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나의 삶의 스승

carmina 2014. 3. 14. 16:23


6남1녀의 우리집 형제들.


좁은 방에 차곡 차곡 누우면 방안 가득차서
자다가 오줌마려 요강을 찾으려면 한참 더듬어야 합니다.

나는 남자형제 중 4째.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는 다른 형제들과 다름없었습니다.
항상 만화를 좋아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과 같았고요.

5학년때 여름방학 때 뒷집에 살던 고등학생 형이
나와 내 동생 2명을 데리고 교회라는 곳을 처음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 집에서 동인천역을 갈려면 넘어야 하는 화도고개에 있는
화도교회에 처음 간 여름성경학교.

처음 배운 성경이야기가 꿈많은 요셉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며 내게 꿈이 생겼습니다.
나도 요셉처럼 되리라. 그 때부터 나는 꿈돌이가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 쯤에는 같이 다니던 동생들은 모두 교회다니기를
포기하고 혼자서만 다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만 하는 시기인지라 부모님의
공부압력은 대단했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이 교회에 나오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중학교 올라갔을 때 다른 애들은 모두 찬송가를 들고 오는데

나는 없어 무척이나 부끄러웠는데 당시 돈을 벌던 누님이

찬송가를 사 주었을 때 기쁨은 얼마나 좋던지요.

그래서 나이들어 누님의 환갑잔치를 제가 해 드렸지요.

 

그래도 맘씨 좋던 이웃집 형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서부터는
공부에 대한 압력, 교회 여자애들하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한게
생각한 부모님과 형들의 핍박은 어린 시절 나를 무척이나
슬프게 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학생예배에 갈려면 집을 나설 때 성경찬송가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러면 형들에게 들키니까 성경찬송가를 교회가는 골목의 굴뚝 밑을 파서

종이에 쌓아 넣어두고는 교회갈 때 꺼내쓰고 집에 올 때 넣어 두곤 했는데

그만 어느 날 비가 와 급히 거기로 뛰어가서 파보니 책들의 겉장이 모두

비에 젖어 떨어져 나갔을 때 얼마나 울었던지요..

대학시절에는 성경책이 아궁이 불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교회가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 안에 노래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도 찾았고

살면서 감사하는 생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삶의 모습도 가졌습니다. 


특히 그 시절 내가 무척이나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한 분이 있었죠.
이름도 대통령이름하고 같은 박정희 장로님. 그러나 여자였습니다.
감리교이기에 여자도 장로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주일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셨을 때
나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분의 다정의 목소리만 들어도
우리 어머니의 말씀보다 더 좋았지요.

 

어느 날 주일 예배시에 박장로님의 기도시간이 되었을 때
성가대석에서 그분을 바라보고는 나는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장로님이 늘 똑같은 기도를 하시는데
그 분은 기도문을 두루마리에 써가지고 오셔서
천천히 두루마리를 아래로 내려가며 기도문을 낭독하셨지요.

 

고등학교 대학생활 동안에도 줄곧 그 교회를 다니면서
박장로님의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서
저절로 풍겨나오는 기쁨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 다음에
크면 저렇게 되리라 하고 다짐했습니다.

 

결혼 후 그 교회를 떠나왔지만 내 아이들에게 늘
박장로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매스컴이라는 것을 접한 후 부터 그 분의 또 다른 선행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께서 의사로서 평안의원을 경영하셨기에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사셨는데
취미로 그린 수채화를 팔아 시각장애자들의 점자도서관 만드는데
기부하시는 사업을 하셨는데 그 사업은 그 분의 아버지때부터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지요.

 

또한 3명의 딸과 아들을 양육하면서 육아일기를 그림일기로
쓴 것이 화제가 되어 방송을 타는 것도 보았고요.
이 일기는 후에 국가기록원의 기록물로 보관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장수의 비결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오신 모습을 보았죠.

그 프로그램에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상생활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습니다.

 

역시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그 분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수채화 전시를 많이 하셨는데 마침 최근에 가까운 인사동에서
수채화 전시를 하신다기에 내 책을 가지고 혹시 그 분을 뵐 수 있을까 했는데
연세가 92세의 연로하신 분이라 가서 그림만 보고 올려 했는데
그만 그림 한 점에 내 필이 꽂혔습니다.

 

거의 모든 그림이 꽃그림 수채화이고 그림 제목도 하나같이
행복, 사랑, 감사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중 유독 한 점,
눈오는 교회 주변의 언덕을 그린 그림이 내가 젊은 시절 늘
언덕을 뛰어 올라가던 장로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언덕은 내가 늘 교회가기 위해 다니던 언덕이었고
그림의 윗부분에 조금 나온 교회의 종탑. 그 종탑을 구상하신
내 어릴 적 존경하는 목사님의 모습도 거기 있었고요.

한 참을 바라보다 그 그림을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생전 관광지에서 길거리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외에는
산적이 없는 내가 그 그림을 보면 장로님의 마음이 평생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집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