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3코스 역으로 걷기

carmina 2012. 7. 10. 23:32

 

2012년 7월 첫 주 토요일

 

100년 만에 왔다는 오랜 가뭄 끝에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는데

이젠 홍수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비 오는 수요일에 주말 날씨를 검색해 보니 토요일도 비가 온다.

도대체 난 왜 3코스의 능묘 가는 길을 걸을 때마다 비가 오는거야.

지난 해 나들길 벗들과 처음 걸은 3코스 걷기에도 비가 너무 많이 와

길을 가느냐 마느냐 고민했고, 지난 4월에 3코스를 다시 걸을 때도 비가 많이와

우회를 해야만 했고, 이젠 역으로 걸어야 하는 날에도 비가 온단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들여야 하나?

그래서 그런지 참가하겠다고 신청한 단원도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금요일에 다시 날씨를 검색해 보니 다행이 토요일은 비 소식이 없다.

그러나 비가 온 뒤의 더운 날씨라 습한 공기가 걱정되어 배낭에

손수건을 하나 더 챙기고 수건도 챙겨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맑아 진 날씨 만큼이나 참가 인원도 변덕을 부렸다.

다른 길로 갈려던 팀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인원이 순식간에 30명이 되었다.

많으면야 좋지..

나들길 리더가 오늘의 코스에 대한 설명을 칼라출력해와 떠나기 전에 간단한

설명으로 오늘 길의 의미를 부여한다.

 

가릉의 허브향기에서 출발. 바로 숲길로 들어선다.

숲이 비를 머금어서인지 온 대지의 공기가 촉촉하고 나뭇잎이 빛나고 있다.

지난 번 같았으면 오솔길도 모두 먼지가 풀풀 날렸을텐데

길도 약간의 물기가 있어 밟는 감촉이 다르다.

 

만약 비가 오는 날 이 길을 걸었다면 우비를 뒤집어 써서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습한 기온을 못 느꼈을텐데 오늘은 온 몸으로 나무의 향기를 받아 낸다.

어떤 이는 그 나무가 너무 좋은지 가슴으로 꼭 껴안는다. 맞아..이게 진정 사랑이야.

 

3코스를 순방향으로 걸었을 땐 못 느꼈던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길을 떠난지 2시간 정도 지났는데도 숲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마 전체 나들길 코스 중에 제일 긴 숲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랜만에 비를 촉촉히 맞은 두꺼비가 물길을 지나 숲길로 올라가고 있고

손톱만한 청개구리가 큰 나무 잎에서 우리들이 지나가도 움직일 줄 모른다.

 

처음에 왔을 때 비가 넘쳐서 작은 개울물을 건너 갈 수 없어 리더가 돌을 옮겨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오늘은 내가 커다란 돌을 들어 올려 징검다리를 놓아 보았다.

 

고려시대 희종의 무덤인 석릉이 비를 맞고 있다.

지난 번에는 주위에 이끼가 가득해 고색창연한 멋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이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에 다 씻겨 내려갔나?

 

나무들이 죽죽 뻗은 기분좋은 긴 숲길 끝에 작은 마을이 있다.

집  마당에 나와 있던 안주인이 이런 날 줄지어 오는 우리 일행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가  일행 중 친구가 있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갑게 끌어 안는지

보는 우리도 흐뭇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해뜰원으로 향하는 길 양 옆에 독초라 불리는 자리공을

강화 주민들이 발견하여 모두 뽑아 버리기에 나도 일조한다.

이런 독초는 유난히 왕성하게 자라 금방 숲을 만든다 한다.

그 독초의 모습을 보니 내가 지난 달 김포 평화누리길을 걸을 때

길 옆에 무척이나 큰 잡초가 있어 궁금했는데 그게 독초였구나.

진즉 알았다면 뽑아 버렸을텐데..  

 

점심은 배달해서 먹고, 장소는 전통 기름을 만드는 해뜰원에서 마당을 내 주어

기분 좋은 점심을 즐겼다.  길 벗들이 해뜰원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내부에 있는 기름에 관련된 농업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다.

점심을 먹는 장소의 벽에도 커다란 화판을 준비해 만화도 그려 놓고

지나가는 이들이 마음껏 낙서도 하게끔 펜도 준비해 놓았다. 

그런 꽁지머리를 한 멋쟁이 주인장께서 손수 커피를 준비해 주니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

 

펜션 나들길 흙집. 나들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하루 쉬다 갈 수 있도록  

버섯 모양의 흙집을 만들어 놓았다.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고 실내도 깨끗해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숲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는 나무들 사이로 길게 줄을 지어 걸어가는

우리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숲길을 지나니 잘 만든 주택이 보인다.

주택의 간판을 보니 '연등 국제 선원' 스님들이 수련을 하는 곳이다. 그 넘어도 절도 보이고..

가끔 외국 사람들이 와서 템플 스테이도 한다고 한다.

나도 비록 교회를 다니지만 가끔 이런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다.

고요함의 의미. 침묵의 의미. 명상의 의미들을 느끼고 싶다.

 

연등 국제 선원을 지나니 다시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숲이 너무 좋아

조금 전 쉬었는데도 우린 다시 배낭을 내려 놓는다.

어찌 이런 멋진 곳을 그냥 지나 칠 수 있을까?

이런 숲에 있으면 모든 질병이 다 사라질 것만 같다.

나무들이 숲들이 부드러운 흙들이 내 몸의 더러운 것들을 모두 빨아 내어

정화시켜 다시 신선한 산소를 내 뿜을 것만 같다. 그래서 숲이 좋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 이규보 묘에서 일정을 끝내기로 했지만

몇 사람은 저녁 들판 걷기를 위해 남기로 했다.

 

지난 번 왔던 다루지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선두리로 가는데 마을 길에 시누대 숲과 대나무 숲이 보인다.

강화에서 이런 숲을 본 적이 없었는데...

 

선두리 부녀회장집 앞에 있는 넓은 벌판길을 산책했다.

낮동안 숲길을 걸을 때 불지 않던 바람이 해가 뉘엿 뉘엿 지는 저녁 들판에는

솔솔 바람이 부니 내 긴 머리가 조금씩 흩날려 기분이 좋다.

 

늦은 시간에 밭일을 하는 농부가 있는 긴 수로에는

도심에서 놀러 와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비가 많이 와 수로의 다리 밑에까지 물이 찰랑거린다.

 

넓은 벌판을 걸으며 이 곳과 너무 어울리는 노래 '향수'를 크게 불러본다.

 

넓은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음음음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저녁을 먹기 위해 선두리 부녀회장 집에 들어서니

귀에 익은 멜로디의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카프리치오.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서니 방으로 들어간다.

닭도리탕으로 맛있는 저녁을 즐기고 다시 밤길을 즐기기 위해 나섰다.

 

강화도의 밤. 얼마나 오고 싶었던지..

얼마나 그 보석같은 별들이 보고 싶었던지..

오늘은 하늘에 구름한 점 없다.

그 시간에 멀리 서울에서 길벗들이 보고 싶어 달려 온 이와 함께

벌판을 걷는다. 어둠 속의 벌판 옆 수로에 반딧불이들이 움직인다.

인공 반딧불같은 낚싯꾼들의 찌가 반짝 거린다.

 

별이 보인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이더니 밤이 깊어 갈 수록 더 빛나고 있다.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이고 북극성과 오리온좌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전갈자리가 보이는 것 같고 수없이 많은 별들이

머리 위에 가득하다.

 

청년 시절에는 강화를 매년 찾았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늘 강화도에서 하고 봉사활동이 끝나면

마니산 등반을 하고 마니산 중턱에 있는 산장에서 하룻밤 자기도 했다.

그 때 중턱의 산장에서 본 강화도의 별들과 은하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서 본 유성이 지금 머리 위로 흐른다.

북두칠성의 국자 안에 별 하나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내 소원은 무엇인가? 유성이 흐를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데..

마음 속으로 가만히 불러 보았다.

 

오랜 만에 본 강화도의 밤별들..

다시 몇 년은 이 밤 별들의 반짝임으로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참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곳인데 왜 이렇게 게으를까?

행복은 늘 가까이 있는데 난 뭐가 그리 바쁜 일이 많은지 잡지 못하고 있다.

 

나를 찾아야겠다..

하루 빨리 나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