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3코스 능묘가는 길

carmina 2011. 8. 13. 22:22

 

2011년 8월 13일 , 토요일, 비

 

지난 50일간 비 안오는 날이 겨우 7일에 불과한 올 여름.

 

지난 2주간 걸었던 설악산 길도, 지리산 둘레길도 모두 빗속에서 걸어야만 하는 현실에

매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이젠 나도 걷기 매니아인데..'하는 작은 자존심에

비가 200mm정도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걷기 코스를 잡았다.

금요일 저녁부터 비가 온다..

토요일은 당연히 오겠지..어느 정도 오느냐가 문제다.

 

지난 번 강화 나들길시 잠시 같이 걸었던 부부가 3코스가 가장 좋다해서

당연히 이번은 3코스를 가리라 생각했는데 마침 나들길 동호회 카페에서

3코스를 걷는다기에 동행하기로 했다.

 

이코스는 왕릉이 많아 능묘가는길이라 한다.

강화도는 한국의 외세 침략에 늘 선두에 있던 지역이라 왕들의 무덤이 많다.

 

경주같이 태평성대의 왕조라면 모두 거대하게 만들어 왕의 위엄을 세세대대로 칭송했을텐데

모두 외세의 침략으로 어려운 피난 시절의 고려왕조들 무덤이라 분묘도 그리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강화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호회는 출발시간도 빨라서 아침 9시

부천에서 그 시간까지 강화터미날도 아니고 온수터미날까지 갈려면 빠듯하다.

시간 맞추어 나왔다고 했는데도 20분 지각.

 

버스에서 내리니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로에서 왕관현상을 그릴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다.

바로 앞에 나를 기다리는 일행들.  

 모두 우비를 단단히 챙겨입고 우산을 들었다.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나들길 여권에 도장을 찍고 용변도 보고, 우비를 챙겨입고.. 출발.

 

우비를 때리는 빗줄기의 소리가 툭툭툭 거세다.

 

강화도 토박이들이 리드하는 길이라 길 표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발뒤꿈치만 따라 다닌다.

 

길 옆에 상사화가 진한 비를 그대로 맞고 있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여리디 여린 대줄기하나가 용케도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

 

제일 처음 만나는 건축물. 성공회 강화성당.

영국으로부터 들어온 성공회가 제일 처음 성당을 세운 곳이다.

그런데 지금 한참 보수중이라 주변이 어수선하다.

 

성공회 성당의 대문에서 중국의 절 입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 영국사람들이 중국이나 한국이 비슷할 것같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지은 것 같다.

 

원래 3코스는 전등사를 거쳐 삼랑성곽을 지나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미 수없이 와 보았던 다른 사람들이 굳이 전등사까지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인지 다른 코스로 안내한다.

전등사를 들어가 본지 무척 오래되었는데 조금 아쉽지만 일행에 동참하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니 주로 걷기 편한 세멘트길을 걷는다.

 

그래도 그렇게 차가 다니는 도로 옆은 모두 시골 풍경이다.

인삼밭이 있고, 고구마밭이 있고, 옥수수대가 파랗게 올라가고

도라지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간다.

지난 번 왔을 때만 해도 파란 가시만 가득하던 밤송이의 윗부분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간다.

 

어느 모퉁이의 사슴농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슴가족들이

우리가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사슴들도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 중 가장 어린 사슴의 눈망울이 더 초롱초롱하게 바라보고 있다. 

 

워낙 비가 많이 오니 서서히 신발이 젖어온다.

피할 수 없는 물 웅덩이들과 흐르는 물들..

어떤 이는 슬리퍼를 신고 걷고 있어 의아해 하니

걷는데 베테랑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켜 준다.

 

길가에는 논과 밭이 있는 주변 건물들은 모두 현대식이다.

강화학생체육관은 여느 도심지의 체육관보다 시설이 더 좋아 보인다.

 

길정저수지로 향하는 길과 이규보 묘로 가는 길.

두 갈래 길에서 의견을 묻는다.

비가 오는데 빨리 트레킹을 끝낼려면 저수지길로 가야 하고

제대로 된 코스를 갈려면 이규보 묘로 향해야 한다.

오늘 8명의 일행 중 이길을 처음 오는 이는 2명에 불과한 것 같다.

 

묘로 가는 작은 도로 옆에 있는 집들이 무척 고급이다.

가옥으로 들어가는 길도 입구를 잘 정비해 놓았고

마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도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고급차 크라이슬러 클래식 모델.

 

아주 넓은 비탈길에 끝없이 무척 넓은 고구마 밭이 있는데

이 곳 강화 고구마의 단맛이 좋아 아주 잘 팔린단다.

 

그길들도 모두 차가 다닐 수 있는 세멘트 길.

오늘은 바닥보다 꼭대기가 힘든 날이다.

그러나 만족감은 평평한 바닥보다 비를 맞는 꼭대기가 좋다.

 

비는 마구 쏟아지기도 하고 때론 잠시 뜸해지기도 하지만 그침이 없다.

우비를 입고 있어도 바지 아래가 젖는 것는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정도 걸었나.

시계도 핸폰도 우비속 주머니에 있기에 시간 감각이 없다.

비오는 길을 걷기에 한여름의 힘든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규보 사당안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굳게 닫혀진 문을 밀어 젖히니 문 뒤에 농기구가 가득 쌓여 있다.

가지고 온 간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사당안을 들여다 보니

누군가 잠시 어질러 놓은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묘지도 잘 가꾸어져 있고, 이번 큰 비에 별로 피해입지 않아 다행이다.

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자연의 힘에 의해 사라져 가고 후대의 인간들은

그 흔적을 찾아 다시 역사를 파헤친다.

 

잠시 쉬고, 찾아간 해뜰원이라는 참기름 생산공장.

주인이 뜻이 있어 공장의 건물 하나를 평소 모아두었던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도구들과, 참기름에 관련된 옛날 도구들, 그리고 수석을 이용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안내를 해주는 아가씨가 친절하게 모든 진열품을 설명해 준다.

이제까지 몰랐던 것 중 하나가 야간화장실로 애용되었던 요강이

작은 사이즈가 있어 물어보니 가마용이라 한다.

 

먼길을 가는 마나님들의 가마안에 작은 요강을 비치해 놓고 소리가 나면 창피하니까

요강 밑에 목화를 깔아 놓았다 한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비록 많지 않은 유물과 다른 민속 박물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생활도구들이지만

머리를 길게 길러 질끈 동여맨 포니테일의 젊은 사장님이 무척 존경스럽다.

 

올해 이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소리꾼인 장사익을 초청하여 공연하여 강화도민들의

문화생활에도 기여했다 하니 한 번 더 손한 번 잡으며 존경한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아이들을 위해 참기름을 짜는 체험 코스도 있다 하니, 추천할만 하다.

박물관 관람 중 일행 중 몇 명을 사진찍어 명함처럼 만들어 주는 친절에 또 한 번 감복.

맛있는 둥글레 차를 얻어 마시고 또 출발.

 

비는 여전히 거세다.

어느 곳에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 살짝 창문으로 보니

나이 든 아저씨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큰 길로 나와 산길로 접어 드는 곳에 왔을 때 다시 한 번 의견을 모은다

시간이 많이 갔는데 산길로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점심 먹을 곳이 없으니

계속 걸어야 할지, 아니면 비도 많이 오는데 산길이 위험할수 있으니

여기서 중단하고 식당을 찾아 가야할지 의견 수렴.

길을 리드하는 분이 인근 예비군 부대에 들어가 근처에 식당을 알아보았는데 고개를 흔들고 돌아온다

 

모두 무언으로 뜻을 표한다. 가는거야.

배고픈 것은 잠시 참을 수 있지만, 이 길을 다시 오는 것을 참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본격적으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푹푹 빠지기도 하고 풀 숲을 밟아야만 걷는 길이지만 그래도 배수가 잘되어 걷는데 불편은 없다.

 

곤릉으로 가는 길이 불편하다 하여 그냥 지나치고

다음에 길에서 석릉가는 길을 만난다.

석릉으로 가는 길에 폭우로 인해 길이 무너져 있다.

어쩔 수 없이 개인 소유의 길을 따라 올라가니 제대로 된 습한 길이 발걸음을 기분좋게 한다.

그러다가 석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큰 나무 하나가 쓰러져 있어 그러려니 했는데

우리 일행 중 강화군청에서 나들길을 담당하는 분이 배낭에서 접이식 톱을 꺼내

올라가는 길이 불편하지 않도록 길에 누운 나무를 톱으로 토막내어 옆으로 비껴 둔다.

 

아...우리가 가는 길이 그냥 저절로 만들어 진게 아니구나.

누군가의 손길이 수없이 많이 들어갔구나.

지난 해 곤파스 태풍 때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아 수없이 많은 나무들을 길에서 걷어내야 했는데

이런 힘든 일들을 모두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한다.

 

석릉은 고려 희종의 무덤으로 조금 특이하게 그리 크지 않은 묘를 ㄷ 자의 돌담이 둘러져 있다.

돌의 모습을 볼 때 처음 능을 만들때 만들어 진 것 같지는 않고 재건축한것 같다.

어떤 이유로 이런 기(氣)가 딱 막히는 돌담을 주위에 쌓아 놓았을까?

이렇게 막아 놓으면 풍수지리학상 후세 자손이 커다란 영향을 받을텐데 

혹시 꽤씸죄를 지어 망자의 영혼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둘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역사를 다시 한 번 뒤져봐야겠다.

 

이끼가 가득한 석릉의 계단을 내려와 다시 숲길로 접어 든다.

비록 쏟아지는 비로 인해 질척거리는 숲길이지만 그 사이로 커다란 두꺼비가 폴짝되고

가끔 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 다니기도 한다.

 

이 숲길에 수없이 많은 꽃매미들이 날라다니고 있다.

이 꽃매미로 얼마나 많은 농작물과 나무들이 피해를 입는지

풀과 나무를 뒤엎어 버리는 가시박이 줄기와 더불어 자연계의 중대한 바이러스이다.

 

길을 가다가 작은 계곡을 두 번 만났는데 모두 빗물이 넘쳐 신발을 잠겨야만 계곡을

지나칠 수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의 장한 공무원은 제일 먼저 큰 돌들을 주워

징검다리를 마련해 놓는다.

 

다음에 오는 누군가를 위한 계곡 물에 신발을 담근 채로 징검다리를 놓는

작은 노력에서 큰 마음이 보인다.

그냥 지나쳐도 비가 곧 비가 멈추면 그다지 빛도 못 보는 징검다리.

그러나..언젠가는 그 길을 지나치는 나그네들이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능을 따라 걷는 길은 주위에 숲길이 좋다.

잘 다듬어 놓은 잣나무들과 소나무들.. 

쭉 쭉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고려왕실의 기운을 보는 것 같다.

 

비록 비로 인해 축축한 숲길이라 이미 신발과 양말이 젖어 불편하지만

습기찬 나무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가 폐에 가득차는 느낌은 그 어떤 불편함도 잊는다.

 

그렇게 침침했던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고 이제는 비도 그쳤다.

출발한지 6시간 정도 걸려 가릉에 도착, 깨끗이 다듬어진 능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특이한 석실로 이루어진 능을 보고 내려오는데

길가에 유치원으로 보이는 숨바꼭질 나라 라고 이름붙이 작은 집이 너무 이쁘다.

큰 길로 나오는데 이제 가릉을 올라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비가 그쳤다가 올라가는 것인가?

잘생긴 남자가 서브하는 강화허브향기라는 카페에서

완주 스탬프를 받는다.

 

오늘은 말복이라, 근처 식당에서 삼계탕을 판다.

모두 즐겁게 삼계탕으로 점심을 즐기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아무래도 3코스는 어느 가을 날 다시 한 번 걸어야겠다.

무언가 길에 많은 것들 두고 온 것같이 허전하다.

 

비가 와 별로 힘들지 않게 흥얼거리며 걸엇던 길들을 후기를 쓰며 다시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