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사단법인 나들길 창설 2주년 기념 전 코스 걷기대회

carmina 2012. 6. 2. 21:39

 

 

2012년 6월 2일이 그런 날이란다.

내게는 개인적으로 나들길을 찾은지 꼭 2년 되는 날이다.

나들길 전체 15개의 코스 중 배로 가야만 하는 몇 개 코스를 빼고

11개의 코스에 각자 신청을 받아 20명정도 인원으로 나누어

모든 나들길 땅을 동시에 밟는다.

강화군청에서 기념 책도 준비하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책은 이전에 받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받아 두었다.

 

2010년 아내와 함께 2코스 호국돈대길을 찾은 후 나들길에 매력을 느껴

이 곳을 2년동안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혼자 가끔 걷다가 지난 해 8월 이후에는 길벗들과 같이

걷는 재미를 느껴 가능한 이 곳은 토요일에 그 들과 함께 걷는다.

 

강화로 가는 버스에서 내 이어폰에서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이 길게 활을 그리며

느리고 느린 선율이 들려 온다.

그렇게 느리게 살기 위해 걷기를 나선다.

출발지에서 종착지까지 버스로 가면 15분이면 갈 길을

걸어서 걸어서 5시간 6시간 걸려 힘들어도 즐겁다고 걷는다.

 

내 인생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느리게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돈을 따지고 이익을 위해 하는 거라면 빨리 빨리 끝내고 싶다.

회사에서는 몇 천억, 몇 조 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계산하기 위해

늘 내가 회사에 받는 월급만큼 기여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회사에 큰 기회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빨리 처리해야 하고,

세계 유수의 업체들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가지고 겨루기 위해

내가 맡은 일을 처리하느라 매일 야근하고 수없이 많은 서류를 보고 또 본다.

 

그러나 걷는 날엔 가능한 천천히 걷는다.

남들보다 빨리가기보다는 남들보다 느리게 걷는 것이 좋다.

전혀 돈될 것 없는 야생의 꽃들과 나무들에 관심을 갖고

작은 벌레와 산새들의 울음소리, 골짜기에 깊이 숨어 있는 샘물에 관심을 갖는다.

 

걸을 때는 누구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않고

어느 지역에 아파트를 사면 가격이 오를 수 있고

어떤 장사를 해야 한 건 잡을 수 있고

어느 회사 주식이 전망이 밝다는 등

혹은 애들을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하느냐는 등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걸으며 정치와 사회와 종교와 사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순수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들길을 찾는다.

꽃 이름을 궁금해 하여 향기를 맡아보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무슨 나무인지 서로 물어 보기도 하고 나무를 안아 주기도 한다.

하늘이 파래서 좋다고, 구름이 끼어 좋다 하고, 비가 와서 걸을 맛이 나고

바람이 불때는 양팔을 펼쳐 걸으며 시원하다는 말하기를 즐겨한다.

 

여름에 땀 많이 흘리며 걸어서 좋다하고

봄 가을엔 딱 걷기 좋은 날들이라고 좋다하고

추운 겨울엔 눈이 오면 좋겠다고 서로 조잘대며 걷는다.

 

살면서 그런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에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강화 오일장이 서는 날

예전과 다르게 터미날 옆에 풍물시장에 아침 시간인데도

이미 모든 장삿꾼들이 좌판을 벌려놓고 손님을 부른다.

이미 터미날 빌딩을 지날 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날 때부터

오늘이 평소와 다른 날임을 알 수 있었다.

 

풍물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냄새가 많이 나는 가축들을 판매하는 장터

이쁜 토끼들, 씨암닭들, 병아리들, 새끼 오리들, 너무 귀여운 강아지들

풍물 시장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채소들들을 파는 할머니들이 모두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중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베트남 새색시도 끼어 들었다.

도심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달걀꾸러미,

강화에서만 볼 수 있는 순무들..

대량으로 물건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모두 조금 조금씩 그 날 팔 것만 가지고 나온 것 같다.

생각같아선 이것 저것 사고 싶지만, 나는 짐이 가벼워야 하는 나그네..

사진 속에만 가득 담아왔다.

 

24명의 길벗들, 2명의 어린아이도 있고

나이 70이 넘은 분들도 있고, 부부가 같이 나온 사람들도 있다.

 

지난 해 가을 주위의 논이 황금벌판으로 변해 있을 때 이 곳을 찾았는데

계절이 지나 이젠 막 심어 놓은 모들이 부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간신히 물 위에 지탱해 있는 논에 농부들이 비료를 손으로 뿌리고 있고

간혹 모가 덜 심어진 곳에 손으로 정리하는 벌판을 지난다.

 

인삼스파를 지나 숲을 걷는다. 숲을 걷는다.

어느 누가 미리 걸었을까?

누군가 자기가 숲을 헤치며 걸은 길이 다른 사람들의 길 안내가 될 줄 알았을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의 생이 다른 사람의 길잡이가 된다.

 

길 옆 산소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한다.

이 길을 몇 번 걸었지만 늘 새롭다.

같은 계절에 오는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방향만 같을 뿐 내 눈에 담아지는 주위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들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6코스의 능선길도 이 전의 모습과 다르다.

낙엽이 가득했던 길은 이젠 풀들이 무성하고

툭 트였던 시야는 가득한 나뭇잎들로 온 세상이 푸른 색 천지이다.

 

오솔길에 우뚝 서 360도 주위를 둘어 보아도 모두 빽빽한 소나무들

60대 말 70년대 초만해도 민둥이 산이 이젠 어느 산을 가도

바위로 덮힌 산 빼 놓고는 거의 나무들이 무성하다.

 

과거 전시행정을 위해 속전 속결로 나무를 식수한 탓에 경제효과가 별로 없는

수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울창한 숲이 공해를 막고 자연환경에 커다란 이익을 준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얼마나 자주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기 위해 나무젓가락을 만든 집게와

깡통을 만들어 몰려 다녔던가.

그 시절에 지겨웠고 징그러웠던 일들이 이젠 이런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잔디가 곱게 깔리고 얼마전 석탄일에 장식해 놓은 연등이 아름다운  선원사에 도착.

건강에 이상이 생겨 요즘 같이 걷지 못하는 여성리더가

간식으로 술빵을 만들어 몇 몇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정성이 고맙기만 하다.

 

선원사에는 아직 연꽃이 피지 않았지만 아마 한 여름 쯤에

이 곳 선원사는 연꽃을 보기위한 사람들이 붐빌 것이다.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마을 길을 지나고 논과 밭사이를 지난다.

커다란 나무에 흰 버섯곰팡이가 나무 하나를 점령하고 있다.

어떤 나무는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이파리 하나 없지만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 것 또한 아름답게 보인다.

 

최근 읽는 북한의 실상에 대한 책은

북한에는 에너지가 부족하여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연료로 쓰는 바람에

거의 산이 모두 민둥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의 산에는 벌목된 나무들이 많아도 모두 그대로 두고 있다.

아마 이젠 나무 연료로 쓸 필요가 없으니 가져가는 사람이 없나 보다.

 

길 바닥에 하얀 솜같은 홀씨들이 뭉쳐서 마치 눈같이 쌓여 있다.

이게 무슨 씨앗일까?

 

날씨가 더운지 몇 몇 힘들어 하는 사람이 보인다.

오늘 점심은 밥차로 해결한다고 한다.

 

코스 중간에 밥차가 오리고 되어있는 대안학교인 마리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 한 명이 한옥을 개조해 만든 학교의 마루에서 컴퓨터로

공부를 하고 선생님 한 분이 옆에서 지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밥차가 와서 배식을 하는데 모두 배가 고픈지

반찬을 많이 가지고 가 나중에는 반찬이 모자를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격에 비해서 반찬이 조금 부실하다.

차라리 즉시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는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밥차에 있는 기타가 눈을 끈다

알고보니 밥차사업을 하는 분이 저녁에는 라이브쇼도 하고

원래 직업은 공예가라하고...짜투리 시간에 이런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럽다...  모두 좋아하는 일이겠지.

식사 후에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 준다.

 

요즘은 묘지도 납골당형태로 바뀌는 것 같다.

가족이 죽으면 새 묘지를 만들지 않고 기존 묘지를 이용하여

납골당을 만들어 가족이 한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전에 보이지 않던 묘지 납골당들이 자주 보인다.

좋은 현상이다. 한 해에 묘지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 해도 대단히

보기 안좋아 어릴 때 부터 이 다음에 난 내 묘를 가지고 싶지 않다 했었다.

 

길가에 매실이 익어가고, 산딸기를 따먹으며 걷고

누군가 잘 찾기 힘든 네잎클로버를 무더기로 발견하여 환호를 지른다.

담장에 아름답게 장식된 빨간 장미와,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와, 안개꽃같이 작은 흰 꽃의 무리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개양귀비에 눈이 간다

 

앞서 가던 일행 주위가 갑자기 소란해 졌다

그리고는 후다닥하고 숲 속으로 무언가 사라졌다.

큰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서 달아 났단다.

 

6코스가 거의 끝날 때 쯤 누군가 동네 구멍가게를 발견하고는 뛰어 가

차디 찬 캔 맥주를 사서 나누어 준다.

한 모금의 맥주가 이렇게 맛이 있다니..

너도 나도 한 모금씩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다.

 

얼굴이 고운 하얀 머리의 동네 할머니가 이상한 사람들이 동네에 들어와

시끄럽게 하니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강화 땅을 걷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오래 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정색을 하시며 노인에게 오래 오래 살라는 말은 욕이라도 답변하신다.

그래서 우리 일행에도 나이 87살 드신 분이 같이 걷는다 하며

할머니도 같이 걸을 수 있다고 하시니 고개를 갸우뚱 하신다.

노인에게 무언가 소일거리를 주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여정이 끝나고 있다.

오늘은 전 코스를 걷기에 중간에 다른 팀도 만났다.

그런데 그 일행 중 한 분이 그 유명한 용혜원 시인이라 한다.

우리 모두 청하여 짧은 시 한 수를 들었다.

 

바닷가에 얼마 전에 행사를 위해 설치해 놓았던 조형물이

어떤 것은 보기 좋게 남아 있지만 어떤 것은 흉물로 변하여

바다를 부식되어 가는 쇳물로 오염시키고 있다.

 

모두 힘들지만 열심히 걸었다.

몇 몇이 기진맥진 했지만 그래도 웃으며 걸었고

남아 있는 물들을 나누어 마시고

배낭 속에 있는 간식들을 꺼내 먹으며 잠시 있을 이별을 아쉬워 한다.

 

그렇게 더운 초 여름의 걷기에 모두 만족해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는 다른 코스를 걸었던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라 온다. 손에는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책을 들고

아마 배낭 안에는 작은 선물이 들어 있을것이다. 

 

우리는 오늘 각자 어느 길을 걸었던간에 모두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