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4코스와 덕산봉수대

carmina 2012. 3. 31. 23:25

 

2012년 3월 말

 

9시 40분 버스를 타야 하는데 오늘 따라 영 부천-고촌-강화 버스 연결이 시원찮다.

9시 38분에 강화터미날에 내려 버스에 오르니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눈에 익은 얼굴들.

 

완연한 봄이라고 생각되는 날씨지만 일기예보는 중부지방에 눈이 올지 모른다 한다.

그러나 아침 하늘은 어제의 부슬비와는 어울리지 않게 맑게 개어 있다.

 

강화를 시내 버스를 타고 가면

적어도 우리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은 창밖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모든 풍경들이 이제 막 1970년 대 초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즈음의 주택들과 동네가게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XX이발소, XX방앗간, XX상회 등등..

그러나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모텔들과 펜션들의 무리들은 나이들면 어쩔 수 없이 갈아껴야 하는

금니빨 같은 것이리라.

 

이렇게 오래된 모습들을 간직한 강화도 이제 공사판이 벌여진 곳이 많다.

선거철이라 특히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이고 여기 저기 선거운동원들의 시끄러운 스피커소리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한다.

 

4코스의 시작점인 허브향기 찻집에 우리들이 우르르 우리 팀들이 몰려들어가

출발 스탬프만 찍기 나오기 미안해 커피를 한 잔 시켰으나 편히 마실 시간이 없으니 물병에 담아달라 했다.

오고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거니까..

 

가릉의 잘 다듬어진 잔디. 늘 그러하듯이 모여서 간단히 준비운동하고 인사소개 하고..

매번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지만 나들길을 몇 번 다니다 보면 그 얼굴들이 익숙한 얼굴들로 변한다.

 

가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작은 유치원은 지난 해만 해도 참 이쁘게 단장되었었는데

오늘은 웬지 지난 해 보다 초라해 보인다. 아이들이 동네를 떠나갔을까?

변해간다.  내 모습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의 것들이 변해간다.

 

가릉을 출발해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가는 길도 변해간다.

여기 저기 길을 파헤쳐져 부드러운 흙들이 엉켜있고,

지난 번  지나갔을 때만 해도 수풀로 우거졌던 길들이 점차 숲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 숲을 자세히 보면 움트는 싹들이 아직 건재하다고 소리치고 있음을 본다.

숲은 다시 모든 것들을 가려 버릴 수 있으리라.

아마 며칠 뒤면 이 산들이 모두 진달래와 철쭉의 보랏빛과 산수유 개나리의 노란 빛이

보기 싫은 것들을 몽땅 감추어 버릴 것이다.

 

정재두선생 묘로 가는 길로 가는데 이상하게 낯선 길.

앞서 가던 새로 온 길벗들이 무심코 길을 따라 가다가 그만 이정표를 놓쳤다 보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모든 일행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제길을 찾았다.

제 길을 찾아 가보니 갈라지는 길의 이정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길이라는 것이 어느 곳이던 가면 되지만 자칫 내가 원하지 않은 길로 가야 하는 인생처럼

무언가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가야 한다.

 

정재두 선생 묘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나누어 먹고 하우 약수터로 가는 길은 위험한 도로공사현장.

차를 피할 곳도 없고 도보도 만들어 지지 않았으니 조심할 수 밖에...

 

하우 약수터에는 이제 비가 왔는데도 약수물이 아주 조금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도로 공사때문에 지하수 물길이 막힌 것 같다.

하우 약수터에는 지난 해 벽화 작업으로 썰렁함을 아름다움으로 채워 놓았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

남들도 나보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내 자신도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들길을 좋아한다.

이 곳에 오면 늘 웬지 모를 자유를 느낀다.

산이 있고, 숲이 있고, 바다가 있고, 맑은 공기가 있고, 길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일까?

 

지난 해 나들길의 초기 이정표인 두루미가 녹이 슬어 보기 흉했는데 깨끗하게 색칠해 놓았다.

그러나 두루미보다 화려한 색깔의 펜션이정표가 내 시야를 강제로 밀어낸다.

 

마을길을 지나는데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집 앞에 앉아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시고 계시기에

모자를 가볍게 들어올리며 인사를 드렸더니 웃으며 받아 주신다.

 

한적하고 밋밋한 마을길을 지나다가 마을 한 켠에 있는 이건창묘로 올라가 잠시 쉬고 내려가니

숲길이 끝났다.

 

긴 아스팔트 길로 목적지인 외포리로 향한다.

건평포구 바닷길을 따라 걷는데 바람이 분다.

그러나 지난 주 매섭게 불던 바람도 오늘은 봄날씨 때문에 조금 누그러졌다.

 

외포리로 향하는 길 아스팔트길이 무척 지루했었고

도로 옆의 풍경도 산을 깍아내는 작업을 하느라 거대한 바위산 뿐이었는데

이번엔 새로운 뚝길을 발굴해 비교적 즐겁게 외포리까지 걸을 수 있었다.

 

원래 외포리에서 점심을 먹고 끝내는 여정이었는데

4코스는 코스가 짧아 희망하는 사람들만 5코스 말미쯤에 있는 덕산봉수대를 찾기로 했다.

 

굿당으로 올라가는 언덕 마을에 지난 번에 이 길을 갈 때도 홀로 앉아 계시던 할머니를 만났었는데

오늘도 그 할머니가 홀로 나와 서 계신다.

누구를 기다리시는걸까? 

풋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처럼 먼나라로 떠난 핑커톤을 기다리고 계시는걸까?

산속에 작은 묘지에 핀 할미꽃들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다

 

5코스를 지나도 봉수대를 지나지는 않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예상하지 않던 높은 산이라 나이드신 분이나 어린아이 두명이 걱정되었는데

아이들이 투정은 했지만 비교적 어렵지 않게 따라 올라왔다.

 

산위에 올라서 보는 강화 앞바다의 거대함이 모두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멀리 앞바다에 석모도로 향하는 페리호가 천천히 방향을 틀고 있는 시야의 저편에

회색구름이 몰려 있다.

오늘 오후에 중부지방에 눈이나 비가 올지 모른다 했는데 비가 올려나..

 

덕산 봉수대.

서울 남산에 있는 봉화대는 완전히 새로 개축해 놓아 이전의 모습찾기가 힘든데

이 곳 봉수대는 이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발아래 시야가 너무 좋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모두 즐겁게 담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외포리로 내려가는 편한 길.

그런데 멀리 보이던 회색구름이 가까이까지 오더니 색깔이 짙어져

비교적 굵은 눈발을 날려 주고 있다.

 

소리를 지르며 내려간다.

이게 자연의 맛이야.

그러나 그렇게 기쁘게 몸으로 맞이했던 눈발들을 나중에 보니

모두 흙비로 변해 있었다.

 

내려와 보니 일행 모두가  마치 먼지빗방울을 맞은 것처럼 상의들이 지저분하게 변해 버렸다.

 

흙비면 어떻고 흑비면 어떠랴.

도심지에서 이렇게 맞았으면 모두들 찡그렸을텐데

아무도 찡그리는 얼굴은 없다.

 

즐거움으로 다같이 파이팅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진 강화길을 걸을 수 있으려나..

먼 길을 되돌아오며 그 날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