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는 걸었다 (나들길 7-1 코스)

carmina 2013. 1. 6. 21:44

 

2013. 1. 5 토요일 강화 나들길 7-1코스

 

나는 걸었다.

 

얼마 전부터 오른 쪽 무릎이 조금 아프기 시작하기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았더니 특별한 이상은 없고 다리 근육운동을 하란다.

그래서 늘 아침 운동시에 하던 달리기나 빠르게 걷기보다 다리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에 주력했다.

그럼에도 가끔 통증은 여전하데 새해 첫 단체 걷기 코스가

나들길 15개 코스 중 제일 23.5Km 의 7-1 코스로 정해져 있기에

걸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다음에 내가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게 되면

이 것보다 더한 통증을 느껴도 가야 하는데 겨우 이 정도 아픔가지고

걷기를 쉬면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나 자신의 테스트를 위해 참가하기로 했다.

 

7-1코스 출발장소는 마니산 입구은 화도 터미널.

그 곳으로 가는 버스도 자주 있지 않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부천에서 김포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평소 휴일은 30분 간격으로 오던 차가

1분도 안되어 도착하고 김포에서 화도 터미널 가는 60-2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보니

앞으로 4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60-2번 버스가 마치

순간이동한 은하철도 999처럼 내 앞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행운이 있을까?

 

넓은 김포신도시를 버스가 지나가는데 흰 눈이 펄펄 내린다.

오늘 종일 이렇게 눈이 내리는 길을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눈은 버스에서 내리니 그쳐 있었다.

 

이 추운 날에 모여드는 길 벗들.

모두 얼굴이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모자와 마스크로 꽁 꽁 싸매었기에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낯익은 사람들 모습과, 처음 보는 사람들 얼굴.

그렇게 모인 인원이 33명. 참으로 대단한 열성들이다.

이 추운 날 몰려오는 정성들을 어찌 막으랴. 

 

춥다.

잠시 걸었는데도 손가락이 시려 온다.

두터운 겨울 등산용 털실 장갑을 끼었는데 손가락 끝이 아파 온다.

나만 그런걸까?

마을 길로 들어서니 길 가의 커다란 감나무에 미처 수확하지 않은 주렁 주렁 열린 감들이

꽁 꽁 얼어버린 채로 냉동감이 되어 버렸다.

때론 일부러 큰 연시를 냉동실에 집어 넣었다가 여름에 꺼내도 먹기도 하는데

저 감들이 살짝 녹을 때 쯤엔 얼마나 맛있을까?

 

멀리 산 넘어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은 벌판의 흰 눈이 반짝이고 있다.

조용한 아침, 고요한 강화도.

넓은 벌판에 가끔 까마귀와 까치들이 놀고 있다.

 

잠자고 있는 마을을 우리 일행이 묵묵히 지나는데 길 옆의 털신발을 신은 동네 아저씨가

마치 버스 지나가기를 기다리듯이 우리가 모두 지나 친 후 천천히 가로 질러 간다.

이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돌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잘 살아 보자고 외치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시골의 모든 초가집의 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슬레이트가 암 유발 물질이라

이젠 지붕을 기와집으로 다시 덮어 놓았지만 그래도 집의 벽들이나 문들은

그대로 두어, 이 마을을 지나면 아주 오래된 나무대문들과 문패들을 볼 수 있다.

 

지붕에서 눈이 녹아 내려 굵은 고드름을 만들어 놓았다.

추녀 밑 고드름 안쪽에서 바라보는 마니산 능선이 더 차갑게 보인다.

 

이 마을엔 유독 오래 된 느티나무와 고목 나무들이 많다.

적어도 몇 백년은 되었음직한 나무들이 나이들어 이 빠진 할아버지의 입같이

우글 쭈글하고 여기 저기 커다란 구멍들이 나 있지만

나무의 꼭대기를 보면 여전히 살아 있음이 보인다.

젊은 날 평생 몸바쳐 일하던 논과 밭일에서 은퇴하고

겨우 겨우 생활을 연명해 가는 오늘 날 시골 할아버지들의 모습같다.

 

숲길로 들어서기에 앞서 모두 아이젠을 착용했다.

이전에 낙옆으로 푹신하던 숲길이 이젠 푹신한 눈으로 대체되었다.

모두들 추위에 얼굴이 발그스름하지만 카메라를 들이 대니

두터운 털 모자 밑의 눈동자들은 모두 웃고 있다.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답다.

 

푹 푹 빠지는 숲길. 요즘 따뜻한 날이 드물어서 눈이 모두 건조하다.

마치 백설기 떡을 만들기 전에 쌀가루를 곱게 빻아 놓은 것처럼

등산용 스틱으로 눈 더미를 훑어가니 색깔없는 투명한 선이 만들어 진다.

 

그토록 시렸던 손가락의 감각이 서서히 무디어져 가는 것 같다.

머리에 땀도 나고, 목까지 올렸던 점퍼의 자크를 목 밑까지 내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1시간 정도 걸었나? 눈 가에서 잠시 쉬며 다른 사람들을 보니

장갑 안에 요리할 때 사용하는 비닐 장갑을 끼고 있다.

아...저런 방법이 있구나.

저렇게 하면 온실효과로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춥지 않겠구나. 하나 배웠다.

 

너도 나도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누어 먹고, 뜨거운 차와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

긴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 가지 위의 눈들은 바람에 모두 떨어 진 듯 흔적이 없다.

눈이 많고 날씨가 춥다 보니 걸음들이 느려 행렬이 무척 길어 졌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오늘이 소한인데 예년같으면 대한같은 추위가 요즘은 매일 이어진다.

무려 26년만의 1월 추위란다. 매스컴에서 26년 전 신문을 보여 주는데

그 때는 또 18년 만의 1월 추위란다.

햇수를 더해 보니까 내가 초등학교 시절의 추위다.

어릴 때는 얼마나 추웠던지..

요즘 오리털이나 거위털 같은 패딩 잠바도 없고 솜으로 만든

두터운 외투를 입던 시절을 살아 보았기에 그 추위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참 오랜 세월을 겨울같지 않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그 추위 속에서도 숲속 계곡의 골짜기에서는 눈이 녹은 시냇물이 흐르고

차가운 얼음장 밑에는 미처 흐르지 못한 물결들이 초롱 초롱 맺혀 있다.

 

길을 돌아 양지바른 언덕이나 길에서는 눈이 녹아 낙엽이 모습을 들어내고

눈 위를 뽀각거리며 걷던 길은 다시 와삭거리를 소리가 들리는 푹신한 낙엽위를 걷는다

펜션 옆을 지나느라 눈 녹은 세멘트 길을 아이젠을 낀 채 걸어가니

마치 여자들이 하이힐 신고 걸어가듯이 히프가 들어 올려짐을 느낀다.

여자들이 이런 기분에 하이힐을 신는 것일까?

 

바닷가로 나왔다.

바닷가에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퍼즐처럼 조각을 맞추고 있다.

파도가 밀려와 바닷가에 부서지며 포말을 만들더니 그 포말들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얼어 붙어 이런 조각품들이 되어 버렸다.

 

둑 아래 얼어붙은 포말들 위로 걸어가고 싶지만 다른 이가 위험하다며 가지 못하게 말린다.

그 길을 걸으면 갓 구워내어 바삭거리는 비스켓위를 걷는 기분일텐데..

 

7-1코스는 걷는 중간에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이 안 되었지만

장화리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어야 한다.

대구뽈테기탕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걷는데

벌판에 아주 커다란 모닥불용 나무가 쌓여 있고 나무가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같이 가는 사람이 며칠 전 이 곳 장화리에서 해너미 행사가 열렸을 때 피웠던 것이라 하는데

아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무가 타지 않았다.

지금 내려가서 불을 피워 볼까 하는 개구쟁이 같은 발상을 한다.

그 행사 때 사용한 듯 길에 붓글씨로 커다란 휘호를 써 놓았는데 너무 달필로 써 놓아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멀리 벌판 한가운데 보이는 썰매장에서 가족들이 겨울을 즐기고 있다.

 

타이어로 계단을 해 놓은 높은 언덕을 올라 숲 길로 들어섰다.

숲 길 양 옆으로 눈이 쌓여 있지만 차라리 눈길을 걸어가는게 좋을텐데 조금 아쉽다고만 할까?

이 쪽 길은 작은 언덕들이 있어 포만감에 가득찬 우리 일행들이 가뿐 숨을 내쉬며 걷지만

곧 평탄한 둑길로 걷게 되어 있다.

 

그렇게 긴 길을 걷다가 미루돈대 위에 모여 한바탕 음악회를 가졌다.

이전 걷기행사 때 새로 오신 분이 노래를 했는데 너무 소리가 좋다고

늘 노래를 부르는 나와 듀엣으로 노래 불러 달라는 요청이 사전에 있어

성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알 수 있는 곡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즉흥적으로 만든 화음으로 이 넓은 공간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는 몇 년 전 작고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60대 초반에 90살의 아버지와 같이 부른 노래로 유명하고

외국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와 나의 영원한 리베로인 존덴버가 듀엣으로 불러 히트쳤던

'Perhaps Love'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정지용의 시를 김희갑씨가 작곡하고

성악가 박인수교수와 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부른 '향수'는 당시만 해도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박인수 교수는 성악가가 유행가를 불렀다는 이유로 서울대 음대 교수직을 내 놓아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여행기가 음악 얘기가 되어 버렸네.

 

성당을 다닌다는 그 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소리가 참 건강했고

이미 몇 년 전에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다녀왔고 올해 또 간다는 것이 심히 부러웠다.  

 

길은 남향 언덕이 많아 눈이 녹아 있고

그 길은 해병대 해안 초소가 있는 길이라 초소로 가는 길들이 모두 개끗이 빗자루로 통로를

내어 놓았다. 군 시절에 눈만 오면 그렇게 초소로 가는 길을 닦아 놓아야만 했기에

이 길은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젠을 착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하게 쓸어 놓은 길에도 쌓인 눈이 녹아 빙판이 되어 앞서 가던 이가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혹시 뒷사람이 다칠까봐 내가 한 참을 기다려 뒤 이어 오는 사람에게

위험한 곳임을 알려주었다.

 

걷자.

이젠 긴 긴 둑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은 여름에 걸으면 잘 걷지 못하거나 나이가 든 사람들은 탈진할 정도로 긴 코스다

왼쪽은 넓은 벌판 오른 쪽은 얼어붙은 바다.

벌판이나 바다나 모두 흰 색의 카페트로 덮혀 있다.

끝없이 얼음 벌판으로 뒤 덮힌 넓은 바다. 멀리 섬이 희미하게 보여 마치 더 환상적으로 보인다.

 

다행히 바람이 안 불어 걷기는 좋았다.

아침에는 추웠지만 낮부터 기온이 올라가 걷기에는 딱 좋다.

가끔 두터운 자켓을 벗어 배낭 안에 넣는 이들이 보인다.

 

바다가 모두 얼어 버리면 썰물 때 물은 어떻게 들어 오나?

걷는 내내 궁금했다.

지금 바닷가에 얼어 붙은 얼음들을 보니 물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바닷가가 얼어 버리면 물이 안 들어 오는건 아닌가?

 

둑길의 귀퉁이부터 눈이 녹아 한 20Cm 정도 세멘트 길이 보여 그 쪽으로 걸어 보았는데

자칫 옆에 있는 눈길에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

한 발은 눈을 한 발은 세멘트를 밟으며 걸었다.

 

쉴 곳도 별로 없어 끝없이 걷는 이들이 조금씩 지쳐 간다.

오전 내내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었기에 다리에 더 힘이 들어갔을 것이고

두텁게 껴 입은 옷 때문에 몸이 둔해져 더 피곤이 빨리 올 수도 있다.

 

계속 둑길을 걸어야 하기에 쉴 곳도 마땅치 않은데

앞서 가던 이들이 철새조망대에서 조금 쉬어 가도 좋으련만

그냥 지나치고 있다. 그래서 리딩이 중요하다.

혼자만 힘이 남는다고 빨리 걸으면 뒤 이어 오는 사람들이 힘들다.

 

둑길이 잠시 끝나는 곳에서 모두 앉아 쉬는데

어떤 처음 보는 이는 여기까지 오는 것이 힘들었던지 바위 위에 길게 누웠다.

어떤 이는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며 물어 보기도 한다.

아직도 8Km 정도 더 가야 한다 했더니 한숨을 쉰다.

그래서 중간에 빠져 조금만 걸어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건만

그 길로 빠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힘들지만 모두 바다를 보며 즐거워 한다.

이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

희뿌연 하늘에 멀리 산 위에 구름에 가린 해가 빛을 잃어 버렸다.

눈이나 왔음 좋겠는데..

 

둑 밑 펜션에 MT 나온 듯한 사람들이 단체로 게임을 즐기고 있고

넓은 저수지에선 강태공들이 낚싯대 몇 개를 들어 올리고 겨울을 즐긴다.

바닷가의 고양이는 추운 듯 자꾸 몸을 움추리고,

꽁꽁 얼어 붙었던 바닷가의 얼음들은 조금씩 녹아서 잘게 부서질려는지

금이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닷가에 있는 큰 돌들 위를 휘 감았던 바닷물이 얼어

마치 도너츠에 덮은 설탕이 식어 하얗게 변한 크리스피 도너츠처럼

바위 윗부분에 엷은 얼음이 덮히기도 하고

바위 밑 부분을 얼음이 엷게 감싸 안기도 했다.

참으로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겨울의 모습들.

 

그 길 속에 여러 군상들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길을 걸을 때는 하나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멀리 마니산이 길게 누워 있다.

저 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즐기고 있을까?

썰물 때라 동막 해수욕장에 놀러나온 가족들이 한 겨울의 바다를 즐기고 있고..

 

그렇게 우리의 새해 첫 긴 기행을 마무리지었다.

카페에 올라 온 사진들의 댓글이 모두 좋았다는 글 일색이다.

 

직장생활 속에서는 하루에 얼마나 웃을 수 있을까?

가정생활 속에서는 하루에 몇 번이나 웃을 수 있을까?

나들길 걸으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웃음 속에 걷는다.

 

가장 힘들어야 할 곳에서 가장 밝은 웃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