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주말의 날씨를 확인해 보았다.
걷기에 적당한 기온과 적당한 날씨.
마침 조선일보 목요일 여행특집란에 늠내길의 2코스 갯골길 기사가 실렸다. 이 번 주는 이 곳을 걸어보자.
지난 번 처럼 집앞에서 버스를 타니 시흥시청앞까지 50분.
비치되어 있는 약도를 보니 시청앞에서 조금 내려가면 된다하기에 당연히 지난 번 1코스로 가는 줄 알고
한참을 뚝을따라 가다가 보니 무언가 잘 못됨을 알았다.
시청에 전화걸어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원점에서부터 시작.
오늘 가야 할 길을 바로 반대편에 있었는데 기존의 알고 있는 길 때문에 잘못된 길을 택했다.
갑자기 인생의 한부분과 너무 닮아 있음에 나 자신의 과거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같다. 당연할 줄 알았던 것에 대한 실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시청뒤로 가는 길. 갈대와 억새 그리고 베어버린 들깨줄기, 시들어 버린 잔디가 깊은 가을을 걷는 운치가 있다.
외국처럼 잘 다듬어진 길은 아니지만 그 길은 농부가 수확을 위해 걷던 길이라 더 정이 든다.
트랙터가 다니던 길, 갯벌에서 일하고 장화신은 채로 올라와 흙이 지저분한 농로 세멘트 길이지만
그 길에서 값진 노동을 위한 흔적을 본다.
안내 지도상으로 본 갯골길은 커다란 갯골을 한 바퀴 휘 돌아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거리가 만만치 않다.
무려 16키로.
족히 5 시간 이상은 생각을 해야 한다.
쌀연구회라는 곳을 첫째 이정표로 잡고 가니 깨끗한 건물에서 구수한 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엉성한 글씨로 개인 이름이 적혀있는 거의 1톤짜리로 보이는 커다란 마대에 쌀이 건물 앞에서 도정을 기다리고 있다.
길은 고속도로를 옆으로 두고 농촌의 세멘트 길을 걷는다.
걷다가 문득 보이는 이정표시. 솟대.
어? 이거 괜찮네.
솟대 두 마리로 방향을 표시했다
아주 간단한 자연의 도구를 이용하여 만든 솟대는 종일 오늘의 길안내가 되어 주었다.
지리산 둘레길의 판에 박은 나무 말뚝 표시보다 혹은 두가지의 헝겊색갈로 만든
늠내길 안내표시보다 훨씬 더 정감이 든다.
추수를 끝낸 논 바닥은 황량해 보이고,
군데 군데 내년의 농사를 위해 논에 불을 놓아 시커멓게 재가 된 곳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이제 막 불을 놓고 주위를 돌아 보는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시골에 오니 농부의 모습을 보는건 당연한건가?
어떤 젊은이가 등산복을 입고 밭 한가운데서 손을 이용해서 곡식을 탈곡하고 있다.
바람을 이용하여 알곡을 가리는 모습이 어찌나 이상하게 보이는지 이전에 기계가 농사에 이용되지 않았을 때
저렇게 바람을 이용하여 낱알을 솎아내었겠지?
길이 갈라지는 곳마다 솟대의 기러기 부리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넓은 벌판에 농부의 땀이 잠들고 있다. 내년 봄 쯤에 그 땀이 작은 싹이 되어 다시 솟아 오르리라.
두번 째 이정표는 갯골 생태공원.
논두렁을 지나니 갯골 생태공원으로 가는 잘 다듬어진 길이 있다.
한국의 서해의 독특한 천연 자원. 갯벌. 이미 오래 전 어느 방송에서 '갯벌은 살아있다'라는 다큐먼타리로
갯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더니 자연 생태계 보존에 절대 필요한 그 갯벌을 교육적 목적으로 보여주고자
시흥시가 마련한 공원이다.
요즘은 갯벌을 이용한 보령의 머드여행코스도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은 이 공원을 한참 준비중인 듯 여기 저기 공사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가능한 갯벌은 있는 그대로 두고
주위에 시설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뚝에 올라서니 갯벌에 이끼가 잔뜩 끼어 새파란 갯벌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보이고 주위이 갈대들과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바다내음을 맡지 않으면 삶이 허전하여 하다못해 대형 마트의 생선코너라도 가서
바다냄새를 맡아야 하는 내 일상에 오늘 종일 갯벌 내음을 맡고 지내는 하루가 생복하다.
작은 전망대를 세워 갯벌을 보게 만들었고, 해풍을 막아 주는 소나무도 그럴듯하게 심어 놓아 보기 좋게 만들었다.
전망대 위에서 술파티를 벌이는 어느 노무자들의 모습이 무척 눈에 거슬린다.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눈으로 즐기기 보다는
입이 즐거워야 하는 우리네 민족의 고질적인 문제때문에 어느 공원을 가나 음식쓰레기와 포장지로 지저분하게 변하는 환경을
만드니 이러한 문화체질 개선은 개인 GDP가 어느 정도 올라가야 바뀔 수 있을까?
무언가 남기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습성때문에 마련한 낙서판.
어른 용와 어린이용 게시판에 무수히 많은 글들이 어지럽게 써 있다. 이런 모습들이 생태공원의 목적과 부합되는 것일까?
오래 전 아내와 같이 찾아 본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폭포 주변엔 음식점도 마련하지 않고 하다못해
간식거리도 팔지 않아서 비닐포장지하나조차도 폭포수 주변에 찾을 수 없고,
모두가 조용히 폭포를 감상만 하게 하듯이 그렇게 조용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인공적으로 만든 호젓한 길이 홀로 거니는 나그네를 바람에 날리는 낙엽보다 더 쓸쓸하게 만든다.
길 끝에 금속으로 만든 바람개비 숲을 만들고 커다란 지구본을 작은 금속조각들로 둘러 쌓아 놓아 바람이 불 때마다
자주 흔들대는 금속의 절그렁대는 소리로 바람의 소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 옆에 갯벌 위로 나무다리를 만들어 갯벌 관찰을 하게 만들어 놓았다.
숭숭 뚤린 게구멍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어 어린 아이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겠다.
자주빛의 칠면초가 바다를 뒤덮고 있고, 갈대 잎들이 바람에 물결치고 있는
그 옆에 철새들이나 게들이 놀라지 않도록 전망대도 만들어 쳐다 보게 하고..
지금은 가을이라 애들이 없지만 평일에는 작은 게들처럼 아이들이 이 구멍 저 구멍에서 솟아 나올 것만 같다.
갯벌 위로 놓인 다리를 돌아나오니 반가운 건물이 보인다.
소금창고. 이 곳 시흥은 오래 전부터 염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릴 때 부터 시골 친척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늘 협궤의 수인선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제일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저 소금창고였다.
오후 늦은 기차를 타면 염전위로 길게 늘어진 붉은 노을이 염전박으로 길게 촛불을 드리울 때
그 사이로 보이는 낡은 목재 소금창고가 아주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은 폐허로 변한 듯 보이지만 아직도 그 안에 온기가 남아 있을 것 같다.
비록 들어가지 못하게 무거운 자물쇠로 가득 채워 놓았지만 건물 어디에 뚫린 구멍이라도 있으면
몰래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소금창고 옆에는 아직도 소금을 제조하는 염전작업장이 있어 방금전까지도 마치 소금작업한 듯한 모습이 보인다.
이전에는 저렇게 안한것 같은데 깨끗한 천일염을 얻기 위해 염전에 작은 타일을 덮어 소금을 만든다.
바닥을 덮은 지붕밑을 들여다 보니 바닷물을 끌어 들여 잠시 보관해 놓았다.
끌어들인 바닷물을 염전에 놓고 햇빛과 바람으로 물기를 증발시키면 지저분해 보이는 갯벌 바닷물에서
하얀 결정체의 소금을 얻게 된다.
소금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인류역사에서 소금은 태양빛 만큼이나 가장 귀한 역할을 해 냈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을 생각함은 물론 소금으로 음식을 오래 보관하여 유목민의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인체에도 소금이 없다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래 머무르고픈 염전을 지나 다음 이정표인 섬산으로 가는 길. 멀리 멀리 평평한 길이 뻗어 있다.
아마 이 길은 소금을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같다.
가끔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디선가 모터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네.
모터를 이용해서 비행하는 낙하산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다.
이 곳 시흥 벌판은 워낙 넓어 이런 활공스포츠에 아주 적합하다 이 곳에는 경비행기를 교육시키는 비행코스도 있고
지금도 넓은 하늘에 무언가 제비같이 쏜살같이 날아 다니는 것은 무선으로 조종하는 모형 비행기가
아찔한 속도로 급강하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조마조마 하게 한다.
멀리 벌판에 젊은이들 몇 명이 모여서 모형 비행기 조종을 하고 있는 것 보인다.
끝없이 긴 흙길이 이어지고 양 옆으로 펼쳐진 벌판에 갈대가 무성하고 수없이 많은 곳에
염전을 위한 낮은 지붕이 벌판을 덮고 있다.
길 끝에 작은 이정표 하나. 아까시 길.
일부러 아까시나무가 많은 길에 숲길을 만들어 놓았다.
시간을 보니 12시. 출출하다.
아까시 숲길 가운데 쯤 새똥이 하얗게 말라 붙은 벤치에 앉아 가지고 온 떡과 과일로 점심을 때운다.
아까시 길을 지나니 끝없는 갈대밭. 그리고 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길이 끊겨 있다.
앞에는 빠르게 차가 지나가는 커다란 방산대교.
지도를 보니 걸어서 방산대교를 지나가도록 되어 있다. 오늘 코스 중 유난히 재미 없는 길.
방산대교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모과가 주렁 주렁 열린 허름한 선술집이 있어 막걸리 한잔 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라 포기한다.
대교로 올라가 작은 인도로 가니 다리 밑으로 한없이 뻗은 갯골들이 우람해 보인다.
저 멀리 소래포구 선착장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다시 갯골 건너편 다리 아래로 내려와 산더미같이 쌓아올린 그물들이 보인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유난히 이 그물에 대한 추억이 많다.
갯골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길은 개인 소유지라며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 놓았지만
일부러 갯골길 트레킹을 위해 개방한 듯하다.
곧은 길. 바로 갯골 건너편에는 내가 걸어 온 길에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와 역방향으로 평행으로 달리고 있다.
얼핏 지나다가 말똥을 본것 같은데 처음엔 저게 무슨 똥일까 하고 하다가
긴 뚝위에 어떤 이가 말을 타고 가는 걸보고 말똥임을 알았다.
그렇게 주욱 이어진 길이 어느 순간부터 솟대가 갈대가 우거진 숲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 길이 장난이 아니네. 비록 우거진 갈대숲속에 일부러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편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다듬어 놓았다.
연인이 걸으면 감탄을 하며 걸을 수 있는 길. 갈대 숲으로 난 길에 바닥도
일부러 갈대 부스러기들로 덮어 놓아 부드러움을 더하게 한다. 거기에 가끔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솟대들이
더 정취있게 한다.
가끔 갈대숲을 지나 갯벌로 나가 낚시하는 이들이 앉았던 생선궤짝위에 빠르게 흘러 들어오는
바닷물을 보고 물한잔 마시기도 하고..
갯벌은 숲가는 그래도 단단한 흙이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신발이 푹푹 빠질것 같은
갯벌로 보여 감히 더 나아가질 못한다.
그러나 그 숲길도 때론 갯벌때문에 발을 디딜 형편이 안되는 곳은 일부러 흙을 덮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는 이와 이 길을 천천히 걷고 싶다. 마호병에 커피를 담아와 갯벌에 앉아
종이컵에 커피를 마셔가며 노을을 바라보고 싶고, 갈대 숲에 들어가 하늘을 보며 눕고 싶다.
홀로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이도 이 가을을 즐긴다.
그가 이 얕은 갯골에서 무슨 월척을 기대할까마는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멋진 개인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겠지?
갯골이 구불 구불 들어와 진행하기 힘든 곳에 나무다리를 놓아 나그네의 길을 편하게 만들고,
갈대가 길을 막는 곳에서는 갈대를 대나무로 지탱해 놓아 돌아가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많이 걸었을까 이 멋진 길이 끝날 때 쯤 바로 건너편에 오전에 지나친 생태공원이 바로 옆에 보인다.
오다보니 이렇게 먼길 걷기가 힘든 사람을 위해 중간에 다리를 놓아 지름길도 만들어 놓았다.
생태공원을 지나 이정표는 일부러 논뚝길로 안내한다.
내년을 위해 남편이 논에 불을 지피는 있는 동안 아내는 연기속에서 새참을 즐기고 있다.
조금 더 지나가니 넓게 펼쳐진 연꽃밭들. 여름내 자란 연꽃의 뿌리를 다듬는 농부들이
열심히 연꽃밭을 뒤집으며 뿌리를 캐내고 있다.
연근은 내가 살면서 절대 필요한 반찬중의 하나였다.
피곤하면 유난히 코피가 많이 나던 시절. 지혈제의 성분인 비타민 K 성분이 많은 구멍이 많은 연근은
늘 가정의 상비약이었고, 이 연근은 내게 참 좋은 자연치료제였다.
자..
이제 오늘의 여정을 끝낸다.
거의 언덕이라고 없는 아주 먼 갯골길, 논밭길을 걸어 원점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하늘로 향한 솟대의 나무 기러기처럼 묵묵히 자연이 만들어 준 길을 향해 뚜벅 뚜벅 걸으며 자연과 닮아지고 싶다.
멀리 고속도로위의 빠르게 지나가는 문명의 이기보다는 조금 느려도
하나님이 주신 맑은 공기와 나무와 물과 바람과 별을 벗삼아 남은 인생을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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