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8. 26
사흘 연휴의 시작은 첫째 휴일 날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다.
첫째 휴일 전날의 저녁부터 시작을 해야 남보다 더 휴일을 즐길 수 있다.
낮에 회사에서 전화로 오늘 저녁에 어디 간다고 이야기해 놓지 않았고 모든 것은 일상생활 그대로 진행을 한다. 늘 퇴근하는 시간에 퇴근하고 애들 늦게 집에서 하는 바이올린 레슨을 끝내니 밤 9시 반. 온 가족에게 지금부터 빨리 옷 갈아 입으라고 시키니 아빠가 이상하다며 못 이긴 듯 옷을 갈아 입는다. 아내도 물론이고..
바나 코펠 라면 몇 개, 치약 칫솔, 비상 약 카메라를 그냥 순서 없이 가방에 챙겨 넣고 가스 전기 제대로 안전하게 되어있나만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차에 타고서 어디로 가느냐 묻는 아내의 물음에 통일 전망대나 갈까 하고... 애들이 반기를 든다. 그 곳은 학교에서 몇 번 갔었다고 다른데 가잔다.
좌우간 외곽으로 빠지는 큰 길로 차를 달리다가 이정표에 문득 보이는 지명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한다. 우리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석모도를 가자. 내가 그토록 좋아하든 갯벌을 볼 수 있는 곳, 그 곳을 보며 커피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 배를 탈 수 있는 곳, 지난 번 친구들 여러 가족이 갈려고 했다가 차가 한없이 밀리는 바람에 배를 못 타 포기했던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밤이라 배를 못탈테니 선착장 앞에서 하루 밤 자고 내일 아침 에 배타고 들어 갔다가 내일 이른 오후에 다른 사람 들어올 때 쯤 나오기로 한다.
유흥지에 가는데 차가 밀리는 것처럼 싫은 게 없다. 그러한 아류가 되기 싫어서..
그래서 어디 차를 가지고 갈 때도 만약 많이 밀리는 시간이나 날 같으면 진즉 포기해 버리는 버릇이 있다.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출발하니 9시 50분. 이 시간 다른 이들은 뉴스 듣고 연속극을 즐기고 있으리라. 그 때문에 길도 무척이나 한가하다. 막히는 도로의 대명사인 강화가는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비록 주위에 보이는 건 푸른 나무가 아니고 여러가지 색갈의 꽃들이 아니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현대문명의 꽃이라 생각하고 즐겨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러가지 불빛으로 연인들을 유혹하는 모텔의 불빛과 불을 환하게 켜 놓은 갈비집들이 아직도 영업에 한창이다.
뒷 좌석에서 쉴새 없이 재잘대던 애들의 템포가 점점 리타르단도로 변해가고 이중창에서 독창으로 변해가다가 급기야는 허밍코러스로 변한다. 이젠 아내가 곡중솔로로 나서 쉴새없이 노래하느라 홀로 음악을 즐기는 관객은 즐겁기만 하다.
그간 공사하느라 무척이나 막혔던 길이 이젠 쭉 뻗은 길로 변해 마치 새로 나온 차의 선전처럼 달리는 길이 조용하고 야간 드라이브로는 최적이다. 차는 한시간도 안되어 강화다리 앞에 들어선다. 무미건조하게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이 이미 모든 차들의 외형만 보고도 수상한지 아닌지 달통해있는 것처럼 우리 차를 손짓하나로 통과시킨다. 과거엔 이다리길이 1차선이라 헌병이 앞에서 이쪽 저쪽을 통제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두 차선이 모두 차들의 꼬리로 가득 차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숙박비가 비싸다는 아내의 말을 뿌리치고 바다내음 풍기는 곳에서 잠을 자고파 계속 차를 보문사 가는 길로 달려간다. 어차피 길이 좋아 20분내에 갈 수 있는 곳. 차는 금방 선착장 가까운 곳에 닿고 보기에 그럴듯한 모텔이 있어 숙박비를 물으니 타당한 가격이다. 잠자고 있는 애들은 억지로 일으켜 자리에 눕히고는 둘이 바다앞으로 나간다. 선착장 앞에는 어디나 다 그렇듯이 횟집으로 즐비하다. 이곳은 특이하게 모든 집에 벤뎅이 회가 주 메뉴로 올라있다. 노천 횟집에는 소라와 벤뎅이회를 즐기는 연인들이 소주 한잔 앞에 놓고 밤을 즐기고 있고 우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어느 횟집 이층으로 올라가 다른 곳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벤뎅이회만 한 접시를 시킨다.
벤뎅이라는 녀석이 성질이 급해 바다에서 나오기만 하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싱싱하게 살아있는 회는 없지만 그래도 막잡은듯이 살이 하얗다. 벤뎅이는 젖갈도 좋지만 겨울에 김장할때 배추에 넣어 같이 김치를 담그면 그 맛이 일품이다. 겨울이 깊으면 벤뎅이는 뼈가 전혀 없는 생선으로 김치속에 남아 있어 그것만 빼 먹던 추억도 있고 겨울이 다 지날때 쯤이면 벤뎅이가 녹아 김치에 맛이 스며들어 봄에 먹는 김치의 미각을 더해준다.
아내랑 같이 앉아있지만 술을 거의 못하는 사람인지라 소주 한병은 완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평소 혼자서 먹으면 많이 먹어야 소주 반병인데 안주가 좋아서 인지 한병은 금새 동난다. 더 마실 주량도 아니기에 회파티가 끝나가는데 조개탕을 내 놓는다. 바지락으로 끓인 조개탕이 무척 시원하고 맛있지만 아무래도 예 먹던 조개탕이 아니다. 우선 조개 색갈이 틀리고 알이 굵기에 아줌마보고 이거 이 곳 조개가 아니라고 말하니 그럴리가 없다면서 조개탕속의 조개를 들여다 본다. 그러면서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이 조개는 동해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그러면 그렇지... 40년 동안 이 곳 서해안 조개를 먹어 왔는데 내가 그 생김생김을 모를리가 있나..
술이 거나하게 취해 밤바닷가로 나간다. 바다는 아무 소리가 없다. 배들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늘 들리던 파도소리도 희미하고 검은 갯벌에 하얀 돌들만이 눈에 보인다. 멀리서 정박해있는 배들이 불빛들로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가끔 등대에서 비치는 듯한 긴 빛이 한 바퀴 휘 돌고 가고 저편에 보이는 검게 보이는 석모도의 조그만 불빛위로 바로 별빛이 줄을 잇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보이는 수 많은 별들. .. 이 것을 보기위해 늘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면 늘 한 밤중에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도심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는 무척이나 싫다. 이 밤별들을 못 보고 그 다음날 다시 도시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언가 헛걸음질을 한 것같은 기분이라....
그래서 택시비가 아깝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앉아있는 곳이 콘크리트 뚝이라 바닥이 차갑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고개를 들고 별을 오래 보는 것도 불편해서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린다. 아 이렇게 편한 걸...
나와 평행으로 누워있는 하늘을 본다. 그리고 반짝이는 레이스로 가득한 하늘의 이불을 덮고 난 잠을 자고 싶다. 오늘은 웬지 북두칠성을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하늘의 별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보아도 국자모양의 별이 보이지가 않으니 웬일일까..
찾다가 찾다가 포기하고 갑자기 유성이 흐르는 것 같이 눈을 크게 뜨지만 금방 잘 못 보았음을 알았다. 한 마리 벌레가 하늘을 날아가는것이 내 눈에 흐르는 별로 보였다.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은하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잔 별들이 무리지어 가득 줄지어 있는데 저게 은하수인가? 아직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서울의 근교가 있는가 하고 스스로의 눈을 의심해본다.
차가운 등의 촉감을 홀로 부르는 노래에 취해 잊어버리고 있다가 들어가자는 아내의 소리에 차가움을 느끼고는 기분좋은 밤 일부러 비척거리며 애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든다.
지난 밤 술을 먹고 늦게 잠을 들었는데도 눈을 뜨니 직장을 다닌 오랜 습관인지라 정확하게 회사에 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뜨거운 물 본김에 아들과 함께 목욕하고 아내와 딸이 탕에 들어가 있는 사이 아들의 손을 잡고 모텔을 나와 바로 앞의 선착장으로 간다.
아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아들에게 바다냄새를 맡게 해 주고 싶다.
아들에게 갈매기를 보여 주고 싶다.
아들에게 뱃사람들을 보여주고 싶다.
어느 가족일행이 우리와 같은 곳에서 아침을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있기에 우리도 인근 가게에서 컵라면을 사들고 바다의 짠 냄새를 반찬삼아 한 그릇을 금방 비워버렸다. 아들이 라면도 같이 먹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틀리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한 그릇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오늘은 같이 있는 사람이 맘에 드나보다.
가족이 있어서인지 조금 늦게 모텔을 나오니 벌써 차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승선을 위한 손님들의 명단을 적을 종이를 나누어 받고 한 참을 기다리다 차를 후진하여 배에 차를 싣고는 배는 저 앞에 보이는 섬을 향해 천천히 뱃머리를 돌린다.
중학교시절 인천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이곳에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배로 두세시간을 달려 왔는데 이젠 차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직접 들어가니 감회가 새롭다. 이 강화바다에서 여름에 망둥어를 잡아 낚시 바늘에서 빼는 즉시 이빨로 망둥어의 꼬리와 머리를 잘라내고 가지고 온 고추장에 그대로 찍어먹던 대학시절의 추억들을 되살리며 뱃사람과 이얘기 저얘기를 하다가 그는 금방 뱃머리를 내릴 태세를 한다.
석모도 선착장에는 언제인가 잡지에서 본 산까치라는 카페이름이 반갑다. 그리고 동화에 나올 듯한 멋진 집이 바다에 바로 인접해 있다. 그리고 주차장 앞에는 오징어젖 창란젖 벤뎅이젖등 각종 젓갈을 파는 아줌마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큰 병에 하나 가득담아 만원에 팔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인삼뿌리들... 이 곳 강화가 인삼으로 유명한 것이 새삼 생각난다. 그 곁에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런 것도 먹는 것이냐 하는 나무재라고 부르는 나물. 이 나물은 바다의 갯벌에서 나는 나물인데 멀리서 보면 빨간 밭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은 풀들이다. 양념을 맛있게하여 먹으면 바다내음이 풍기는 이 나물은 도시에서는 구경하기가 힘들다.
차를 타고 선착장을 벗어나 이정표를 보니 좌로 가는 길도 보문사고 우로 가는 길도 보문사이다. 그러니까 섬을 한 바퀴 돌아가는 길이구나. 좌측길부터 돌기로 하고 포장 잘 된길을 달리니 오른 쪽의 집들은 거의 민박을 하고 있음을 팻말로 알린다.
정겨워 보이는 시골 국민학교를 바로 지나 조금 달리다 그냥 돌아만 가는 길이 서운해 동네로 접어드는 길로 무조건 핸들을 꺽어 바로 앞을 보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그늘이 있어 금방 마을 노인네들을 위한 장소임을 알수 있다. 이미 다른 차가 하나 주차되어 있지만 자리가 너무 좋아보여 미리 와 있는 사람의 낭만에 조금 방해가 됨을 무릅쓰고 내차를 그 옆에 주차시킨다. 커다란 느티나무 밑은 세멘트로 잘 정돈되어 있고 주위를 콘크리트로 조금 높게 해 놓아 걸터 앉아있게 해 놓았다. 그곳에서 시원함을 느낄새도 없이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이곳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하면서 그 세멘트 바닥에 장기판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몇개 놀이가 되는 듯한 사각형들. 후후... 장판이 바둑 장기판으로 새겨 놓은 것은 보았어도 세멘트에다 직접 이렇게 해 놓은 것은 처음보네..
차에서 돗자리를 깔기가 무섭게 아들은 논으로 치 닫는다. 그리고 다시 와서는 빈병하나 있으면 달라고 하더니 다시 논으로 뛰어간다. 소금쟁이가 많다고... 아들이 소금쟁이을 아는가? 애들에게 논과 밭의 다른 점을 설명해 준다. 아들은 모든게 신기하기만 하다. 논길도 조심조심 걸어가 보고 눈둑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느티나무밑에 앉아 최근 유행하는 만화영화의 노래를 무용과 함께 이쁘게 부르는 딸의 재롱을 본다. 가족이 둘러 앉아 개발바닥 소발바닥 게임을 한다.
근처에 양봉을 하는 농가가 있는지 벌통이 나란히 있어 애들에게 벌이 꿀을 모으는 것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이대로 오랫동안 나무밑에서 낮잠을 자고 싶지만 오후에 다른 계획이 있는 관계로 빨리 이 섬을 벗어나야 하기에 아쉬운 맘을 안고 돗자리를 거두어 다시 차를 달리니 간간이 바다가 보이다가 어느 순간 보문사에 닿는다. 가파른 길을 애들의 손을 잡고 올라가니 시원한 약수와 경내에 커다란 바위의 밑을 파내어 넓은 공간에 불상을 모셔 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아들은 왜 우리가 이곳에 와야 하는지 자꾸 궁금해 한다. 우리는 교회다니는데 왜 이런곳에 들르는지...
아들에게 남의 종교도 귀중함을 넌지시 알린다. 내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보문사 입구에는 인삼 막걸리집이 즐비하고 조금씩 따라주며 손님을 유혹한다. 막 담은 막걸리 한잔이 무척 시원하고 조금이나마 목구멍을 얼큰하게 한다. 사가고 싶지만 같이 마주 앉아 즐길 사람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차가 보문사를 바로 지나 차와 식사를 하는 운취가 있어 보이는 집이 얼핏 지나갔지만 그런 집이 또 있으려니 하고 그냥 차를 몰다가 보니 얼마가지 않아 금방 섬내를 일주해 버렸다. 아까 그 집을 지나친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배가 출출한지라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선착장의 이층식당에 올라가 아내가 좋아하는 꽃게탕으로 즐겼다. 싱싱한 게의 가득찬 겟살과 알들이 군침을 삼키게 한다. 곁들인 나무재 나물과 오징어젖갈만 있어도 밥 한그릇을 다 비울 것 같다. 애들과 같이 있어 둘이 운취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한잔 하지 못함이 아쉽다.
선착장에 도착하는 배는 계속 차과 대형 버스도 토해 육지에 내려 놓는다. 긴 거리를 후진하여 차를 배안에 들여 놓아야 하기에 운전이 서툰 여성운전자가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저렇게 어렵게 후진하다 바다에 빠지면 어떡하지? 아직은 섬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금 여유있게 배를 타고 석모도를 빠져 나온다. 내 이곳에 다시 오리라.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부천에서 한 시간만에 올 수 있는 곳. 다음에 여유가 있다면 섬안에서 민박을 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의 반대 차선에는 이제 강화도로 들어가는 차들로 십여키로가 대형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언젠가 내가 저렇게 밀리는 길에 있다가 배를 놓치고 그냥 서울로 되돌아 온 기억이 있어 혼자 미소지었다.
몇 주동안 바다내음을 못 맡으면 미칠것 같은 나는 오늘 또 몇 주일의 숙제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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