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10코스 (위태 - 하동호)

carmina 2011. 8. 4. 22:18

 

2011년. 8월 2일

 

밤새 황토방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들리는 소리가 계곡물소리인지 빗소리인지 확인하느라 몸을 뒤척였다.

 

밖이 훤해 진다는 느낌에 얼른 살짝 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기는 오는것 같은데 부슬비 정도.  이 정도면 가능할거야.

 

주인아저씨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토마토를 먹으라며 주는데 이제 막 밭에서 캐 온 작은 토마토를 한 입 깨물으니

아침이슬을 먹는 것 같이 상쾌하다.

 

모두 모여 어제 산행 후 이 지방의 별미라며 사온 맑게 끓인 추어탕으로 아침을 즐기지만 시선은 연신 밖의 날씨에 관심을 갖는다.

 

부슬비. 이정도면 오늘 가야 할 코스에 있는 계곡물들이 범람하여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안되리라.

 

하동호에서 하동읍으로 가는 버스가 1시에 있다 하니 짧은 만남이었지만 단체 촬영 후 서둘러 길을 떠났다.

 

다행히 오늘은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어제 온 가족과 같이 동행한다.

고2 아들과 같이 온 거제도에 직장은 둔 부부. 아들이 둘레길 동참에 조건을 걸었단다.

하루에 4시간 이상 걷지 않기로..

 

비록 혼자 있을 때 게임밖에 안하지만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따라 나서는 아들을 둔 부부가 상당히 부럽다.

거기에다 지금 군대 간 큰 아들은 자기네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서울대 입학하였고 지금은군생활중이라 하고..

 

민박집에서 시원한 얼음물병과 작은 토마토 몇 개를 간식으로 싸주며 하동호 둘레길로 가는 코스를 별도로 안내해 준다.

 

불과 하루 이틀 같이 한 둘레꾼들이지만 그새 정들었다고 가방을 뒤져 서로 먹을 것들을 나누어 주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도 만약 둘레길을 온다면 이 민박집에서 묵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간다.

주인이 운영하는 "하늘가애" 라는 다음카페에 나도 회원등록을 했다.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하고 이전에 왜정시대때 만든 길이라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숲길로 해서 출발.

 

아직도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에 인적없는 숲길이 질퍽 질퍽하다.

비가 어제처럼 거세게 내렸으면 이 길도 가지 못했으리라.

 

작은 계곡을 지나가니 하동호로 가는 언덕길인 지네재 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이 곳에 습기가 많아 지네가 많아 그렇게 이름 붙인건지 혹은 지네처럼 길이 구불 구불하여 붙였는지 모르지만

지내제로 올라가는 길도 가파르고 처음부터 땀을 쏟는다.

 

같이 가는 가족의 아들은 성큼 성큼 늘 앞장선다. 애들은 몸이 가벼워 산행을 아주 쉽게 한다.

오래 전에 중학생 남자애들과 설악산 정상까지 등반했다가 애들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온 입술이 다 부르튼 적이 있었다.

 

오늘도 젊은 사람들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올라간다.

 

지네재를 오른 뒤 잠깐 쉬고 오율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일부러 골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길도 어제같이 비가 많이 왔으면 도저히 걷지 못할 길이었다.

 

작은 집 몇 채가 있는 오율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 계시기에 반갑게 인사하고는 길을 가는데 아주머니가 우리를 부른다.

줄자로 무엇인가를 쟀는데 숫자와 글자가 작아서 못 읽는지 우리보고 읽어 달란다.

 

이런 마을들을 지나면서 이 곳에서 사는 젊은이나 애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모두 노인들만 남아 있는 우리 시골마을들. 세월지나 이 분들 모두 가시면 누가 이 마을 들을 지키나.

 

그런 이유때문인지 어느 마당이 넓은 집 입구에 돌기둥을 양옆으로 세워놓고 대나무를 가로 막아 놓았다.

아무도 없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겠지.

 

요즘은 이런 시골도 모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낯선 사람들이 오간 후 마을에 절도 사건같은 문제가 생기면 경찰에 신고된다고 한다.

 

편한 내리막길. 그러다가 어느 길에서는 계곡물이 도로로 급하게 흘러 내려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오율마을에서 궁항마을로 가는 길은 산의 5부능선쯤에 사람 2명정도 걸어갈 만한 보폭의 평탄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축대에 쌓여진 돌에 이끼가 없는 것을 보니 아마 이번 둘레길 조성을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든 것 같다.

 

이토록 긴 길을 만들었다면 쉽지않은 노동력이 들어갔을텐데 편한 길을 조성해 준 이 지역에 감사를 드린다.

 

산길을 간다 말없이 / 홀로 산길을 간다 /

 

양주동씨의 시로 노래를 만든 가곡을 흥얼거리며 지나간다.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 둘레길들을 다니면서 제일 좋은 길이 이런 길이다.

숲 속에 마을사람들의 발자욱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길이거나, 혹은 길을 새로 만들더라도 숲속에 사람하나 다닐 수 있는 작은 길들..

 

비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헤치며 다니느라 때론 얼굴이 불쾌할 수 도 있지만

등산 스틱을 앞에 들고 걸어다니면 거미줄을 미리 제거할 수 있어 좋다.

 

오율마을에서 궁항마을로 가는 일반 차도도 있겠지만 일부러 이런 숲길을 통해 궁항마을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둘레꾼들이 우리를 반긴다. 

그 중 이 곳 마을 사람인 듯한 분이 지리산 둘레길 중 이 코스가 제일 아름답다고 칭찬을 늘어 놓는다.

 

동네 어른들이 정자 나무 밑에서 한담을 나누다가 우리가 인사를 하니 잠시 쉬었다 가라며 자리를 내 주기에

우리는 조금 전에 쉬었다 하며 사양한다. 아마 내가 혼자였다면 그 자리에 앉았으리라.

 

하늘에 잔뜩 끼어 있던 구름이 숲 속을 지나는 사이에 모두 사라져 버리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쬔다.

잠자리들이 보이고 양이터재로 향하는 긴 세멘트 길로 향하다가 문득 흰색 개 한마리가 절뚝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 쪽 뒷다리를 다쳐 뼈가 다 보이고 다친지 오래 되었는지 피는 다 굳어 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지 우리보고 짖지도 않는다. 하긴 저 백구에게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리라.

 

저런 다리로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는지 궁금해 진다.

 

이런 산중에 가끔 멋있는 별장이 있다. 일부러 마을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예쁜 집을 짓고 우체통도 외국처럼 길가에 만들어 놓고

이런 집들은 거의 집지키는 개를 키운다.

 

하긴 돈벌어서 이런 곳에 집을 짓는 것도 좋으리라. 그 들도 시골이 그리워서 오는 것일테니까..

 

며칠 동안의 거센 비에 나무들이 뿌리째 산에서 쓸려 내려와 여기 저기 길을 가로막고 있다.  

 

양이터재로 가는 길은 비록 계속 올라가는 코스지만 경사가 완만해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단지 더위가 심한 날은 뙤약볕을 걷느라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 세멘트 길이 끝나는 곳에 작은 조약돌이 깔려 있는 임도와 둘레꾼을 위한 작은 쉼터가 있다.

 

둘레길을 다니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힘들어 가다가 아무 곳이나 쉬고 나면 조금 가다가 제대론 된 쉼터가 있는건지...

쉼터 몇 미터 앞이라고 표시를 해 놓으면 너무 교과서 같아서 안 좋을까? 

둘레길 이정표 어느 곳에도 앞으로 몇 키로 남았다는 표시는 없다. 차라리 그게 길 걷기에 편한건가?

 

조금 전에 쉬었지만 그 곳은 화장실도 있고 편한 의자도 있어 또 한 번 쉰다.

그저께 사놓은 캔 커피 한 모금이 시원한 물만큼이나 청량감을 준다.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정표가 다른 숲길로 인도한다. 숲길로 조금 내려가니 금방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가득한 대나무숲. 담양의 소쇄원에서는 대나무 숲을 막아놓아 들어가지 못하는데

여긴 양 옆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 숲과 대나무 잎으로 가득한 길을 걸어가니

마치 내가 영화 와호장룡의 주인공처럼 저 대나무 위를 날아가고 싶다.

 

녹색의 대나무밭. 자연스럽게 자란 대나무밭은 사람하나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고 울창하지만 왜 자꾸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지..

 

중간 중간 계곡물이 흐르는데 그제 이 곳을 다녀간 부부들이 비가 오면 물이 범람하여 가지 못할 곳이라는 곳이 이 곳을 말한 것이다.

 

다행히 지리산은 비가 아무리 오더라도 멈추면 금방 빗물이 빠지기 때문에 괜찮을거라는 민박집 아저씨 설명도 있어 오늘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손수건을 자주 계곡물에 적셔가면 얼굴에 흐르는 땀을 씻는다.

벗어나고 싶지 않은 숲을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나본마을. 이제 거의 다온건가? 시간상으로 현재까지 3시간 반을 걸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눈 앞에 펼쳐지는 하동호. 바다만큼이나 큰 하동호옆으로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하동가는 버스 타는 곳을 안내센타에 전화하니 하동호 관리사무소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는 1시에 도착예정인 버스를 타야 하지만 같이 걸은 가족은 민박집 아저씨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기로 되어 있어 느긋하게 걷는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하동호. 지난 주 설악산을 여행하며 본 다른 호수들은

이번 장마에 산에서 떠내려 온 나무조각들과 쓰레기들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인데

여기 하동호는 호수에 쓰레기 비닐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멀리 보이는 하얀 빌딩의 청학콘도가 더 깨끗하게 보인다.

 

이제 이번 지리산 둘레길 여행은 끝났다.

하동호 밑으로 삼화실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다음 둘레길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비록 폭우로 인해 8코스는 다 끝내지 못했지만 몇 배 더 어려운 힘든 산행이었고

이런 거센 빗속을 걸어본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니 뿌듯한 나 자신이었다라고 생각하니 어느 것하나 부족함이 없다.

 

1시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빨간 고추 잠자리 한 마리가 뒤집혀 진 채 일어날려고 다리를 버둥대지만

날개가 물에 닿아 있어 꼼짝을 못하기에 마른 땅으로 옮겨 바로 세워 주었더니 한 참을 날개를 퍼득거리며 날아갈려 애를 쓴다. 

조금 노력하면 저 녀석도 날라 갈 수 있으리라. 하늘을 보니 공중에 빨간 잠자리가 가득하다.

 

이제 곧 가을이 오겠구나..

다음 지리산 둘레길은 가을에 찾아 와 볼까?

 

1시에 예정된 버스가 1시 10분에 도착. 하동을 향해 달리는데 오전내 주춤했던 비가 또 마구 쏟아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동에 도착해 서울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오늘 표는 완전히 매진.

진주에 가서 타기로 하고 하동에 왔으니 재첩국을 먹고 싶어 주위를 둘어 보았으나

터미날 빌딩에 있는 간판만 보이기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에게 재첩국집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왜 수입재첩을 먹을려냐고 나보고 안타까와 한다.

 

하긴 그럴 수 있다. 재첩국 포기. 터미날 옆 다른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를 타고 진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데 빗방울이 더 거세어진다.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빨간간 단풍이 가득하거나 눈이 가득할 때 내 다시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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