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시골집에서 하룻밤

carmina 2011. 12. 11. 19:11

 

2011. 12월 둘째주말에..

 

같이 강화 나들길을 걷는 사람 중에 한 분이

자신의 집을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자녀들이 장성하여

빈 방이 있어 게스트하우스로 내 놓았다며

사진을 올려 놓았는데 눈이 확 뜨였다.

 

거기에 피아노까지 있으니 갑자기 여러 생각이 떠 오른다.

합창단 친구들 데리고 가서 밤새 노래했으면 좋겠다.

 

저런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눈을 뜨면 넓은 벌판이 보이고,

마당에는 잔디와 작은 나무 벤치 하나

 

무공해 닭을 키우고 있다는데 어릴 적 사촌형님댁에 놀러가면

마당에 뛰 놀던 닭으로 그 백숙맛을 잊지 못해서, 먹거리도 탐이 났다.

 

같이 갈 파트너를 고르다가 나들길 벗들과의 동행이 여의치 않아

마침 아내가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이라며 어디 가고 싶다기에

매년 년말이면 어느 집에 형제들 모여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

올해는 여기서 지내볼까? 하는 즉석 아이디어

 

급히 형제들에게 전화하여 팀 구성.

 

금요일 조금 일찍 퇴근해 어둠을 뚫고 강화도로 날랐다.

그 시간 강화도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귀경하는 차들로 도로는 거의 주차장을 방불한다.

난 왜 이럴 때 기분이 이리 좋을까?

거꾸로 여행하는 기분은 손실보다는 이득이 더 많다.

 

먼저 도착한 형제들이 무얼 사오라고 부탁하는데

가는 길엔 가게도 문을 닫고 사람들 발길도 없이 모두 정적속에 잠들어 있다.

 

도로에서 벗어나 집을 찾아 들어가는데

주변이 거의 보내지 않는 논둑길이라 더욱 조심.

 

나보다 먼저 도착한 형제들은 오는 길에 대명포구에서 낙지를 사왔다며 이미 한 판 벌이고 있다.

평생을 같이 지내온 형제들 중 일부. 그 중에 한분 밖에 없는 내가 좋아하는 누님.

 

어릴 때는 좁은 집에 부모님과 6남 1녀가 사는 집은 늘 좁았다.

또한 사촌형님까지 결혼전에 아버님이 다니시던 직장에 같이 다니느라

우리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우리 집을 가로 지르는 소방도로가 난다고 집을 이층집으로 새로 짓기 전

우리 집은 초가집에 작은 방 3개. 그 중에 하나는 세를 놓았기에

2개의 방에 모두 모여 살았으니 얼마나 더 좁았을까?

 

잘 때마다 늘 이불 가지고 싸우고, 식사 때는 감히 반찬투정을 할 여유가 없었다.

옷은 대물림 받아야 했고, 큰 형님하고 나는 대학과 전공이 같아 교과서까지 물려 받았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형들이 군대를 가면서 하나 둘씩 집을 떠나고

직장을 잡으며 외지로 나가야 했기에 떨어져 나가고,

결혼을 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살다보니 그 형제들 사이도 조금씩 변해 성격차이로 잘 어울리는 형제도 있고

거의 왕래가 없는 형제도 생길 수 밖에 없는 형편.

 

오늘 이 밤은 모이면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누님과 매형

사촌형님 부부, 홀로 되신 사촌 누님.

 

집 주인에게 미리 백숙 2마리를 부탁해 놓았다.

교편을 잡고 있다는 쥔께서 백숙이 준비되었다고

거실로 들어 서는데 코에 풍기는 구수한 냄새.

 

모두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입맛을 다신다.

사진을 찍어 둘 새도 없이 그만 다리가 무척 큰 닭 두마리가 뼈 밖에 안 남았다.

 

어릴 적 우리 집도 닭을 키웠다.

매일 매일 닭이 알 낳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손에 따끈 따끈한 하얀 달걀을 들고 오는 기분은 무척이나 신났었다.

 

그런데 닭장 속의 그 중 큰 숫닭 한마리가 얼마나 사나운지

달걀을 꺼낼려고 가까이 가면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손을 부리로 마구 쪼아 대는통에

달걀을 꺼내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대개 닭이라는 녀석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면 도망가는 법인데

이 녀석은 사람들에게 대들 정도였으니

이 사나운 녀석을 나중에 처치할 때도 거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녀석도 결국엔 우리 뱃속에 들어가고 아버님의 쐬주안주가 되어 버렸다.

 

밤이 깊어간다.

 

방 한가운데 가스통을 개조한 듯한 난로에서 불길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다.

형제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난 그 중에 살짝 밖으로 나와 밤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한 점 없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과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

도무지 도심속에서 볼 수 없는 별들이 총총히 보석 샹들리에처럼 박혀 있는 하늘에

보름달은 더 유난히 자기의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이 여름날씨라면 그대로 누워 하늘을 마냥 바라보고 싶을 정도의 충동.

 

대학시절 매년 강화도를 자주 찾아왔었다.

교회 행사로 때로는 봉사활동으로..

마니산 중턱에 산장이 하나 있어 그 곳의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 바라보던

밤별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은하수가 보였고 별들이 꼬리를 물고 길게 흐르고 있을 때 나는 어떤 소원을 빌었었던가

 

옆에 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리던 곳

그 곳에서 친한 친구와 여름 방학이 끝날 때 쯤 한적한

이 곳을 찾아와 알탕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 별들을  아직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전에도 가끔 별을 보고 싶어 강화도에 찾아 오곤 했었지.

 

새벽까지 형제들과 놀았는데도 나는 아침 벌판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 졌다.

 

아직도 밤이 캄캄하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데

지난 밤 보았던 별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나의 안부를 묻는다.

 

잘 잤어? 

나는 네가  영원한 소년이고 싶어 하는 걸 잘 알지.

언제나 나는 이 곳에 있어.

힘들 때 나를 찾아 와.

너는 도심 속에서 힘들게 살 때 나를 볼 수 없지만

난 늘 이 곳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어..

걱정하지마..

언젠간 너도 별이 될거야..

그리고 나와 같이 너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웃고 있을거야.

 

멀리 교회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밤별들과 함께 빛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움직인다.

논 길을 걷는데도 랜턴 불빛도 없이 걷는다는건

이 길을 어둠 속에 많이 걸어 다녔을테니

분명 새벽기도 다녀오는 분일 것이다.

 

이렇게 홀로 서 있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자다가 일어나 아침 냉기에 더 서늘함과 몸에 오싹함이 밀려 오지만

이 기분을 더 느끼고 싶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선 잠을 자다가 닭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와

서늘한 냉기에 눈이 떠졌다

우리가 그만 보일러를 켜 놓는 걸 몰랐고 난로에 불도 꺼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보다는 밤새 보이지 않았던 벌판이 눈에 보이니

모두 감탄한다.  좋다! 아주 좋다!

 

오랜 세월동안 잊고 살았던 풍경.

늘상 어느 지역에서 갈 수 있는 콘도나 펜션에 묵으면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왜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곳에 감탄을 하는지..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본질과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아침에 누님이 집에서 빚어 온 만두로 맛있는 떡국을 끓여 주셨다.

주인 집에도 떡국을 나누어 주고

오늘도 여전히 나들길을 떠나는 길벗들이 가까운 4코스에서 떠나기에

잠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와서는 아내와 피아노 반주로 노래도 불렀다.

 

넓은 마당에 나이 든 삽살개가 그새 정이 들었는지 짖지도 않고

젊은 백구만이 가끔 소리 한 번 내본다.

 

닭장을 들어가 보았다. 사료없이 거의 유기농으로 키웠다는 백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낯선 이의 등장에 이리 저리 나를 피해  몰려 다니는 사이

주인이 지난 밤에 낳아 온기가 식어버린 달걀 두개를 손에 쥐어 준다.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이 인상깊은 기와집 추녀 밑 작은 스피커에선

주인이 틀어 놓은 듯한 무소르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키예프의 대문'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난로에 떡국 썰어온 것을 올려 놓아 구워 먹으면서

형제들 모두 다 이구동성으로 이런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나도.. 나도..

 

강화도에 아직도 60년대 말 70년대 초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교동도를

형제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뱃시간을 알아 보았지만 오후에 떠난다기에 포기하고

대신 석모도를 들어가 강화의 시원한 바다풍경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푸근했다.

 

어젯 밤과 오늘 아침 풍경이 눈에 삼삼해 조만간 다시 이 곳을 찾아 와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이 곳에 찾아 와 별과 함께 잠들고

밤새 산 너머 달려와 넓은 벌판에 길게 누인 아침 햇살과 함께 일어나고 싶다.

 

P.S.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누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에 먹을 것 싸들고 또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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