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0일
아내가 며칠 전 갑자기 제안을 했다.
가족이랑 어디든 여행가자고..
애들도 같이 갈 수 있다고..
좀체로 같이 다니지 않는데 요즘 무슨 낌새를 챘는가 보다.
서둘러 콘도를 잡으니 마침 가고 싶은 곳에 여유가 있다.
겨울 남이섬.
언젠가 아내랑 겨울에 둘이 한 번 가보고 겨울 남이섬의 호젓함과 호숫가에 핀 물 안개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았기에 또 그 곳에 가고 싶었다.
2011년도의 마지막 근무일이라 오전근무만 하고 회사에서 점심도 안 준다기에
가족들 보고 일찍 회사로 차를 가지고 오라고 당부해 놓고는....
추울지도 모르니 따뜻하게 입을 걸 챙기고..
년말이라 춘천가는 도로가 무척 막힐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전혀 막힘이 없다.
너무 이른시간인가?
모두 점심을 먹지 못했지만, 남이섬의 먹거리들을 즐기기위해 배고픔도 잠시 참기로 했다.
요즘 한약을 먹는 딸 때문에 고기나 밀가루 음식을 피해야 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래도 딸이 고맙게도 자기는 신경쓰지 말고 메뉴를 정하라 한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도로의 좌우편에는 눈에 덮힌 산들이 펼쳐진다.
며칠 전 함박눈의 잔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찾아가는 고향집으로 향하는 길 같은 느낌.
내 고향 싸리울엔 흰 눈이 쌓여 있을까?
남이섬 앞에는 이미 많은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고 승용차가 주차할 자리도 없을 정도로
빼곡한데 주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 중국사람 혹은 동남아시아 계통의 사람들이다...
점심을 못 먹었더니 선착장에서 보이는 것마다 군침이 돈다.
딸이 찐 감자를 먹으며 이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 먹어본다며 감탄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높은 구조물에 두 가닥 선이 남이섬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공에서 밧줄에 매달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방법있다하니 딸이 다음에 하고 싶다고 욕심을 보인다.
겨울 호수에 커다란 얼음들이 강에 둥둥 떠 다닌다.
배가 물결을 일으키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니 그대로 여름에 먹는 맛있는 얼음빙수가 될 것 만 같다.
배 안에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추워서 꽁꽁 싸맨 복장에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저 공산주의에서 일에만 매달리던 중국인들이 돈 쓰는 재미를 알았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도 사진기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무척 고급모델이다.
벌써부터 중국에 그런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하는데
그들도 많은 돈을 들여 한국사람들의 얼굴같이 성형해 달라고 할 정도니
앞으로도 한국의 관광거리는 종류별로 무궁무진할 것 같다.
당에서 시키는대로 일만하던 중국인들이 마우쩌뚱의 흑묘백묘 한 마디에
완전히 준 자본주의로 변해 버렸다.
전 세계에 중국사람들이 없으면 세계 경제가 쓰러지지 않을까?
어디가나 가장 낮은 계층의 직업으로 뿌리를 박는 사람들
그러나 그 들이 주무르는 경제의 가치는 이제 미국의 경제를 넘 볼 정도로 거대해졌다.
남이섬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커다란 모닥불 주위에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선착장에 분수대에 뿜어나온 물들이 얼어붙어 창백한 흰 색의 커다란 얼음나무가 세워져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조금씩 뿜어나오는 분수로 인해 물먹은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겨울동안 얼마나 높이 자랄 수 있을까?
우선 배가 고프니 제일 먼저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쟁반메밀과 비빔밥을 시켰는데
메밀은 이상하게 맛이 빠진 것 같다.
그걸 먹으면서 이런 맛이 외국인에게 맞을까 하는 의아심도 들었다.
일부러 외국인 취향에 맞춘건가?
아내가 미리 젓가락을 놓는다.
어차피 오늘은 음식 하나로 배불리 먹지 말고 이것 저것 즐기기로 했으니까..
뱃속에 무언가 들어가니 조금 추위가 덜어진 것 같다.
지난 가을에 노랗게 길을 뒤 덮었던 은행잎들이 모두 갈색으로 변해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울 도심지의 흩어지고 나뒹구는 은행잎들을 쓰레기장으로 보내지 않고 이 곳으로 보냈다 한다.
은행나무보다는 메타세콰이어가 많은 남이섬의 색깔에 은행잎을 깔아 놓아
남이섬 전체의 색을 가을 빛으로 만들었을것 같다.
여기 저기 만들어 놓은 모닥불.
무슨 나무를 때는데 이리도 냄새가 좋을까?
좀처럼 사진이라고 찍기 싫어하는 아들도 여기 저기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길가에서 돌위에 구워파는 가래떡 구이.
온 가족이 노릿하게 구워진 가래떡에 꿀을 발라 서로 먹으라며 입에 들이대는데
너무 좋아서 호들갑을 떤다.
너무 맛있어..너무 맛있어..
떡이 맛있는건가? 꿀이 맛있는 건가?
남이섬이 맛있는건가? 이런 겨울낭만이 맛있는건가?
가래떡 맛에 빠진 가족들, 다음엔 뭘 먹을까 하다가 허브제품들 파는 곳 앞에 있는
구운 옥수수에 필이 꽂혔다. 겨울엔 역시 옥수수를 구워 먹어야 해.
입으로 뜯어 먹다가 유난히 알이 굵은 옥수수알을 하나라도 떨어 뜨릴까봐 조심하고 있다.
남이섬은 죽죽 뻗고 질서 정연한 나무들의 자연 모습도 좋지만
이것 저것 예술품들을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유리 공예, 도자기, 목각, 드라마 촬영 장소, 등등..
이렇게 남이섬을 멋지게 만든 배경에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집념이 큰 역할이 있다.
강우현씨.
남들이 버리는 쓰레기로 쓸 만한 것들을 만들고
남이섬이 아니고 남의 섬이라는 생각으로 관광지를 만들고
직원들에게 평생고용을 실천하는 사람.
그래서 이 곳을 스스로 나미나라 공화국이라 이름붙여 자신의 무늬를 만들었다.
남이섬의 곳 곳에는 내 젊은 시절의 추억도 가득하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하기 전에 기타 하나 들고 찾아 온 이 곳에서
우연히 유명가수 백코러스들과 같이 노래를 하고
남이섬에서 펼쳐진 FM 공개방송에서 유명가수와 화음을 맞추며 노래도 해 보았다.
친구가족들 몇팀과 어울려 독채 별장을 하나 빌려 밤새도록 놀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할 때 일부러 이 곳에 와서 생각을 가다듬기도 했다.
시골 부엌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 빈 무쇠솥에 불을 때서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죽은 나무에 유리로 만든 조각품을 걸어 놓아 나무를 살려 놓고
툇마루에 자연의 소품들을 이용해 글씨를 새겨 놓았으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아
외국인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주인이 그러하니 손님들도 예술성을 발휘하는 듯
누군가 화장실 벽의 나무 옹이를 이용해서 그려놓은 고양이 산타가 너무 재미있어 찰칵
바람이 차기에 들어간 도자기 체험방
나이든 도공이 도자기를 빗고 있다.
발물레 전문도공이라는 분이 주위에 사람들이 있던 말던 묵묵히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준다.
그냥 넓적한 찰흙 덩어리 하나가 날렵한 도기 하나로 순식간에 변해 버린다.
작품을 물레대에서 떼어 올려 놓기에 박수를 쳐 드렸더니 머쓱하게 인사를 받는다.
한 없이 존경받아야 할 문화의 장인들인데 어린이들이 그냥 묘기로만 볼까봐
일부러 표시나는 경의를 전했다.
남이섬 주위의 강물이 얼어붙어 하얀 눈이 덮혀 있다.
젊은 연인들이 그 곳에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한 번 들은 얘기를 오래 기억할만한 나이가 된 것 같기에
오래 전 아빠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남이섬내의 유일한 호텔, 정관루.
정관루의 호텔 객실 중 일부는 작가의 방을 만들어 놓아
지난 번 아내와 이 곳에 왔을 때 일부러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그 곳에서 하룻밤 잔 추억이 있다.
각 방에 TV도 일부러 놓지 않고 대신 작가의 작품들을 비치해 놓아
무언가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룻밤을 쉬게 할 수 있도록 해 놓아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남이섬은 특별한 곳이다.
구석 구석이 특이한 장소와 작품들이 가득하고 길을 지나는 이들이 열걸음도 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신기한 것들이 가득하다.
날이 추울 때는 뜨거운 오뎅한 그릇 먹을 만한 공간도 있고,
곳곳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일부러 그 앞에 잠시 머물게 한다.
야외 무대로 보이는 곳에 무언가 파티를 준비하고 있기에 이 추운 날 밖에서 식사를 준비하네 하고
신기함에 기웃거리며 감독하는 이에게 관심을 던졌더니 오늘 직원들 송년회가 있다 한다.
그래서 혹시 사장님도 오시냐 했더니 본인이 사장이란다.
아...강우현 사장님. 나는 갑자기 호들갑스러워졌다.
남이섬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든 장본인 CEO.
사장님이 쓴 책도 읽고 남이섬에 대해 늘 칭찬하고 다닌다며 얘기하고
우리 가족들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그날 송년회에 올 200여명의 직원들에게 도자기로 명패를 만들었다가 옆에 길게 줄을 지어 선
명패들을 보여 준다.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주위가 어두워지니 나무 곳곳에 장식해 놓은 전구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밤에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모습일까?
밖으로 나가는 길에 민속 악기 박물관에 들러 아이들과 함께 외국의 전통악기들도 보고 나와
선착장에서 모닥불을 쬐며, 배를 기다리는 동안 얼어붙은 분수대는 더욱 파란 빛을 발하고
모닥불의 볼똥들은 별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숙소는 남이섬을 나와 주변에 있는 펜션.
집에서도 늘 각방에서 생활하는 우리 가족이기에 긴 긴 밤을 어떻게 보낼까
며칠 전 부터 궁리하다가 작은 게임도구들을 준비했다.
보드게임을 준비했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게임이다.
익숙치 않은 게임이라 어렵게 어렵게 한 게임을 풀어 내고
젠가라는 탑쌓기 게임을 하는데 비록 단순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열광한다.
이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소리 소리 지르고 떠들며
좀체로 우리 가족이 이전에 만들어 내지 못한 즐거움의 상황을 연출하며 겨울밤을 지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
잠자리가 불편해 잠을 자지 못한 아들과 딸이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인다.
방의 커텐을 열어보니 눈에 덮힌 호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식구들 곤히 자는 아침에 옷을 두텁게 껴 입고 혼자 백설의 호수를 산책했다.
공기가 찬 호숫가에 발가벗은 검은 세퍼드 한 마리가 추위에 짖을 기운도 없는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춘천으로 간다.
춘천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개교기념일이면 일부러 나도 하루 직장 휴가를 내고
아이와 둘이만 따로 따로 여행을 했었다.
좀처럼 부모와 대화거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의 세계.
그리고 늘 간섭만 하고 '하지마라'라는 말이 입에 붙은 아빠의 모습.
아들과 둘이 춘천여행을 할 때 나름대로 다짐을 했었다.
오늘은 절대 내 입에서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 말자.
그렇게 긴긴 하루를 같이 지내며 아들을 풀어 주어도 아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릴 때 철길 위에서 놀기에
철길은 올라가는게 아니라고 제지한 것 한 번 뿐.
딸과 같이 여행갈 때는 딸은 그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경춘선열차안에서
그저 가지고 간 만화에 빠져 있어도 그냥 두었다.
그러다가 청량리역을 벗어난 열차가 한참을 달려 아파트 촌을 지나서야 아이는
만화에서 눈을 떼는 것을 보고 제지해서 되기보다는 스스로 관심을 갖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빠인 내가 깨달았다.
아빠한테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딸이
춘천여행을 모두 마치고 청량리역에 도착한 후 나에게 팔장을 껴줄 때에
나는 보람을 느끼고 무척 행복을 느꼈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이번 여행에야 해 주니 아이가 '내가 그랬어?'하고 되묻는다.
(이 이야기는 당시 삼성의 웹진에서 내 이야기를 쓰겠다 하기에 빌려 주었고
표지 내용으로 게재된 것도 보았는데 다시 찾을려니 삼성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다 한다.)
느지막히 일어난 애들과 춘천으로 가기 위해 어젯 밤 남이섬 관광후 달려온 길을 되돌아가는데
주변의 호수가 모두 얼어 붙어 흰 눈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 넓은 호수에 조금씩 녹아가는 부분이 커다란 길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사진에 담고 싶어 차를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춘천가는 길에 강촌의 엘리시안 강촌 스키장에 들러 잠시 백설의 겨울스포츠를 구경하고
소양댐을 찾아가는 길가의 나무들이 모두 눈으로 덮힌 채 얼어 붙은 모습이 끝없이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소양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다리에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다리 양옆의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모습에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마치 겨울날 부엌에서 무쇠솥에 물을 끓이면 조금씩 뜨거워질 때 김이 천천히 오르는 모습이
이 넓은 호수에서 펼쳐진다.
신이 소양호에 불을 때고 있는 것일까?
수면에서 하늘로 날아 오르지 못하는 김이 피어 오른다.
낮은 산은 안개에 뒤덮혀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구비 구비 올라간 소양호도 그런 모습이었다.
수면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비록 춥지만 소양호에서 좀 더 머무르고 싶은데
아내와 딸이 춥다며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나는 따로 나와 경치를 즐긴다.
잠깐의 추위를 피하기 보다는 오래 오래 남을 기억들을 담기 위해
작은 고생은 마다하지 않는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먹어야지.
그것도 제일 잘하는 곳에서..
물어 물어 찾아간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맛있는 곳을 찾는 방법은 사람들 많은 곳을 찾으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닭갈비 골목에 있는 닭갈비집이라도
유독 몇 군데만 손님이 몰려 있다. 어느 집은 아예 손님도 없고..
한 곳에 들어가니 유명인사의 사인이 가득하다
박근혜, 이회창, 손학규 등등..
우린 맛있는 닭갈비와 막국수에 폭 빠져 버렸다.
춘천의 명동을 산책했다.
땅콩구이와 풀빵을 먹어가며...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료 허그를 해주기에 안아도 보고...
이렇게 오랜만에 가져 본 가족여행으로 여유있는 한 해의 마지막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