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2014년 메시아 싱어롱 참가

carmina 2014. 12. 13. 22:53

 

 

2014. 12. 11

 

가을이 오면 우선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를 열어 12월 공연 스케쥴을 본다

혹시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메시아 연주가 계획되어 있는지..

 

1년에 한 번 꺼내 보는 이 공연 전용 메시아 악보를 꺼내어

지난 해 공연을 거울 삼아 태그를 다시 붙이고

예당 조명이 어두운 탓에 테너부분에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도 해 놓았다.

가사가 조금씩 바뀐 부분을 찾아 다시 펜으로 수정해 놓고

점심시간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작은 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본다. 

 

올해로 9번째로 열리는 메시아 싱어롱.

남들은 다 같이 부르는 노래를 무슨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느냐며 의아해 한다.

그러나 내겐 인생의 즐거움 게임중 하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게임.

음악에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임.

다른 사람과 어울려야 더 즐거운 게임.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어 서로 웃어가며 즐기는 게임.

 

게임을 위해 정장을 했다.

멋진 칼라 나비넥타이도 매고, 구두도 반짝하게 닦고..

올해도 혹시 혼자 가나 했는데

마침 오래 전 같이 활동했던 삼성한우리 합창단의 멤버가

같이 갈 사람을 페북에서 찾고 있기에

내가 간다 했더니 좋아라 한다.

 

예술의 전당에 사람들이 무더기로 밀려 들어온다.

주로 교인들인 듯, 반갑게 웃으며 들어온다.

그 중 지난 해 보았던 낯모르는 사람도 눈에 보인다.

 

바흐솔리스텐서울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같이 하는데

문득 튜닝을 할 때 보니 바이올린 활이 바로크 음악용 활이 아니다

첼로도 그렇고..

오늘 공연이 그다지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바로크 음악의 따스함을 즐길 수 있는 고악기를 사용하지 않은건가?

잘 모르지만 혼자 그렇게 추측해 본다.

 

헨델의 메시아

영원한 크리스마스용 레퍼터리다.

물론 부활절에도 많이 부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더 캐롤 분위기가 난다.

 

박치용 지휘자와 솔리스트들인 소프라노 박지현, 앨토 류현수

테너 최상호 그리고 베이스는 오래전 부터 잘 알던 음악친구 박흥우씨다.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나올 때 부터 미소가 지어진다.

자. 이제 시작이다.

예전처럼 테너의 아리아가 끝나고 지휘자가 합창 시작할 때

뒤로 돌아서서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리 발성연습을 시킨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일어 섰는데

소프라노 앨토는 얼핏 보기에도 100명이 넘는 것 같은데

테너 베이스는 각각 약 30명 정도 수준이다.

그러니 지휘자가 남자들에겐 맘껏 크게 소리내라고 권한다.

 

9회째 공연인데 모두 참석한 사람에게 상이라도 주어야겠다며

농담을 하며 기분을 풀어 놓고

1부 예언과 탄생의 첫 곡을 부른다. '주의 영광'. 뭐 이곡 정도야...

그다지 어려운 곡은 아니라 연습없이 진행한다.

그런데 객석의 소프라노 첫소리가 거의 프로급들이다.

 지휘자가 이 곡을 끝내고 객석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몇 명은

무대로 올라와 모테트합창단하고 같이 할 정도라며 농을 한다.

 

두번째 곡과 세번째 곡 

'깨끗게 하시리라', '우리를 위해 한아기 나셨다' 

메리스마가 들어가는 이곡은 곡이 어려워 일반 교회에서는

하기 어려운 곡인데 이 곳에는 각 교회의 베테랑들인지

무난히 해 내고 있다. 역시 여기는 올 만한 사람만 온다.

 

조금 쉬운 네번째 곡에서는 합창의 소리가 커지다가

다시 어려운 5번째 곡에서는 매끈하게 흘러가지 않지만

내 뒤에서 유난히 잘하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 노래하는데 안정이 된다.

전방 커다란 스크린에 곡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

알려 주니 지휘자가 아무 말이 없어도 곡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다.

 

잠시 인터미션 시간에 누가 뒤에서 인사를 하는데

합창을 좋아하여 국내 합창사이트를 종합하여 만든 웹사이트를 만든

대학후배였다. 역시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만난다.

 

2부 수난곡들이 이어진다.

합창단만 공연했다면 충분한 감정으로 푹 빠져 들었을텐데

준비되지 않은 합창이니 수난의 느낌은 들지 않지만

노래를 부르는 모든 이가 다 같은 마음으로 수난을 겪는 주님의

마음으로 노래했겠지.

 

'진실로 진실로 주는 우리 괴로움을 받으셨네.' 는 모테트 합창단만

부르게 되어 있는데 소프라노와 테너의 객석에서도 누군가 따라 부르고 있다.

'할렐루야'는 일부러 그 곡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따라 할 수 있도록

그 악보만 별도로 판매하여 다 같이 합창을 유도한다.

잘 몰라도 그냥 할렐루야만 따라 하라는 지휘자의 배려가 고맙다.

 

메시아의 대미곡인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영창 후에

합창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첫 박자의 큰 쉼표가 내 가슴을 멎게 한다.

힘차게 고음을 터트린다. 그리고는...다시 처절한 마음..

그러나..그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기쁨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맞다며 끝없는 아멘으로 화답하는 합창.

 

마지막 페이지의 아멘에서 숨을 몰아 쉬었다가

두번의 아멘으로 헨델의 메시아를 함축해 버린다.

 

내 생애...늘 이런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누가 보던 말던 나만의 멋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혼자 자연을 걸으며 숲과 나무와 이야기하고

혼자 만물을 위해 노래하고 찬양하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