치지 않고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합창으로 시작한 공연무대를

멜랑꼬리한 우리 가곡으로 부드럽게 반죽을 한다.

지극히 평범한 가곡, '그대 있음에', '가고파'

그리고 지휘자가 직접 편곡한 신귀복씨의 '얼굴'.

듣는 사람들이 첫 스테이지에서 옴추졌던 어깨를 편하게 풀어 주었다.

 

그러나 긴장의 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귀에 익은 노래 에델바이스로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하고 싶어 할 즈음에

신나는 댄스음악이 합창으로 펼쳐진다.

리베르탱고, 탱고리듬을 의성어로 노래하는데 난 이 부분에

실제 누군가 나와 탱고를 멋드러지게 추길 바랬다.

그러면 음악에 집중이 되지 않나?

 

이번 스테이지에 좋았던 것은 피아노외에 특별한 악기가 준비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일렉톤과 각종 효과음을

내는 악기들.

많은 악기들 소리와 파도소리 새소리가 노래소리와 같이 들렸다.

그리고 다음 스테이지인 오페라 합창에서도 관객들은 오페라 반주를 위한

많은 악기들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노래 부르기 제일 어려웠던 스페인 노래.

Vamos A Bailar (Let's Dance)

곡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리드미칼하고

각 파트가 엇박자로 나오니 잠시라도 멈칫하면 박자를 놓치기 일쑤다.

거기에 스페인어로 불러야 하니 가사를 읽기 어려워

내가 오래 전에 스페인어를 배운 기억을 더듬어

모두 한국어로 발음을 써서 단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노래를 발음하기도 어려운데 여러가지 손동작이 들어갔다

손가락 튀기기, 가슴치기, 박수치기 등등..

처음엔 도무지 안맞아 지휘자도 힘들어 하더니

연주일이 가까이 올수록 많이 연습하니 모두 가사가 입에 착착 붙고

손동작도 모두 따라 한다. 

우리가 불러 놓고도 우리가 신기한 노래.

우리에게 이번 공연은 여러가지로 최초의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주를 위해 급조한 SSC 스트링 앙상블

지휘자 부인이 악장을 하고 합창단 자녀가 첼로를 했다.

우리 딸도 있었으면 같이 연주했을텐데 아쉬웠다.

우리 합창단은 전통적으로 지휘자의 부인도 같이 연주를 하는데

노래를 하지 않는 부인이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라고 했더니

신의 묘수를 두어 앙상블을 만들어 무대 입장시에 지휘자와 악장이

같이 손을 잡고 들어왔다.

 

이전보다는 더 클래식한 연주가 막간 스테이지 이들에게 주어져

베토벤의 Ich Liebe Dich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연주했다.

막 뒤에서 듣는 앙상블의 연주에 기분이 좋다.

 

인터미션후 회심의 작품이 등장했다.

우리 합창단은 이제껏 암기하여 부르는 노래가 좀처럼 없었는데

올초부터 지휘자가 우리에게 한 스테이지 정도는 외워서 해야 한다며

오페라 합창부분을 외우라고 했기에 모두 머리가 쥐가 나도록 노력했다.

외우는 것도 습관인데 우리에겐 그 습관을 가져보지 않았었고

모두 나이든 사람들이라 이런 암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외워야 한다니 따르기로 했다.

이전같으면 연습 중에 불평을 늘어 놓으며 외우지 말자고 선동하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올해는 어떠한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던지 감히 앞에 나서서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내 가방속 그리고 호주머니엔 늘

악보와 가사가 들어 있어야만 했다.

 

이제껏 십년이 넘게 후반부의 의상은 늘 테마가 있는 자유복으로 정했었다.

다른 합창단들처럼 유니폼이 많지 않아 남자들은 거의 20년넘게 같은 옷을 입고

여자들만 몇 년 주기로 한 벌씩 마련했었기에 후반 무대는 늘 초라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오페라 복장에 맞는 화려한 드레스를 어디에선가 빌려왔다.

 

그리고 오페라 합창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입장부터 연출까지

완벽하게 연습해 우렁찬 소리로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 무어의 루치아 중 '결혼축하객들의 합창'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 베르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그리고

'대장간의 합창"을 신나게 부르며 즐겼다.

 

특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위해서는 단원이 포목시장에서 십자가가 그려진

검은 색 히잡같이 생긴 두건을 만들어와 머리에 쓰고 앉아 어둠 속에서 노래해

실제로 오페라 무대에 선 것처럼 연출을 하는 열성도 보였다.

이제껏 공연을 하면서도 아내와 나란히 서서 무대 선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팔장까지 끼고 같이 노래했다.

 

암기하여 부르는 노래라 쉬는 시간에도 가사를 외우느라 마음졸였지만

어느 누구 하나 중간에 다른 가사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누구 하나 박자를 잘 못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경우도 처음이다.

이제까지 매년 공연하는 동안 악보를 보며 노래해도

여기 저기 소위 삑사리가 많이 나왔는데

이번엔 년초부터 연습해서인지 그런 실수가 거의 없었다.

옆 사람이 자기 파트가 아니라 혹시 내 음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실제로 노래해 보니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실수도 없었고

웃으며 노래하라는 지휘자의 특별 당부가 있고 본인도 연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지휘를 해서인지 비교적 표정이 밝았다. 

 

뮤지컬 무대와 이어지는 피날레

다른 합창단 같으면 어려운 노래가 아니라 외워서 했을텐데

우린 아직 그게 부족해 악보를 들고 노래해야만 했다.

오페라의 유령, 메모리, 그리고 투나잇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부르고

존 루터의 곡인 "The Music's always there with you"

가사가 너무 아름다와 옮겨본다.

 

Every morning will soon turn into evening

And springtime will soon turn into fall

Every memory must fade like a passing parade.

And youth become a time you just recall

Buyt the good times together seem so magical

Like music that lasts your whole life through.

When it's ended it never really dies away.

'Cos the musics's alway there with you.

 

Every new day could be a time of harmony.

If people could only be in tune.

And the vision you could share,

magic castles in the air.

Seem to fade away and vanish all too soon.

But the magic you share when you make music

Won't leave you when the time has come to part.

And it feels leke you never have to say goodbye.

'Cos music's always there in your heart.

 

 

계절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네

모든 추억들은 지나가 버리고

그리워할 젊음의 시간

좋은 시간은 마술처럼 보이네

너의 삶속에 노래처럼

노래가 끝나도 외롭지 않음은

네 맘속에 노래가 있기에

 

따뜻한 사랑을 서로 나누며

언제나 기쁨 넘치고

허공에 지은 꿈 요술궁전은

너무나도 빨리 사라지네

음악 속에 있는 사랑의 힘은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아

세월이 흘러도 굿바이하고 말 안해

당신 맘 속에 있으니까.

 

 

무대의 마지막을 거룩한 CCM 찬송가로 조용히 무대를 닫았다.

앵콜송으로 부른 올해의 타이틀곡인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그리고 관객들과 다같이 '즐거운 나의집'을 합창하며 끝을 맺었다.

 

'음악속에 있는 사랑의 힘은 결코 떠나지 않아..'

자꾸 이 가사가 입에 맴돈다.

 

오랜세월동안 이 무대를 서왔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마치 합창단에 들어 온 뒤 처음 서는 무대처럼 설레었다.

많은 것들을 처음 시도했고 모두 그 시도에 만족해 했다.

내가 초대한 관객들도, 친구들이 초대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올해는 무언가 달랐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변해야 산다.

이제껏 변하지 않았기에 우리 합창단은 늘 그대로였고

매년 인사치례로 찾아 오는 관객들이 많고 모두 잘했다고 하지만

지인들을 초대하는  우리도 매년 같은 메뉴를 보여 주니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관객들이 하나같이 내년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내년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겠지.

그것이 어떤 모습이던 지금의 지휘자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이 기대가 된다.

2015년 첫 번 부르는 노래는 어떤 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