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5코스

carmina 2011. 10. 16. 20:53

 

제주도 올레길 5코스 (2011. 10. 14)

 

제주도에 도착한 첫 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내가 어떤 큰 모임에 참석했다가 내 모습이 조금 돋보였는지

누군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이 나를 부른다.

"회장님이 잠깐 보고 싶어한다"고..

황금빛으로 기억되는 문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 회장으로 보이는 전 아나운서 차인태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어떤 나이 든 사람들.

차인태씨가 나를 보더니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 나랑 같이 일하자"

그 제의에 난 즉시 내 생각을 말했다.

"난 돈 많이 버는 것 필요없습니다. 내 인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귀옆을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에 잠이 깼다.

 

며칠 전 케이블 티브이 프로그램 중 차인태씨와 제주도 올레길을 개발한 서명숙씨의

대담 프로그램을 보았더니 이런 개꿈을 꾸었나보다.

 

15년전에 캐나다로 이민간 친구 부부가 조만간 한국에 들어가 몇 년 살고 싶다며

여행을 좋아하는 나보고 여행다닐 때 어디가 좋은지 조언을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사전작업으로 얼마 전 한국에 같이 들어와 나와 같이 강화도 나들길도 다녀오고

이번에는 제주도 올레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다른 이 같으면 렌터카해서 땅값이나 집값 알아보러 돌아다니는 편한 생각을 했건만

삶의 생각이 모범된 사람이라 올레길을 걷기 원했다.

 

친구는 5박 6일, 나는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다녀오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준비했다.

나는 다행히 이전에 사놓은 제주도 항공티켓이 2장 있었고 친구는 저가항공으로 내가 예약해 두었다.

올레길 코스가 좋은 서귀포에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하고

나는 지난 5월에 6코스와 7코스를 혼자 걸어 보았기에 이번엔 5코스와 8코스를 걸어보는 스케쥴을 잡았다

 

그런데...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같이...저가항공인 제주항공이 떠나는 날 아침에 연락이 왔다.

제주행이 오늘 결항된다고.. 특별한 기상 변화도 없는데..단지 연결편이 안된다는 이유.

그러면서 조금 일찍 떠나거나 늦게 떠나는 비행기로 바꾸란다.

인터넷 조회해 보니 그마저도 풀부킹이다. 

서둘러 다른 저가항공으로 찾아보니 마침 예정시간보다 조금 이르지만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첫날 묵은 게스트 하우스는 이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의 상관인데 유난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분이었다. 직장을 접고 제주도에 '외돌개 나라'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를 새로 지어

시작한지 이제 1년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제주도 올레길 중 제일 아름다운 길이라는

외돌개가 있는 7코스의 시작점에 자리잡고 있어 손님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 분의 전력이 모두 독특한 분야의 건설회사에 몸 담았기에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서 지은

게스트 하우스의 디자인이 남과 다르다.  보통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게스트 하우스 상징물을

전체 공사비의 3분의 1 정도를 투자해서 입구에 외돌개를 상징하는 거대한 예술품을 제작해 놓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90프로가 이 앞에서 사진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주인의 바램이 있었고

정말 어떤 이들이 예술품의 가치를 알고 이것 저것 물어 보기도 한단다.

 

밤 늦게 도착하여 마땅히 저녁 먹을 곳이 없어 인근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고

마당에서 즉석에서 마련한 두부와 아삭한 김치 그리고 파김치로 시작되어 어울린 야외식탁 정담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 곳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 게스트 하우스를 짓는 과정의 이야기

이 곳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이야기, 요즘 섹소폰도 즐기고 관광대학에 입학하여 학생회장도 맡고

사이클을 즐기고, 얼마나 날마다 재미있게 사는지 등등...

내 친구의 관심과 가려운 곳을 속속들이 긁어 주는 이야기들을 밤이 이슥하도록 쏟아낸다.

도대체가 끝이 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은 결국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져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방 구석구석이 흔들의자 등 앤티크한 물건이 가득한 곳에서 기분 좋은 첫날 밤을 자고

아침에 토스트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바하의 바이올린 샤콘느가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난 밤에는 안 보였던 사람들이 홀에 가득 모여 빵을 굽고 아침을 즐긴다.

어제 밤에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외돌개 조형물의 조각작품이

세세히 보고 있노라니 과연 화가가 만든 역작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곳에서는 7코스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편하게 시작점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아침 시간에

손님들 중 원하는 이들에게 6코스의 시작점인 쇠소깍까지 데려다 준다.

 
우리도 5코스를 역으로 걷기 위해 쇠소깍에서 내렸다.

 

비가 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번 제주여행을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선일보에 난 한비야씨의 대담 기사를 보았다.

"산에 '그냥' 가고 싶은 사람은 그날 비가 오면 산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산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비가 와도 간다.

진심으로 그 일이 하고 싶은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길 걷기를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아내가 비가오니 렌터카 이용해서 돌아다니자는 궁시렁거림도 무시하고 떠나기로 한다.

다행히 친구 부부도 이런 점에서는 적극적이다. 이런 코드가 맞으니 오랜 세월 어울리며 살았다.

 

6코스의 출발점이자 5코스의 종점인 쇠소깍에 내려 물병을 몇 개사고 

출발 스탬프를 찍으려는데 이전에는 가게에서 찍던 스탬프를

저기 밖에 도장이 마련되어 있다며 가르키는데 스탬프와 도장이 비를 맞은 채 밖에 나와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가게에서 관리도 힘들어 진 것 같아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이런 날은 관리가 안되는 것 같다.  올레길 여권에 물에 퐁당 젖은 스탬프 잉크로  도장을 찍고 나중에

5코스 걸은 뒤에 도착 도장을 찍을려고 보니 도장이 사라져 버렸다.

하긴 물과 다름없는 잉크로 찍었으니 남아 있을리가 없지.

 

지난 5월 이곳을 왔을 때보다 몇 가지의 올레길 안내판이 더 많이 세워졌다.

 

자. 이제 4명이 흰 비닐 우비를 뒤집어 쓰고 출발. 시간 9시 20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난다는 쇠소깍.

소가 누운 듯한 모습의 연못 소(沼)라 해서 쇠소깍이라 한다.

비가 안 오면 투명 카약을 타는 사람들로 붐빌텐데 오늘은

출발 점 앞 정자안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얘기들을 즐기고 있다.

 

나무로 만든 긴 쇠소깍 계곡의 발판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조용한 동네로 접어 든다.

 

아직 감귤의 출하기가 아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감귤의 색이 일부는 노랗고

일부는 아직 나뭇잎 색과 같다.

귤이 포도송이처럼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으니 가히 수확향이 엄청날 것 같다.

어제 들은 얘기에 의하면 감귤 농사처럼 쉬운 것이 없단다.

그다지 손도 많이 안들고 병충해도 별로 없고 대개 1년만에 수확이 나오며

판로도 많아 그다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 한다.

 

마을 길 옆의 좁은 소로를 지나는데 오솔길에 물이 흥건하다.

바지 젖는 것은 당연하고 피할 수 없이 밟고 가야 하는 물웅덩이들이 있어

신발까지 서서히 젖어 들어온다.

이런 날 신발 안 젖게 걷는 방법이 없을까?

 

30년전 쯤에 겨울 등산을 가면  눈길 걸을 때 등산화 속에 들어오는 눈을 막고자

미리 신발에 왁스를 발라 신발이 젖는 것을 방지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많은 길들이 세멘트포장길이라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 도로를 흐르는 물살까지 피하지는 못했고, 신발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막지는 못했기에 한 시간 정도 걸은 뒤 어느 인적없는 마을의 이층 정자에

들어가서는 아내가 신발을 벗어 양말에 배인 빗물을 짜내는데 마치 젖은 행주처럼

빗물이 바닥에 주루륵 떨어진다.

 

그러나 이층 정자에서 바라보는 비오는 바다 풍경은 그 어떤 불편함을 견디어 내기에 충분했다.

파도가 넘실대고 비가 온다.

 

검푸른 바다위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이요

그 깊은 바다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내가 좋아하는 김민기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저 바다에 물고기들이 마구 뛰어 노는 풍경을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볼 수 있을까?

 

마을길과 숲길이 이어진다.

바다가 마을을 파고 들어 동네 일부가 깍여나간 듯한 바닷가.

검은 모래가 덮혀 있고 돌들이 파도에 뒹굴고 굴러 동그란 몽돌이 되어 버렸다.

 

5코스를 정방향으로 걷는 남녀 커플이 이른 시간에 출발했는지 벌써 비에 폭 젖은 채로

인사를 하며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우비를 안 쓰고 다니네..

제대로 된 비 옷을 입었나?

 

바닷가에 커다란 집 한채가 보기에도 좋다.

이 곳에 정착하고 싶은 친구부부의 눈에 이런 모습이 자주 들어온다.

그렇게 큰 집에 대문은 돌 기둥에 나무세개를 가로 걸쳐 놓아 아무도 없음을 말해 준다.

그 집 앞 큰 과수원에 귤이 익어가고, 잔디도 잘 다듬어져 있다.

이런 집을 사서 게스트하우스나 할까?  자꾸 욕심이 생긴다.

아니면 제주도에 깔세라고 있던데 깔세 얻어 일년 정도 살아 볼까?

깔세는 일정 금액을 일년동안 집 주인에게 맡기도 일년 뒤 집세를 제하고  그 중 일부를 찾아가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전세스타일이라 한다.

 

작은 텃밭을 건너 뛰어 지나가니 차가 다니는 도로가 보인다.

설마 저 길을 걸어가게 하진 않겠지.

키 작은 아가씨 한명이 우산을 쓰고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5코스의 근처에 있는 큰엉을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났단다.

 

하긴 우리도 1시간 반 정도 걸은 것 같다.

 

바다가 마을로 들어와 막혀 있는 곳에 작은 안내 돌판이 있고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넙빌레'라 하여 읽어보니

이 곳이 용천수가 흘러 나와 주민들의 노천욕을 즐기는 장소라 한다.

넙빌레라는 말은 넓은 바위라는 뜻이다.

 

길은 그렇게 마을로 흘러 들어 온 갯골길을 구비 구비 돌아 간다.

수없이 많이 보이는 귤밭들..  귤밭속에 집이 있는건지 집 옆에 귤밭에 있는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귤밭이 끝이 없다.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지 않더라도 우린 노란 귤밭사이를 걸어간다.
 

그렇게 돌아간 길을 가다보니 차가 다니는 도로로 나서게 된다.

워낙 온 몸이 젖어 어딘가 쉴 곳이 필요한데 쉴 곳이 마땅치 않다.

마트 옆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잠시 주저앉아 다시 신발을 벗어 양말 속에 배인 빗물을 짜낸다.

한 번 짜낸 뒤에 다시 신발을 신고 조금 기다리면 다시 양말이 신발 속의 물을 빨아들여

조금 전에 짜 버렸는데도 다시 흥건하게 물에 젖어 있다.

 

길을 계속 갈까 하다가 오늘 저녁에 멋진 회를 먹기로 되어 있는데 점심을 늦게 먹으면

맛있는 저녁을 많이 못 먹을까봐 이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을 시켰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도록 짜장이 진하고 맛이 있었다.

하긴 외국에서 이런 진한 시골짜장을 먹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식사 중에 비가 멈추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문을 열고 나오니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침 예보에 12시정도까지 비가 온다 했는데...지금 12시 임에도 비가 멈출 기색이 없다.

 

큰 길로 나와 다시 이정표를 찾아 가는데 사거리에서 이정표를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 모퉁이에 보험사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 보니

직원이 식사하다 말고 나와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

 

가르쳐 준 대로 길을 찾아 가다가 갑자기 복통. 혹시 아침에 먹은 우유 때문에?

이래서 아침에는 우유먹지 않는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주시는 바람에 먹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안하던 짓을 하게 되면 이렇게 탈이 난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횟집에 뛰어 들어가 화장실 좀 이용하겠다 했더니

나중에 볼일 보고 나올 때 여행 잘하시라고 격려도 해 준다. 고마운 사람들.

 

이제 신발이 비에 젖지 않을려고 빗물을 피해 걷는 것은 포기했다.

 

길을 가는데 커다란 백구한 마리가 내 앞을 먼저 걸어가며

지속적으로 발을 들어 영역표시를 한다.

개들이 소변보는 것으로 자신의 영역표시를 한다는게 확실한 정설이긴 하지만

이 백구는 얼마나 자주 소변을 보는지 자신의 영역표시를 확실하게 해 두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백구가 계속 올레길을 앞장 서 가고 있어 계속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

막다른 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속았구나. 아니...내가 너를 너무 믿었구나.

내 잘 못이지. 다시 알바를 했다.

 

올레길은 비교적 역방향 표시도 잘되어 있다 하는데

그래도 군데 군데 역방향 이정표를 잘 찾지 못하는 곳이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 이런 길을 많이 걸어 본 사람이라면 금방 길을 찾을 수가 있다.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없으면 잘 못 온 것이고

그래도 구분이 잘 안되면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면 된다.

 

비가 오는데도 딸 둘을 데리고 걷는 엄마도 있고

혼자 열심히 걷는 아가씨도 있다. 길은 사람을 참으로 용감하게 만든다.

아마 산이라면 저렇게 혼자 다니고 여자들끼리 다니기 힘들 었을 것이다.

 

여기 저기 게스트하우스에는 비가 와 길 걷기를 포기한 듯한 사람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

인터넷 게스트 하우스 전문 카페에서 보지 못한 이름들의 숙소들이 무척 많아 보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생겨서인가? 다른 게스트하우스 소개 사이트가 있는건가?

 

동백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길을 걷는다. 이제는 모두 아름다운 빨간 꽃들이 져버렸지만 그래도 울창하게

나무가 자라고 있고, 쭉 쭉 뻗은 소나무들이 많이 병들어 있다.

아주 간간히 감나무도 보이고 모과나무도 보이지만 나무들의 99프로는 감귤나무라 해도

틀린 수치가 아닐 것 같다.

 

전망이 좋은 곳에 철문이 닫혀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하나 뎅그마니 놓여 있다. 군초소인가?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 비를 피하고 싶었다.

 

바닷가에 남탕 여탕이 노천에 있어 가까이 가보니 노천욕을 즐기는 곳이다.

여름 철엔 이 곳에 사람이 무척 많을 것 같다. 주차장도 넓고 욕탕은 비록 크지 않지만

지나가다가 잠시 들러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비가 오지 않으면, 자주 가방을 열어 여행 안내서를 읽어 보겠지만

배낭을 내려 놓기도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비에 모든 것이 여의치 않다.

카메라가 물에 젖을 것 같아 사진 찍기도 불편하다.

매번 쉴 때마다 우비를 벗어야 하고 다시 입어야 하고...

 

그렇게 쏟아지는 비가 조금 추막해지는가 싶어 하늘을 보니 비는 오지만

회색 빛 구름사이로 작은 햇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시야가 넓어지며 바다도 시원하게 보이는 곳 저 편 바위 끝에 낚싯군들이 비를 맞아가며 낚시를 즐기고 있다.

이 곳이 큰엉이라는 곳이다.

엉 이란 동굴을 뜻하는 곳이라기에 절벽끝에 가보니 절벽구속에  동굴하나가 크게 뚫려 있다.

이 곳은 바닷가를 끼고 산책로를 잘 만들어 놓아 근처 펜션에 있는 사람들이 이 곳에서 산책을 하며

제주도의 낭만 속에 들어가 있다.

 

구비 구비 돌아가는 큰엉 산책로. 가끔 보이는 절벽의 바위는 마치 제주도 전통가옥의 바위담처럼

절벽이 바위들로 차곡 차곡 쌓여 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친 것 같다.

우비를 벗었더니 윗도리도, 속 옷도, 바지도 신발도 모두 퐁당 물에 젖어 있다.

배낭 속에 들었던 물건들도 모두 축축하다. 빗물이 뼛속까지 깊이 들어 와 있는 듯 하다.

이제 목적지인 남원포구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양말을 벗어 물기를 제어하고 벗은 내 발을 보니

물에 불어 쪼글쪼글하다.
 

바닷가의 긴 뚝길을 걸어 가는데 뚝 위에 세워 놓은 바위에 남사랑 (남원포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바위에 시를 새겨진 석판을 하나씩 기증해 나그네가 스쳐 지나가며 시를 읽도록

배려 해 놓았다.

 

이제 5코스 시작점인 남원포구 도착.

이 곳에 있는 올레 코스안내소에 두 분의 봉사자가 교통편을 친절하게 안내 해 준다.

 

비 때문에 정말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는 5코스.

아마 날씨 맑은 날 걸었으면 더 진행하고 싶었을터인데 비 때문에 너무 지쳐 버렸다.

 

넷이 손을 모으고 파이팅으로 오늘 5코스 완주를 축하하고 버스를 타고

새로 옮긴 숙소인 달팽이하우스로 돌아오니

우리가 묵을 숙소의 외부는 거의 제주도 전통가옥이었다.

비록 누추해 보이긴 했지만 그런데로 아늑한 기분을 주도록 꾸며 놓았다.

폭 젖은 신발들을 라디에이터에 말리게 해 놓고 기대했던 저녁식사를 위해

서귀포의 유명한 '쌍동이 횟집'에 가 13만원짜리 회를 시켰더니 정말 가지 가지의 회가 가득 나왔다.

갈치회, 고등어회, 전복 광어 등의 귀한 회와 멍게, 개불, 소라 등의 어패류, 옥돔구이, 전복찜, 등등..

너무 많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나오는 회를 즐기다가 카운터 쪽을 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는지 앉아 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세상에 이렇게 장사가 잘 될까?

 

긴 저녁시간에 어디 갈데도 마땅치 않아 어제 저녁 묵은 외돌개 나라에 놀러 가

맛있는 제주 흑돼지 고기와 함께 긴 긴 밤을 클래식 음악 이야기로 즐기다가 밤이 늦어

우린 달팽이 하우스로 돌아 오니 비어 있던 방에 손님들이 들어와 있다.

어느 방에선가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오는 손님은 동양인의 얼굴

수의사 국제회의가 있다면서 한 사람은 홍콩 한 사람은 호주에서 왔단다.

그리고 또 한 가족은 전남 장흥에서 페리호에 차를 가지고 와서 별채에 묵고 있다.

작은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제주도의 두 번째 밤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