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합창단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

carmina 2015. 12. 1. 11:13

 

 

2014. 11. 22

 

공연 시작을 알리는 KBS홀의 공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난 뒤 

아내의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가 객석을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공연 전에 1층 객석을 다 채운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그야말로 대박 공연이다.

 

무반주 합창. Water Night 을 부르니 객석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한 곡이 거의 피아니시모로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 질 때도 관객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박수도 치지 않았다.

 

올해 합창단 창단 40주년이라 해서

특별히 현재 활동 중인 합창단원 중 최고 고참을 이사장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특별히 40주년 행사를 주관할 위원회까지 만들고

마침 여름에 KBS에서 주관한 광복 70주년 기념 대한민국 합창 대축제에

참가하게 되어 여름 내내 바쁜 일정도 보냈다.

 

지난 해 부터 우리 합창단의 지휘봉을 맡은 지휘자님이

년초부터 공연레퍼터리를 확정지어 모두 연습에 매진하였으나

나는 회사에서 맡은 바쁜 업무 관계로 연습에 참석을 못하는 날이 많아 내심 많이 불안했다.

 

이번 공연에는 첫곡부터 특이한 합창음악이 선곡되었다.

현재 미국의 잘나가는 작곡가 에릭 휘태커 (Eric Whitacker) 가 작곡한 Virual Chorus.

기발한 아이디어로 합창음악을 만들었는데

본인이 작곡한 곡을 MR로 만들고 스스로 지휘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전세계의 노래 좀 하고픈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에 맞는

파트를 택해 음악을 들어가며 지휘에 맞추어 혼자 자기 성부를 불렀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스스로 만든 영상을 보내 온  참가자가 몇 천 명.

그 몇 천명을 영상으로 조합해 거대한 합창음악을 만들었다.

영화 데몰리션맨에서 2030년 실베스타 스탤론과 산드라 블록이

사이버 섹스를 하는 영상과 같은 합창공연을 만들어냈다.

음악은 거의 환상적이고 거의 모든 참여자가 가성 팔셋토로 노래를 부른다.

 

지휘자는 1년 내내 이 곡을 우리에게 가성으로 노래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가성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최소 8부합창 최대 14부합창으로 이어지는 이 곡은

음 하나 조차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고난도 합창이었다.

1년 내내 음 플랫 되지 말라고 강조와 강조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 민속합창인 프랑스, 남아공 줄루족 민요, 사모아 노래와

익히 듣던 멕시코 민요.

민요는 모두 외워야 한다 해서 올해 합창단 창단 40주년 기념행사를

이용하여 중창대회를 가졌다. 각 조마다 의무적으로 민속합창 하나는 연습했다.

각 팀 기발한 아이디어로 준비했고, 경쟁했다.

남아공 민요를 부른 우리 조가 우승했고,

그렇게 각 조가 준비한 민속합창은 정기 연주회 레퍼터리에 그대로 올려 놓았다.

이제까지 이런 시도가 없었는데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지난 28년간 연주하면서 늘 내가 바라는 테마곡 선정에 대한 레퍼터리 선정도

올해는 마음에 들었다. 올해는 비발디의 미사곡 '글로리아' 

고음악답게 쳄발로와 고음악 전문 연주자들이 같이 하고

합창단에서 지휘자 부인이 악장 그리고 단원의 자녀들이 일조했다.

그간 우리 합창단에서 발표한 미사곡들은 모두 유명한 곡들이었다.

모짜르트 대관식미사, 하이든의 하모니미사, 등등..

줄리어드를 나온 앨토의 소리가 참 좋았고

합창단 자녀 중 이제 막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소프라노의 소리가 참 맑았다.

 

인터미션 후

중창대회때 준비했던 곡을 연주했다.

화려한 의상들, 그리고 춤과 노래들

1부의 경건한 음악을 듣던 관객들이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맨발로 나와 젬베를 치며 노래를 하고, 직접 만든 줄루 족 모자와 의상들을 입고

사모아 원주민처럼 허리에 스카프를 둘렀으며 멕시코인들이 쓰는 큰 솜브렐로 모자를 쓰고

힘차게 민요를 불렀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백미인

우리 합창단의 위촉곡 '내 노래의 사계절'

우리 단원 중 서정적인 글을 많이 쓰는 박문현 단원이 시를 쓰고

2년전 우리 합창단을 지휘하였던 김준범씨가 작곡하였다.

시가 너무 좋아 여기 옮겨 본다.

 

1. 봄 / 햇살만으로

 

   창가에 내리는 햇살만으로 

   충만한 아침 느낄 수 있다면

   그 어디나 봄날 같은 천국 

   연두빛 사월이 물들어가네

 

   창가에 내리는 햇살만으로 

   살뜰한 오늘 맞을 수 있다면

   그 어디나 봄날 같은 천국

   연두빛 사랑이 물들어가네

 

   손에 든 찻잔이 따뜻한 지금

   다른 소원은 내겐 없어

   창가에 내리는 햇살만으로

   충만한 아침 느낄 수 있다면

   오늘 부를 나의 노래는

   아침의 햇살 그 환한 빛

 

2. 여름 / 숲으로 길

 

   은하수 강 건너 임을 만나고 

   마법의 숲으로 길을 걸었지

   지난 추억 너머 새로운 기다림이 

   여름밤도 푸른 그리움 되고

   못 다한 얘기들은 별이 되고 

   별들과 함께 꿈을 수 놓네

   이 길 따라가며 우리 노래하네

 

   추억을 아름답고 앞 길은 새로워라 

   나누는 사랑들은 별이 되고

   별을 따라 꿈을 따라 노래하네 

   희망의 앞길 푸르른 그 빛

 

3. 가을 / 깊어진 자리

 

   꽃이 피고야 열매를 맺듯이 

   찬란함과 아픔은 어떤 삶에도

   하늘을 보며 땅을 살아내며 

   황금빛 물든 시월의 기도

   살며 견뎌내며 하늘을 보며 

   가을 들녘으로 깊어가는 사연

   저문 귀로에는 소슬바람 불어

   계절 가도 우리 노래는 단풍빛 사랑

 

   한 잎 붉어도 가을은 깊은 데 

   온 산 붉게 탈 때야 못내 맘 사무쳐

   오고 가는 뜻 다 알 수 없어도 

   눌러 쓴 가을 편지 단풍 빛 사랑

   그 큰 비밀

 

4. 겨울 / 하얀 축복

 

    초저녁 골목길 흰 달 떠오르면 

    빈 가지 사이로 작은 소망이

    찬바람 불어도 울지는 않아

    지친 어깨 보듬는 여린 달빛 

    멀고도 깊은 밤 홀러 떠 가며 

    내일의 꿈 그리는 환한 달빛

   

    어디를 덮어도 하얀 축복이 

    소복 소복 고요히 밤새 눈 내리면

    그 품에 세상은 모두가 하나

    시린 겨울 감싸는 그 흰 눈빛 

     온 세상을 밝혀 주는 햐얀 축복

 

    창가에 내리는 햇살만으로 

    충만한 아침 느낄 수 있다면

    오늘 부를 나의 노래는

    아침의 햇살 그 고운 빛

 

    우리의 소원은 하나 

    이 빛 안에 사는 것

    우리의 노래도 하나 

    다시 올 이 땅의 새봄

    온 땅 가득한 평화

 

이 노래를 부르며 가사가 좋아 참 행복했지만 노래는 참 어려웠다 .

특히 여름 부분을 남성합창으로 하는데 전조가 4번이나 되는

곡의 난해함 때문에 정말 신경 곤두서고 불렀다.

 

40년전 합창단을 창설한 OB단원과, 지금은 같이 안하지만

몇 십년을 같이 노래 불렀던 단원 부부들이 무대로 올라오니

관객에선 경외의 박수가 터졌다.

얼굴 모습에서 이미 합창단 원로들의 풍채가 묻어 나온다.

어렵지 않은 노래들 이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다같이 합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