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한 강화도 나들길 6코스

carmina 2011. 10. 7. 22:38

 

2011. 10. 3

 

요 며칠 전 갑자기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들에게 전화와 이메일이 왔다.

한국 잠깐 들어가는데 나와 함께 걷고 싶단다.

 

내가 걷기를 하고 늘 내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을 보고 그런 여행이 그리웠나보다.

 

10년 넘게 같이 노래를 하며 즐긴 친구들 몇 명이

한국의 IMF 전후에 모두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을 가 버렸다.

모두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니 모두 잘 정착했고 이제는 살만하다.

 

입국할 때 모두들 내 조언을 받아 걷기에 적당한 운동화를 가지고 왔고

미국에서 온 친구는 조금 여유가 있어 1박 2일로 지리산 둘레길을 가기로 하여

내가 회사에 휴가를 하루 내었고 버스 예약과 민박예약도 모두 준비했지만

마지막에 친구의 급한 상황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캐나다에서 온 친구 부부는 개천절인 10월 3일 하루 전에 입국하기에

도착 즉시 우리 집에 와서 자고 다음 날 휴일을 이용하여 나들길을 걷기로 하고

어느 코스를 소개할 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갤러리 찻집에서의 먹거리가 좋은 6코스를 택했다.

 

마침 지난 주 토요일 5코스를 걸었기에 지금 강화의 멋진 풍경을 알기에 나도 무척 기대가 되었다.

 

나들길을 걷기 위해 한번도 승용차를 이용한 적이 없지만 아내도 동행하고 친구도 비행 여독도 풀리지 않은 채 가기에

불편한 편함을 택했다.

 

소풍가는 즐거움에 아내는 계란을 삶고, 과일을 챙기고.. 난 미리 얼려놓은 물만 챙긴다.

 

10시 출발.

떠나면서 점심을 먹을 갤러리 찻집에 이제 떠난다고 전화하고..

지난 토요일 보았던 일부 논의 황금벼가 하룻만에 벼베기를 했는지 황금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볏짚을 모아 햐얀 비닐로 담아놓은 거대한 건초더미들이 구름하나 없는 맑은 하늘과 멋있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 눈에 반한 황금벌판. 캐나다 친구는 이런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모습을 거의 15년 동안 보지 못했기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래..이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몇 년 전 한국에 방문해 근무중인 나를 찾아 와 점심을 같이 할 때도 나는 좋은 메뉴보다

오히려 한국의 서민적인 맛이 있는 칼국수를 대접했다.

 

논뚝에 심어 놓은 콩가지 하나 조차도 관심을 갖는 친구.

 

인삼스파옆으로 해서 산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번 왔을 때 막혀 있던 길이 오늘은 잘 다듬어져 있고

길에 작은 골이 생겨 나무 몇개를 밧줄로 묶어 임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아직은 푸르름이 가득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대개 한국형 소나무는 구불 구불 자라는 법인데 이 곳의 소나무는 마치 낙엽송같이 일직선으로 곧게 하늘로 뻗어 있다.

작은 약수터에는 나들길을 개발한 화남 선생의 한시가 있어 나그네의 발길을 멈춘다.

며칠 비가 안 왔기에 약수터의 물이 고여 있어 한 모금 하기를 포기한다.

 

얼마 걷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벌써 50분을 걸었다.

꾼들이랑 걸으면 더 가야 휴식을 취할텐데, 일부러 잘 다듬어진 산소 앞에서 잠시 쉬며 하늘을 본다.

산소 주위에 빼곡한 소나무들 그리고 멀리 울창한 삼림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봄이 되면 산에 송충이 잡으러 다니곤 했던 국민 모두의 정성이 저렇게 멋있는 조림을 만들어 놓았다.

 

자 또 가자..

 

골골이 길을 따라 가고, 나들길 걷는 이들을 위해 잘 다듬어진 능선길에 모두들 기분 좋다하며 즐거워 한다.

느림의 즐거움. 흙을 밟는 즐거움. 오솔길을 걷고, 산길을 간다.

 

여기 저기 지난 해 곤파스 태풍에 쓰러졌던 수많은 나무들도 이제 서서히 스스로 아물어 간다.

비록 쓰러진 나무에도 잎이 여전히 자라고 있고, 여기 저기 진로를 트기 위해 톱으로 잘라 놓기는 했지만

죽은 나무들도 결국 흙에는 생명이 된다.

그 나무들 속에서 벌레가 자라고, 나비들의 쉼터가 된다.

 

걸을 수록 기분이 좋은 능선길을 지나니 훤한 공간이 펼쳐진다. 선원사.

 

지난 번 길을 걷고 나서 역방향으로 가는 팻말이 없다고 나들길 게시판에 투덜거렸더니

이젠 여기 저기 역방향 이정표도 세워 놓았다.

 

선원사 부처님의 뒤로 돌아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내려가 팔만대장경을 제작했다는

절 앞에 있는 약수물의 수면에 이끼가 끼어 있어 

대신 옆의 작은 쉼터에서 땀과 갈증을 맛있는 배를 나누어 먹으며 해소한다.

 

연꽃 잎이 모두 사라지고 잎이 커다랗게 자란 연밭을 지나 고즈넉한 작은 동네. 인적이 없다.

그래도 가끔 동네 어른들 지나면 꼬박 꼬박 인사하며 지낸다.

 

좀처럼 인적이 없었는데 모퉁이를 돌아가니 애들이 정자에서 놀고 있다.

친구는 펜션에 놀러온 도시 아이들이라고 얘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애들의 남루한 옷차림으로 보아 이 곳 마을 아이들 같다.

나들길을 몇 번 걸었지만 애들 보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다.

시골의 총각 처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마을 끝에 가요를 작사하는 작가가 있어 나들길 꾼들을 반겼었는데

오늘은 작가의 쉼터라고 써있는 작은 오두막에 인기척이 없다.

그러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쉬면서 차와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야외의 탁자에 준비해 놓은 정성은 오늘도 그대로 보인다.

 

다시 숲길. 이 코스가 이런 재미가 있어 일부러 6코스를 택했다.

숲길과 마을이 계속 번갈아 가며 나타나기에 눈과 발길이 지루하지 않다.

 

언덕을 넘어 모두가 조금 지쳐갈 무렵 언덕을 넘으니 지붕위의 커다란 호박과

커다란 그물로 막아 놓은 과수원에서 아직도 작은 배가 익어 가고 있다.

 

요즘 한창 수확철이라 마당에는 고구마가 가득 쌓여 있고 빨간 고추들이 태양빛에 말라간다.

마당에 묶인 커다란 개들만이 나그네들에게 아는 척을 한다.

 

오늘의 점심 장소, 갤러리 찻집

손님을 접대하고 싶어 지난 번 나들길 걷는 중 오리백숙과 닭도리탕을 가장 맛있게 먹은 곳이기에

일부러 이 코스를 택한 이유도 있다.

 

미리 전화를 해 놓았기에 우리 자리가 준비되어 있고

금방 갖가지 시골 밑반찬이 상에 가득 놓여진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닭도리탕과 시원한 강화 찬우물 막걸리

친구는 막걸리가 이제껏 먹어 본 것 중 가장 맛있다며, 단숨에 한 사발을 들이킨다.

 

구석 구석 화가인 쥔장 아저씨의 자연을 이용한 인테리어 솜씨들에 아내도 무척 좋아한다.

 

맛있는 점심과 따뜻한 숭늉을 먹고 나와 끝없는 벌판을 걸어간다.

바람에 황금벌판이 살랑 살랑 춤을 춘다.

 

무심코 발길을 내 딛다가 순간적으로 발을 들었다.

큰 사마귀 한 마리.  바로 옆에 인기척도 못 느끼는지 꿈쩍도 않는다.

메뚜기들은 거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휙 휙 날아다니는데

이 녀석은 감각이 무딘건지 아니면 우아한 척 하는 건지, 머리조차 꿈쩍이지 않는다.

그래..미안하다..  조용히 지나가마..

저 멀리 길 끝에 사람인지 아니면 물체인지 모르지만 두개의 그림자가 보인다. 무얼까?

 

커다란 황금벌판이 이어진 끝에 잡초밭이 무성하다.

그런데 그 잡초가 잘 다듬어져 있어 지난 번 강화사람에게 물어 보니

벼농사보다 한약재료로 쓰이는 피농사가 더 수입이 많단다.

 

잘 지어진 집들 옆을 지나 대안학교인 마리학교 쪽으로 가는데

조금 전에 보았던 두개의 검은 물체가 굳게 닫혀 진 마리학교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젊은 남녀. 마리학교 옆에 정자가 있는데 왜 굳이 이런 곳에서 먹을까.

덕분에 우리가 정자에 앉아 편하게 쉬다가 또 길을 간다.

 

마리학교 옆으로 다시 산길을 간다.

조금 가파른 산길을 가는데 누군가 밤을 땄는지 바닥에 알맹이가 사라진 밤송이들이 무수하게

길에 깔려 있다.  물론 남은 밤톨을 줍고도 싶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그건 농부나 동물들에게 양보하자.

 

산 길 끝에 있는 두두미 마을

이 곳은 여기 저기 재미있는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솟대와 장승을 세워 놓았고, 흔치 않은 모과 나무도 입구에서 자라고 있다.

 

황금벌판위로 큼지막하게 핀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그 바람에 놀란 산비둘기가

푸드득 거리며 숲속에서 뛰쳐 날라와 먼 시야로 사라져 버린다.

 

마을 여기 저기 고구마를 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고구마를 캐고 난 자리에 손가락굵기만한 고구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어느 고추밭에는 고추들이 하얗게 백화병에 걸려 밭고랑에 낙엽처럼 떨어져 있어

농사를 모르는 나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시 고개를 하나 넘어 가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염하강. 

강화도와 김포 사이에 있는 바다를 이 곳 사람들은 염하강으로 부른다.

이젠 산길을 내려가자.  바다로 가자..

 

바다쪽으롷 가는 마을 끝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계신다. 

 

이제는 갈 수 없는 먼 길. 언젠가는 나도 저런 모습이 편하게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는 부지런히 걷자.

 

몇 몇 아이들이 자전거를 즐기고 낚싯군들이 갯벌 끝까지 걸어나가 바닷 속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즐기는 바다 뚝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광성보를 향해 힘차게 발길을 내 딛는다.

 

광성보 주차장에 관광객들이 타고 온 자가용들이 가득하다.

시원한 음료수 하나 마시고 강화도 순환버스를 기다리다가 마침 버스가 오기에 물어 보니

이건 돌아가는 버스란다. 반대 방향 버스 도착시간을 물어 보니 워낙 차가 많이 막혀 기약이 없단다.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택시가 막 떠날 때 쯤 버스가 왔다.  머피의 법칙이네.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강화 터미날로 가는데 강화를 빠져 나가는 반대편 차선에 차들이

거의 주차장의 차들처럼 긴 행렬을 이루고 있어, 일찍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화풍물시장에 들어 시장 구경을 즐기다가 느지막히 집으로 돌아 왔다.

 

모두가 행복했던 날.

 

이 길을 소개하고 다시 걸은 나도, 아내도

너무 즐거워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도착 인사 드리는 것도 잊은 캐나다 친구 부부도 모두 오늘을 만족해 했다.

 

다음 주는 이 친구들과 제주도의 올레길을 걸을련다

또 어떤 즐거움이 우리를 반길까..  설레임으로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