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교동도 나들길

carmina 2011. 10. 30. 01:11

 

2011년 10월 29일

 

강화도, 우리나라의 5대섬 중의 하나인 만큼 여러 개의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석모도가 가장 큰 것 같고, 그 다음으로 교동도인가?

 

나는 보지 못했지만 강호동의 1박2일이란 프로그램에서 교동도가 소개되었다 한다.

그만큼 교동도는 강화도보다 더 사람의 시선을 받을만 한 곳이다.

 

강화 나들길의 기존 8코스 외에 교동도 새나들길도 생겼고, 나들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모여 길을 떠났다.

 

강화의 서편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15분.

그러나 물 때를 못 맞추면 수면이 낮아 페리호가 돌아서 가야 하므로 50분이 걸린다 한다.

강화 터미날에서 창후리행  9시 7분차를 타라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어  필히 시간을 맞추어야 했다.

 

어제 오후에 직장에서 단체로 청계산등산을 했는데, 1500개 정도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무릎관절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평소 나들길 코스가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기에 이정도야 견디겠지만

토요일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어, 몸보다는 날씨 때문에 힘든 걸음이 될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거리에 비가 촉촉하다.  각오 좀 해야겠다고 떠났는데, 강화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 있었다.

 

가로수 은행나무들이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거리로 창후리 행 32번 버스가 한적한 강화길을 달린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창후리 앞바다에는 작은 목선들 주위로 많은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비행하고 있고

주차장엔 대형 트럭들과 승용차들이 줄지어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에 표를 사고 인적사항을 적는다. 모두 승선. 배의 2층에 작은 선실이고 여름 휴가철이 아니라 손님도 많지 않다. 

 

단체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좋은데 배를 타는 것은 지상을 달리는 교통수단보다

더 기분이 좋다. 왜일까? 희소성때문에 그런건가?

 

아침에 교동도행 배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차는 가득하다. 관광용 승용차보다

일때문에 가는 차가 더 많은 듯 보인다.

 

배가 떠나니 배와 사람만 가는 것이 아니고 갈매기가 같이 따라온다.

몇 명이 손에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유혹하지만 손에 든 새우깡보다는

던져서 하늘에 떠 있는 새우깡을 나꿔 채 먹거나, 수면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먹는다.

기름으로 튀긴 새우깡을 먹는 갈매기의 위는 튼튼할까?

 

서해는 황해라 부른다. 누구나 배를 타면 왜 황해라 부르는지 금방 안다.

배를 타고 가도 여느 바다같이 푸른 바다보다는 누런 황토물만 보이는 곳이 바로 서해다.

중국까지 가도 이렇게 황토색일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옛 모습을 잘 간직했던 교동도도 이제

서서히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오염되어 가고 있는 현장이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강화도와 교동도는 잇는 연육교 건설현장. 공사가 약 3분의 1 정도 진척된 것 같다.

 

그렇게 겨우 15분정도나 갔을까... 교동도 선착장이 보인다.

 

교동의 월산포선착장에는 선원보다는 무기를 든 해병대가 먼저 보인다.

그만큼 북한이 가깝다는 이야기다.

 

그리 힘들지 않은 운동이지만 준비운동을 잊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번씩 나온 주부들이 많으니까 형식적으로라도 몸의 근육들을 풀어주고 파이팅으로 출발.

 

섬을 한바퀴 도는데 16키로 정도, 산을 올라가는 코스가 있어 시간은 6시간 정도.

 

교동도 이 작은 섬에도 우리나라의 역사의 흔적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다.

한양을 버리고 피신나온 우리의 왕족들이 이 작은 섬에도 여기 저기 피신해 있었다.

 

강화도에서만 보던 나들길 이정표를 이 곳에서도 보니 반갑다.

거기다 더 반가운 것은 마을 입구에 서있는 장승.

 

사람보다 장승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교동면 상룡리.

 

벌써 감나무 잎들이 다 떨어지고 감들만 주렁 주렁 열린 것이 보일 정도로 가을이 깊었던가?

이 곳 감들은 별로 따지 않은 듯 손에 닿을 듯 낮은 가지에 열린 감도 그대로 있다.

우리들 누구나 감을 따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그대로 지나친다.

 

첫 눈에 이 곳 마을은 강화도의 다른 마을보다 느낌이 다르다.

전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랄까?

마치 유럽의 한적한 교회같이 전형적인 교회 모습이 보이고

일반 주택들도 양철지붕들과 혹은 새마을 운동 시작할 때 권장했던 스레이트 지붕들로 지어진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초가지붕들은 정부의 강압에 의해 바꾸었지만 지붕 아래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렇게 지시하고 하늘에서 헬기로 내려다보며,

'우리의 농촌이 이렇게 변했습니다'하고 보고 하는 장관들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농촌집들은 변하지 않는 대문들이 고풍스럽다.

 

그 대문앞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마당일을 보고 있기에 내가 뒷 모습을 사진을 찍으려 하다

그만 들켜버렸다. 다른 곳의 할머니 같으면 찍지 말라고 말씀하셨을텐데 이 할머니는

적극적으로 사진찍으라고 포즈를 취해 주신다. 카메라의 눈으로 보니 우리 어머니 모습같아

흠칫 놀랐다.  너무 고마운 할머니.. 손을 덥석 잡으며 '건강하세요' 하고 당부한다.

 

할머니는 나보고 아가씨들 먼저 갔어...아가씨들...이라기에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우리랑 같은 배를 타고 온 4명의 여고생들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갔는가 보다.

 

할머니 집 뒤의 폐건물. 이 곳을 아는 일행이 저곳이 교회였는데 교동도 입구로 이사했다 한다.

 

차 하나 달리는 않는 조용한 신작로길을 잠시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는데 모두  탄성을 지른다.

이렇게 길이 강화도와 다를까?  뭐랄까...인적이 거의 없는 길을 밟은 신선함이랄까?

 

낙엽이 떨어지고 그 낙엽들이 뭇사람들의 발길에 짓눌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다.

죽은 낙엽이 살아있다는 말이 어불성설이지만, 우린 모두 처녀림을 밟는 기분이다.

 

가을날의 햇살이 빽빽한 나무 숲사이를 뚫고 들어와 낙엽을 캔버스로 하고 커다란 묵화를 그리고 있다.

 

얼마나 걸었던가?

그 숲 사이로 작은 기와집 건물이 몇 채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공자를 모시는 교동향교라 한다.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유교사상에 커다란 정신적인 지주인 공자.

서양문화만 이 곳 강화를 통해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중국문화도 이 곳을 통해 들어왔다.

 

향교안으로 들어 방명록에 서명하고 천천히 향교내를 산책하니, 오랜 세월동안 그대로 건물을 지켜온 듯

툇마루와 방문, 그리고 창문하나 모두 옛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향교뒷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보다 향교의 나이가 더 많을까?

수북한 낙엽이 또 다른 세월의 나이를 만들고 있다.

 

이런 전설같은 오랜 지명이나 물건은 치유의 힘이 있는지

향교 옆에 있는 성전약수터에 써 있는 글은 이 약수가 위장병에 단 시일내에 약효가 있다는

전혀 근거없는 말을 오래된 붓글씨로 표시하고 있다.

 

향교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이상한 가지들이 보인다.

모든 가지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몇 가지만 죽어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 억지로 죽은 나무를 심어 놓은 것같이 보인다.

착시인가? 아니면 진짜 죽은가지인가?

 

다시 낙엽이 가득 쌓인 소롯한 길을 걷는다.

이런 길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시몬 들리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향교를 지나 아스팔트 길을 조금 올라가니 화개사가 있다.이 뒷산을 화개산으라 불리운다.

같은 아스팔트 길이라도 차가 거의 안다녀 낙엽이 더 돋보이는 아스팔트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이 곳 화개산엔 봄철에 많은 철쭉이 가득하게 필 것 같다.

 

잘 다듬어진 정원과 오랜 세월 절과 같이 한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하나 찍고

화개산을 오른다.

높이가 약 260미터. 그다지 높지는 않은데 어제도 깍아지른 높이의 산행을 해서인지 숨이 가파르다.

 

산이 그다지 크지 않아 허리를 돌아가지 않고 가파르게 산을 오른다.

 

산위에 올라가니 교동도를 감싸고 있는 논과 밭 그리고 고구 저수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땅의 모습들이 빙 둘러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산 정상의 정자에서 모두 둘러 앉아 가지고 온 과일 들과 떡, 고구마, 막걸리 등

입을 즐겁게 해주는 간식들로 잠시 여유를 갖는다.

 

여유는 우리들만이 갖는 것이 아니라 풀 숲의 방아깨비도, 오랜만에 달콤한 설탕끼가 있는

우리 간식에 맛들인 왕벌도 같이 즐기고 있다.

 

사람과 하늘과 산과 미물들이 함께 모여 나들길을 즐기고 있다.  

 

정상을 찍고 경사면을 내려 오는 길 옆에 마을 사람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있는데

그 위에 이상한게 하나 있다. 이름하여 효자묘.

효성깊은 어느 아들이 부모님의 산소에 오랜 세월 엎드려 절을 해서

산소 바로 앞에 손자국과 무릎자국이 선명하게 있는 곳이 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정성을 들였는지 손자국에 덮힌 낙엽을 들치고 보니

바닥의 흙이 단단하고 오랜 세월 접촉했던 흔적이 보인다.

 

죽어서 이렇게 정성을 들인 효자라면 부모님 살아 계실 적에도 효자였겠지?

 

산을 내려가는 길은 유럽의 알프스에서나 볼 수 있는 잘 다듬어진 길이라 그 길이 너무 좋아 

앞서가는 일행들이 시야에 멀리 사라질 정도까지 오래 오래 서서 길을 라보았다.

길 침 좋다하고 내려오니 아니나 다를까  언덕 입구에 아치형 조형물에 써 있는 말은 천화문 (天華門).

화려한 하늘문이라는 말인가? 하늘은 정말 화려할까?

하늘은 정말 내가 내려온 길 같이 아늑함을 주는 곳일까?

 

천화문을 지나 왼쪽 계곡에 돌로 만든 돔 형식의 한증막이 있다.

1972년까지 사용되었다는 한증막에는 어디서 불을 땠는지 흔적이 없지만

에스키모의 이글루같은 조그만 문에서 기어 나와 차가운 물을 끼 얹는 작은 물저장고가 있다.

 

벌써 시간이 1시 반.

배도 출출하다. 일행이 많기에 이미 교동도로 들어오는 배안에서 각자의 메뉴를 정해

오늘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통보해 놓았다.

 

작은 마을로 가는 길에 초등학교 운동장에 여자 아이들 예닐곱명이 둘러 앉아 놀이를 즐기고 있기에

손 흔들어 인사했더니 우리보다 애들을 반기는 것보다 애들이 더 우리를 반긴다.

 

대룡시장이 있는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니 어느 집에는 지붕에 곡식을 널어 말리고 있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 코를 따라가니 방앗간에서 들깨기름을 짜고 있다.

 

마치 부천에 드라마 야인시대 촬영 셋트를 위해 왜정시대 서울의 종로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 곳은 굳이 셋트장이 아니라도 왜정시대 모습 그대로 작은 시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 골목의 간판도 오랜 빛바랜 페인트로 미용실, 교동이발관, 대룡장의사, 촌스런 약국상호들...

그 가게들 앞에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문앞에서 지나가는 우리의 인사를 받고 있다.

 

점심을 도가니탕으로 맛있게 먹고 나니 주인 아줌마가 밭에서 일반 무와 순무를 뽑아 깨끗이 씻어서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자연의 간식거리. 무를 썩뚝 썩뚝 썰어 봉지에 챙겨서 모두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

 

수확과 결실의 계절 가을, 온 천지에 먹을 것이 가득하다. 길가에 열린 수세미도 그렇고

도저히 유혹을 견디지 못해 누구의 소유라고 생각되지 않는 감나무에서 작은 감도 따서 챙겨 넣었다.

 

광활한 논의 신작로를 걸어간다. 건초더미들이 아직 포장이 안된 채 쌓여 있고,

멀리 우리가 올라갔던 화개산의 모습이 정상의 망루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이 곳은 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곳이라 여기 저기 고통받았던 흔적들이 있다.

연산군이 쓰던 우물은 가운데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박혀 있기도 했다.

어떤 우물은 황룡이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우물안에는 황룡의 배설물인지

온갖 지저분한 액체가 가득했다.

 

이 곳 교동도에 사람들이 많이 도심지로 떠나 남산포구로 가는 길 옆에 많은 집들이

폐가 수준이고 어느 곳은 폭삭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저런 집을 하나 사서 개조하여

작은 별장이나 하나 만들까?

 

포구에 어느 도회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 잡은 어획물들을 양동이에 넣어 가지고 올라 오는데

자세히 보니 커다란 굴들.  아직 씻지 않아 갯벌색의 굴이지만 먹고 싶어 양해를 구하고 하나를 꿀꺽.

비린내가 난다. 그래도.. 맛있다. 난 어쩔 수 없는 바닷가 태생이다.

 

교동읍성을 지나 이제부터는 끝없는 바닷가 갈대밭을 걷는다.

솜털같이 부드러운 억새와 갈대들이 뒤엉켜 있고, 뚝에는 끝없이 토끼풀과 낮은 잡초들이

몇 키로 나 되는 뚝방 길을 푹신하게 만든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을의 노래, 고향의 노래, 갈숲, 산길, 바람과 나...

 

멀리 우리가 도착했던 월선포 선착장에 페리가 들어왔다 가는 모습이 보이니

내 뒤를 따라 오던 일행들이 마구 소리를 쳐 댄다.

기다리라고...날 데리고 달라고..

 

선착장에 긴 긴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주차되어 페리를 기다리고 있다.

 

페리에 타고 선상에 나가니 노을이 진다.

바닷가에 긴 빨간 그림자를 드리우고 해가진다.

 

노을이 물드는 바닷가에서

줄지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지난 날의 못다한 꿈을

남모르게 달래보는 호젓한 마음...

 

페리호에서 내리는 주차장 입구에 망둥어와 홍어를 말리기 위해 널고 있다.

낯익은 어릴 때의 모습.

 

교동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들어간 느낌.

그 곳에 10살의 내 모습이 있고, 우리 집이 있고, 내 친구들이 있고,

이웃집 아저씨가 있고,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오늘 길을 같이 걸은 인생의 형제들이 있다.

 

어느 날 이 길을 다시 한 번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