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나들길 - 강화도령 첫사랑길

carmina 2012. 5. 27. 00:50

 

2012년 5월 26일

 

아카시아 향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햇빛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여름의 시작.

자주 찾는 강화 나들길에 올초부터 새로운 코스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름하여 강화도령 첫사랑길.

 

강화도령은 조선시대 25대왕 철종을 말한다.

어린시절 애절한 가수 박재란의 목소리로 강화도령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라디오 연속극도 만들어 지고 신성일 최은희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평민에서 임금으로 급상승한 역사의 인물.

대개 역사를 볼 때 왕위를 세습시키기 위해서는 혈족만이 가능하기에 

평민에서 임금이 되는 것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그런 무력행사도 없이 본인이 왕의 혈족인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된 건 아마 철종이 유일할 것이다.

 

24대와 헌종이 급사하자 후사가 없어 급히 외가쪽의 왕족을 찾아 왕으로 책봉하고자

강화로 귀양 가 있던 손자를 찾은 것이 철종 이원범.

본인이 왕족인 줄 모르고 농사만 짓고 동네 처녀와 연애하던 19살 떠꺼머리 총각이 어느 날

개천에서 용이 난 듯 임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왕비가 될 수 없는 시골처녀와 헤어져 임금이 된 총각은

정치는 전혀 모르기에 한양에서 온갖 세력에 치이다가

33살의 나이로 일찍 요절하게 된다.

그러한 슬픈 사연이 있는 강화도령의 이야기.

 

그 강화도령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동네 처녀와 산책다니고

12키로 정도 떨어진 냉정리의 외갓집 쪽으로 다니던 길을 개발해

나들길 새 코스로 만들었다.

 

그 총각이 살던 집을 왕이 된 후 기와집으로 개조하여 이름을 용흥궁(龍興宮)으로 이름지었다.

강화 성공회 성당 앞에 있는 용흥궁은 1코스를 다닐 때 몇 번 들어가 보았었다.

 

오늘은 나들길 걷기에는 약 30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낯이 익은 사람이 반, 처음 보는 얼굴들이 반 정도.

 

강화터미날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몰려드는 군인들

토요일이라 외박을 받았는지 모두들 얼굴이 밝다.

통제받는 곳에서 벗어날 자유.

나도 집을 나오면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집이라는 곳이 한 없이 편해야 하는 곳인데

이상하게 답답한 느낌이 들어 이렇게 배낭하고 메고 나와야 기분이 좋으니..

 

강화도령 애인하고 나란히 사진하나 찍고 다같이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출발.

길가에는 오랜 세월을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할 것만 같은

오동나무의 연보라빛 초롱꽃이 활짝 피었다.

 

한적한 주택가로 이어지던 길이 예쁜 하트모양의 첫사랑길 이정표로

어릴 적 우리 집 옆의 골목같은 좁은 길로 안내한다.

 

그 골목길 끝에 이어지는 산길.

마을어른들이 이웃마을로 마실갈 때 걷던 평탄하고 낮은 언덕이 주욱 이어지고

그 길에 하얀 아카시아 나무들이 걷기 좋아하는 나그네들이

사뿐히 즈려 밟고 갈 수 있도록 꽃 잎들을 바닥에 흩뿌려져 놓았다.

 

트레킹화의 발길이 짙은 초록의 무리속으로 들어갈 수록

회색빛깔의 세멘트 동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주 다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

지난 주에 다녀 온 북한산 나들길과 다른 점이 이러한 자연스러움이다.

길을 걷는 즐거움.

자연 속에 동화되어져 가고자 하는 본능.

 

사람들의 배낭 뒤에 매달아 흔들거리는 이름표와 나들길이정표처럼

나무들이 흔들거리며 길벗들을 맞는다.

가끔 길위에 쌓은 돌 계단위에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강화도령도 이 길을 걸었을까?

 

언젠가 유럽에 친구들과 단체로 음악여행을 갔을 때

베토벤이 산책했다는 길을 나도 산책해 보았었다.

그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뒷짐지고 천천히 걸으며

위대한 작곡가의 마음을 체험해 보고자 했듯이

오늘은 여기 강화도령 첫사랑길을 천천히 천천히 비운의 왕을 생각하며 걷고 있다.

 

나들길 다른 곳의 이정표와는 다르게 이곳 이정표는

하트표시안에 화살표를 넣어 만들어 조금 더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길 중간에 있는 학생 수련원에서 잠시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언덕을 오르니 두꺼비처럼 생긴 큰 바위 밑에

무속인들이 촛불을 키고 구복을 하는 듯, 바위 구석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누군가 그 앞에 있는 넓은 바위에 돌을 굴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자

너도 나도 바위 안으로 들어가 돌을 굴리며 소원을 빈다.

두꺼비 바위 위에 있는 가지많은 커다란 고목이 뭇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들었을까?

 

정한수 떠넣고 소원을 빌어야 했는지 그 밑에는 약수터에 말라버린 2개의

분출대가 마치 검은 사각형의 선그라스처럼 뻥 뚫려 있다.

 

소나무 숲길을 간다

잣나무 숲길을 간다.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였는지 중간 중간에 나무를 베어 놓았다.

그래도 오솔길 양 옆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나무들끼리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하므로

이런 벌목 작업도 필요하다.

 

이 곳의 나무들은 모두 일자로 주욱 주욱 뻗어 있어 보는 눈이 무척 시원하다.

마치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같이 하늘로 끝없이 일직선으로 솟아 오르고 있어 보기 좋다.

아울러 그 사이를 걷는 나그네의 기분은 마치 스스로 나무가 된 듯 어깨를 펴고 있다.

 

길을 가다가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밑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아마 그 위로 가는 길은 다른 언덕으로 올라가는 듯 바위를 지나니 멀리 나무 계단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울창하고 장대한 나무들의 행렬.

이 나무 어딘가에 강화도령과 양순이가

서로 손을 잡고 나무들 사이를 다니며 때로는 숨바꼭질 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강화 남산으로 올라가니

양옆으로 시원하게 시야가 펼쳐지는 남장대.

지난 해 초 이 곳에 왔을 때는 공사중이었는데 뚝도 새로 쌓아 놓았고

남장대의 단청도 모두 새로 단장해 보기 좋게 해 놓았다.

 

이제 역사를 다시 쓰는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남장대를 2012년에 새로 증축했다고 기록하겠지.

 

남장대 위에서 보이는 먼 곳에 국화저수지와  멀리 북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하얀 백로 한마리가 내 발 아래서 천천히 허공을 가르며 나르고 있다.

 

길의 중간에 큰 바위들이 자주 보이는데 이상하게 모두 바위에 물결이 흐른다.

맺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바위들이 슬퍼했을까?

그리고 자주 보이는 돌탑들. 돌 하나 하나에 쌓인 소원들..

 

남산을 내려오니 커다란 두 개의 성격이 완전히 다른 건물이 길 양 옆으로 세워져 있다.

하나는 유스호스텔 또 하나는 실내 골프장.

실내 골프장이 유흥시설은 아니지만 왜 이리 이상해 보일까?

 

조금 걷다 보니 이상한 이름의 멋진 건물이 보인다.

나무들의 집. 보리떡 도서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나중에 검색해 보아야겠다.

이 곳은 숙소를 겸한 듯 종업원 한 명이 방을 청소하고 있다.

 

멋드러진 건물 뒤에 쓰러져 가는 집 하나

대문도 창문도 벽도 지붕도 모두 쓰러져 가고 있다.

바람이라도 강하게 불면 그래도 쓰러져 버릴 듯.

그 집 옆에 작은 팻말이 하나 붙어 있다.

사유지라 통행금지라고..

그런데 나들길 리본이 달려 있는걸 어떻게 가야지.

쓰러져 가는 집뒤에는 흙벽으로 만들어진 담배 건조장의

흙벽들이 무너져 내려 금방이라도 푹 주저 앉을것 같다.

 

아무도 안 다녔던 그 길 바닥에는 무수한 밤송이들이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는데

아마 오랜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없었는지 바닥에 떨어진 밤 송이에는 대부분

바짝 마른 밤톨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무와 함께 길을 걷는다.

때로는 나무를 끌어 안기도 하고

때로는 툭 툭 치며 걷기도 한다.

나무와 친구하며, 바닥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 '

그게 강화도 나들길이다.

가능한 숲속을 걷도록 디자인되어 있고,

가능한 사람들의 발자취로 인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끊임 없이 이러진 나무숲 사이로 끝에 있는 찬우물 약수터.

강화에서는 찬우물 막걸리라는 상표의 막걸리가 상당히 유명하다.

인삼막걸리도 좋지만 어떤 이들은 인삼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길벗들의 배낭 속에는 늘 찬우물 막걸리를 한 두병 가지고 와

갈증을 한 모금의 막걸리로 축이며 걷는다.

 

찬우물 약수터 옆에는 러브트리를 만들어

작은 소망을 하트모양의 메모판에 적어 걸어 둘 수 있도록

해 놓아 모두가 미리 나누어준 메모판에 한 마디씩 적어 걸어 놓았다.

내 소망은 무엇일까?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을 적었다.

칼 오르프의 합창곡 "까르미나 부라나"의 첫 곡 "O Fortuna" (오! 운명의 여신이여)

올해 자칫 사라져 버릴뻔한 나의 운명을 피해  이 곳에 있게 해준 나의 운명.

나도 내 운명은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게 생명을 주신 이에게 내 운명을 맡기고

난 그저 주어진 나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비비랑이라는 식당에는 온갖 야생화를 화분에 담아 놓았고

각종 주방용 그릇들을 도기로 만들어 판매하고, 아울러 도자기 화병을 전시해 놓았다.

메뉴로 나온 찹쌀 순대도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별미였고

비빔밥의 메뉴도 상당히 정갈하게 해 놓아 추천할 만한 식당이다.

 

모두 맛있는 점심으로 포만감에 가득 차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길을 떠난다.

다시 이어지는 울창한 숲속.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빽빽한 나무들이 첫사랑 길에는 가득하다.

이렇게 조림하기 위해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아마 강화도령이 다니던 150년전에는 이런 나무들이 없었을 것 같다.

누군가 이렇게 많은 나무들을 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숲을 나오니 할아버지 한 분이 벌통 작업을 하고 있다.

아카시아가 꽃피는 철에는 양봉하는 사람들이 바쁘다

할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벌통은 비어있지만

다른 곳에 보내져 꿀 채집을 한단다.

이 곳은 빈 벌통만 가득하지만 그래도 벌들이 여기 저기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고 있다.

 

도로의 위에 표지판들. 철종외가로.

커다란 은행나무 몇 그루로 집을 감싸고 있는 철종 외가

완주 스탬프를 찍고 텅 비어 있는 기와집의 외가에 들어가니

내 어릴 적 초가집의 우리 집에 온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에 행랑채, 넓은 대청마루,

서재인듯한 매헌서당(梅軒書堂), 나무 광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나무로 된 문. 그 문을 열어보니

어릴 적 우리 집의 모습이 지붕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집 뒤에는 낮은 흙으로 만든 굴뚝, 그리고 우물.

깊지 않은 우물에 물은 고여 있는데 우물 안의 돌들은 파란 이끼가 가득 덮혀 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내 어린 시절 우리 집 같을까?

사람 살지 않은 듯 세간살이 하나 없는 방을 여니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다.

 

오늘의 일정을 여기서 모두 마쳤지만 난 할 수 만 있으면 이 곳 철종 외가에서

넓은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며  좀 더 쉬다 가고 싶었으나

이런 내 개인 욕심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첫사랑길 걷기를 마치고 몇 몇 길벗들과 찾아간 강화의 다루지라는 이름의 카페.

작은 산 기슭에 살림채와 카페가 별도로 되어 있는 이쁜 카페.

주차장 옆에 있는 튼실한 닭을 나꿔 채기 위해 하늘에는 솔개 한 마리가

날개도 퍼덕이지 않은 채로 마치 장식품처럼 공중에 꼼짝도 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커다란 콘트라베이스와 피아노가 눈길을 끈다.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이 있을까?  나중에 물어 보니 가족이 요들송을 한단다.

젊은 시절 한창 노래를 배우러 다닐 때 요들송을 해 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같이 다니던 서클의 여학생이 요들을 너무 잘해

무슨 노래던지 노래와 연결시키는 재능을 가져 관심을 가져 보기도 했다.

언제 한 번 그 가족의 요들을 듣고 싶다.

 

맛있는 쿠키와 함께 콜롬비아 드립커피를 마셨는데 향이 참 좋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뒷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멀리 바라다 보이는

강화갯벌의 모습에 가슴이 트인다.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밴댕이와 병어회를 먹기 위해 찾은 선두리 포구

이제 마지막 철이라는 밴댕이 회를 먹고 나오니 5월 마지막의 붉은 해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마니산 넘어로 사라지고 있다.

 

산 아래로 꼴깍 넘어간 것을 보고서야 먼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가 뿌듯하다..

 

난 오늘 오래된 바위를 밟으며,

산산히 부서진 흙길을 걸으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 몸을 훑어가는 바람을 느끼며,

수 백년을 지켜본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150년 전 강화도령의 애절한 첫사랑을 느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