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81) Try To Remember

carmina 2016. 9. 1. 08:50


TRY TO REMEMBER (THE BROTHERS FOUR 노래)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you were a tender and callow fe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dreams were kept beside your p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Although you know the snow will f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Without a hurt the heart is h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The fire of September that made us mellow.
Deep in December, our hearts should remember
And follow.


이 노래의 가사처럼

삶이 느긋해지면 9월의 같은 때를 생각하라 했듯이

그 때를 기억해 본다.


결혼 이후 아파트 이외의 주택에서 살아 본 기억이

아마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잠시 처갓댁에 거주한 것 이외는

없는 것 같다.


문이 닫힌 상태로 살아야 하는 아파트는

마음과 이웃의 관심까지 닫히기 마련이다.

대개 결혼 30년 정도면 몇 번의 아파트로 이사를 할까?

내 경우는 지금이 5번째이니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닌 것 같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는 까닭에 이웃하고 만나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일도 멀리 있는 교회에 다니느라

대문을 여는 횟수가 많은 일요일에도 이웃을 우연히 만나는 기회도 부족했다.


신혼아파트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나는 2달만에 해외파견되어 나갔고

1년이 지나 귀국 후 사는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나보다 나이 많은 부부가 있어 왕래가 없었다.

3번째 부천으로 이사온 뒤의 아파트에서는 10년을 넘게 살았고

마침 같은 교회 사는 부부가 있어 한 번인가 만났지만

그 부부도 곧 미국으로 이민가버렸고

또 내 친구의 친구 그리고 애들끼리도 친구되는 이웃이 살고 있다 해서

혹 서로 왕래가 있을 줄 알고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도 무산되었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이웃없이 사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금 집으로 이사온 뒤로 아내가 떡을 해서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렸는데

떡을 받은 집들이 '뭘 이런 걸 돌리느냐'는 냉담한 반응이후 복도에서 만나도

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지금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7대나 되어

오며 가며 같은 층에서 타거나 내리며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2년 전 여느때처럼 부천시립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후기를 올렸는데

내 글을 보고 관심을 가진 단원 한 분이 지휘자님께 나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 분이 당신과 같은 아파트 살고 있다고 하기에 깜짝 놀라며

내가 어디 홋수에 사는지 찾아 다녔다.

그 분은 내 아파트의 정확한 홋수는 모르고 지휘자님에게서 

우리 집 홋수를 잘못 전해듣고 아파트의 편지함 우편물을 찾아 보았으나

우리 아파트가 무려 한 동에 300개가 넘는 세대가 있어 그나마 쉽지 않았다 한다.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나를 찾았고

2년전 9월 1일 저녁에 그 부부가 편한 옷차림으로 우리 집에

밝은 색의 커다란 양초를 두개 들고 찾아왔다.

양초처럼 밝은 미소를 가진 부인과 서글서글한 웃음에

늘 즐거운 농담을 즐기며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을 즐기는 남편. 

우리는 그렇게 서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되었고

그 뒤로 참 많은 즐거운 추억들을 가졌다.


내가 스스로 이웃을 찾아다녔을 때는 찾을 수 없었지만

어느 날 이웃은 저절로 만들어졌다.


남자들의 아침 출근시간이 비슷해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났고

그 이전에도 만났겠지만 그땐 인사도 안하며 지낸 남남 사이가

이제는 굳이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 2대의 자가용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내가 트레킹을 좋아하니 두 가족이 여기 저기 트레킹을 떠나기도 하고

우리 모두 음악 특히 노래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 잘 알기에

모이면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냈다.

한국가곡 300곡이 실려있는 세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 보기도 하고 내가 모아둔 포크송 악보의 노래들을

기타치며 부르는 즐거움도 있다.


먹을 것을 사도 서로를 위해 조금씩 더 사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저녁 반찬 맛있게 만들었다고

그릇에 담아 전해 주고 오기도 했다.


그 집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기른 농산물이 오면

우리 것을 챙겨서 가져다 주고,

우리도 시시 때때로 이웃을 위해 무언가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저녁에 파티를 하고

밤 늦게까지 캐롤을 불러가며 즐겼고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나도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선물을 들고

찾아 오기도 했다. 알고보니 이웃의 친구분인데 그 집에 사람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별을 좋아하는 이웃의 남자는 대형 망원경으로 옥상에 설치해 놓고

우리를 초대했으며, 와인을 좋아하는 나는 마트에서 좋은 와인이 있으면

이웃을 먼저 생각해서 준비해 놓았다.


캐나다로 이민갔다가 오래 산 후 다시 한국에 들어 와 사는 친구 부부가

우리와 같이 자주 어울려 여행을 다녔고, 서로 학연과 지연 그리고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비록 그 이웃은 얼마전 인근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멀리 다른 도시에 별장을 마련하여 주말이면 그 곳에서 지내느라

만남이 이전처럼 자주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늘 그리워 하며 지낸다.

 

오늘 저녁에 우린 다시 모이기로 했다.

9월의 그 날을 추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