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오늘은 분명 땀이리라.
올 여름 걷기는 모두 거의 비와 땀의 범벅속에 보내다가
8월 중순이 지나니 비가 멎고 오랜만에 지난 며칠간 가을 날씨같이
화창한 휴일을 맞았다.
지난 번 강화 나들길 3코스를 같이 걸었던 모임에서 이번 주는
7-1 코스 동막가는 길을 걷는다기에 아직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이번에도 그룹 트레킹을 즐겼다.
모두 14명의 일행 중 나이 70대 중반의 커플도 있고, 이제 10대 초반의 초등학생도 있고,
60대 이상의 할머니도 몇 분 계시는데 걷는데 베테랑들이다.
유난히 이 코스는 거리가 길다. 무려 24키로. 다른 코스의 1.5배 정도.
물론 코스의 반은 바닷가 제방의 평지를 걷는 코스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여름에 24키로를 걷는 것은 나이 든 분이나 초등학생에겐 좀 무리가 아닐까?
나도 조금 걱정스러워 캔 커피 하나와 물 병 두 개를 챙겼다.
다같이 둥그렇게 모여서 자기 소개하고, 몸을 풀고 손을 모아 파이팅 하며 출발.
강화의 오래 된 집들 사이로 몇 명씩 무리지어 걷는다.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갔을까.
어디에도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몇 년안에 이 마을들의 운명은 어떻게 변해 버릴지 자못 궁금하다.
빈 집으로 보이는 적막한 집도 몇 채 보인다.
그래도 그 마당안에 감나무에 아직은 파릇한 작은 열리고
밤나무에는 작은 밤송이들이 가득하게 자라고 있다.
아직 벼이삭이 패지 않은 듯 벼들은 꼿꼿이 자라고 있고
옥수수대도 수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강화에 오면 반가운 것들이 밭에 가득한 짙푸른 잎사귀의 고구마 줄기가 있는 반면
일 손이 부족하고 지난 긴 장마에 어쩔 수 없이 줄기에 매단 채 썩어가는 빨간 고추를 보는 안타까움.
내리성당으로 가는 마을길 도로는 무언가 지하매설작업을 위해 가운데 구멍을 잔뜩 파놓고
세멘트 도로를 길게 일자로 절단해 놓았다.
그 길게 절단된 도로 저 끝에 양옆에 나무 숲이 있는 언덕에 밝은 하늘이 보인다.
아직은 이런 적막한 시골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는 것 같다.
작은 마을을 지나는 끝에 있는 작은 개울.
비가 그치니 흙탕물이었던 개울물이 바닥이 투명할 정도로 맑다.
이제 당분간은 저렇게 맑은 물이 계속 흘렀으면 좋겠다.
멀리 마니산 정상과 상봉산이 뚜렷하게 보이고, 날씨는 그다지 덥지 않아 걷기에 최적이다.
내리성당가는 길을 지나 일만보길로 들어가니 숲이 반긴다.
나들길 이정표가 숲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칠 때 기분이 늘 좋다.
낮은 언덕에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비가 와도 올라 갈 수 있는
편의시설을 해 놓았고 작은 언덕을 오르자 바로 오랜 비의 습기가 아직 마르지 않은
평지의 숲길을 밟는 감촉이 좋다.
진한 숲냄새와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안기 위해
일주일동안 빌딩속 내 자리의 컴퓨터 책상앞에 오그라져 있는 어깨를 펴 보자.
군데 군데 무언가 동물이 드나든 흙무더기 구멍이 선명하다.
긴 장마에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았고 그 사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나그네가 걸어가야 하는 작은 길도 모두 풀들이 점령해 버려
어쩔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의 발길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겠기에 일부러 풀 숲을 밟고 다녔다.
길은 그렇게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만들어 지는 것.
그다지 높은 언덕도 없고, 가끔 가파른 언덕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올라 가다가 쉬는 불편이 없어 좋다.
비가 많이 내려 물길로 인해 산 언덕 군데 군데 깊은 골이 생겼고 그 골 사이에
잔나무 뿌리들이 벌거벗은 채 얼기 설기 그물처럼 망을 이루고 있다.
그 곳에 낙엽이 쌓이고 흙먼지가 쌓여 길이 다시 메꾸어 지겠지..
숲이 무척 우거져 눈 앞에 펼쳐지는 푸르름이 마치 영화 아바타의 숲속의 선명함을
HD 3D 화면으로 보는 것 같다.
360도 파노라마를 찍고 싶었는데 내 카메라가 이제 수명을 다했는지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숲이 우거져 반바지를 입고 온 이들은 가시나무 넝쿨들이 종아리를 긁어대 불편한지
어느 분의 조언에 따라 팔뚝에 끼었던 토시를 벗어 발에 끼우는 기지를 돋보인다.
5코스의 덕산야영장 옆 숲속을 걸어가는 기쁨을 이 곳에서도 똑 같이 즐기고 있다.
한 시간 정도 걸었으나 쉴 곳이 마땅히 없어 숲 속 길 한가운데 둘러 앉아 배낭 속의
간식들을 풀어 헤치니 푸르름 가운데 각종 색깔을 만들어 낸다.
오늘 모임을 주도한 분이 아침부터 준비한 두툼한 술빵과 과일, 땅콩, 과자, 오이, 인삼막걸리 등등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걷는 즐거움이 있을까?
혼자 다니면 결코 즐길 수 없는 즐거움이 이 곳에 있다.
자연환경이 좋고 공해가 없는 곳이라 그런 곳에서만 자라는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나무에 이끼가 많고, 담쟁이들이 축축한 나무를 가지 끝까지 올라가며 휘감고 있다.
개구리와 두꺼비가 폴짝 폴짝 뛰어 다니고, 하얀 나비들이 무리지어 날고
가끔 검은 왕나비가 우아하게 공중을 가로지른다.
길과 숲과 곤충들과 사람들의 무리가 하나가 된다.
어느 순간 숲 끝에 닿으니 탁 트이는 갯벌과 바다.
한참 썰물 때인지 시야가 닿는 끝에는 바닷물보다 갯벌 끝만 보인다.
그리고 갯벌에서 놀고 있는 수없는 칠게들...
개미의 탄생이 수억년인데 이런 칠게도 수억년 쯤 될까?
겨우 몇 천년의 역사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부끄럽다.
언젠가 TV에서 만든 자연다큐먼타리인 '갯벌은 살아있다'를 보고 난 후
저 작은 칠게들이 갯벌에서 얼마나 많이 활동하는지
그리고 칠게들이 있기에 갯벌이 썩지않고 생명력을 가지는 것을
호기심 가득히 보고는 이제는 작은 칠게들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무수히 작은 몸짓으로 움직이는 칠게들 무리에 돌 하나 던지면
순식간에 자기 주변의 구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눈이 펑펑 오는 날 바다에 나가보면 함박눈송이가 수면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
그런데 그 칠게도 조금 감각이 둔해 졌는지 작은 돌을 던져도 움직임이 없다가
조금 큰 돌을 던지니 갯벌이 진동했는지 얼른 구멍으로 숨어 버린다.
그 칠게들 위로 하얀 갈매기가 낮게 날으면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갈매기 주위의 칠게들이 구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아이들에게 자연학습을 위해 바다를 볼 수 있는 조망대를 몇 군데 만들어 놓았는데
그 조망대의 뚫린 사각형 구멍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이
급냉으로 맞추어 놓은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하다.
오늘의 점심을 위해 장화리의 '갯벌식당'을 펜션들 숲을 지나 찾아 가는데
시골 아저씨들 길 바닥에 거하게 큼직한 돼지뼈가 보이는 감자탕으로 한 판 벌였다.
아마 혼자였으면 입맛다시며 같이 합석했을 것 같다.
이 근처에 식당이 많지 않은 듯 식당 앞에 대형 버스들이 몇 대 있고
그 버스에서 토해 낸 아주 작은 아이들로 인해 갑자기 식당안에 참새들 무리처럼 시끄럽다.
된장찌게가 주 메뉴인 이 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살이 통통한 간장게장이 먹음직 스럽다.
곁들여 내오는 제육볶음도 입맛을 땡겨, 반찬 맛에 옆 사람이 덜어 놓은 밥에 손을 댔다.
그렇게 먹고 7000원. 시골인심이 좋긴 좋구나.
이제부터 바닷가 뚝방길을 걷는다.
뚝방길 입구에 벤치 몇 개. 이 곳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
어느 날은 그런 시간도 있으리라.
뚝방길을 걸으니 깊 옆 숲속에서 놀던 작은 갯강구들이 부지런히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을 친다.
그 들의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어디에도 발에 밣혀 죽은 갯강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길 건너편에 펜션의 모습들이 거대한 성을 보는 듯하다.
강화에는 펜션이 얼마나 많은지 일반 주택보다 펜션이 더 많은 것 같다
바다물은 아직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갯골에서만 보인다.
이렇게 끝없이 평평한 넓은 갯벌은 처음 보는 것같다.
보통 갯벌들은 군데 군데 깊은 골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곳은 그런 골하나 보이지 않기에
감탄하며 지나는데 드디어 보이는 골에 아낙네 두 분이 갯벌을 호미로 뒤지며 무엇인가를 잡고 있기에
소리쳐 무얼 잡는지 물어보니 '맛'을 잡는다고 한다.
내가 알기에 맛은 철사줄로 잡는다.
바다에 나가보면 긴 조개인 '맛'이 숨쉴 수 있는 부분만 갯벌위로 조금 내 놓고 하늘로 물을 뿜는다
그 때 열린 조개 사이로 철사줄을 넣으면 입을 꼭 다물어 끌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저렇게 갯벌을 호미로 뒤지는 것은 대개 바지락을 잡거나 갯지렁이를 잡는건데
바지락은 쇠갈퀴로 잡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갯지렁이를 잡는 것 같은데
언젠가 갯지렁이를 잡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혹시 불법은 아닐까?
우리보다 일찍 떠난 다른 무리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금발의 외국여자가 한국말로 유창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
내가 외국나가서 영어를 할 때 외국인도 나를 이상하게 볼까?
제방길 끝에 쯤에 다시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니 오전에 걸었던
숲 속길이 다시 펼쳐진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올 때도 편히 걸을 수 있도록 바다쪽 방향의 나무들 사이를 밧줄로 엮어 놓아
나그네를 배려한 모습이 보기 좋다. 그 길을 오늘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기분.
몇 시간을 흥얼거리며 노래를 할 수 있는 나만의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걷기 여행.
노래를 잘 해도 좋고 잘 못해도 뭐라 하는이 없는 나만의 여행.
수십년 동안 머리 속에 있던 노래들이 저절로 흘러 나오지만 그래도
거의 주변환경과 자연에 어울리는 노래들만이 주요 레퍼터리들이다.
요들송, 하이킹을 주제로 한 포크송들, 동요들,
바람과 비와 햇빛과 구름과 나무와 산과 바다와 곤충들이 내 주요 레퍼터리들이다.
그 숲속에서 내 레퍼터리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버섯들이다.
고목에 붙어 몸집을 키워가는 버섯도 있고
혼자 독야청청 빛을 내내 버섯들...
이 곳 강화에 사는 사람은 지난 수요일 다른 코스를 걸을 때
많은 영지버섯들을 캤다 한다.
버섯을 잘 모르는 도시 사람들은 어느게 식용버섯인지 독버섯인지
모르기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한다.
그렇게 숲길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제방길.
그 제방길에 해병대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장병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도 해주고
바닷물을 막아 놓은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런데 모두 승용차에 각종 낚시 도구들을 즐비하게 준비하여 모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월척을 낚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은 또 다른 월척을 이 제방에 마구 뿌리고 있다.
분명히 낚시터 주인이 준비해 놓은 화장실도 있을텐데
혹시라도 잠시 자리 비울 때 월척이 올지도 모른다는 조바심때문에
멀리 가기 싫어 바로 뒤의 뚝방 길에 실례를 하느라 얼마나 많은 검은 덩어리들이
눈에 보이는지...
그러다가 맨 앞에 서서 길을 걷던 내게 보이는 돌발상황 발생.
저기 몇 십미터 앞에 허연 남자의 엉덩이가 보인다.
내가 뒤돌아서서 내 뒤를 따라오는 여자들을 막아 섰더니 왜 그러느냐며 놀란다.
한참을 보고나서야 사태를 짐작한 듯 모두 뚝 아래로 내려갈려다가
그래도 나들길이 이 길인데...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진행.
뚝방길을 내려오니 펜션들이 모여 있는 펜션촌을 지나니 여기 저기서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행복은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우리들에게도 있고,
문명의 혜택속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속에서 즐기는 저들에게도 있다.
다른 환경속의 남을 이해하는 배려도 길을 걸으면서 배운다.
드넓은 갯벌위에 부서진 나룻배 하나.
왜 그렇게 부서져서 갯벌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연을 얘기하는것 같아
나중에 다시 대화를 나누고파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간다.
변화가 별로 없는 길고 긴 길을 걷고 있으니 싫증이 날 법도 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지난 번 8코스를 돌고 난 뒤 다음 긴 거리의 7-1코스를 걸을 때
걷는 것을 절약하기 위해 미리 걸어 두었던 길까지 도착했다.
지난 번 해병부대의 뒷마당에서는 장병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역시 장병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아마 지난 번돟 이맘때 쯤인 것 같다.
군생활동안 축구와 구보 그리고 내무생활을 빼면 무엇이 있으랴..
이 길이 지루할 때 쯤...멀리 사람들의 무리가 가득한 오늘의 목적지 동막해변이 보인다
해변이면 사람들이 물을 즐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물보다는 갯벌을 즐긴다.
갯벌에서 무언가 캐내는 아이들의 즐거움과
연인들끼리 갯벌속에서 뒹굴고 서로의 깨끗한 모습이 개흙의 지저분함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 이 곳에 온다.
벗은게 매력이고 당연시되는 그 무리속에서, 우린 배낭과 지팡이를 가지고 이방인이 된다.
다같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힘든 시간을 달래고, 최종 도착스탬프를 찍을 곳을 위해
분오리 돈대 도착. 오늘 손님이 많아서인지 대련횟집의 아줌마가 무척 바쁘다
우린 모두 셀프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또 다른 길에서의 만남을 위해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길은 나를 자연속에 일부가 되게 하고
길은 나에게 인내심을 주고
길은 내 생활의 패턴을 바꾸게 해 주었다.
죽는 날까지 한 점 우러러 부끄럼없기를 바랬던 시인처럼
죽는 날까지 한 걸음 한 걸음 타박 타박 걸을 수 있는 작은 힘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같이 걸었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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