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나들길 1코스 (2011. 4. 9)

carmina 2011. 4. 13. 16:46

 

 

지난 해 강화나들길 2코스를 아내와 함께 걸었다.

강화대교에서 초지대교까지 걷는 강화도 뚝방길.

그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올해는 다른 길을 걸어보자.

그렇다고 한 해 한번만 걷는 것으로는 부족하지만

지금이 걷기 딱 좋은 계절아닌가?

 

1코스는 타이틀이 심도역사문화길로 붙여져있다.

강화도는 우리 나라 역사가 가장 많이 살아있는 곳이다.

특히 외세에 의해 가장 많이 침범당한 곳이고 그 침범을 막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많이 한 곳이다.

 

강화도는 모든 해안가가 적을 향해 포를 쏠 수 있도록 진지가 구축되어 있고,

나라가 위급한 시기에는 왕이 피신하던 곳이고, 카톨릭이 순교를 무릅쓰고 첫 발을 내 디딘 곳이다.

 

그래서 2코스는 섬 내내 곳곳이 숨어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공식적으로 걸어야할 거리는 18키로. 시간은 약 6시간 정도.

출발점인 강화시외버스터미널이 부천에서 무척 먼길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발했다.

 

썰렁한 강화버스터미널엔 사람보다 머리를 바싹 치깍은 군인이 더 많아 보였다.

 

자. 출발.

풍물시장이라는 큰 건물. 강화에 언제 이런 건물이 생겼나?

강화의 5일장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상당히 큰 장터인데,

그 5일장으로 부족했던지 이젠 매일 매일 서는 장터를 만들었나 보다.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 전통을 파괴해 버린다.

 

도심에서 시작된 나들길. 처음에 남문으로 찾아가라 한다.

큰 도로를 횡단해 주택가로 접어들며 찾아가는데 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남문은 이미 지나쳐 버렸다.

 

표지판을 따라 가다가 횡단보도를 지나서 화살표의 끝을 따라 가는데

어? 분명히 여러갈래 길이 있는 표시판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눈에 익은 간판이 있다. 강화 기둥교회.

내가 부천에서 십 몇년을 다닌 기둥교회의 지교회가 이 곳에 있다니....

그런데 그 팻말의 화살표가 이상하게 교회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골목길을 가르킨다.

 

옆에 큰 건물. 경찰서.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것 같아 경찰서 입구 초소에 들어가 물어 보았다.

"여기 동문이 어딥니까?"

"동문이요? 동문이 어디지?"

이런..경찰이 이 근처에 있는 동문을 몰라?

이러고도 강화도가 야심차게 기획한 나들길이라고 할 수 있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보여 주며 동문이 이 근처에 있는데 못찾겠다 했는데도 역시..머리를 갸우뚱한다.

 

"놔 두쇼. 내가 찾아보겠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보니 화살표 방향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다가 그만 오른 쪽을 보지 못했는지..

동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동문은 단지 동문일뿐이다. 역사로서의 성벽의 흔적만 조금 남기어 놓고 이야기는 모두 땅속에 숨겨 두었다.

 

동문에 올라가보고자 했으니 문을 큰 자물쇠로 막아 놓았다.

그 곳에서 동문을 끼고 바로 주택가로 가는 표시.

겨우 한 사람이 지나 칠 정도의 좁은 골목에 낡은 집앞에서 커다란 솥을 놓고 무언가를 끓이고 있다.

어릴 적 많이 보아오던 풍경. 그리고 대문의 오른편에 붙어 있는 문패.

 

가문의 상징이었던 문패가 여기서는 아직 존재한다.

아무리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어도 내 집을 찾아오는 이에게 적어도 이 집은 누구의 집이라고 밝혀야 한다.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위신은 바로 그 문패에서 나왔기에 감히 자식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해도 집안의 가장으로 문패는 지켜져야 한다.  

 

집 뒤 텃밭을 지나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

600년이란 오랜 세월을 버티었기에 비록 나뭇잎하나 없는 겨울옷이지만 그 자태가 훌륭하다.

 

그 자연이 만든 훌륭함에 대한 감탄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 대한 감탄으로 금방 사라져 버렸다.

 

성공회 강화성당.

이 성당의 옆 문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또 밟으면 무너질 것 같은 문지방을 살짝 넘어 들어갔다.

 

성당의 오래된 비석에 영국의 알마수녀를 기리는 비가 오래된 고어체로 적혀있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나가면 글씨마자 흐릿해져서 기억마저 사라질 것 같이..

 

우리의 전통가옥으로 성당을 지었다. 물론 처음 카톨릭 신부들은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었었다.

지금에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만 당시로는 그렇게 입지 않았다면 정말 서양 귀신이라고 더 배척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당의 모습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기존 기와집에 십자가만 세워 놓았으며,

문설주에도 입춘대길이라고 쓰는 것처럼 각종 귀절이 써 있었다.

 

그런데 문간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범종이 하나 있다. 이 범종은 성당의 종탑을 세울 수 없으니까

이 것도 불교문화에 뿌리깊은 한국사람들의 배타적인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할려고 범종을 설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성당이 기념으로만 보관되는줄 알았는데 들어갈 수 없게끔 만들어놓은 문틈으로 내부를 보니 아직도 미사를 드리고 있음을 확인한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정문계단은 일본인들이 한국인 교인들을 죽인 죄에 보상으로 성당의 계단을 기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당앞 넓은 공터에서 공연도 열리는지 다음 주 공연안내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자 또 가자. 이제 어디로 갈까나.

고려궁지로 가자.

이 곳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간다. 그렇지만 내 부는 건축물만 있을 것 같다.

겉에서만 보고 지나치지만 이 곳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기념될만한 곳이다.

 

고종시대 몽고와 항전하기 위해 세운 강화도로 천도하며 만든 궁궐터. 그 뒤로도 여러 외세에 맞섰던 기록이 있다.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도 바로 이 곳에 있던 자료였다.

역사는 그렇게 전쟁이 있을 때마다 나라의 보물들이 떠나 보내야만 했다.

 

비록 세월이 흘러 내 것을 다시 가지고 오고 싶지만, 역사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유럽의 대국들이 그렇게 침략한 나라에서 가지고 온 보물들이 지금 커다란 관광자산이 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세월의 아픔을 한 곳에 서서 빠짐없이 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고려궁지 옆에 커다란 은행나무.

수령 700살 정도의 은행나무가 언덕아래에서 역사를 보고 있었다.

 

강화가 역사의 도시이긴 하지만 경주같이 당시의 모습들을 잘 보존해 놓지않아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의 물건들이 제대로 간직되어 있지 않음이 아쉽다.

 

나들길 이정표가 안내하는대로 주택가로 들어가니 한옥마을이 있는데 보존을 제대로 해 놓지 않아 집 주위에 쓰레기가 많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대문에도 각종 스티커들이 붙어 있는 등.. 눈살이 찌푸러진다.  

정부에서 보존하라고 하지만 제대로 재정지원이 안되는 듯 하다.

 

골목을 지나 나오니 넓은 공간에 강화향교가 마치 촬영없는 날의 셋트장같이 조용히 잠자고 있다.  

 

그러나 그 옆에서 선비의 잠을 깨우는 듯 심한 공사 중장비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린다.

어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  이정표가 안내하는 산길로 올라간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무숲 사이로 약 5부능선으로 길게 뻗은 길을 걸어가니 기분이 좋다.

군데 군데 진달래의 환한 빛깔이 나그네의 걸음을 기분좋게 한다.

 

누군가 그 산책길에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숲사이에 편히 앉아 쉬는 기분은 걷는 즐거움보다 좋다.

가지고 온 오렌지를 하나 까먹고 나무들 중에 이상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있다.

 다른 소나무들은 잘깍은 수염처럼 곧은데 어떤 녀석은 수염깍지 않는 나무처럼 중간 중간에 무언가 주렁 주렁 달고 있다.

그 안에 말갛게 고인 송진.

 갑자기 그 송진 끝에 혀를 대어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긴 오솔길의 끝을 벗어나니 또 하나의 성이 나타난다. 강화북문. 진송루라고 현판이 붙어 있다.

 그 성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길게 아래로 뻗은 길. 가지고 있는 지도를 보니 바로 오읍약수로 넘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서둘러 갈 필요가 있나?

 

한창 무너진 성곽을 보수중인 공사현장을 지나 북장대로 올라간다. 

저 위에 무엇이 있을까?  성곽위를 걸으며 저 아래 마을이 흐린 하늘때문인지 황사때문이 희미하게 또 까마득히 보인다.

 

저 언덕아래를 향해 활을 쏘아대고, 바위를 굴리고, 총을 쏘고, 때론 적의 화살이나 총에 맞아 몸이 굴러 떨어졌겠지?

 

성곽위에는 이미 오래 전에 사용한 참호가 군데 군데 파 있다.

저 참호속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사라져 갔을까? 지금이라도 파보면 유골이 나올것만 같다. 

 

지난 태풍에 쓰러진 것같은 나무들이 잘 정리되어 군데 군데 쌓여 있다. 북장대에는 무엇이 있나? 답은 아무것도 없다.

북장대(北將臺)라는 안내표시만 있을 뿐, 그냥 흙더미만 쌓여 있을다. 훼손된 유적을 다시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인가?

 

북쪽의 성곽에서 장군이 호령하던 곳이었을텐데, 장군의 유골같이 흙이 바람에 날려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안내표시에 써 있는 시 한편.

 

높다란 석축위에 북장대가 있는데

산 가득 숲 우거졌고 산들바람 불어오네.

누가 먼저 차지하여 무예 위엄 보이는가

분명한 군령 후엔 몇 잔 술이 있었겠지.

 

산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가 산길을 내려가는데 중간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작은 통나무를 커다란 나무 밑에 몇 개 가져다 놓았는데 그 어느 휴식처보다 더 정겹게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멋진 산책길. 부드러운 흙에 편해 보이는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 있어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부러 천천히 걸어 내려와 산 아래로 내려오니 오읍약수터. 나이든 이들이 쉬고 있다.

몇 개의 운동기구들도 있고 약수터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 주위가 잘 정비되어 있다.

 

옆에 있는 어느 집에 장독을 엎어 탑을 쌓아 놓았다. 이런 모습도 산 속에 있으니 자연미가 있어 보기 좋다.

 

나들길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애쓴 흔적이 여기 저기 붙어 있는 이정표를 통해서 확인한다.

일부러 걷고 싶은 길을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따로 만들고, 자연친화적인 예쁜 팻말도 붙여 놓았다.

 

여느 산책길에 볼 수 없는 코스 하나. 송학골 빨래터.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작은 빨래터를 만들었다.

아줌마들이 쪼그리고 앉아 온갖 동네 소문들을 비누로 삼아 얼마나 많은 빨래들을 두들겨 패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당한 서러움을 씻어 냈을까?

 

6개의 빨래대 중 5개는 사용한지 오래된 듯 이끼가 끼어 있고 그 중하나는 최근에도 빨래를 한 듯 깨끗하다.

 

누군가 빨래터 위에 솟대 몇개를 만들어 놓고, 불에 탄 나무를 이용하여 재미있는 나무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송학골 샘물터에 써 있는 시 한편

 

나는 태초 이래로 물이었나니

숱한 가뭄에도 송학골 대산리 들판의 목마름을 채워

땅을 풍요롭게 하였노라.

세월 흘러 쉼터로 때론 마을 아낙네들의 수다공간으로, 빨래터로

내몸 내어 맞이하였노라

이제 새로 단장하고 강화 나들길 도류를 맞이하노니

부디 눈길 주고 따스한 몸 한 번 더 만져 주기 바라노라

그리하여 그대들의 지친 몸뚱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내 다시 몸 내어준 "드림"의 미학이 크게 길할 것이다.

 

 

그렇게 산길을 빠져나와 대월초등학교 도착

오늘은 놀토인지 학교는 조용하다. 요즘은 학교에도 담이 없다.

누구나 들어 설 수 있고 누구나 학교 앞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떠 갈 수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 커다란 씨름장. 강화씨름터라 한다. 이런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 보기 좋다.

 

초등학교 옆 길로 나와 작은 언덕 밑으로 내려오니 도로밑으로 뚫린 커다란 굴을 지나는데 공명이 좋다.

신나게 가곡을 불러 제끼는데 내 목소리가 마치 성능좋은 마이크를 가지고 노래하는 것처럼 잘 울린다.

 

아직도 이 곳은 연탄을 때는 집들이 많은 듯 어느 집 마당에 산더미같은 연탄재가 쌓여 있다.

혹시 저 연탄재로 퇴비를 만들 때 쓸 예정인가?

 

갑자기 눈 앞에 얼핏 커다란 동물 하나가 후다닥 산을 올라간다.

고라니다. 내 발걸음에 놀란 듯 산 속 나무 숲속사이로 화살처럼 날라가고 있다.

아..이런 사진 찍는 기회를 놓쳤다.

 

고라니가 도망 간 길로 천천히 올라가니 싱싱한 잣나무가 양 옆으로 죽죽 뻗어 있다.

 기분이 좋다. 아직 겨울빛 속에 푸른 숲 사이를 걸어간다는 것이..

 

낙엽을 밟으며 길을 간다. 푸른 잣나무가 지난 해 땅에 떨구어 놓은 솔방울을 주워 손으로 만져보니 딱딱한 잣이 흙과 같이 떨어져 나온다. 

 

이제 숲속길 여행은 끝난 것인가?

 

도로에 이정표가 연미정가는 길과 박진화미술관 가는길을 알려준다.

이 깊은 마을에 미술관? 호기심이 당긴다. 표시로는 거의 1키로 거리인데 지척에 있다. 아마 차 다니는 도로로만 계산을 한 것 같다.

 

한적한 미술관에 들어서니 입체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은 그림도 변하고 있다.

그림이 화폭에서 자꾸 벗어 나고픈지 새로운 시도가 많다.

 

얼마나 걸었나. 배가 출출하다.

인적없는 길가 어느 집에 툇마루가 비어 있어 앉아 컵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인 듯 지나가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처음엔 김치 그리고 라면 먹은 뒤엔 커피를 주려고 하시기에 사양했다.

그냥 그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지나 갈렵니다.

 

연미정가는 길로 향하는 길로 접어드는데 독특한 집 한채가 눈길을 끈다. 집의 벽을 이용하여 축구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린지 얼마 안된 듯 화폭이 깨끗하고 작가가 누구인지 몰라도 전문 만화가의 솜씨.

지난 번 지리산 둘레길 걸을 때도 이런 그림을 자주 보았는데 우리 같은 나그네의 힘든 다리와 어깨를 주물러 주는 느낌을 받는다.

 

연미정에는 단체로 버스를 타고 여행온 학생들이 몰려있다가 어느 순간 다 빠져 버리고 나니 조용하다.

 

연미정은 정자의 위치가 지도상으로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연미정으로 이름붙여 졌다.

 

그 제비꼬리정자에 올라가보니 바다가 보인다. 여기는 군사지역이라 정자의 축대 앞에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축대 앞에 가까이 가서 밑을 내려다 보니 군대 초소하나.

막 교대가 끝났는지 두 명의 완전군장한 병사들이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고생많다고 인사해 주고...

 

바다를 향해 높다란 철조망 담이 끝없이 둘러 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판이 세워져 있지만, 어차피 담 넘어가는 길이 아니니 그 담을 끼고 계속 걸었다.

 

나이든 할머니가 엄중한 철조망 담 밑에서 봄나물을 캐고 있다.  

전쟁과 평화는 늘 공존한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보니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를 끼고 걷게 되어 있기에 이러면 안되는데...하고 의문이 들 때 쯤 아니나 다를까?

 

도로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가 길을 건너 하천 뚝길로 안내한다.

끝없이 이어진 뚝길. 흙길이면 좋으련만 모두 세멘트 길이라 걷기에 불편하다.

 

봄 농사를 위해 끝없이 넓은 논이 갈아 엎어져 있다. 뚝의 잡초들은 모두 불에 타 그을리고,

지난 해 농사 후 끝부분만 남은 벼 밑둥이 진흙탕속에 섞여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고..

 

이런 길을 얼마나 더 가야하나.

 

이런 무미건조한 길 옆에서 낚싯군들을 월척을 기다리고, 나같은 여행가는 뚝 밑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을 즐기고 있다.

 

이런 내 불평이 들렸던가? 

세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시 이정표는 산 위로 방향을 안내한다. 

 

곧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길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가 다시 또 도로가 나오고 또 산길로 올라가 숲 사이를 걷고,

어느 지역에선 개인의 땅을 표시해 놓은 듯 뾰족한 가시가 돋은  탱자나무를 심어 놓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길이라도 나그네에게 빌려 준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길의 끝이 보인다.

 

다시 철조망 옆을 걷다 보니 멀리 강화대교가 보인다.

 

목적지의 마지막 단계를 걷는 기분을 그대는 아는가?

 

옆으로 씽씽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의 조급함대신 한발 두발 천천히 걸어

목적지를 향하는 "느림"의 인생에서 얻는 즐거움을 그대는 아는가?

 

목적지 끝에는 갑곶순교성지가 있다.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가 이루어 진 곳. 그 곳에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걷는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강화역사관에 들러 도보여행 여권에 스탬프를 받는다. 

오늘 걸은 길 1코스와 지난 번 걸은 2코스를 한꺼번에 받아 가방에 쿡 찔러 넣는다.

 

스탬프 찍어야 할 페이지가 많다. 따라서 아직 갈 길이 많다.

 

오늘 내가 스스로 정한 임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