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건너 봄이 오듯 (나들길 5코스)

carmina 2013. 2. 16. 22:07

 

2013. 2. 16 토요일

 

강화도 나들길 5코스 고비고갯길

 

한국의 신작 가곡 작곡가로서 이름이 나 있는 임긍수씨의 '강건너 봄이 오듯'

이 노래를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부를 때 에프엠의 반주 부분만 들어도

난 가슴이 설렌다. 지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사와 조수미씨의 맑고 청아한

노래가 들을 때마다 나는 감동한다. 차를 운전하다가도 이 노래가 나오면

차를 세우고 듣고 난 뒤에 출발할 정도이다.

 

송길자 시 임긍수 곡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실은 배가 저만치 새벽안개 헤쳐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치 새벽안개 헤쳐왔네

 

오늘도 강물따라 뗏목처럼 흐를꺼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내 마음 어둔 곳에 나의 풀어 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 없이 그리움

말없이 말없이 흐르는구나

오늘도 강물따라 뗏목처럼 흐를꺼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흐르듯 나부끼네

물흐르듯 나부끼네  

 

나들길 카페친구들과 길을 걸으면 중간의 휴식시간에 꼭 나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 부탁한다. 또 내 노래를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서 늘 나는

미리 노래를 준비하고 틈틈히 가사를 외우기도 한다.

 

걸으며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나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불러야 할 때

늘 내가 준비하는 노래는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움과

여행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노래로 선곡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래 전 부터 부르고 싶었던 곡.  강 건너 봄이 오듯

그러나 소프라노의 높은 음을 따라 하기에는 불가능해 키를 내려 연습했다.

 

오늘 나들길 걷기는 이 노래의 가사와 같았다.

바닷가에 꽁꽁 얼어 붙었던 얼음들이 이제는 살얼음이 되고

그 밑으로 봄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외포리와 석모도를 오가는 배들이 멀리서 안개를 헤치며 오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있으면 연분홍꽃들이 필 것이고 새소리들이 들릴 것이다.

봄이 물흐르듯 나부끼며 오고 있다.

 

지난 주일 밤 나는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출장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카타르 도하에서 2시간 뒤에 갈아타야 했는데 그만 한국에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5시간이 연발하여 도하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어쩔 수 없이

이태리의 로마로 가서 다시 아프리카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거의 20여시간의 비행을 하고 출발부터 도착까지 무려 32시간 정도의

여행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었다.  

 

그 눈이 아직도 산에 그늘 진 곳에 남아 있다.

눈이 온 뒤 한차례 한파가 더 와서 눈이 쌓인 채로 얼어 버렸다.

오늘 걷기는 완전히 마치 잘 마른 누룽지를 걷는 것처럼 눈 위를 걸을 때 마다

와삭 와삭 소리가 난다.

 

익히 걷던 길.  나들길 5코스 고비 고갯길, 강화도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길이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는 이 코스를 걸어 본 적이 없다.

여름 쯤 산딸기가 산에 가득했을 때 2번 걸어 보았고

가을에 황금벌판 이었을 때도 걸었고..

 

유난히 추웠던 해인지라 얼어붙은 국화리 저수지에 눈이 덮혀 거대한 백설의 벌판을 만들었고

내가 저수지도 꽁꽁 얼어 강태공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강화가고 오는 대중교통편의 타이밍이 잘 안 맞아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다.

그러나 걸으며 느끼는 기분은 그 모든 지루함도 다 씻어낼 만큼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비만학생을 데리고 온 비만 엄마가 결국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눈 쌓인 길을 걷다가 다른 일이 있는 사람도 점심 식사 후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5코스는 중간에 점심 먹을 식당이 마땅치 않아 점심시간이 훨씬 넘어 먹느라

반찬에 시장기를 더 추가했다.

 

조그만 마을 식당에 갑자기 30명 넘는 인원이 들어 오니

잔칫집에 와 있는 것 같이 북새통이다.

부대찌게, 백반 등 흔한 메뉴이지만 반찬에 정성이 있고, 맛도 있어 좋았다.

 

늘 파란 텐트를 쳐 놓았던 국화리 학생야영시설에도 텐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한 여름에 무럭 무럭 자라던 소외양간들도 거의 대부분이 텅 비어 있고

그 자리는 걸레같은 누더기들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여름의 푸른 녹음으로 감추어 져 있던 인공적인 것들이

추운 겨울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지난 달 걸을 때만 해도 감나무 높은 곳에는 얼어붙은 감이라도 달려 있었는데

오늘은 그나마 달려 있는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두 배고픈 까치들의 밥이 되어 버렸다.

 

지난 해 고비고갯길을 걸으며 산딸기를 따먹고, 오디를 따 먹던 곳에는

이젠 마른 덤불들과 마른 가지들만이 언제 내가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고, 인적없는 주택의 마당에 매어 있는 털복숭이 강아지도

모른체 하며 내 눈을 피하고 있다.

 

국화리 학생야영장을 넘어 내가면으로 가는 길의 당산나무가 있는

언덕길은 눈이 가득해 좁은 눈길을 걷는 것이 거의 환상적이었으나

덕산을 넘어 외포리로 가는 휴양림 길은 눈이 녹아 낙엽밑의 흙들은 거의 진흙으로

변해 미끄러지기 쉬어 조심해서 걸었는데도 그만 한 번 미끌어져

엉덩이가 흙범벅이 되어 버려 엉덩이를 눈 밭에 깔고 비벼대어 흙을 털어내야만 했다.

그래도 즐겁다.

 

굿당에서 외포리로 내려가는 언덕의 비탈진 마을 길을 걸을 때마다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화 나들길이 변하고 있다. 이정표를 보기 좋게 모두 바꾸고

강화터미널에 이전에 버스표를 팔던 쓸모없던 조그만 부스에

이제는 우리와 같이 길을 걷던 분이 종일 강화 여행 안내를 하고 있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들러서 차 한 잔을 마시는데

불과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길을 묻는다.

일몰 사진찍기 좋은 장소를 물어보고,  

가까운 숙소와 맛있는 식당을 물어 보고

나들길 가고 오는 교통편을 물어 보고...

 

이전에 이런 안내소가 없었을 때 외지에서 혼자 혹은 두 세명이 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했었을까?

나도 외지지역사람이지만 무언가 일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아는 국내의 둘레길 중에 가장 자연친화적인 둘레길로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으니까..

 

이전과 같이 나들길을 자주 오지 못하는 환경이라 다음에는

나들길에 봄싹이 가득할 때 올 것 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나들길을 걷고 다시 먼 길을 달려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도 나들길이 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