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내일로 기차여행

carmina 2014. 1. 11. 20:46



2014년 1월


평소부터 하고 싶었던 것.

기차로 우리나라를 다 돌아보고 싶다.

누구나 갖고 싶은 꿈.

그러나 비용보다 시간이 문제다.

내게 돈도 시간도 열정도 건강도 있다.

그러니 떠나야 한다.


코레일 홈피를 검색해 보니 내일로 패스라는 이름으로 

3일 자유이용권, 5일 7일권이 있다.

한 사람이 3일 이용하는 하나로패스, 둘이 이용하는 패스, 가족이 이용하는 패스 등

종류가 다양하다.

5일을 생각해 보니 날짜가 안 맞아 3일권을 구입했다.

3일권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 이용 가격 56,000원. 

기차 2번만 타면 본전을 뽑는다.

단지 좌석은 지정되지 않는다. 빈자리 찾아 앉고 만약에 좌석없으면 입석이다.

예정으로는 호남선으로 목포, 경전선으로  부산 동해남부선으로 포항 그리고 강릉 

이후 청량리로 잡아 보았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당연히 내가 가고자 하는 날짜로 샀다고 했는데

그만 요일을 잘못 계산해 내가 떠나야 하는 날짜에 나는 화요일 강화나들길 걷기를 하고

오후에 돌아와 티켓을 보니 그만 내 표가 화요일부터 시작되어 있다. 낭패.. 낭패..


혹시나 떠나는 날짜 기준이 아니고 떠나는 시간기준으로 72시간인지 확인해 보았는데 아니란다.

할 수 없이 화요일 밤에 밤열차를 타기로 했다. 


부랴 사랴 짐을 꾸려 용산에서 밤 11시 10분 새마을호를 타고

좌석번호가 없는 5호칸을 탔다. 자유여행객을 위한 칸이다.

영등포에서 타도 되는데 혹시 용산에서 타는 사람에게 전원이 있는 자리를 뺏길까봐

용산을 시발점으로 했다.


화요일 밤의 기차는 한산하다.

5호칸을 찾아 급히 전원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보내 맨 앞 자리 양 옆에 있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먼저 타서 자리를 잡고는 노트북 전원을 연결했다.

난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미드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연결했다.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5호칸에 탄 사람은 겨우 4명.

자유이용 티켓을 가지고 자유이용칸에 앉아 떠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밤열차라 창밖의 경치는 모두 무시하고, 미드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

와이파이가 안되는 아쉬움은 있지만 충분히 밤새 즐길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다.


긴 긴 밤을 지내고 목포에 내릴 때 쯤 창문에 빗방울이 스쳐 부딪히고 있다.

기차역 안내원에게 목포지도를 받고 혹시 인근에 찜질방을 물었으나 근처에 없다기에

어쩔 수 없이 가까운 목포항으로 택시를 타고 바닷가 모텔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잠시 눈을 붙였다. 비만 안왔다면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을텐데..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우선 아침을 선원들이 많이 찾는 식당에서 먹고 싶어

두리번 거리며 식당가를 지나가는데 어릴 적 수없이 보아오던 어촌의 풍경이 보인다.

생선을 담은 나무 상자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여기 저기 낡은 그물들,

생선냄새가 코에 자극적으로 풍겨 온다. 좋다. 이 비릿한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어느 식당에 사람들이 그룹으로 있어 들어가 백반을 주문하니

나온 반찬의 갯수가 무려 15가지 종류.

새우를 넣은 미역국을 비롯해 병어돔이라는 생선, 젓갈류, 양념게장, 갈치말린 것 등등..

병어돔이 신기해 맛을 물었더니 병어맛이라기에 먹어 보니 과연 모양이 조금 다를 뿐

병어를 먹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새벽 부두일을 한 듯한 사람들이 작업복차림으로 들어와 식사를 

하고 부지런히 나간다.


목포여객터미널.

멀리서 터미널 뒤로 보이는 카페리의 높은 선미로 볼때 그 바닷가의 앞이 궁금했다.

터미널 내부로 들어가니 실내 공간이 영등포의 커다란 백화점보다 더 넓은 것 같다.

거의 인적없는 터미널. 2층에 올라가 아침 용변을 본 뒤 갤러리가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가니

4층이 옥상이다. 건물 아래로 보이는 부두에 많은 카페리들이 정박되어 있다.

이 곳에서 서해안의 섬들과 제주도를 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중국을 가는 국제선도 보인다.


몇 년 전 북구유럽 여행시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갈 때 탔던 커대한 크류즈선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배를 타고 멀리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을 해보고도 싶다.


오른 쪽에는 카페리호들 왼쪽엔 어선들이 부두에 가득하다. 가슴이 두근댄다.

먼 곳에서 큰 어선 한 척이 엔진소리를 내며 부두와 평행으로 다가오고 있다.

바다로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밤새 고기를 잡고 들어오는 것인가?


비만 안 오면 오래 오래 그 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우산이 있어 사진 찍기도 불편하여

2층으로 내려와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주인은 내가 들어갈 때부터 커피 한 잔 다 마시고 나갈 때까지 열심히 전화만 붙들고

내가 들어도 개의치 않는 듯 조금 민망한 이야기룰 누군가와 인생상담을 하고 있다. 

그걸 보면서 장사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쉬웠다.


우산이 없으면 지도를 펴 들고 내가 갈 목적지들을 대충 선택하여 찾아가 보겠지만

그것조차 불편하여 무작정 갓바위쪽으로 걷기로 했다.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어선이 정박되어 있는 바닷가를 걷는 것이 좋아 

건너편에 어물 시장통에도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도 누르고 어선에 가까이 가서

배 안의 물건들을 눈여겨 보고 걸었다.


어부의 생활터전인 작은 어선. 거친 파도와 투쟁하고, 강한 팔뚝으로 끌어 당기는

그물들이 그려진다. 이 추운 날에 장갑도 안끼고 어구들을 만지고 있는 어부의 삶이

참 존경스럽다.


이제껏 펜과 컴퓨터 그리고 종이와만 지내던 내게 저런 인생이 주어진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때로는 한 참을 그 어부를 보며 멈추어 서 있기도 했다.


선착장의 끝에 쯤에 오른 편 도로를 따라 가니 길가에는 각종 어선 수리와 

배에 필요한 장비들과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그 한 켠 작은 집의 대문에 말리려고 내 놓은 고기 3마리가 발가벗기우고

흰 살을 드러낸 채 매달려 있다. 


어릴 적에는 바다가 가까와 동네 집집마다 이렇게 생선을 널어 말렸다.

시골 아이들이 참외서리 수박서리할 때 우리들은 생선 서리를 했다.

친구들 끼리 남의 집 앞에 혹은 담위에 줄을 지어 많이 널려 있는 고기들 중 

서너마리를 훔쳐서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갈대가 우거진 둑의 끝 쯤에 갈매기와 까치와 청둥오리가 어우러져 놀고 있다.

늘 강화의 넓은 갯벌을 보다가 작은 공간에 갯벌이 있는 것을 보니 작은 놀이터에 온 것 같다.

 

한참을 걸어가도 길이 끝날 기색이 안 보인다.

그러나 평소 걷는 거리에 비하면 그다지 많이 걸은 편은 아니다

길가면서 이것 저것 목포를 스캔한다. 

날씨가 좋다면 여기 저기 골목 골목 누비고 싶지만 오늘은

그냥 무턱대고 가보자. 


삼학도로 가는 길을 지나 한참을 가니 차가 뜸한 길을 들어서자 큰 건물들이 보인다.

문화예술회관, 목포문학관, 남농기념관, 목포자연사박물관 그리고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바다의 도시에 왔으니 해양박물관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람거의 없는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간 잠시도 쉬지 않고 걸어왔기에 들어가자 마자 쉬고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10시경 된 것 같은데 방문자보다 안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입장료를 물어보니 무료라 하며 1층부터 구경하라기에 우선 앉아 쉴 곳을 물었더니

한 층 내려가란다. 커다란 배 모형이 있는 곳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미 식은 캔커피를 한 잔 마시고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다. 난 밤열차를 타고 왔으니 졸아도 되. 

살다보면 졸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남들은 알까?


한참을 앉은 채로 졸다가 지하 1층에 목포오거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먼저 들어가본다.

목포가 자랑하는 유명인사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60년대 70년대 목포의 가장 번화했던 오거리를 거쳐간 인물들.

가수 이난영, 조미미 그리고 남진.

그 들의 LP앨범과 기록들과 쓰던 용품들과 기록글들...

이런 역사의 물건들에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이난영, 

누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조미미

형님이 좋아하시던 남진


나무 판대기로 얼기설기 만든 아이스께끼 통. 

이 통은 어린 시절 가난한 아이들의 아르바이트였다.

삼학소주. 목포의 대표적인 소주로 경남지역의 금복주 강원지역의 경월

서울 경기 지역의 진로와 더불어 이 브랜드는 누구나 다 알던 명물이다.


1층 전시관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몇 년 전 목포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낸 700년전 침몰된 상선의 조각을 이용하여

배를 재생하고 있다. 골격을 만들어 그 사이에 조각들을 퍼즐같이 맞추어 놓은 속칭 신안선은

거의 밑바닥의 3분의 1정도만 남아 있다.


이전에 노르웨이에서 박물관에서 거대한 함선의 원형을 바다에서 건져내어 

원형 그대로 만든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런 박물관이 있음이 자랑스럽다.

 

배를 발굴부터 시작해서 전시까지의 과정들 동영상을 포함하여 전시하고

배에서 건져낸 각종 도자기들의 원형을 그대로 보관해 두었다.

특이한 것은 배의 밑바닥에 자단목이라는 나무를 보관해 두었다.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랬다하고 엽전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한다.


유치원 아이들이 구경왔다가 지나치는 내게 모두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모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머지층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부슬비가 내린다.

15번버스를 타면 목포역에 간다하기에 황량한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자주 있는 노선이 아닌지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목포역에 내려

오늘 하루 숙박하기 위해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인 목포1935를 찾아 나섰다.


시내의 중심가 골목에 위치한 목포1935는 목포의 유명한 한약방을 개조한

한옥 게스트 하우스다. 체크인이 오후 4시부터라기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잠시 배낭을 맡기고 점심을 위해 근처의 유명 음식점을 소개해 달라 했더니 독천식당을 알려준다.


독천식당. 입구에서부터 유명한 식당임을 알 수 있다.

식당 앞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들. 실내로 들어서니 넓은 홀과 방에 점심시간임에도

손님들이 가득 차 있다. 혼자 먹으니 낙지비빔밥을 시켰는데 과연 살아있는 낙지로 요리해서인지

맛이 여느 비빔밥과 사뭇 다르다.


이젠 목포의 자랑인 유달산을 찾아 가 보자.

목포 시내에 노른자같이 자리잡은 유달산에 오르면 목포가 전부 보인단다.

목포 여객터미널로 다시 와서 이번엔 오른편 해안가로 길을 걸었다.


때론 바닷가로 때론 마을길을 걸으며 오래 전과 그다지 변함없는 집들을 보고

넓은 바다로 떠나는 어선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목포대교를 벗삼아 길을 것는다.


가끔 지나가는 산책하는 분에게 유달산 가는 길을 물으니 길을 알려주기에 

언덕을 올라가는데 언덕위에 개 두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으르렁대지는 않지만 내가 우산대를 뽑으려고 하니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천천히 언덕을 내려와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에게 다른 길을 물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 길로 올라가는 듯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가파른 언덕길 옆에 집들은 몇 십년동안 이 길을 지킨 것 같다.

도심지 뒷골목 답지 않게 집 앞에 참나무를 세워 버섯을 키우는 집도 있고

다 떨어진 석류나무에 작은 석류하나가 달랑 달랑 매달려 있는 집 그리고

한겨울에 핀다는 동백꽃이 회색빛의 거리에 빨갛게 빛나고 있다.


고개에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다.

비에 젖어 축축한 낙엽을 밟으며, 젖은 나무계단을 따라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가끔 내려다 보는 바다는 한폭의 동양화다. 


약 30분 정도 올라가니 유달산 정자에 누군가 2014년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해서 글을 써 놓았다. 내게도 2014년 좋은 일만 있길...


정자에서 조금 올라가니 망원경이 있는 너럭바위에 젊은이 3명이 사진을 찍고 있다.

수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단다. 멋지고 뜨거운 젊음의 정열이다.


정자 옆 마당바위에서 전경의 이름들을 표시해 놓았는데 생소한 이름의 작은 섬들이 

목포대교들 주위로 흩어져 있다.


이제 목포역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 각종 유달산 명소들이 있다.

유선각에 이르니 엄마와 아들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고 있다.

아들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는 듯 엄마가 억지로 데려 온 것 같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높은 곳에 오니 좋지? 하고 묻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시큰둥.


내려가는 길에 있는 커다란 대포는 일반인이 돈을 내면 발포할 수 있도록 했는데

과연 여기서 진짜 포를 쏘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가수 이난영의 노래. 누군가 카셋트를 들고 올라오는 것일까?

노래소리를 따라 가보니 이난영의 노래비가 있고 그 안에서 노래가 계속 흘러 나온다.

이순신 장군상도 있고, 한참을 내려 오니 노적봉이라고 쓴 커다란 바위도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보이는 목포시내의 모습이 늘 서울의 큰 도시만 보아오던 내게

작은 소도시를 보는 것 같아 정겹게 느껴진다.


언덕을 한 참 내려오니 어느 덧 목포역에 도착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니 아직 4시가 안되었기에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커피샵에서 졸기는 생전 처음이네.


누군가 나를 깨우면서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하겠단다.

3개의 2층 침대가 있는 깨끗한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다가 인기척이 있어

눈을 떠보니 누군가 내 침대의 2층에 누워 있다.


전북대 다니는 대학 4학년 학생. 배타고 제주도로 가기 위해 이 곳에 왔단다.

저녁으로 회가 어떠냐 했더니 아직 학생이라 그다지 여유가 없다기에 회는 내가 살테니

자네는 회를 떠서 가지고 가는 식당에서 양념값을 내라 했더니 좋단다.


택시를 타고 북항으로 갔다.

횟집이 불야성인데 우린 회를 떠서 파는 곳으로 가자고 요청했다.

목포에서는 민어회를 먹어야 하는데 민어철이 아니라 우럭과 전복, 멍게 등을 주문했는데

나중에 가지고 온 해산물들을 보니 얼마나 다른 해산물 종류와 함께 푸짐하게 가지고 왔는지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맛있는 회를 즐기고 게스트하우스에 근처에 오니

숙소 주변 젊음의 거리에 멋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를 온갖 등불로 밝힌 루미나리에가 거리 거리에 장식되어 있어 

밤거리가 황홀해 둘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유난히 불을 밝힌 가게가 있기에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5대빵집중 하나인 목포의 유명한 코롬방 빵집이다.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그 시간에 빵집엔 사람들이 많고 종류도 다양하기에

나도 내일 기차안에서 먹기 위해 몇 개 사 두었다.   


우리가 밖에 나갔던 사이에 또 다른 청년이 한 명 들어와 있다.

막 전역을 한 짧은 머리의 청년은 내일 해남을 간다 한다.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밤 늦게까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 들의

장래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아침에 냉장고 안에 손님 한 명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토스트와 

우유와 커피를 즐기고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목포역으로 걸어갔다.


목포에서 부산의 부전으로 갈아타지 않고 가는 열차는 무궁화호 하나 밖에 없다.

오전 9시 10분경 출발하여 부전에 오후 4시에 도착한다. 무려 7시간.

지난 번 태백산 열차 탄 이래 만만치 않은 거리다.

그것도 각 역을 모두 정차하는 무궁화로...

그러나 이 것도 즐거움이라 생각하자.


기차역에는 승객들 외에 추위를 피해 들어온 노인들이 많다.

매표데스크에는 목포 도착했을 때 본 매표직원이 있기에 

여유가 있는 칸이 어디인지 물었더니 1호 칸에 42개 좌석이 비어 있으니 

그 곳에 가면 앉아 갈 수 있다 한다.


이 열차는 3개칸이 있는데 두 칸은 승객용이고 하나는 휴게실이 있어 자판기와 화장실이 있다.

전원 플러그가 있는 곳에 자리 잡고 편하게 자리를 잡고 목포를 떠나는데 눈발이 날린다.

눈이나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뜸한 객실. 기차가 북으로 향하고 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내 앞의 의자를 돌려 놓고 편하게 발을 올려 놓았다.

세상이 내 것이다.


무궁화 열차는 낮은 등급의 열차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다른 상류급 열차가 지나가야 한다면 멈추어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내겐 잠시 멈추어 기다리는 시간이 참 편한 시간이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편한 시간이고 싶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한적한 시골풍경이 참 좋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평화로워 보인다.

화려한 원색의 빛을 잃은 대지가 더 푸근해 보인다.


마을마다 인적은 없고 방학중일텐데 아이들의 움직임도 없다.

열차는 일로역을 지나 함평에 도착하는데 오래 전 나비 축제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 기억이 있어 역이 눈에 익었다.

함평을 지나 다음 역이 다시(多侍)라는 역인데 이름을 보아 무슨 역사가 있는 듯하다.


호남선에서 경전선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갑자기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빈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자기 자리라며 비켜 달란다. 다른 자리에 앉았는데 화순 쯤에선가 또 다른 이가

자리를 내놓으란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자리가 널널하다.

 

어느 자리에 젊은 커플이 손을 꼭 잡고 자고 있다. 여행이란 이렇게

사람을 끈끈하게 만든다. 때론 웃고 떠들고 때론 아무말 없어도

슬며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맺어 주는 것이 여행이다.

 

무척이나 많은 역을 지나치지만 몇 개 알려진 역 이외에는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정원이 잘 다듬어진 역사에도 인적이 없고

하루에 겨우 몇 편 오가는 기차역이 너무 잘 지어진 느낌도 있다.

 

이양역에선가.. 기차가 잠시 멈춘다. 다른 열차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단다.

느린 열차. 양보해 주는 열차. 무궁화호의 매력이다. 천천히...

 

하늘에 솜털구름이 송글 송글 맺혀 있다. 목포지역에서 보던 산위의

눈도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영남으로 갈 수록 눈은 보이지 않는다.

 

보성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더니 벌교역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순천역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내려 버렸다.

그러나 그 들이 내린 자리에 다 마신 캔음료, 과자봉지는 그대로

두고 내리는 것이 안타깝다. 기차는 누가 와서 금방 치우는 것이 아니고

종착역까지는 계속 같은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탈텐데

그런 배려를 잊고 사는 젊은이들.

 

광양을 지나며 혹시 광양제철소가 보일까 기웃거려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 열차가 하루에 몇 차례 운행한다면 가끔 중간에 내려 여기저기

둘러 보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못되는것이 아쉽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억새들의 군무를 볼 뿐이다.

그리고 어쩌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탄 우편배달부 아저씨들..

 

전라남도를 4시간 달려서야 경상도땅인 하동으로 들어섰다.

오래 전 내 성씨의 고장을 찾아 이 곳에 온 기억이 있다.

하동을 지나며 섬진강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기차노선은

섬진강하고는 거리가 있는 듯 작은 마을만 보였다. 

 

이름도 생소한 낯설은 역이름들. 옥곡, 진상, 양보, 횡천 복천 등등

진주에 도착하니 역의 모습이 멋진 한옥으로 참 아름다웠다.

 

한참 조용하던 기차가 마산을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이 몰려 오기 시작한다.

창원을 지나고 경부선이 연결되는 삼랑진에서부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전라도를 다닐 때보다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기차 속도가 빨라진 것 같고,

사람들의 체취와 사투리가 마구 들려온다.

 

오전 9시경에 떠난 기차가 오후 4시경에야 부전역에 도착하여 역사를 나오니

비록 처음 만나지만 페이스북으로 낯이 익은 유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글에 늘 '좋아요'를 클릭하고 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

트레킹을 좋아하여 서로의 글에 관심도 많고 그 분이 떠났던 산티아고

까미노길을 내가 간절히 원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어디를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고급승용차를 가지고 오셨기에 난 푹신한 의자에 앉아 가고 싶은 곳들을

말씀해 드렸다. 광안대교를 보고 싶었고 벡스코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벡스코는 행사가 없을 때는 볼 것이 없다고 해서 차로 주로

바닷가를 드라이브했다. 울산 간절곶까지 다녀오려 하다가

송정으로가는 달맞이고개에서 바라보는 동백섬의 야경에 취해,

멀리 대마도까지 보이는 끝없는 바다의 날씨에 취해

문탠로드 산책하면서 보낸 행복한 시간에 취해,

대장 기변항까지 드라이브하며 해안선의 마을에 취해

구비 구비 부산을 헤집고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부산. 그 부산을 이렇게 편하게 두루 두루 둘러보기는 처음이다.

해운대 근처에서 돼지국밥을 같이 먹고 나는 따로 해운대 바닷가로 나왔다.

 

불행하게도 해운대 바닷가업중인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되어 있고 모래를 모두 둑 근처로 퍼 올려 긴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전철를 타고 남포동으로 나갔다. 역시 남포동은 밤늦게까지 시끄러웠다.

오래전에 본 남포동이 아니었다. 남포동을 걷다가 부산오면 꼭 가보는 곳

자갈치시장을 걸어다녔다. 회는 못 먹어도 꼼장어가 먹고 싶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줄지은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 집에 들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꼼장어를 연탄불에 구워 먹었다.

역시 맛있다. 물을 하도 많이 만져서 손이 퉁퉁 붓고 손톱이 빠질 것 같은

입술 붉은 자갈치 아지매의 힘든 삶이 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심야열차를 기다리는데 부산에서 직장 때문에 홀로 사는 대학 친구가

가면서 먹으라고 간식을 싸가지고 술이 얼근해서 역으로 찾아왔다.

 

올해 정년이었는데 계약직으로 더 근무하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래.  우리 열심히 하자.

 

새벽에 영등포역에 내리니 노숙자들이 구석 구석에서 새벽잠을 자고 있다.

여행을 다니니 내가 모르는 삶이 보인다.

그러나 그 삶이 남의 나라 같지는 않다.

 

그 새벽에 부천까지 오는 버스가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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