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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를 위한 샘물 호스피스 봉사

carmina 2014. 1. 5. 23:37

 

 

2014년 1월

 

2년전 암에 걸리고 초기로 판정난 후 수술을 무사히 마쳤을 때

제일 먼저 한 생각이 내가 이전에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했기에

하나님이 나를 기특하게 여겨 큰 일을 어렵지 않게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과

다음에 시간있으면 필히 호스피스 봉사를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수술 후 친구가족들과 재능봉사를 위해 여기 저기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위해 공연도 하고 작은 교회를 위해서도 공연하고

내가 갔던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도 공연하기로 했었는데

그만 아이들 학기 스케쥴이 맞지 않아 포기한 것이 무척 아쉬웠었다.

 

2013년 12월 말 회사의 경영이 안좋아 정년퇴직후 연장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은

별일 없는 한 퇴직을 원칙으로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퇴직해야만 했다.

 

그리고 새해 첫날을 쉰 후 제일 처음 한 일이 호스피스 봉사를 위해

용인 근처의 백암에 있는 샘물호스피스 병원을 찾았다. 

마침 부천에서 백암가는 버스가 있기에 아침 일찍 백암행 버스에 오르고

백암에서는 병원셔틀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타고 병원 도착.


병원이 몇 년전에 왔을 때 보다 많이 증축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말기암환자와 에이즈환자만 수용하고 있다.

말기암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2달의 시한부생명을 가진 자만 수용하고

환자의 암치료는 하지 않으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조치만 하지만

상태가 좋아 2달이상을 넘길 때에는 대기인원이 많아 어쩔 수 없이 퇴원조치한다.

그리고 병원은 거의 자원봉사와 기부금으로 이루어지기에

환자 1명당 병실료, 약품료 식사비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보호자 가족의 식사비까지 포함하여13000원의 대금으로 가능하다.

보호자가 없으면 자원봉사자가 대신하고, 간단한 장례절차까지 병원이 부담한다.

국내에 이렇게 운영되는 호스피스 병원이 있을까?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이 곳에 근무하는 친분있는 의사선생님에게 미리 간다고 

얘기를 해 놓아서인지 봉사자용 복장으로 갈아입자마자 내가 간호할 환자를 알려준다.

몇 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정식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지않은 사람은

병실에 들어갈 수 없다 하여 주로 청소하는 일 식사나르는 일등을 하다가

몇 번 가니 병실에 들어가 환자를 간호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환자간호를 맡았다.


내가 간 병실에는 남자 환자 3명 중 가운데 분이 보호자 없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다.

마침 그 환자옆에 간호사가 있어 정식인사도 못하고 가볍게 눈 인사만 했지만

환자는 내게 시선도 주지 않고 눈을 감아 버린다.


머리맡에 부착되어 있는 이름밑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이가 나와 같은 나이 아닌가?

양 옆에는 63살, 77살인데 이 분 나이가 제일 젊다.

만약 내가 2년전에 내 암을 미리 발견못했더라면 아마 이 자리에

내가 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감사하던지..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 있는 환자와는 달리 한 분은 거의 금방이라도

숨을 멈출 것 같이 심한 가래 끓는 소리를 내가며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얼굴만 검었을 뿐이지 거의 가벼운 증상의 환자같이 보였다.


두 분 다 보호자가 옆에서 간호하는데 상태가 심한 분은 키가 작은 선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상태가 좋은 분은 농촌에서 오래 산 듯한 모습의 할머니는 얼굴에 오랜 병간호로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내 환자는 거의 낮에도 비몽사몽으로 눈만 감고 계시다가 

간호사가 와야 겨우 눈을 떳다가 상태를 확인하고 간호사가 나가면 다시 눈을 감았다.

이 곳에서는 가능한 환자나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묻지 않는게 원칙이다.

봉사자는 단지 봉사만 하면 그 뿐..

그 분의 병명이나 병력에 대해서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담만 줄 뿐이다.

어차피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물어서 또 말해서 무엇하리.


이 곳에서는 오전과 저녁에 모두 모여 예배를 본다.

병원 직원, 의사, 간호사, 보호자, 환자, 봉사자들 모두 병실의 홀에서 예배를 보고

그 예배는 각 병실에서도 모니터롤 볼 수 있다.

움직이기 힘든 이와 보호자는 병실에서 같이 예배를 본다.


예배의 시작은 환자나 보호자가 신청한 찬송을 기도제목과 함께 읽어주고 부르고 

봉사를 하러 온 교회단체들이 찬양하며, 자주 유명 연주단체나 성악가들이 와서 예배 시 공연을 한다.

우리 가족도 모두 이 곳에 와서 예배시간에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한참 찬양을 부르다가 갑자기 목사님이 내게 앞에 나와서 찬양해 주기를 원하기에

준비도 없었지만 앞으로 나가서 급히 불러야 할 곡을 정했다

첫 찬양을 하기에 앞서 내가 이 곳에 와서 봉사하고 싶었던 사연을 소개하는데

갑자기 감성이 젖어서 내 목이 잠긴다.  

잠시 안정을 찾은 후에 찬양했더니 큰 박수와 앵콜을 청한다.

당황했지만 내 노래 실력을 뽐내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얼른 찬양집을 뒤적여

반주자에게 알려 주고 찬양하는데 1절 부르고 난 후 2절을 부르는데 목사님이 다 같이 부르자고 하여

찬양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진다. 절대 안 흘릴려고 했는데....

결국 2 절은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예배 후 나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은혜로왔다고 이구동성으로 인사한다.

괜히 부끄러웠다. 제대로 준비안한 찬양인데...


찬양을 드리는 중에 다른 방에 있는 어느 환자가 하늘나라로 가고 

간단히 시신을 감싼 후 예배드리는 홀 옆을 지나가는데 

일부러 얼굴을 덮지 않아서인지 백발 머리칼의 평온한 얼굴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목사님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침대에 실려 병실을 나가는 망자를 위해

천국찬양을 부른다. 여기서는 모두 죽음을 준비하고 있기에 이런 죽음은

단지 하늘나라로 가는 행복한 여행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점심은 현미밥과 흰 쌀밥 그리고 몇 가지의 반찬이 나오는데 후 먹는 밥은 

반찬의 종류와 관계없이 꿀맛이다.


환자는 오후 내내 침대에만 누워 있기에 물을 마시려고 일어섰을 때 

잠시 로비로 나가 바람 쐬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권했더니

어지럽다며 거부하다가 나갔다가 상태 안좋으면 얼른 들어오자고 다시 권했더니

마지못해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로비를 천천히 걸으며 내 얘기를 해 드렸다. 

눈 덮힌 밖의 풍경이 보이는 곳에 휠체어를 고정시켜 놓고 옆에서 말없이 기다리는데

병원 직원이 내게 커피 대접하겠다며 본인 사무실로 불러 한참을 얘기하고

밖으로 다시 나와 환자에게 밖의 풍경 잘 보았느냐며 물었더니 안경이 없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짜증 비슷하게 대꾸하신다. 

그제서야 그것까지 신경 못 쓴 내가 미안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서둘러 환자를 병실로 모시고 환자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을 먹고 다시 예배를 보고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환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기에

간호사에게 얘기하고 봉사자들 숙소가 있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새벽에 방이 시끄러워진다. 알고 보니 아침에 모든 환자들에게 기저귀를 채워 준단다.

나도 지난 번 봉사시 남자 환자들에게 기저귀를 채워 본 적이 있지만 이 작업은 요령이 필요하다.

만약 무턱대고 할려면 환자도 불편하고 하는 사람도 힘든 법이다.


아직 환자들과 보호자가 환자와 같이 잠자고 있는 어두운 병실에는 견디기 힘든 환자만의 

조용한 신음소리만 들린다. 홀의 구석에도 모포를 덮고 자고 있는 봉사자도 보인다.

실내의 난방이 잘 되어 있어 어디서나 잠을 잘 수 가 있다.


이른 시간에 제일 바쁜 곳은 식당이다.

7시부터 배식시간이니 주방에 일하는 분들은 이 곳에서 하룻밤을 자며 봉사한다.

밤이라고 해서 환자들도 모두 잠들지는 않으니 깨어 있는 사람들은 간호사들과

야간 봉사자들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와 일을 해야 하는 봉사자들이다.

간밤에는 또 어느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을까?


밖에 나와 의자에 앉아 잠시 졸고 있는데 어느 분이 내게 와서 말을 건넨다.

야간봉사자라며 여기 금요일마다 봉사와서 무조건 닥치는대로 일한지 몇 년 된단다.

매일 적게는 2~3분 많으면 4~5명 언젠가는 1월 1일에 11분이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한다.


여기는 환자는 거의 모두 삶의 막바지에 있는 분들이라 죽음에 대해 보호자도 봉사자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예배를 볼 때도 목사님의 설교는 주로 천국의 나라를 설교제목으로 하고 그 곳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 곳에 가야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설교를 하시기에 

홀에 나와 보는 환자분도 당연히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일반 병원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무척이나 가족들이 기분나빠 할텐데

이 곳은 목사님의 그런 설교에 대해 오히려 밝은 얼굴로 아멘을 한다.

 

아침에 내가 맡은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편히 주무셨느냐고 물었더니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단다. 그럴리가...어제 주무시는 것 보고 올라가
나도 쉬었는데...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오늘 맞이한 아침은 어제 밤 돌아가신 분이 그토록
기다렸던 아침이라고...

 

조금 마음이 풀어지신 것 같기에 좋아하는 찬송 있으면 제가
불러드리겠다고 했더니 기억나는 찬송가 가사 중 하나를 말씀하시는데
얼른 제목이 생각이 안나 옆 자리의 보호자와 그 찬송을 급히 찾아
나지막히 불러드렸다. 그걸 본 옆에 할아버지께서도 찬송을 하나
뒤적이시기에 그분께도 찬송을 불러 드렸다.

 

아침 예배을 호출하는 방송이 있어 혹시 예배를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더니
어제 휠체어를 타고 밖에 잠시 나가 있었던 것이 좋았는지 아니면
내가 찬송 부른 것이 좋았는지 예배를 보러 나가겠다고 하셔서
내심 무척 기분좋았다. 홀에서 예배 드리는 그 분이 무릎이 추울 것 같아
간호사에게 담요를 하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하고..
이 분은 그날 저녁 예배도 보러 나오셨다.

오전 예배 저녁 예배를 보시던 목사님이 모두 그 분이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며 놀라며 기뻐하셨다.


 

환자보호가 어려운 청소년들은 외부 청소 혹은 우편물 발송등의 사무보조를 돕는다.

누구든지 오면 할 일이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봉사를 하는 분들이 거의 모두 기독교인들인데

주일이나 휴일은 봉사하는 사람이 적어 직원들이 힘들어 한단다.

또한 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 쯤에는 학생들이 봉사 점수를 얻기 위해

부모님 손에 이끌려 형식적인 봉사를 하기도 한다.


이곳 호스피스 병원은 네팔에 호스피스 병원을 하나 세웠기에 간호사중에 네팔인들이 

2명 근무한다. 한국말을 아주 조금 이해하지만 다른 한국 간호사와 대화는 어려운 것 같다.

그 들도 모두 기독교인이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성경을 읽는다.

평소 얘기상대가 없다가 내가 영어로 대화해 주니 오랜만에 말문이 터진 듯

내가 다가가면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인다.

식사때도 네팔사람끼리만 둘이 마주 앉아 먹기에 일부러 내가 가서 찾아가 이야기하니

내가있는 병실에 찾아와 네팔을 이야기한다. 그걸 보니 보호자가 그 간호사보고 

오랜만에 실컷 얘기해서 좋겠다며 놀린다.


금요일 저녁에는 통증이 심각한 옆의 환자의 아들이 오니 환자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딸까지 찾고 있다. 이 환자는 가끔 꿈에 예수님이 보인다고 한다.

아내는 그 때문에 무척 안심하고 있다. 남편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매일 말도 거의 하지도 못하는 병상의 남편에게 묻는다.

혹시 자다가 꿈속에 예수님 보았느냐고...

아마 힘들어하는 남편의 임종을 기다리는 것 같다.

주님을 본다면 남편은 틀림없이 천국갈것이라고 믿기때문이다.


토요일 이 병원에 자원봉사자 신년하례식이 있다며

나보고 행사참관하라고 권했지만 

난 이제 겨우 몇 번 자원봉사 한 것 가지고 생색내기 싫어서

오전에 나오는 셔틀버스편으로 백암시외버스 터미널로 나오기 전에

내가 간호한 분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백암에서 부천오는 버스는 자주 있지 않아 남부터미널로 오는 버스를 탔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 입석이 가능한지 손님을 가득 태운다.

내 옆 통로에 양지에서 탑승한 나이드신 아주머니가 사람들 틈에 끼어서 힘들어 하는데

그 앞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은 창밖을 쳐다 보며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창가에 앉아 있던 내가 자리를 양보하니 아주머니가 남부터미널에서 

내리면서 내 소매를 잡으며 음료수라도 한 잔 사드리겠다하기에 캔커피 마시고 있다며

사양했다. 3일을 봉사하고 오는 내게 겨우 40분 양보하는 것은 아주 작은 봉사일 뿐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합창단원의 원로에게 '내겐 이런 일이 맞는다'라고 말씀드렸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하는 일. 이 곳이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하면

그 친절을 친절로 보상받을 수 있다.

직장은 친절하게 하면 무성의 혹은 헛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가로 되돌아 온다. 

오래전 부터 마음에 빚진 일을 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물론 1회성으로 끝나면 안되겠지만, 일단은 다시 봉사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좋다

직장 다닐 때 한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성남에 있는 성당으로 노숙자 밥퍼 주는 

봉사를 다닐 때 좋았었는데 부서를 옮긴 뒤로 그 행사도 없어져 버려 아쉬었었다.


남이 있어야 내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워야 향기로운 법이다.


내겐...

친절의 DNA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