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 올레길 3코스

carmina 2012. 11. 8. 12:48

 

올레길 3코스

 

온평포구를 지나 마을 길을 걷는데 마을 입구에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오전처럼 우리 뒤를 따라 온다. 개를 싫어하는 아내인데 강아지가 워낙 귀여워서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의 눈을 확 끌어 당기는 주택 하나.

 

조금 높은 돌담 안에 보랏빛 단층짜리 주택이 너무 이쁘다. 그런데 그 옆에는 연두색 주택이 서로 대칭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문이 없기에 마당을 보니 중년의 부부가 마당에서 잔디를 다듬고 있다. 집이 이뻐서 들어왔다며 얘기를 걸었더니 자기들도 제주에 이사온 지 이제 3개월 밖에 안되었다 하며 이사온 얘기를 들려 주는데 제주에 놀러왔다가 이 곳에 너무 좋아 청주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이 집을 1 6천에 사고 돈을 조금 더 들여 주위를 정리했단다. 2억 들였다는데 너무 좋다고자녀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지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곳에서 여생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옆 집에 잔디는 올해 봄에 심었는데 잘 자랐다며 자기네 마당도 내년에는 보기 좋을거라고 얘기한다. 잔디 한 가운데 작은 돌탑을 쌓고, 조경수도 하나 심어 놓았다. 도시에서는 10만원정도 하는 나무를 이 곳에서는 2만원에 샀다며 좋아한다. 그리고 돌담이 보기 좋다고 했더니 이 곳은 세멘트보다 돌이 싸기에 별로 비용이 많이 안들었다 한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이 곳이 낙원처럼 보인다.

 

아내와 그 집을 나오며 주고 받은 이야기.  저 집 옆에 우리 집을 지으면 무슨 색깔로 짓고 싶냐기에 나는 엷은 주홍빛 감귤색으로 짓고 싶다 했다.

 

조용한 마을 길. 인적 하나 없고 풍경에 변화가 없다. 감귤밭, 무우밭, 다래를 키우는 대형 온실. 가끔 멋진 가옥들이 보이고, 석상을 많이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정원수를 가꾸는 곳도 있다.

 

길 걷는 것이 이리도 좋을 줄이야. 내가 길을 걸으면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살을 빼기 위해 일부러 운동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단지 길 걷는 것 자체를 즐기고 싶다. 자연과 호흡하고 싶고, 바람에 묻혀 살고 싶을 따름이다.

 

3코스에는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

누구의 정성인지 모르지만 길 양 옆에 꽃길이 많고, 올레꾼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화산석으로 된 의자와 식탁이 눈길을 끈다. 얼마나 고마운 배려인지..

 

조금 밋밋한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이제 길을 걷는 것이 조금 지쳐간다. 게스트하우스에 연락해서 픽업 좀 해 달라 했더니 통오름 쪽으로 조금 더 진행하다가 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전화하란다.

 

길이 갈라지는 곳 한가운데서 할머니 한 분이 콩을 다듬고 있다. 모두 까만 콩. 오랜 시간 콩을 다듬었는지 할머니 옆에 제법 많은 콩이 쌓여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길을 걸으면서 콩밭이 별로 안 보였는데 이 콩들은 어디서 길렀을까?  강화도를 걸을 때는 보이는 곳곳마다 논이나 밭옆의 자투리 땅에 콩밭이 줄지어 섰는데 이 곳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얘기한 장소에 도착해 차를 기다리는데 차가 오지 않는다. 오래 걸어 땀을 많이 흘렸는데 땀이 식으니 추워진다. 한 참을 기다려서야 차가 오고 숙소는 우리가 기다린 곳에서 멀지 않았다.

 

둥지게스트 하우스. 집들이 모두 황토로 버섯모양의 단독 가옥들이다. 내가 이 곳을 택한 이유는 저녁을 즐기는 방법이 조금 독특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까미노길에 있는 알베르게 라고 불리는 게스트하우스처럼 모인 사람들이 서로 모르지만 요리를 같이 만들어 먹어 나누어 먹는다.  저녁마다 모이는 전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음식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와인을 같이 나누어 마시며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기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을까? 어찌 되었던 일부러 그렇게 하기 위해 2인실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를 택했는데 성격이 시원시원한 주인이 우리를 잘 보아서인지 특별히 다른 방을 제공해 주었다.

 

약속한 저녁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니 몇 무리들이 몰려 있다. 아줌마 아저씨 무리들과 젊은이들 무리.  주인이 내게 무슨 음식을 만들거냐고 메뉴를 고르란다. 닭도리탕, 두부김치 등 몇 개 이야기하기에 두부김치를 택했다. 혼자 등산가면 하산 후 늘 즐겨먹는 두부김치.

 

내가 적극적으로 요리를 하니 아내가 거든다. 고기를 썰어 후라이팬에 익히고 김치를 썰어 고기랑 같이 볶았다. 그러나 두부김치는 푹 익힌 김치보다 약간 김치가 바삭해야 맛있으니까 적당히 볶고 두부는 통째로 끓는 물에 넣어 따뜻하게 하여 접시에 내 놓으니 내 미션끝.  다른 이들은 닭도리탕, 떡볶이, 계란말이를 하고 제주흙돼지는 즉석에서 구워 놓으니 진수성찬이 되었다.

 

주인은 말로만 도와 주지 요리는 모두 손님들 몫이다. 일부러 술도 많이 제공하지 않고 너무 취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먹은 후 설거지도 모두 손님들 몫이다. 모인 손님들과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젊은이들에게 길의 소중함을 얘기한다.

 

평온한 아침에 창가에서 새가 우짖는 소리에 잠이 깼다.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다시 어제 걷기를 중단했던 곳까지 차로 도착하여 통오름으로 가는 길목에 섰다. 그 길목에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만들어 놓았다.

 

어제보다 바람이 덜 분다. 조금 걷다가 어제 입었던 옷이 불편함을 느꼈다. 어제보다 추위가 덜해해 조금 올라 갔는데도 땀이 흐른다. 통오름에 오르니 아직도 멀리 일출봉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여전히 커다란 풍력발전을 위한 대형 풍차가 보인다. 이런 맛에 오름을 즐기는 것일까? 제주도에는 약 360여 개의 오름이 있어서 오름만 즐기는 무리가 있다 한다. 지난 번에 제주도 왔을 때도 택시 기사가 오름에 올라가라고 적극 권하기도 했다.

 

통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은 각종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흙길도 걷는 이들이 편하게 하기 위해 밧줄을 그물처럼 묶은 발판을 만들어 바닥을 밟는 감촉이 좋다.

 

통오름을 내려와 조금 걷다 보니 독자봉으로 가는 길 입구에서 너무 더워 옷을 갈아 입었다.  겨울바지를 여름바지로 갈아 입고 겨울 자켓도 산뜻한 조끼로 바꾸어 입었다. 이제 날아갈 것 같다.

 

독자봉으로 올라가는 길도 여전히 환상적이다. 억새가 가득한 소롯한 길을 흥얼거리며 올라간다. 독자봉에 오르니 산불 감시초소가 있고 아저씨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저씨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학생 무리가 교사의 인솔하에 우르르 몰려 온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올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 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녀들이 인솔자와 함께 올라와 여기 저기 풀숲을 뒤지며 야생화를 찾아 내어 일행들에게 이름을 알려 주고 있다. 이건 패랭이 이건 구절초 

 

올레길을 걷는 무리냐고 물어보니 제주도의 오름 만을 찾아 다니는 무리라고 한다. 그 들 모두 좋은 카메라로 여기 저기 풀 숲을 뒤지며 사진을 찍고 있고 오름의 저 아래에는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오름을 내려와 도로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니 이 길은 나무가 많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나는야 이런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이 그 어느 길보다 좋지만 이런 길을 여자 혼자서 걸어가면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번 1코스에 있던 사고로 인해 올레길에 영향이 있을까봐 각종 안전조치를 취한다는데 이런 길을 걸을 때는 갑자기 위험이 닥쳐도 피할만한 그 어떤 방법도 없을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의 긴 숲길을 지나 다시 마을길로 내려왔다. 마을의 어느 집 앞에 단호박들이 버려진 채로 썩어가고 있다. 왜 그랬을까?

 

어느 가족묘가 있는 곳을 지나가는데 돌담 근처에 비석을 일렬로 세워 놓고 저 멀리 가운데 커다란 비석을 하나 세워 놓아 마치 지휘자와 합창단이 공연하는 듯한 연출을 해 놓았다.

 

어제 2코스 걸을 때 공짜로 얻어 실컷 먹었던 감귤을 오늘도 먹으며 걷고 싶었는데 도무지 어제처럼 무인판매대가 안 보인다. 만약 귤밭에 일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살려고 했지만 어느 밭에도 일하는 사람이 없어 아쉬었다. 물론 길 가에 널린 귤밭에 들어가 그냥 따 먹거나 밭에 떨어진 귤을 먹으면 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

여보 내가 귤밭에 들어가 따서 거리로 던지면 그건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아쉬움이 가득한 길을 걷는다. 혹시라도 귤밭 옆에 트럭이 있으면 사람이 있을까 찾아 보았지만 전혀 인적이 없다. 어쩔 수 없지.. 

 

그러다가 지나치는 곳에 마구리라는 휴게소 하나. 아무래도 점심은 이 곳에서 먹어야겠다고 깨끗하게 단장된 앞마당 잔디를 지나 마구리로 들어가니 썰렁한 실내에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일을 하다가 우리를 맞는다. 점심메뉴를 보고 싶다 했더니 들어 오는 입구에 써 있다며 라면과 국수밖에 없단다. 국수를 주문하니 할머니가 실내에 있는 오디오에 LP를 올려 놓는데 내가 좋아하는 김민기 노래가 흘러 나온다.

 

손주를 업은 다른 할머니가 들어오시기에 혹시 귤 좀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네 밭에서 살 수 있다기에 따라 나서며 귤을 따먹고 싶다 했더니 자기네 밭이라고 큰 것 두개를 따서 내 손에 쥐어 준다. 할머니 집의 창고에 들어가 3000원어치만 달라 했더니 커다란 비닐 봉투에 내가 그만달라 할 때까지 담아 주신다. 행복하다.

 

국수를 맛있게 먹고, 할머니와 손주에게 배낭에 있던 빵과 카스테라를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신다. 우린 서로 행복했다.

 

귤과 국수에 포만감을 누리고 길을 걸으니 곧 사진작가 고 김영갑씨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두모악 갤러리에 도착했다. 잘 다듬어진 정원에 아담한 갤러리. 생전에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주도를 더욱 빛나게 했다. 사진을 찍는 시선이 다르고 각도가 다르다. 말년에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사람들이 우~~ 몰려와 관람하고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두모악갤러리 앞에서 3코스 중간스탬프를 찍고 다시 출발. 한 참 큰 길을 가다가 다시 숲길로 접어 든다. 오랜만에 소 외양간이 보인다. 제주에는 흙돼지가 유명하지만 이틀동안 걸으면서 한 번도 돼지를 키우는 곳을 보지 못했다.

 

마을마다 이쁜 집들이 정겹고 집 담에 피어 있는 꽃들도 아름답다. 욕심을 줄이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텐데..

 

바다 목장으로 나가는 길목 쯤에 잘 지어진 노래방이 있는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는데 그대로 차를 타고 달려 가면 바다로 빠질 것 같은 일직선으로 난 길을 가다가 문득 내 시선이 바닥에 꽂혔다. 30센티 길이의 작은 실뱀이 도로에 나와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급히 숲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얼른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미 숲 속으로 들어가 피사체를 놓쳐 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고 조금 더 가니 큰 사마귀 한 마리가 꼼짝도 하지 않고 카메라의 포커스를 받아 들이고 있다.

 

바다목장. 바다와 이어져 있는 목장이다. 멀리 10마리가 넘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고, 목장은 옅은 색의 파란 잔디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잔디 위에 수없이 많은 말똥들이 널려 있다. 잠시라도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면 여지없이 발에 물컹하는 느낌을 가질 것 같다. 어릴 때 동네에 리어카를 끌기 위해서 말 한 마리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지나가면 때로는 말이 걸어가며 떨어뜨린 똥이 골목에 그래도 남아 사람들이 말 주인에게 마구 뭐라 한 기억이 있는데 지금 똑 같은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기억으로 기분이 좋아 넓은 잔디밭에서 손을 모아 싸이의 말춤을 추어 본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가사도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춤이 들어가는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메가히트를 치니 혹시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는 말이 많은 나라일거야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우리 나라에는 자고로 사람은 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 했을 정도로 말이 큰 비중을 차지하니 이해는 하겠지?

 

아마 그런 속담도 여기 이 넓은 잔디밭을 보고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이런 큰 목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수평선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 오더니 오래 전에 굳어 버린 화산암에 철석거리고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공중에 내 던진다. 차들이 잔디밭까지 들어와 주차하고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다.

 

잔디 위를 한참을 걸어가 이정표가 바닷길로 내려가는데 그 바닷가에도 말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말이 이 곳에서 실례를 했나 보다.

 

바다가로 걸어가는 길은 그다지 길지 않고 다시 금방 마을로 올라왔다. 바닷가를 마주 대하는 낮은 관목이 세찬 바람에 마치 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은 것처럼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런 장면을 호주 시드니 해안가 절벽 위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신천리 마을로 가는 길에 이상한 이정표가 자주 보인다. 누군가 유명스포츠 브랜드의 테이프를 나뭇가지나 돌에 감아 놓아 길 안내를 해 놓았다. 장삿속일까? 아니면 조금 모자란 사람의 행동일까?

 

마을엔 광어를 대량 양식하는 곳이 자주 보이고 광어가 몸에 좋은 생선이라고 써 붙인 간판을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러나 이정표가 소낭밭숲길이라고 표시된 곳을 따라 들어가니 그야말로 완전히 태고의 숲속같은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쓰러진 나무는 썩어 내 스틱으로 나무를 찍으며 그대로 곧게 서고, 발 밑에 부서지는 나무들이 무척 많다. 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금방이라도 숲속에서 무언가 튀어 나올 것만 같다. 혼자 걸으면 조금 으시시 하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이런 원시림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숲길을 지나 조용한 마을. 돌담마다 밑에 안 보이던 이쁜 꽃이 보인다. 줄기는 바닷가에 흔히 보이는 함초처럼 퉁퉁한 녹색인데 그 사이에 피는 꽃은 색을 어떻게 표현하지 모를 정도로 화려한 자연미를 보여 준다.

 

마을에 마침 문을 연 편의점이 있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맛있게 먹는다.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평소와 똑 같은 맛일텐데 유독 입에서 더 살살 녹는 것 같다.

 

신천리 마을을 지나 커다란 둑이 있는 길을 지나니 이제 멀리 표선포구가 보이는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가 저기 멀리 보이는데 아무래도 너무 멀어 저 곳이 아닐지도 몰라 하고 자위하며 걷는다.

 

둑 끝에 쯤에 다리가 지표면보다 낮아 배고픈다리라 불린다. 이름 참 재미있게 붙였네. 바닷가에 낚시를 하는 이가 있어 많이 잡았느냐 물어보니 안 잡힌단다. 그래도 무언가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낚싯군의 응시가 좋다

 

표천해변으로 가는 바다둑의 모양을 밋밋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주먹만한 조약돌을 박아 놓아 멋스러움이 보인다. 이런 작은 배려가 여행객을 불러 모을 수 있기에..

 

눈부실정도로 흰 백사장이 곱게 깔린 표선비치에 도착했다. 이정표는 둑을 따라 가라 하지만 백사장의 유혹을 뿌리 칠 수 없어, 내려갔다. 바람에 밀려 백사장에 작은 무늬들이 생기고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가끔 작은 구멍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게나 혹은 갯지렁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표선비치까지 백사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중간에 끊기고 썰물 때는 백사장으로 걷지만 밀물 때는 육지로 걸어야 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어 밀려 오는 물을 보고 위로 올라갔는데 개인 사유지인 농장을 지나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진행하다 보니 원래 길이 아닌지라 거친 나무들이 내 바지를 잡아 당긴다. 겨우 겨우 이리 저리 피해 거리로 나오니 3거리가 있는데 이정표가 안 보이네.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길을 확인하고 둑을 따라 가니 해안을 멋지게 가꾸어 놓았다. 

 

표선의 이니셜인 PS를 이용해 멋진 상징물을 세워 놓았고 해변도 독특한 휴식처와 해안가의 쉼터에는 십이지신상의 석상들을 만들어 놓아 산책을 하는 가족들에게 볼거리 놀거리를 제공해 준다.  멀리 바다와 맞닿는 암석위에 해녀상들을 조각해 놓고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이제 이번 여행을 끝내야 한다.

 

올레길 쉼터에서 도착 스탬프 꽝 찍고, 기념으로 올레길 마크가 새겨진 우비도 하나 샀다. 

아내와 길가의 커피샵에서 완주를 자축하며 여유의 시간을 보내고는 제주 시외 버스터미날까지 긴 여행을 조용하게 떠났다.

 

길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길을 걸으면서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준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고

내가 생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연과의 만남은 더욱 좋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모습.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꾸지만 쉽게 실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여행을 통해서 그런 삶에 푹 빠져 사는 내 모습이 좋다.

 

앞으로도 떠날 것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곳을 다녀 볼 것이다.

내가 꿈꾸어 오는 내 여생을 이런 자연과 벗삼으며 살고 싶다.

 

최근에 누가 쓴 책의 제목이 '다섯 친구'

음악, 여행, 독서, 영화 그리고 운동이 다섯 친구라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가장 즐기고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인생의 친구들이다.

내게 늘 다섯 친구들이 있어 내 인생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