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4코스 - 해가지는 마을길

carmina 2011. 12. 3. 22:18

 

 

2011. 12. 3 토요일

 

나들길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것이 올해 4월.

 

전체 나들길 10코스지만 실제 나들길을 다닌 것은 10번이 넘었다.

때론 나 혼자 다닌 길도 단체 걷기에 다시 다녀야 했고

때론 친구를 위해 이미 가본 길을 또 한 번 걷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들길 중에 별로 인기없는 4코스를 다녀 볼 기회가 없어

나들길 10코스 완주를 못하다가 12월의 첫째 주 토요일 5코스 단체 걷기가 있었지만

혼자 4 코스 걷는 길을 택했다.

 

4코스는 코스 길이가 짧아 일부러 4코스 완주후 5코스를 역주행하면 다른 일행들과

만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강화터미날에서 4코스 출발점인 가릉까지 갈려면 강화 터미날에서 41번 버스를 타야 한다.

이미 5코스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일행들에게 인사하고 혼자 4코스로 향했다.

 

이렇게 나들길을 혼자 걸어보는 것도 거의 6개월만이다.

 

나들길 4코스 출발점인 가릉 근처의 허브향기 찻집에 들러 출발 도장을 찍고

수고하는 찻집을 위해 커피한 잔 마시고 가는 길을 물으니

첫번째 이정표인 정제두묘로 가기 위해서는

저기 눈에 보이는 차가 다니는 도로로 가면 된다고 가르쳐 주는데

나들길을 자주 걷는 내게는 잘 못 가르쳐 준 것 같다.

 

나들길의 원칙이 차가 다니는 길보다 돌아서 가더라도 숲길을 찾는다.

나들길을 잘 아는 이에게 전화해 보니 역시 허브향기 찻집 주인이 가르쳐 주는 길은 지정된 나들길이 아니다.

적어도 나들길 스탬프 찍어 주는 곳에서는 제대로 된 길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3코스 종착지인 가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작은 유치원

오늘은 애들이 없는지 빈 의자들이 기대어 있는 곳을 올라가니

몇 개월 전 보았던 울창한 나무숲이 나를 다시 반긴다.

이렇게 곧은 나무는 언제 심어 놓은 것일까?

 

인적없는 조용한 가릉. 오늘은 호젓한 산행을 즐겨볼까?

얼마전 나들길 이정표 도색작업을 새로 했다더니

4코스로 가는 이정표의 페인트 색깔이 선명하다.

 

낙엽을 모두 떨궈 버린 산속의 쭉쭉 뻗은 나무들과

이제는 더 자리잡을  잡초도 없는 산소들이 더 쓸쓸해 보인다.

 

편한 길. 인적이 없어 산기슭의 작은 실개천의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 조차 선명하게 들린다.

비록 춥지않은 날씨지만 목덜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스틱을 잡은 손길이 차가움을 느낀다. 

머플러를 두르고 두터운 장갑을 끼고 걷다가 금방 불편함을 느낀다.

차라리 조금 서늘함을 느끼는게 걷는게 더 편할 것 같다.

 

강화도는 유난히 기도원들이 많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고 구석 구석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고 아직은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곳인지 많은 교회들이 지교회를 이곳에 세우고

기도원을 만들어 맑은 공기와 자연을 함께 즐기며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갈멜산이 이 곳에도 있다?

이정표에 갈멜산 기도원으로 가는 표식도 보인다.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되었던 토요일의 강화는 멀리 산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로 걷는 시야를 즐겁게 한다.

멀리 산들의 선이 선명하게 보이고, 구름조차 더 깨끗해 보인다.

 

낙엽 잎 위로 길게 드리운 나무들의 그림자 옆 내 그림자는 지극히 작아 보인다.

나 이렇게 작은 존재이거늘, 말이 없는 키 큰 나무들보다 잘났다고 말이 더 많다.

겸손하자... 겸손하자...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3분을 넘기지 못한다.

 

나무들이 숲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젊은 시절 강화의 어느 교회에 봉사활동을 하기 위헤

한 겨울 밤에 강화에 와서 눈 쌓인 숲속 길을 혼자 걷다가

저런 춤추는 나무들이 사람으로 보이는 착시에 얼마나 무서웠던지..

지금 한 낮인데도 나무들이 마치 어느 순간 춤을 추며 나를 휘감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다행히 아직 강화에서는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뉴스가 없다.

이런 길에 어디선가 툭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나올 것 같은 생각에

스틱을 조금 더 강하게 쥐어 본다.

 

사람들이 별로 안다니는 길이라 길에 곳곳에 두더지들이 다닌 흔적이 많다.

구멍이 선명하게 뚫린 곳은 무엇이 드나 들었을까?

분명 사람이 파 놓은 것은 아니리라.

 

혹시나 그 구멍속에 두더지가 있을 것 같아 스틱으로 구멍을 조금 더 파 보았지만

구멍이 계속 이어지기에 포기.  낯선 동물들에게 미안.

 

갈멜산 기도원으로 가는 길 근처에 나무 틈 사이에 누군가

음료수 병을 꽂아 놓았는데 그 안에 담배 꽁초가 가득하다.

아직 끊지 못한 흡연이지만 기도할 때 마음은 간절하겠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니까..

 

넓은 기도원 입구. 인적하나 없다.

이런 시설들을 평상시에는 게스트 하우스로 쓰면 어떨까?

 

무슨 공사중인 기도원 앞길을 내려가다가 보니 차다니는 길이 보인다.

또 한 번 나들길에 대한 본능으로 문득 그냥 내려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들길 표시는 오른 쪽 숲길로 이어진다.

바닥에 이정표가 있었으면 금방 알았을텐데..

 

정제두 묘로 가는 길.

조선시대 대학자 정제두의 묘는 비록 왕릉같이 크지는 않지만

벼슬을 가진 사람들의 묘지에만 세울 수 있는 정승비석이

높은 지위에 있던 분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원래 묘지의 비석과 묘석은 고인의 생전에 어떤 직위에 있었는지에 따라

구분되게 세워 놓지만 누가 단속하는게 아니기에 잘못 세웠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정제두묘 앞에 차가 다니는 길.

어디로 가야 하나. 다음 목표가 하우약수터인데 이정표는 있는데

길이 차가 다니는 길 밖에 없다.

그것도 이제 도로 공사를 하는 곳이라 보행자를 위한 공간도 없다.

 

걷는 자를 위한 길이 어디 있을텐데 하고 두리번 거렸지만 고개를 하나 넘기까지 길이 없다가

고개를 넘어가서야 차도를 벗어나는 표식이 보인다.

 

하우약수터에는 멋진 벽화를 그려 놓았다.

벽에 써 있기를...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야" (얼마나 이 말에 내가 공감하는지 남들은 알까?)

"자유로운 영혼들과 강화 나들길"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나를 표현하는 말.. 자유로운 영혼)

 

약수터에 물을 먹을 수 있는 국자는 다 어디갔을까?

누군가 빈 펫트병을 하나 세워 놓았다.

 

약수터 옆 화장실은 겨울에도 화장실을 얼지 않게 하려는지 유리문을 해 놓았다.

이런 야외 화장실은 처음 보네

 

여기서부터 긴 세멘트 포장길을 걷는다.

비록 흙길은 아니지만 혼자 아무도 없이 걷는 길이가 기분이 무척 좋다.

평소 다른 앨행과 같이 걸을때는 조그마하게 흥얼거리며 부르던 노래도

이 길에서는 일부러 찬송가들을 목청을 높여가며 실컷 불러 본다.

   

멀리 오리들이 하늘을 날아가고,

먼 발치 길 한 복판에 큰 개만큼이나 큰 덩치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쳐다 보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니 슬며시 동네로 들어간다.

 

바다가 보인다.

눈 앞에 보이는 장면들이 마치 HD화면을 보듯이 선명하다.

오늘 같은 날 캠코더를 가지고 와서 찍었으면 아마 두고 두고 보관할 만한

장면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었으리라.

 

여기 저기 구석 구석에 펜션들이 숨어 있고

어느 밭에는 냉이같은 푸른 잎파리가 넓게 심어져 있다. 저게 뭘까?

 

동네를 지나가며 동네 아저씨 할머니들에게 계속 인사하며 지나는데

어느 집 마당에 노부부가 일을 하고 계시기에 일부러 마당으로 들어가 인사했다.

호박을 길게 껍질을 벗겨 빨래줄에 널어 말리고, 담벼락 아래 배추잎을 널고

처마 밑에 무청을 가득 널어 놓았다.

 

나보고 어디서 왔느냐기에 도시에서 왔다 했더니

뭐가 볼게 있다고 이런 곳에 오느냐고 겉치레 인사를 하신다.

노부부의 댁 문패에 써 있는 글.

"국가 유공자의 집"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군인이셨었군요?, 625 전쟁에 참여하셨어요?"

"그래"

 

노부부에게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라고 인사하고 길을 가니

마을 한 켠에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멋진 교회가 하나 우뚝 서 있다.

교회 앞으로 해서 마을을 지나가니 갑자기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여기가 건평리.

 

오전 햇살에 바다가 보석같이 빛난다.

건평리 바닷가에는 나그네들이 쉬다 갈 수 있도록 깨끗한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그 곳에 앉아 간식을 즐기고 반짝이는 수면을 오래도록 바라 보았다.

 

지도를 펼쳐보니 여기서부터는 외포리까지 밋밋한 바닷가 길을 가야 한다.

평지를 걸으니 걸음속도가 빠르다.

 

바닷가의 청둥오리들과 해오라기가 내 발걸음에 놀랐는지

수면에서 놀다가 무리지어 날라간다.

가끔 바이크를 즐기는 이들이 지나가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건너편의 석모도로 커다란 배들이 오고가고 난 허기증을 느낀다.

횟집 팻말이 보여서일까?

 

나들길 안내서에는 4코스 소요시간을 3시간 반이라 했는데

내 걸음이 조금 빨라서인지 아니면 중간에 휴식을 짧게 가졌는지 2시간만에 주파해 버렸다.

 

외포리 선착장 안내소에서 나들길 10개 코스의 마지막 도장을 찍는다.

 

점심을 혼자 먹는 것은 참 불편하다.

같은 가격으로 지난 주에는 맛있는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오늘은 그 가격으로 허름한 반찬에 굴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여기까지가 4코스이고..

 

걷기 나와서 이렇게 두 시간 정도 걷고 그만두면 아깝지.

5코스를 역주행하기 위해 고갯길로 올라가는데 동네 아이가 지나가며

나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내가 갑자기 놀랐다.

내가 지나가며 얘기했다. " 너 착한 애구나"

 

언덕위에 양지바른곳에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계시기에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며 나들길 간다 했더니

조금 가면 당집이 있다고 몇 번을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행동을 조심하라는 말씀이시겠지.

 

얼른 배낭속에서 초코렛을 꺼내 할머니에게 드렸더니

이런 것 별로 안 좋아하신다며 손을 모아 받으신다.

 

할머니 등뒤로 보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누구를 기다리시고 계시는 것일까?

 

역주행하는 길은 언덕길이라 이제까지 편하게 왔던 내 몸에서 땀이 흐른다.

숲속길로 들어서니 다시 찬 바람이 불고, 손이 시렵다.

 

지난 여름에 그토록 무성했던 숲길이 오늘은 썰렁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 훼손될 길이 있고 그 숲속 길에 주택이 세워질려는 듯

집터자리를 표시해 놓았다.

 

자연은 훼손되어 가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보기좋게 만들어 놓겠지.

 

덕산 삼림욕장 길에 날카로운 침엽수 낙엽들이 그 사이

사람들의 발걸음과 바람으로 인해 날카로움이 없어지고 부드러운 잎으로 변했다.

 

이 곳에서는 몇 명의 나그네들이 지나친다.

제대로 장비를 갖춘 나그네도...

편한 복장으로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도..

일하는 아저씨들도..

다시 속세로 돌아 온 기분이다.

 

덕산삼림욕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고급 주택은

마당에 묶여 있는 고급 견공들과,

집 앞 도로에 있는 두개의 시야확인용 볼록렌즈로 볼 때

아주 특별한 사람이 사는 것같다.

특히 볼록렌즈는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설치한 걸 보면

무언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같다.

 

길을 걷다가 오늘 아침에 5코스를 출발한 이들과 조우한다.

반가움. 비록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이지만 그 사이 모두 정이 들었다.

오늘은 특히 다른 지역의 걷기 동호회가 버스 2대를 가지고 나들길을 찾았단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외포리로 향하다가 마지막 숲속인 굿당터에서 단체 사진을 찍다가

문득 다른 지역에서 온 걷기 동회회 사람중에 반가운 얼굴을 하나 만났다.

 

그들은 먼저 보내고, 우리끼리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