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9코스

carmina 2013. 3. 12. 00:36

 

2013년 2월 27일

 

지난 밤에 제주행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

미리 한 달전에 와 있는 캐나다 친구가 묵고있는 펜션에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여미지식물원에 내릴려고 버스 안내 멘트를 기다렸는데

멘트가 없었던건지, 아니면 우리 부부가 못들은건지 지나쳐 버리고

종점인 서귀포까지 가서 되돌아 오느라 숙소에 도착하니 밤 12시.

 

새벽 1시 반까지 오랜 만에 만난 회포를 이야기로 풀고

바람은 불지만 맑은 날, 2년 전 우리 두 부부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8코스의 종점인 대평포구로 향했다.

 

캐나다로 이민간 친구는 2년 전 나와 같이 올레길을 걸어 보고는

올해 올레길을 전 코스 완주하겠다고 왔지만 오자 마자 몇 코스 걷고는

그만 한국의 심한 독감에 걸려 그간 거의 걷지 못했다 한다.

친구 부인도 오늘 아침에야 겨우 기운차려 오전만 걸어보겠다고 따라 나섰다.

9코스를 보니 다행히 지름길 코스가 있어 비록 힘들더라도 긴 코스를 피해가면

중간에 돌아 올 수 있을 것 같기에 나서긴 했지만 올레코스상 이 길은

난이도가 '상'으로 되어 있어 조금 걱정된다.

 

지난 해 완주 도장을 꽝 찍었던 나무 간새가 있는 곳에

나이든 아줌마 몇 명이 먼저 와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기에

사진 좀 찍어 달라 했더니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부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어제 7코스 8코스를 하루에 걸었다 하는 걸로 보아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오늘도 9코스 10코스를 하루에 걷는다고...

우리와 같이 일정이다.

 

9코스는 조금 짧아서 9키로도 안되고 10키로는 약 15키로 정도로 하루에 걸을만한 거리다.

조용한 대평포구, 겨울이라 포구는 한산하기만 하다. 인적도 없고, 작은 배들은 모두

포구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포구 옆 작은 오솔길이 있는 언덕으로 오른다.

굳이 다듬지 않은 돌 계단 길은 박수기정길이라 부른다.

커다란 병풍을 두른 듯한 길.

검색을 해보니 제주도에서는 절벽을 기정이라고 한다.

 

길을 걸을 때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계단이 힘이 덜 든다.

아마 우리 몸이 자연에 더 가까운 이유인가 보다.

오롯한 숲길에 눈을 끄는 동백나무.

아직 푸르름이 물들지 않은 나뭇가지 사이에 빨간 잎이 유난히 눈을 끈다.

가파른 언덕길을 한 20분 정도 올라가니 대평포구가 눈 앞에 환하게 들어온다.

 

그 위로 평평하게 난 숲길.

아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길의 형태가 이런 것일게다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평평한 길이 이어지는 길을 걸을 때의 행복감.

산의 나무들은 제 멋대로 자라고 있다.

곧게 뻗고, 비비 꼬이고, 얼키고 설키고..

마치 사람들의 심성같다고나 할까?

산위에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에 자꾸 카메라 앵글을 들이댄다.

어쩔까나..나도 이쁜 꽃만을 좋아하는 그저 그런 남자인걸..

 

바로 옆은 깍아 지른 절벽. 그리고 그 위의 부드러운 흙길위의 솔잎들

평평한 돌산 위의 솔잎 가득 덮힌 길을 걸으니 저절로 걸음이 건들거려 진다.

가족이 있겠다. 좋은 친구들 있겠다. 숲이 있겠다. 길이 있겠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가끔 위험해 보이는 곳엔 여지없이 나무로 된 난간이 있고

계속 걷다 보니 대평포구가 멀어지고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망망대해.

유채꽃은 벌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높은 곳 언덕위의 벌판에도 유채꽃이 피어 있다.

문득 숲 속에 핀 흰 꽃.

이게 뭐더라. 친구가 이름을 알려 준다. 수선화야.

이름을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하는 것은 없다.

그 뒤로는 수선화를 볼 때마다 속으로 되뇌인다. 넌 수선화야..

 

그리고 넓은 곳엔 봄배추가 탐스럽게 익어 출하를 기다리고 있고

개인 사유지를 표시하는 듯 상징적으로 세운 듯 담이 없는 대문을 우회하며 지난다.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 멀리 삼방산 아래로 남부화력 발전소가 깨끗한 색으로 장난감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어디 쯤에 지름길이 있을 것 같은데

같이 가는 친구의 부인이 별로 힘들지 않다 하니 그냥 길을 가기로 한다.

다시 언덕을 오르니 푸른 색 간새에 봉수대라고 써 있다.

봉수대라 하면 주위에 나무가 없어야 하는데 돌단 근처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어

굳이 필요없으니 관리를 안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삼방산이 또렷하게 보이고, 그 바위를 향하는 작은 바위들이 곳곳에 이어진다.

넓은 숲길이 사람만 편한게 아니다.

말들도 이 곳이 좋은 듯 여기 저기 다니며 배설물로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배설물위에 누군가 담배를 촛불처럼 꽂아 놓았다.

단단하지 않은 담배를 세워 놓은 것으로 보아 배설물도 오래 되지 않았고

담배의 필터부분의 색이 바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나친지 얼마 안되었다.

이것도 행위 예술의 하나일까? 무슨 제목을 붙이면 좋을까?

 

다시 산을 올라간다. 누구나 잠시 쉬어갈만한 곳의 바위 옆에 보이는 담배꽁초

눈쌀이 찌푸려 진다.

제주도에 유채꽃은 피고 있지만 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바위를 감싸고 있는 담쟁이 넝쿨에도 푸른 빛은 전혀 보이지 않고

마치 외계의 미생물이 지구를 습격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듯한 넝쿨들의 모습들.

 

가파른 언덕을 잠시 오르고 이어지는 아주 긴 나무 계단.

오르막이 있으면 같이 걷는 친구의 부인이 힘들까봐 조금 걱정되었으나

오히려 어제 보았을 때보다 얼굴색에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안덕 월라봉 길을 가다가 보니 비탈진 언덕 아래 커다란 굴이 뚫려 있다.

이 굴이 막힌 굴일까 하고 작은 비상용 랜턴을 들고 들어가보니 길은 막혀 있다.

가끔 보이는 안내서에는 이 곳에서 2차대전 말기에 미군과의 전투를 위해

일본군의 포대와 진지가 있었다 한다.

모두 7개의 동굴이 있는데 어느 것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고

어느 동굴은 인공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언덕을 내려와 편한 숲길로 이어지는데 앞서 걷던 부산아줌마들이

멀리 다리를 건너 걷기에 당연히 그 쪽으로 가는 것이려니 하고 따라 가다 보니

그 들이 되돌아 온다. 아무래도 다른 길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되돌아가니

다리 못 가서 옆 길로 가게 되어 있는데 놓쳐 버렸다.

 

길을 되돌아가는데 문득 앞에서 어떤 나이 든 부부가 털복숭이 개를 한 마리 데리고 걷고 있다.

강아지와 같이 걷는다고

나이들면 강아지만큼 좋은 자식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렇게 걸어도 힘들다고 안하고 그저 묵묵히 따라 걸으며 무언의 동반자가 되고 있으니..

 

나무가 별로 없는 언덕길을 지나가니 눈에 보이는 것은 수없이 많은 말의 배설물들.

어떤 것은 금방 떨어트린 듯 검은 색이다.

아마 제주도민들이 아프리카인 처럼 가난했더라면 말 배설물을 말려서 연료를 했을텐데

우린 그 정도는 아니다.

 

언덕길에 내려와 잠시 쉬는데 옆에 어떤 젊은 아가씨 둘이 다리옆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혹시 그 다리로 가는 길이 9코스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고 가까이 가보니

다리 이름이 특이하다. ‘개끄리민교무슨 뜻일까?

불과 육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인데 육지에서 쓰는 말과 단어가 사뭇 다르다.

 

유채꽃이 피어 있는 황개천에는 주민이 개울가에서 쉬고 있고

맑은 개울물은 멀리 이어지고 있다. 남은 거리도 그다지 길지 않다.

 

작은 다리를 건너니 화순선사유적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선사유적지 인 것으로 보아

이 근처 어디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지도를 봤을 때는 9코스에 긴 코스가 있고 질러가는 짧은 코스가 있는데

걷다 보니 그 구분이 정확치 않은 것 같다.

어디에서 그 길을 놓쳤을까?

 

길은 마을로 이어지고 마을 옆 밭에는 아주머니들이 일렬로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수확하고 있어 멀리서 왕창 속았수다레하고 외쳐 본다.

 

이제 9코스의 종점인 화순포구가 거의 보인다.

배도 출출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경동식당을 찾아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마을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한 사람은 숙소로 돌아가야하니

버스 정류장도 찾아야 한다.

어느 집 앞에서 닭발을 잔뜩 씻어 놓아 기웃거리니 다리 관절에 좋은

한약재라며 소개한다.

 

허름한 경동식당에 사람들이 많다.

갈치찌게를 시켰는데 그다지 맛있게 먹지는 않았다.

차라리 지난 번처럼 중국요리를 먹을걸

 

식사를 하고 친구 부인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고

3명이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 > 제주도올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올레길 11코스  (0) 2013.03.12
제주도 올레길 10코스  (0) 2013.03.12
제주 올레길 3코스  (0) 2012.11.08
제주 올레길 2코스  (0) 2012.11.08
제주도 올레길 8코스 (사진)  (0)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