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 올레길 6코스 여행기

carmina 2011. 5. 10. 22:58

 

2011년 5월, 합창단에서 정기행사 MT를 위해 어린이날이 낀 샌드위치데이를 이용하여

모두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합창단원들과의 여행은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들에게는 가장 뜻깊은 추억만들기다.

밤새 노래하고, 허물없는 대화와 오랜 세월동안 알고 지낸 격의없는 사이들..

 

첫날 밤에 새벽 4시까지 기타치며 놀고 둘쨋날도 그 노래하는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첫 날을 제외하곤 계속 비가 왔다. 그러다보니 예정되어 있던 야외 행사들이 자꾸 취소된다.

올레길 7코스와 우도의 1-1코스 걷기로 한 행사도..

 

못내 아쉬웠다.  쉽게 오지도 못하는 제주도인데..

 

마지막 날. 지난 밤에도 늦게까지 놀 것이 확실하니 오전행사가 10시에 시작된단다. 

이래선 안되지. 어제 본 제주도의 관광코스들은 특별히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들이기에 오늘 또 그런 곳을 가느니 차라리 혼자 올레길을 걷고 싶어

진행하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올레길 가겠다고 말하고..

 

5월 7일 토요일.

지난 밤의 여흥에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들을 두고 아침 일찍 혼자 살짝 빠져 나왔다. 여전히 비가온다.

 

김녕지역에 있는 펜션에서 서귀포 지역의 6코스를 갈려면 시내 버스만 2시간 타야 한단다.

별수없지  교통수단이 이거밖에 안되니..

 

2~30분에 한대씩 온다는 버스가 다행히 오래기다리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 기록되어 있는 시간표대로 7시 정시에 도착했다.

비오는 제주도의 마을 마을을 버스가 지나며 학생들, 출근하는 직장인들,

아주머니들을 두루 두로 태우고 내리고 하며 난 걸어서 올레길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버스로 올레길을 즐긴다.

 

시내버스 안내방송도 반드시 올레길 몇 코스임을 알려주는 정류장 안내도 해주는 친절을 잊지 않는다.

 

6코스는 쇠소깍으로 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버스기사가 안내해 준 대로

조용한 주택가로 가다 보니 쇠소깍으로 이어지는 긴 계곡의 멋진 모습과

그 경관을 더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나무도로가 관광의 제주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준다.

 

 

 

도로에 발지압용 자갈도로도 있어 건강을 생각하는 노인들과 놀기 좋아하는 애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조용하던 길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절경을 빚어 낸 쇠소깍의 멋진 모습이 있는 곳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올레길 표시가 없는 걸 보니 5코스와 이어진 도로 같다.

 

 

 

쇠소깍 휴게소가 있는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이제 또 새로운 걷기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싸이클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 근처에서 숙박하고 아침 산책 나온 사람들로 무척 붐빈다.

 

아침을 안먹고 나왔기에 휴게소에서 컵라면 하나와, 안내 책을 끼워 주는 올레길 여권을 15000원에 구입.

6코스에  출발 스탬프를 찍고... 이제 출발하자.

 

6코스는 쇠소깍에서 시작하여 외돌개까지 가는 약 15키로의 코스.

 

우산쓰고 걸어가다가 사진찍기에 불편하여 우비로 갈아입으니 사진 찍기에는 좋은데 걷기가 영 불편하다.

하지만 어쩌랴.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길로 접어든다.

올레길을 비롯한 모든 트레킹 길의 가장 뜻 깊은 일은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는 아름다움에 있다.

 

서로 지나치며 때론 눈을 마주치지도 않지만, 옷깃도 스치지 않은 사이지만 

그건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동족본능이랄까? 그러니까 신인류가 길을 걸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가족과 부부가 같이 걷고, 친구랑 같이, 연인이랑 같이 그리고 나 같이 홀로 걷는 다양한 모습들..

 

신인류와 같이 걷는 묵묵한 올레꾼 중의 하나, 제주의 상징 조랑말구조물인 올레 이정표.

어느 둘레길에선 나무방향표시나 혹은 솟대로 표시해 놓아 보기 좋았는데,

철 구조물로 만들어 놓은 이 곳은 장기적으로 보는 정책인가?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은 지리산 둘레길의 이정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연친화적으로 나무막대로 만들어 양방향으로 가도 전혀 헷갈리지 않도록 색깔로 구분해 놓얐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면 가끔 중동지방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커다란 팜트리들.

오래 전 중동지방에서 근무할 때 오아시스에 가면 이런 무수한 팜트리들이 온 지역을 덮고 있었다.

 

 

 

파도가 친다. 안개가 가득하여 시야가 불분명하지만 해안가로 몰아치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거칠게 내 뿜으며 사정없이 화산돌들을 후려치고 있다.

 

 

화산에서 뿜어나온 용암들이 온 대지를 불사르며 먹어 들어가다가 바닷물과 합쳐져 찢어지고 

삼켰던 온갖 만물을 토해 내느라 바위들이 모두 엉망이다.

그런 바위들의 형상이 용두담처럼 인간들이 마음대로 상상하는 대로 이름붙이고 애초에 없던 전설을 만들어 냈다.

 

 

 

어느 돈많은 이는 이런 곳에 멋진 별장을 지어 건물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

 

멀리 지귀도의 머리가 비안개에 가려져 있다. 저런 곳에 사람이 살까?

계속 이슬비는 내리고 때론 그냥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6코스에 작은 제지기 오름이 있다. 작은 집 사이에 난 언덕길. 올레꾼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철도 침목을 놓아 오는 같은 날 언덕길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배려도 해 놓았다.

 

 

 

이런 낮은 오름에도 안개가 가득 끼어 앞이 잘 안보이는데  한참 올라가다보니 어디선가 얘기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쇠소깍으로 향하는 중에 만났던 두 명의 아가씨.

 

비록 제주 올레길 경험은 이전에도 없지만 주로 여자들이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혼자 걷는 이들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고 무리지어 걷는 이들도 단연 여자들이 많다.

 

 

 

 

제지기 오름에 올라도 저 아래 갯마을은 안개에 덮혀 보이지도 않다가 사진도 찍고 시간을 조금 보냈더니

안개가 걷히는 것이 보인다. 나 먼저 내려가겠다고 내려오는데...

올라왔던 길들이 낯이 설다.

어? 이런 나무들이 없었는데..하면서도 내려 온 길이라 그냥 내려가고 보니..

이런 내가 올라갔던 곳이 아니다. 그만 오름의 반대편으로 내려와 버렸다.

 

지나가는 마을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잘 못 내려왔고 오름 옆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다시 올레길이 나온다 한다.

 

사람 뜸한 길은 한 참 빙둘러 가다보니 아까 지났던 길을 다시 걸어 가게 생겼다. 어쩔 수 없지.

 

파도와 안개와 팜트리와 담쟁이덩쿨로 멋진 돌담을 지나며 제주도의 정취를 한껏 누리며 걷는다.

가만히 보니 안내가 도로의 바닥을 타고 천천히 밀려오고 있는데

그 위에 서 있으면 내 발목이 안 보일 것 같은 착각도 느낀다.

 

 

 

그런 편한 길을 가는 나를 시샘했는지 이정표를 작은 언덕으로 가는 곳에 세워 두었다.

 

그럼 그렇지. 편하면 재미없어.

 

비가 와서 습해 보이는 숲속길을 걷는다. 마치 원시시대의 어느 숲길을 걷는 것 같다.

나무들이 얼기 설기 길을 막아 서고 그 길 끝에 조랑말 한 마리가 빨리 여기까지 오라고 부르고 있다.

 

 

 

이 조랑말이 구원투수처럼 길이 갈라진 곳에선 여지없이 여기 올라타라고 등을 내 민다.

 

산길을 따라 휘 휘 돌다 가니 다시 도로. 백록정이라는 국궁정이 보인다.

몇 명의 남자가 멀리 번호가 붙은 표적을 향해 힘껏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그렇게 길을 가는데 볼썽스러운 모습하나. 해변가에 비닐텐트를 치고 무당이 굿을 하고 있다.

텐트 밖에 얼핏 보이는 제물들. 무당이 해변가에 무언가를 뿌리고 있다.

저런 것들이 해변을 지저분하게 한다. 물론 파도에 쓸려내려가긴 하겠지만

바위틈에 끼인 것들은 오랜동안 남아서 자연을 훼손시킬 것이다.

 

 

낙옆이 돌담옆에 운치있게 뿌려진 길에 돌담 너머로 깨끗하고

넓은 잔디와 하얀 건물이 마치 유럽의 성처럼 아름답다.

저게 뭐지?

조금 더 가다 보니 칼호텔의 커다란 표식이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에 호텔에 있네. 호텔주변이라 나무들도 제법 잘 가꾸어 놓았다.

저런 곳에서 하룻밤 자면 행복을 느끼게 될까?

 

 

 

조금 더 가면 소정방폭포가 있을 것이다. 폭포로 가는 길도 안전을 생각한 듯 나무 발판으로 잘 만들어 놓았다. 

폭포 근처에 자갈밭으로 파도가 치고 내려가게 되어 있지만 우선은 그대로 진행한다.

 

그 소정방폭포 근처에 제주올레길의 사무국이 있다.

아담한 건물로 들어서니 나이 든 여자분이 반갑게 맞이한다.

물도 떠가고 잠시 쉬다 가라 한다. 얼마나 행복한 직업일까?

힘들여 걸어 온 이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하고 물 한잔 대접하며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늘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정말 가난하게 살아도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봉사란 좋은 것이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분도 자원봉사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 88올림픽때도 자원봉사를 했고, 회사에서도 봉사가는 일이라면 제일 먼저 신청한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작은 기념품까지 하나 샀다.

올레길을 디자인한 서명숙이사장이 쓴 책을 펼쳐 보이며 내용 중에 자기 이름이 적힌 부분을 보여 준다.

 

이런 분의 봉사가 고마와 사진을 같이 한장 찍자고 부탁했다. 올레꾼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사무소에서 중간스탬프를 찍고, 커피와 시원한 물 한 잔에 힘을 얻었으니 또 떠나자.  

나그네에게 물 처럼 귀한 힘과 용기도 없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길을 걷다보니 어제 합창단 일행과 점심식사를 한 곳이 보인다.

그 식사 장소는 8년전에 친구 부부와 제주도 처음 왔을 때 찾았던 장소와 우연히 같은 장소였다.

 

이제부터는 별로 마음에 드는 길이 아니다. 도심지를 통해 걷는데 그 익숙한 곳에도 반가운 곳이 있다.

초등학교. 그런데 이 이정표가 이상하다.

당연히 학교 담을 끼고 걸어야 하는데 이정표는 일부러 학교의 후문으로 들어가 정문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아. 너무 고마운 배려. 어느 누구가 그 정겨운 학교 운동장 지나가기를 사양할까?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후문과 정문에 기다리고 있고,

나이든 여선생님 한 분이 하얀 블라우스에 목에 일부러 큼지막하게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하교하는 아이들에게 웃으며 무언가를 나누어 준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좀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찍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사양한다.

아..사양하는 것도 미소로 사양하는 그 아름다움.

내 꿈이 저런 교사였는데..난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너무 험한 길을 가고 있나보다.

 

학교 옆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 있었다.

이중섭미술관. 야수파같은 풍으로 그린 소의 그림이 제일 먼저 떠올려진다.

그리고 담배갑의 은박용지에 그린 그림들.

이중섭이 살던 집의 구석방에 놓여진 이중섭의 흑백 사진은 병색이 깉은 사람 얼굴이다.

전시관에 비록 이중섭작품은 별로 없지만 그와 뜻을 같이한 화가들이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광. 이응노, 장욱진 등..

 

 

 

이 곳 전시관에 그림보다 더 눈을 끄는 것은 이 중섭이 아내와 주고받은 애절한 편지들이다.

 

이중섭 미술관을 나와  어디로 갈까? 갑자기 이정표를 찾지 못하겠다.

인근 식당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외돌개로 가는 두개의 길을 알려 준다. 편히 가는 길, 바닷가로 가는 돌아가는 길.

 

후자를 택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이 곳도 어제 일행들과 왔던 곳이다

세연교. 두바이의 7성급 호텔을 연상하는 커다란 교각이 있는 다리를 넘어 해안의 바위섬을 돌아오는 코스.

다행히 올레길은 그 곳이 포함되지 않았나 보다.

 

 

 

점심을 간단히 먹기 위해 세연교 근처에 있는 식당을 들어가니 모두 여러명이 먹어야 할 비싼 메뉴들 밖에 없다.

 

다른 곳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표식을 따라가니 높은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아이고 배고파 죽겠는데..괜히 이길을 택했나 보다. 편한 길을 택할걸..

 

앞서가는 올레꾼 여자 한 명. 직장을 그만 두고 이 곳에 한달에 한번씩 와서 올레길을 걷는다 한다.

좋은 팔자네.

 

다시 도로로 나와 길을 가다보니 6코스의 종착점이자 7코스의 시작이고

7-1 코스의 종착점인 외돌개 올레에 도착.

시간을 보니 쇠소깍 휴게소에서 이 곳까지 15키로를 꼬박 4시간에 걸었다.

 

스탬프를 찍고 혹시 근처에 점심 먹을 곳이 있느냐 물어보니 앞으로 한 시간 반을 더 가야 식당이 있단다.

벌써 1시 반인데 앞으로 1시간 반이면 3시나 되어야 식사를 할 수 있다니..

걱정하는 것을 옆에 같이 스탬프찍던 올레꾼이 불쌍하게 보였던지 한라봉이 있는데 먹겠느냐며

친절을 베풀기에 그럴 필요 없다 사양하고 나는 7코스로 향하고 그 올레꾼은 7-1 코스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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