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교동도 머르메길

carmina 2012. 3. 24. 23:25

 

2012년 3월 24일

 

교동도 나들길 마친 후 집에 와 등산복 주머니와 겨드랑이 바지 사이와

옷깃 골골이 가득찬 강화도의 거센 바람들을 그대로 접어서 세탁기기에 밀어 넣은 후

샤워를 하니 머리와 얼굴을 스치고 내려온 따뜻한 물이 입에 닿는데

짭짤한 갯벌맛이 느껴진다. 

갯벌 바람이 옷에만 스며든 줄 알았는데 내 머리칼과 피부 주름살의 곳곳에도 스며들었었나보다.

 

올해 1월 첫주 나들길 기행을 끝내고 오면서 내가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었다.

 

지난 2달간 내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고 3월 4째주 토요일에 다시 찾은 나들길.

오늘 이 길을 다시 오기 위해 지난 1달간  퇴근 후 틈틈히 회사 근처의 양재천을 걸으며

체력과 지구력을 준비해 와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긴 거리를 걸으면 내 몸이 견디어 내지 못할까봐

내 몸에게 우선 신호를 보내야만 했고   넌 걷기를 좋아하는 본능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금요일에 비가 많이 왔다.

그러나 토요일은 맑은 날씨라는 예보에 희망을 가졌고

오히려 숲길이 건조해 먼지가 퍽퍽 날리는 것보다는 습기를 코로 느끼며 걷는게

길 걷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교동도에는 두 개의 걷기 코스가 있는데 첫번째가 다음새길이고 두번째 코스는 머르메 길.

머르메길 전체 길이는 17키로이지만 12키로만 걷는다기에 긴 길을 마다하지 않는 나이지만

오랜만에 걷는 내 몸의 상태를 볼 때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강화 창후리에서 떠나는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 절대 지각하면 안되기에 잠도 조금 설쳤다.

다행히 부천에서 고촌을 가고 고촌에서 강화를 가는 버스편이 연결이 잘 되어 여유있게

강화 터미날에 도착하고 오랜만에 반가운 길벗들의 얼굴을 대한다.

 

모두 반가움에 가득찬 미소..

창후리행 버스는 완전히 우리 일행들로 가득 찼다.

지난 해 가을 은행잎이 가로수길을 노랗게 물들였을 때 찾았던 창후리 선착장.

좁은 여객터미날이 나들길 벗들로 빼곡하다.

당초 40명만 신청을 받고 마감했는데 신청절차없이 온 사람들이 많아 50명이 넘었다.

 

배를 타기 위해 터미날을 나오니 강한 바람이 불어친다.

모두들 모자를 꼭 붙잡고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페리호 선실로 들어가니

따뜻한 기운에 쪼그라졌던 피부가 금새 펴짐을 느낀다.

 

배를 따라 오던 갈매기떼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린다.

갈매기도 영역싸움을 하는 것인가?

 

교동도의 월선포구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배는 휘 돌아간다.

아마 만조가 아닐 때는 직선거리의 수심이 얕아 운행이 어려운가보다.

 

교동도 내에는 시내버스가 2대밖에 없어 한 대는 오른편으로 한대는 왼편으로 도는데

오늘은 우리 일행을 위해 두대를 모두 한꺼번에 선착장에서 준비케하고 같은 장소로

운행하는 편의를 베풀어 주었다.

 

강화군청에서 나온 안내자가 오늘의 스를 설명해 주는데

원래 머르메길은 17키로 코스지만 코스 원래 작점에서 출발해

코스를 주행 후 돌아오면  배를 탈 수 있는 시간이 맞지 않아

일부러 버스를 준비해 중간까지 가서 시작하고 올 때도 모두 마친 후

버스를 오라해서 타고와야 한단다.

 

아마 대중교통편으로 이 곳에 오게되면 머르메 길 여행은 힘들 것 같다.

 

교동도 사랑회에서 나온 분이 오늘의 길잡이와 문화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난정 저수지 앞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저수지 뚝에서 출발.

넓고 맑은 난정저수지.

 

그러나 다른 저수지처럼 주변환경은 공사판으로 푸른 빛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긴 저수지 뚝길이 등산복의 복잡한 색깔들로 알록 달록하게 변했다. 

일부러 잔디에 불을 지른건지 혹은 화재인지 모르지만 뚝의 잔디는 모두

검게 타 버렸다.

좁고 멀리 보이는 외길위에 염소똥인지 고라니똥인지 줄지어 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라니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분비물이 길의 한쪽에만 보인다. 왜 그럴까?

 

저수지 끝에 물에서 놀기 귀찮았는지 붕어 한 마리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난정저수지 공사로 인해 수몰된 마을을 위한 기념비가 서 있는데

혹시 그 붕어가 아직 시위중인가?

 

저수지 옆에 차마 베어버리기 아까웠던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재개발지구의 알박기처럼 우뚝 서있다.

 

나무들이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수정산으로 올라가다가

숲길 옆에 있는 오래된 한증막이 시선을 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커다란 무덤같이 생긴 한증막은 남녀 공용인데

여자가 먼저 사용하고 그 후 남자가 사용했단다.

그 안으로 용기있는 길벗한 분이 기어들어간다.

여행에는 저런 호기심이 필요하고

그 호기심으로 남보다 멋진 갑절의 추억을 만들어낸다.

 

잠시 간식을 나누어 먹고 그리 높지 않은 수정산으로 올라가니 북한땅이 저척에 보인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이 곳이 강화도에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수정산 정상에  돌들이 노란 페이트로 T자형으로 크게 표시되어 있는데

이 곳이 헬기 비행한계선이라 한다.

남측 헬기가 이 곳을 기준으로 넘어가면 북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설명이 없으면 온갖 억측을 다 꾸며 냈을텐데 이래서 때론 가이드가 필요하다.

 

수정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멋진 오솔길.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어제 비가 내려 낙엽이나 돌들이 젖었는지 길벗 한 분이 넘어지니

늘 길잡이로 앞장서던 분이 급히 폐 나무들로 지팡이 몇 개를 만들어 낸다.

어떤 이는 틈틈히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 가며 청소를 하기도 하고...

 

길이 끝나는 곳에 긴 철조망이 보인다.

얼마전 남방한계선인 이 곳에 민항기가 지나가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했다 한다.

원래 이 곳은 민간인이 다닐 수 없는 곳인데 나들길을 위해 특별히 개방을 했다 한다.

멀리 북녁땅이 보인다.

 

불과 지척의 좁은 바다 하나를 두고 이렇게 큰 이념의 폭이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 폭으로 안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과 경제 손실을 유발했던가?

  

형제라고 얘기하지만 전혀 형제같지 않은 남과 북.

비록 어찌어찌하여 통일이 된다해도 우린 아마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울 것이다.

 

뚝방길을 걸어가는데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길게 줄을 지어 걸어가는데 억새풀들도 흔들리고 우리 걸음도 흔들린다.

 

산을 넘어 올 때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회색구름이 밀려들더니

눈발이 흩날린다. 모두들 갑자기 내린 눈에 손을 벌리며 기뻐한다.

아침에 비가 잠깐 내리고 잠시 햇빛이 맑더니 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진다.  

4계절 기후가 불과 몇 시간만에 모두 펼쳐지는 장관.

 

오늘 점심은 교동도의 동산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준비해 주었다.

이 곳에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는 처음이라

식당도 마땅한 곳이 없어 마을회관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이런 대규모 식사를 준비했단다.

 

반찬이 모두 봄색깔의 토종먹거리들

냉이와 달래와 고구마묵과, 쪽파, 부침개, 순무와 김치 순두부..

모두 맛있다며 반찬들을 계속 주문해 먹으니 나중엔 반찬이 동나버렸다.

 

이런 맛에 나들길을 다닌다.

혼자 다닐 때 불가능한 것들이 무리지어 다니므로 가능케 된다.

민통선을 걷는 것이나 버스 편의와 이런 음식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오니 텅빈 포구가 있다.

죽산포구라 하는데 이 전에는 이 곳에 무척 큰 포구였단다.

배들이 많이 정박해 그 돛대들이 하도 많이 대나무숲같이 보인다 해서

죽산포구라 했는데 이젠 썰렁한 선착장과 골조만 남은 매표소가 이름만 간직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아까 수정산에서 보이는 교동도 주위의 간척지들도 모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고 그 곳에서 수확한 곡식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는데

당시에 장비도 변변히 없어 모두 인력으로 공사하던 시대에 대규모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다니

이 곳 강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다시 바람이 거센 억새밭 사이를 걸어간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걸어가기 힘들 정도이다.

오늘은 완전히 바람을 모질게 맞는 날이다.

만약에 이 길을 추운 겨울에 왔다면 무척이나 고생했을 것 같다.

 

긴 뚝과 나란히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

그 사이로 길벗들이 나란히 줄지어 간다.

 

어느 농가옆으로 해서 수정산을 다시 넘어 가는데  

이 곳은 사유지인데 농가 주인이 특별히 허락해줘 길을 만들었단다

원래 농가에 사슴등 고가의 동물들을 사육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젠 그 자리에 닭과 오리만 키우고 버섯을 키운다.

 

바람이 잠시 딴 눈을 파는 작은 숲속 길목에서 우리끼리 여흥을 즐긴다.

오랜만에 길 벗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 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이..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길잡이 목련화야

새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누군가 가곡 '명태'를 힘차게 부르고

누군가 고운 목소리로 은희가 불렀던 '꽃반지끼고'를 3절까지 불렀다.

 

수정산을 다시 넘어가는 길은 비교적 낮은 언덕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언덕을 넘으니 바로 도로가 나오고 잠시 후 버스 2대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하니 바람에 너무 거세어 창후리에서 배 한 척이 떠나지 못했단다.

다시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모두 맥주로 입안의 바람을 씻어내고 정담의 시간을 나눈다.

 

바람불어 기분 좋은 날이란 오늘 같은 날을 말하는 것인가?

 

혹시나 오랜만에 걷는 긴 길이라 내 몸의 상태가 어떨까 했지만

전혀 걱정할 바가 못되었다.

이젠 내 신체의 커다란 부분 하나를 떼어내기 전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 같다.

 

오랜만에 모인 벗들과 헤어지기 아쉽던 차에

먼저 수고해 주던 길잡이가 우리 몇 명을 초대해

맛있는 밴댕이 무침과 회, 구이 그리고 돼지창자 수육, 밑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으로 밤 늦게까지 나들길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로 해후를 즐겼다.

 

이 길이 참 좋다

길벗들이 좋고,

가꾸지 않은 자연들과 어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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