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야생의 맛에 빠진 나들길 5코스

carmina 2012. 6. 16. 22:01

 

 

2012년 6월 16일

 

나들길벗들끼리의 토요도보가 5코스로 잡혔다기에

내 입에선 벌써 침이 돌았다.

 

지난 해 이맘 때 쯤 갔던 5코스의 산딸기와 오디와 앵두맛이 생각났고

오늘 종일 길을 가며 따 먹은 야생과일 때문에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내 입에선 반사작용으로 입에 침을 삼키고 있다.

 

날씨가 더워 산 입구까지 가는 차량 도보를 피하기 위해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그대로 처음부터 진행한다.

 

5코스를 걸을 때는 중간에 식당이 없어 늘 도시락을 싸가지고 먹었는데

오늘은 조금 늦더라도 내가면에 식당이 있으니 그곳에서 매식하기로 했다한다.

그래서 간식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 집에서 가지고 간 바나나외에

길을 가다가 떡집에서 막 쪄 낸 떡 다섯덩어리를 샀다.

 

세월이 가면 조금씩 주변환경이 바뀐다.

못 보던 건물이 생기고, 보기 않좋던 길가 맥주집도 입구를 말끔히 단장했다.

아파트 앞에 있는 밤나무는 한창 밤꽃을 피울 때 쯤인지

밤나무의 윗 부분이 내 머리같이 햐안 모자를 썼다.

 

다리 밑의 개울엔 짙은 제법 굵직한 갈색의 송사리 떼들이 무리지어 여름을 즐기고 있다

여름은 살아있는 계절.

여름 한 철 지내는 송사리떼도.

길가의  이쁜 초롱꽃, 달맞이꽃, 나리, 백합, 애기똥풀들도,

막 영글어가는 돌담 넘어로 넘어온 보리수 나무의 작고 빨간 열매도

여름을 즐기고 있다.

 

하다못해 구멍가게 앞의 대야에 있는 논우렁도,

미꾸라지 떼들도, 그리고 어쩌다 잡힌 새끼 장어 한마리도

작은 공간이지만 몸짓이 크다.

 

국화리 저수지 뚝에 올라오니

아! 하는 탄식이 나온다.

요즘 지속된 가뭄 때문에 저수지가 바닥을 보이고 있고

저수지 가에는 바닥이 갈라지고 있다.

수면을 멋지게 나르던 백로도 가마우지도 바닥에 솟은 작은 바위위에서

한 낮의 태양을 즐기며 에너지를 아끼고 있다.

 

이전같으면 자기 집앞에 사람들 지나간다고 소리 소리 질러대던

길가 집에 묶어 둔 개들도 오늘은 아무도 짖지 않고

누워서 눈만 뻐끔 뻐끔거리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들길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국화리 저수지에 산책나온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화장실이 아주 깔끔한 모습으로 길벗들을 반긴다.

 

길을 가다가 문득 어느 오래 된 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고목나무의 웅장함에

반해 조금 전에 쉬었지만 나무 아래로 다시 모여 들었다.

몇 대가 살았을 것한 같은 돌담 넘어 보이는 뒷마당에

장독대가 있는 오래 된 집 앞에 그 세월만큼이나 큰 느티나무는 

성인 서너명이 손을 벌려야만 겨울 감싸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나무 끝은 멀리서 봐야 겨울 꼭대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자.. 이제 산길이다.

그늘 진 길가 양 옆에는 둥글레 잎이 가득하고

숲속에서 부는 살랑바람이 나그네의 기분을 좋게 한다.

 

언제나 정겨운 숲길.

저절로 입에서는 노래가 나온다.

숲길도 이전같으면 발이 닿는 곳에 수풀이 가득했을텐데

워낙 가뭄이 깊어서인지 오솔길들이에서 퍽퍽거리며 먼지가 인다.

 

내가 좋아하는 5코스 계곡의 숲길을 지나는데

고라니 한 마리의 시체가 흉칙하게 길 한가운데 놓여져 있다.

무엇에 뜯겨 먹혔는지 꼬리부분과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성황당처럼 사용하던 나무에는 지난 해 이후로도 한 번도

제사를 지낸 적이 없는 듯, 저고리가 낡았고, 길가에 벗어놓은 치마도

몇 년은 그대로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지난 해 산딸기를 따 먹던 곳에 와서 우리는 모두 열광해 버렸다.

눈에 지천으로 깔린 산 딸기.

모두 걷기를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이부터 나이든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 숲 속으로 들어가 연신 맛있다며 빨간 산딸기에 폭 빠져 버렸다.

 

길 걸음이 늦어진다.

이런 더운 날은 차라리 길을 걷는 것을 즐기는 것보다

이런 재미를 즐기며 걷는 것이 낫겠다.

 

가다가 멈춰서 길가에 지천으로 널린 딸기 따먹고

가다가 오디 나무에 매달려 새까만 오디 따먹고

가다가 남의 집 담을 넘어 온 앵두나무에서 새빨간 앵두 따먹고

가다가 길가에 보리수 따먹고

모두들 혀끝과 손 끝이 새빨갛다.

 

평소 도시락을 먹던 고인돌있는 곳에서 잠시 쉬고 다시 숲길을 걷는다.

숲길은 언제나 사람을 푸근하게 만든다.

 

내가 저수지에 와서는 가뭄에 극심하게 피해를 입어서인지

밑이 보인 저수지 바닥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줍고 있다.

낚시하러 왔다가 말라버린 저수지를 보고 허망한 듯 저수지 옆에서

주차한 남자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다.

 

수풀이 무성하던 내가저수지의 뚝에 흙을 펄펄 날리며 걷고

내가면으로 들어가니 아스팔트가 뜨겁고 내 배도 허기가 가득하다.

당초 몇 명이 내가면에서 보신탕을 먹기로 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보신탕집이 없어 포기하고 뼈다귀탕으로

점심을 먹고 덕산 휴양림으로 들어가니 휴양림으로 향하는 길에

흙길을 모두 세멘트로 바꾸고 있다. 이렇게 해야 하나?

 

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들 무리가 보인다.

그런데 그 들이 모여 있는 곳은 길가 숲길.

모두 산딸기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손에 가득 산딸기를 들고도 더 찾아 숲을 뒤진다.

도시 아이들에게 이것처럼 좋은 추억이 있을까?

오늘 우리 길벗을 따라나온 초등학생 남자아이 하나도

길을 가면서 이런 야생열매의 맛고 재미에 반해서 할머니 옆에 가지도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준 나무 지팡이가 비싼 장난감 칼보다 더 멋있는지

연신 휘둘러 가며 즐기고 있고, 처음에 꼬마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보았는데

길을 가는 내내 꺼내 보지도 않는다.

도시 아이들이 중독처럼 꺼내서 품에 안고 다니며 보는 스마트폰을

이 곳 숲길에 오니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자연의 장난감들이 가득하여

그만 문명의 장난감을 잊어 버렸다.

 

덕산휴양림의 숲길을 지나니 오늘의 여정이 굿당에서 끝난다.

멀리 외포리 바닷가가 보이고, 우린 모두 언덕위로 불어오는

바다바람의 시원함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매실나무.

그냥 두면 어차피 떨어져 버릴 것이라 핑계삼고 우린 나무를 타작했다.

알곡들이 떨어진다. 숲속에서 떨어진 매실들을 줍는 머리위로, 어깨위로 등 뒤로...

 

굿당 언덕을 내려오는데 지난 해 2번이나 이 길을 갈 때 마을길 언덕에서

보았던 이빨이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가 같은 자리에서 바다를 보고 계신다.

반갑다. 아직 이렇게 그 자리에 계시니..

배낭 속에 남은 간식을 할머니께 드렸다.

야생의 꽃같은 할머니..제가 매번 여기 올 때 마다 꼭 이 곳에 계셔야 해요.

 

즐거운 하루...

 

그 어떤 둘레길보다 사시사철 재미가 가득한 강화 나들길로  

오늘도 후회하지 않는 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