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일본 가족여행

carmina 2013. 12. 5. 16:57

처음으로 떠나는 온 가족과의 외국여행, 일본을 목적지로 잡았다. 마침 일본에 합창단 후배가 유학 차 온 가족이 나가 있어 잠은 해결이 가능하기에 새해 연휴를 디데이로 잡고 스케줄을 잡기 시작했다. 우선 온 가족의 일본 비자를 여행사를 통해 미리 받아 놓았다.

그간 업무차 해외 여행을 다니며 누적해 온 대한 항공 마일리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나 가까운 거리를 가는 데는 오히려 내 비용으로 가고 먼 곳 갈 때 요긴하게 쓰자 하고 아껴 두기도 했다.

통신으로 날아 오는 여행 안내지에 일본 토쿄 2박3일 코스가 있다. 단지 비행기와 호텔만 알선해 주는 저렴한 펙케이지 상품이 언뜻 눈에 들어 오길래 스크랩을 해 놓았다. 그리고 다른 여행사측에 비슷한 상품을 알아 보았으나 제일 저렴한 것 같기에 여행사를 접촉해 우선 12월 31일 떠나는 비행기로 예약을 해 놓았다.

그러나 업무가 자꾸 걸린다. 애당초 년말 쯤엔 한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계획을 했는데 자꾸 업무가 계획과 빗나가 버린다. 설마 이런 황금 연휴에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는 생각이었고 외국업자들도 그 때는 일을 안 하리라 하고 미리 업무 스케줄도 그렇게 해 놓았는데 날이 가까와 질수록 떠나는 것이 불투명 하여 졌다.

그러나 막판에 반전을 거듭하던 계획이 마침 여행 일정에 아무 일이 안 생길 것 같아 예정대로 내 손에는 온 가족 비행기 티켓이 주어졌다. 애들도 무척 설레는 것 같다. 연말에는 항상 온 친척들이 모여 망년회를 갖지만 올해는 못 간다고 미리 얘기해 두었다.

일정은 12월 31일 오전에 출국하여 1월 4일 오후에 돌아 오는 것으로 잡고, 호텔에서 2박 친구집에서 2박을 계획했다. 애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비행기타는 것이 즐거운지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조잘 대며 귀를 간지럽힌다.

비행기안에서 애들은 제법 의젓했다. 마치 여러 번 타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처럼 신기해 하지도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기내 식사도 맛있게 먹어 치우고 잠간 동안 애들의 즐거운 표정들을 보다 보니 금방 두시간을 날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다. 혼자 여행할 때 온 가족이 법무부 심사대에 같이 나가 입국 절차를 밟는 광경을 볼 때마다 얼마나 동경했던가. 이제 나도 오늘 몸소 실연해 보인다.

떠나기 전에 친구가 가르쳐 준대로 공항에서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표를 사는데 요금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미 어느 역에서 친구부인과 약속한 시간이 있어 이제 와서 다른 편으로 갈 수는 없다. 역 구내로 내려 오니 무척 조용하다. 왜 이리 조용한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역 구내의 깨끗함에 아들이 놀란다. 왜 이리 깨끗하느냐고... 갑자기 아빠가 부끄러워진다. 벌써 아들은 한국의 것들과 하나 하나 비교하기 시작한다. 아니 아빠는 이번 여행에서 그것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경제 대국인 일본이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기회를 내 자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기회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그래! 네 눈을 떠라. 그리고 보고 느끼고 들어라. 많이 생각하고 우리 것이, 우리 자신이 많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많이 자랑스러워 보이기도 하여라. 우리 것이 좋고 귀한 것임을 알기도 하고 외국 것에도 좋고 배울 것이 많음을 깨달아라. 그런 것들을 네 잠재 의식 속에 심어 두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이번 가족 여행 목적은 달성된다.

기차는 깨끗하고 공항을 오가는 열차답게 외국 여행객들이 필요한 가방 보관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승객도 별로 없이 출발하는가 싶더니 다음 공항 터미날에서 많은 여행객들을 태우고 그 다음은 별로 서는 정류장없이 줄곧 달렸다. 기차가 달리는 옆의 주택에서 한 눈에 일본임을 깨닫는다. 곡선이 없는 지붕들의 연속, 그리고 많은 일본 간판들, 주택가에 널려 있는 많은 이불빨래들에서 햇빛을 좋아하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다. 한가롭게 서 있는 들 녘의 풍차가 시선을 끌고 기차는 누런 빛의 들판을 스쳐 지나간다.

일본은 전철이 10호선정도로 거미줄 처럼 엮어져 있어 어디를 가도 전철과 국철을 잘 이용하면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갈 수 있다. 한국도 이러한 시대가 점점 오고 있지만....

친구의 아내와 만나기로 한 역을 가기 위해선 나가노 역에서 한 번 갈아 타야 한다. 일본에 이미 와 본 경험이 있고 웬만한 일본어는 대충 알기에 기차를 바꾸어 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조그마하게 써 놓은 온갖 역 이름을 찾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역들 중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역의 이름을 대고 표를 넉장 구입해 다른 열차로 갈아 타고 약속한 역으로 가니 개찰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을 기다리고 있다. 같이 나온 친구의 딸도 무척이나 커서 이제는 애기라 불릴 정도가 아니다. 하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애라고 부르진 못하지. 우린 가방을 옆에 놓고 무척이나 신나는 해후를 한 후 표를 보여 주니 친구 아내는 어린이 표를 사지 않았다고 일부를 상환하러 가잔다. 일본어 한 마디 못하던 친구 아내는 내가 듣기에 유창한 일본어로 한 참을 매표소 직원과 실강이를 하더니 결국은 동전 몇 개를 가지고 온다.

친구가 사는 신주쿠 지역에는 열차 정거장주위로 상가가 형성 되어 있어 내리자 마자 일본 특유의 식당들, 음식들, 그리고 온갖 생활용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 주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보러 다니느라고 자전거의 앞에는 항상 장 바구니가 달려 있다.

한산한 주택가를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걸어 들어가는데 집집마다 이상한 표시가 걸려 있다. 커다란 종이 꽃과 소나무 종류의 나무 가지를 대문 앞에다 걸어 놓았다. 내일이 신정이라 모두들 저렇게 대문 앞에 저런 것들을 걸어 놓고 한 해의 복을 빌고 있다 한다.

친구는 한국에서 하던 직장을 갑자기 중단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족의 생계는 그간 벌어 놓은 돈과 퇴직금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물의 음향설계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한국 음식점에 아르바이트 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며 몇 년을 다니다가 딸 하나인 가족까지 데리고 가서 3년전 부터 생활하고 있다.

딸의 학비는 워낙 교육 지원이 잘 되어 있는 일본이라 걱정이 없고, 친구아내는 낮에 슈퍼마켓의 계산대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로 가계를 꾸려 나가고 있는 억척 가족들이다.

일본은 대개 모든 집이 무척 작다. 우리 같이 30평, 40평이 넘는 아파트는 찾아 보기 힘들다. 워낙 땅값과 집값이 비싸고 생활비도 비싸기에 큰 집은 엄두도 못낸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그 정도에 생활하니 조그만 집에 살아도 전혀 열등감을 느끼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없단다.

친구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도 10평도 안되는 방 두 개짜리 집에 살고 있다. 마치 비행기의 좁은 공간에 온갖 필수품들이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듯이 친구 집도 그렇게 좁은 집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빼곡히 마련해 놓고 살고 있다. 보통 피아노는 소음 때문에 구입하지 못하고 소리 안 나게 연주 할 수 있는 디지털 피아노를 들여 놓은 것이 이채롭다.

아직 친구의 아르바이트가 끝나지 않아 허전한 집에 들어서자 마자 일본 라면을 끓여 달라 해서 맛있게 먹어 치운다. 우리 다해는 한국에서도 같이 놀던 언니가 있는지라 무척 신이 났다. 이름이 새로나인 친구 딸은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발음이 본토발음이고 의사 표현을 모두 일본어로 하는데 무리가 없다.

저녁때 쯤 친구가 와 우리는 반가운 포옹를 한 후 시내에 나가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모두 신주꾸의 거리로 나들이를 나온다. 신주꾸의 밤은 연말인데도 별로 흥청거리지 않지만 백화점 불빛만 환하게 빛나고 있다. 한국에서 떠나 올 때 직원이 돈을 미리 주며 부탁한 건강 금팔찌를 찾고자 백화점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백화점을 나오니 금방 거리는 썰렁해 진다.

전철에는 매 칸마다 조그만 액정 TV가 광고판 대용으로 부착되어 있고 끊임없이 광고를 내 보여 주고 있으며, 역 플랫홈에서 근무하는 전철 안내원은 늘 잡아 당기면 두 배로 늘어나는 긴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가 선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발견하면 막대기를 길게 늘려 끝에 있는 뾰족한 꼬챙이로 물건들을 찍어 올려 버리고 있는 모습에서 이렇게 깨끗한 일본의 풍경이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녁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우리가 간 곳은 별로 크지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초밥 집으로 실내가 무척 단순하다. 이 음식점에는 넓은 홀이나 사각형 테이블대신 주방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도록 되어 있어 같이 모여 앉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초밥을 싫어하는 애들은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고 아내와 아내 친구는 저편에 따로 앉아야 했다. 식당의 가운데에는 서너명이 하얀 가운을 입고 열심히 초밥을 만들고 있는데 각자가 재료를 다른 것으로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생선 어떤 이는 오징어 어떤 이는 김초밥 등등 나누어 만들어 가운데를 빙빙 돌아가는 콘베이어에 조그만 접시째 두개씩 올려 놓으면 둘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집어 먹고 빈 접시를 차곡 차곡 옆에 쌓아 놓는다. 자세히 보니 접시의 색갈이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다. 친구의 설명인 즉 접시마다 회의 등급에 따라 요금이 틀리다 한다. 조금 고급 회와 일반 회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접시 하나에 100엔이니 1000원꼴이다. 비싼것은 150엔하고...

유명한 초밥집이라 그런지 무척 맛이 있다. 평소 거의 회를 안 먹는 아내도 벌써 몇 접시인지 모를 정도로 계속 비우고 있다.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난 후 이젠 애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인근의 햄버거 집에 들어가 애들을 즐겁게 하면서 창으로 내다 보이는 길 건너편 가게에서 구두 세일 한다고 아내와 아내 친구는 애들을 우리에게 맡기고 나가 버린다. 금방 온다던 여자들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꼼짝없이 애들과 하릴 없이 멀거니 거리만 쳐다 보고 있었다.

일본 최고의 명절의 전날 밤이고 일본 최고의 환락도시라는 신주꾸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찍 잠이 들고 있다.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연인들이 헤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주꾸 역 근처의 지하도에는 거지들이 서서히 밤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경제 부국인 일본에도 거지는 수 없이 많다. 복지 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들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 그렇게 집 없이 가족없이 지낸다고 한다.

거리를 한꺼번에 밀려 다니던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흩어져 버리고 거리엔 조금 불량끼가 있어 보이는 청년들만이 돈 벌이터인 밤거리를 어슬렁 거리고 있어 위험성이 있는 관계로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친구는 오늘 까지 저녁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며 일단 헤어지고 우리들은 오늘이 연말이라 한인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로 되어 있다. 택시를 타고 어둠을 잠시 달려 어느 기차 정거장이 있는 지역에 내리고 밤거리를 걷는데 친구아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곳을 지나가는 기차의 경적이 '찡, 찡' 으로 표현하는데 일본어로 '찡' 이라는 말이 남자의 생식기인 고추를 '찡'이라고 한다고 하니 우리 딸애가 그 말이 재미 있었는지 계속 '찡, 찡'하며 오빠를 놀리고 있다.

아직은 예배시간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아서 피아노를 전공한 나의 아내랑 성악을 전공한 친구의 아내가 남는 시간을 오랜만에 노래를 즐기다 보니 청년들이 한 두 명씩 교회로 들어 와 교인들이 송구 영신 예배 후 만들 떡국을 준비한다. 그 옆에 우리 애들은 잠이 들어 버렸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특별찬양을 준비하고, 늦게 올 친구와 같이 하고자 했으나 친구는 특송을 부른 후에나 교회에 도착하였다. 일찍 올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낯 모르는 교회에서 온 가족이 축복 기도를 받고 새해의 새벽에 집에 들어와 4명이 새삼 만남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내일은 후지산에 놀러 가기로 되어 있으니 더 이상 노닥 거리고 있을 수 도 없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7명이나 잘 수 있을지 의아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우리는 살을 부대끼며 외지이지만 따뜻한 우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일본 가족 여행 2일째

렌터카를 빌려 후지산을 가기로 한 날.

일행이 비록 어린이가 3명이 있지만 무려 7명이나 되나 보니 승용차로는 안되어 밴을 하나 빌렸다. 일찍부터 아낙들은 아침을 준비하고 아울러 점심까지 준비해 놓느라 바쁜 모습이다. 추울 것이라 예상했기에 단단히 챙겨 입고 문밖을 나서니 주택가는 썰렁하기만 하다. 모두들 어디 갔는가? 지나가는 차 하나 보기 힘들다. 문 앞에는 어제는 보이지 않던 이들의 최고 교통수단인 자전거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2층으로 마련된 자전거 주차 시설이 시선을 끈다.

운전석이 오른 쪽에 달려 있는 어색한 차에 올라 출발.

차창가에 스쳐 가는 아직 잠이 덜 깬 주택들 사이로 자전거들이 지나가는데 가끔 이상하게 탑승한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뒤에 탑승한 사람이 서서 가고 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교통법상 자전거의 뒤에는 못 앉게 되어 있어 앉지 않고 서서 간단다. 그러니까 법은 어기지 않는 셈이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인지 아니면 어수룩한 교통법인지,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이들의 사고 방식이 이상하기만 하다. 우리는 오토바이 운전수가 반드시 안전모를 쓰게 되어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들은 불편한 줄 알지만 서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교통법은 지킨다. 하긴 선진국을 판단하는 척도는 얼마나 준법정신이 투철한가에 있으니 이들의 생활이 수긍이 간다.

차가 시내를 빠져 나가면서 처음 일본에 가족을 데리고 왔을 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애를 처음 학교에 보냈을 때 오직 한 마디만 가르쳤단다.

"선생님,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일본은 외국인이라도 학교에서 거의 전 교육비가 지원되기에 가르치는데 재정상 어려움을 없었다고 한다. 단지 '이지메'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가 학교에서 때리면 반드시 같이 싸우라고 가르친 덕에 이젠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낀단다. 노래를 좋아하는 가족이기에 딸애도 합창단 생활을 하게 하였더니 제법 노래를 한단다.

차가 어느 길을 지나가다가 화장실에 들르고자 조그만 휴게소에 정차하여 일을 본 후에 휴게소를 둘러 보았더니 한 쪽 벽에 온갖 자동판매기들이 즐비하다. 음료수는 물론, 우동, 담배, 과자, 생활 필수품 등등 열 몇개 정도의 자판기의 물건 보유량은 그야말로 슈퍼마켓 하나 정도의 규모이다. 휴게소 마당에는 재미있는 장삿군들이 있어 애들이 무척 신기해 한다.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장삿군의 옷 차림은 한국의 정통 일식집에서 일하는 주방장의 옷 차림 그대로이다. 그리고 온갖 글을 써 붙여 놓은 모습은 일본 문화의 단면에서 무수히 보아 오던 형상들이다.

커다란 원 통속에는 쪽지가 가득 들어 있고 그 쪽지들이 바람에 날려 휘 휘 돌고 있다. 손님들에게 추첨하게 하여 옆에 즐비하게 쌓아 놓은 물건들과 교환하게 한다. 아들과 딸에게 해 보라고 했더니 속에 있는 쪽지를 집어 뿅뿅이 망치를 하나 골랐다. 그리고는 그 뿅뿅이망치로 서로의 머리를 때리며 장난에 열중한다. 아들은 크고 아주 긴 도깨비 방망이를 골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제부터 친구의 딸이 가지고 있던 조그만 테트리스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더니 기어코 사고 말았다. 애들은 이런 조그만 물건하나로 이미 즐거움에 가득 차 있다.

휴게소에는 다른 여행객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데 이상하게 장애인이 무척 눈에 많이 뜨인다. 친구의 설명인 즉, 일본은 근친상간이 많아 저렇게 소아마비걸린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긴 일본은 섹스로 이름난 나라이니 이 들의 조상들끼리 섞힌 피가 후세에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차가 고속도로를 접어들자 아주 멀리 7부 능선 정도까지 눈이 덮힌 후지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온다. 차가 곡선길로 들어 설 때마다 보이는 그 원추형의 후지산은 주변의 온갖 것을 치마자락으로 포근히 감싼 모습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단지 봉우리 하나로 우뚝 서 있는 산이 존재하는지 우리 산하에 익숙한 나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하다. 산 꼭대기에는 분화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조금 뭉툭하고 멀리서도 화산 폭발당시 흘러내린 용암들이 보이는 듯 하다.

고속도로 변의 차단막시설이 조금 특이하다. 얼핏 얼핏 보이는 도로옆에는 집들이 없는 것이 분명한데 차단막 시설이 아주 높다. 어떤 이유일까? 집도 없는 이런 곳에 소리를 차단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차량의 소음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가?

양쪽의 차단막의 끝 부분은 안으로 구부러져 있어 차의 소음이 도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 주고 있다. 음향 설계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는 이런 시설에 대해서 한 참을 설명한다.

약 3700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후지산에 거의 도착하였을 때쯤 더 이상 가면 카메라에 산이 한꺼번에 안 잡힐 것 같아 모두 길에서 내려 후지산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바람은 불지만 그 세찬 바람조차 우리의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진 못했다.

드디어 후지산에 도착했다. 천천히 산으로 올라 가는 길의 양 옆은 눈은 없고 흙들이 모두 검정색에 가깝다. 지하가 용암으로 워낙 뜨겁다 보니 흙이 모두 새까맣게 타버려 저런 색이라는 친구의 설명이 있다. 그 뜨거움속에서도 파란 잎을 자랑하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있다. 이런 천연적인 환경때문에 이 근방이 온통 온천으로 유명하다. 오늘 일정중에 하꼬네 온천도 예정되어 있다.

어느 정도인가 올라갔는가? 산 중턱 쯤에 음식점이 있고 너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은 명절에 이런 곳에 오지 않는가? 주차장은 무척 한산하다. 차에서 내려 눈 앞을 보니 후지산의 눈 덮힌 정상이 바로 손 앞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다. 흰 구름이 후지산을 감싸고 지나가고 있고 그 구름으로 인해 후지산은 늘 흰 색으로 보이는 것인가?

바람이 제법 차기에 애들보고 차 안에서 내복을 입으라고 얘기하고 나는 밖에서 찬 바람을 즐긴다. 애들은 산이 아니라도 재미있어 한다. 단지 부모와 외국에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애들에겐 이미 충분히 즐거움의 가치가 있다.

산을 배경으로 모두 가족사진 독사진을 찍고 가지고 온 점심은 추운 날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좁은 차안이면 어떠랴, 좋은 친구가 있고, 애들도 이런 장소에서 조차 밥을 먹는게 즐겁기만 한지 밥이 모자를 정도로 퍼 먹는다.

  

식사 후 멋진 후지산 배경으로 독사진, 가족사진, 부부사진 등 필름을 아끼지 않고 팡팡 찍어댔다. 이렇게 많이 찍어도 잘 나오는 것은 한 두 장 정도 밖에 없으니 나중에 후회 없을려면 필름 아깝다 생각말고 잔뜩 찍어야 한다.

커피 한 잔도 맛있고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공중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재미있다. 후지산의 위를 스쳐가는 구름이 한 없이 여유가 있어 보인다. 눈이나 내리면 좋으련만....

차를 타고 후지산 전체를 한 바퀴 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산을 내려 와야만 했다. 안내에 의하면 이 곳에 여러가지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많다 하는데 애들도 있고 시간도 없는 관계로 생략하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는 온천이다. 유명한 하꼬네 온천. 후지산의 유황성분이 가득하다는 온천을 찾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차는 한없이 고개길을 구불 구불 올라 가고 있다. 별로 차 멀미를 안하는 나도 멀미 기운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길을 친구는 한국에 있을때 차세일즈하던 기본 운전솜씨와 일본에서 익힌 능숙한 왼손 운전솜씨로 아슬 아슬한 길을 거침없이 올라가고 있다. 온천이 이렇게 높은 지역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디쯤인가 올라갔을때 우리는 아주 짙은 안개속에 파 묻혀 버렸다. 그대로 올라가는 것은 화를 자초할 것 같아 차를 내려 화장실도 갈 겸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간판으로 하꼬네라고 일본어로 써 있다. 아! 이곳이 하꼬네인가? 짙은 산 안개로 더 이상 가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우리는 가던 길을 다시 내려와 다른 온천 동네를 찾는다. 가는 곳마다 온천임을 알리는 등이 환하게 밝혀 있고 그 중 유명한 곳을 물어 물어 찾아 갔다. 애들도 목욕한다 하니 그것도 신기한지 무척 기대를 한다.

온천하는 곳에 들어가기 전에 욕탕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여자편, 남자편 갈라서 미리 싸놓은 것을 들고 이따 봐! 하고 아내와 딸과 잠시 헤어진다.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노천탕이 있다는 곳으로 가 보았다. 노천탕으로 향하는 문을 여니 금방 한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내 손을 꼭 잡은 아들은 벌써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또 다른 문을 여니 바로 밖이고 몇 몇 벌거벗은 남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동여 매고 김이 무럭 무럭 나는 노천탕에서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다. 그곳으로 들어 가고 싶었지만 가족이 있어 실내탕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모든 시설이 깨끗하고 김이 서려 잠시동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욕탕에는 많지 않은 사람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한 가운데서 큰 물줄기가 솟아 오르고 여행으로 피곤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니 이 또한 천국이다.

사우나에 아들을 유혹하여 들어가게 하였더니 처음엔 무척 망설이더니 막상 들어가고 나서는 참을 정도라 한다. 그리고 사우나를 나와 이젠 시원하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영락없이 너도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 조상들이 그래 왔듯이 뜨거운 국을 먹으며 시원한 느낌을 갖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한다.

한 시간 정도 온천욕을 즐기고 밖으로 나와 잠시 쉬고 있으니 아내와 딸이 물기가 가득한 머리를 휘 흔들며 발그스름한 얼굴로 웃으며 다가 온다. 무척 개운한 느낌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덴뿌라 오뎅을 먹으러 고속도로 변의 휴게소를 들렀으나 여의치 않던 중 마치 어느 한적한 휴게소에서 먹고 싶어하던 덴뿌라 오뎅을 찾았다. 사람이 많지 않아도 직원이 돈을 받는 일이 없다. 모두 자동 매표소에서 돈을 넣고 자기가 필요한 음식의 메뉴를 정하여 버튼을 누르면 식권이 나오고 그것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나는 무척 맛있게 먹는데 애들은 별로 맛을 못느끼나 보다. 다른 것으로 애들것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마땅한 음식이 없어 일찍 나와 다시 신주꾸를 향했다.

다음 가는 곳은 요코하마의 다리라 한다. 다리가 무슨 구경거리가 되느냐고 하였더니 가보면 안다고 한다. 친구는 방향을 잘 못 잡았는지 다리가 저 멀리 보이는데 자꾸 되돌아 가기를 몇 번하더니 제대로 다리 위로 올라 갔다. 다리는 난간과 다리에 조명등을 밝혀 놓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한다. 요코하마는 항구도시라 그런지 다리위에서 보이는 바다엔 제법 큰 항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흥미를 끈 것은 다리 밑에 커다란 젊음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점이다.

우선 애들에게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다리 밑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애들 좋아하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해결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고 몇 대의 멋진 스포츠카들이 요란한 록사운드를 내며 정차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차안에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고 스피커를 트렁크에 설치했다. 그리고 자기의 오디오 시스템을 자랑하는 것인지 혹은 그런 시스템을 판매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차둘레에 모여 서 있고 차 안의 스피커들은 커다란 사운드에 맞추어 떨림판이 심하게 앞뒤로 흔들리고 굉음을 쏟아 내고 있다.

여기 저기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딸이 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추어 열심히 마카레나 춤을 추고 있다. 그 모습을 보려고 또 주위의 사람이 잠시 몰려든다. 잠시 머쓱해진 우리 딸은 추던 춤을 중단해 버리고 우린 이제 오늘의 여정을 끝내기 위해 도쿄로 방향을 잡았다.

내가 이번 여행에 사온 펙케이지 쿠폰 중에 호텔 2박이 포함되어 있어 시내의 빈테이지 호텔이라는 곳을 찾았다. 규정 상 두 명이 숙박키로 되어 있으나 좁은 방안에서 친구가족과 같이 지낼려고 계획하여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사 놓고 밤을 새울 생각으로 여장을 풀었는데 친구의 딸이 무척 그런 호텔방이 싫었는지 집에 가자고 조른다. 어쩔 수 없이 친구가족을 보내려 했더니 우리 딸이 자기도 친구집으로 가겠다 한다. 딸은 친구의 딸과 밤새 놀고 싶어 따라 나선다. 외국에서 딸을 다른 집으로 보내고 아들과 아내만이 호텔방에서 하루를 지냈다.

 

일본가족 여행 3일째

이 호텔 숙박권에는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두 명밖에 안되어 아들과 나만이 아침 부페를 찾았다. 별로 많지 않는 메뉴를 놓고 식사를 즐기는데 옆에서 귀에 익은 우리 말이 들린다. 우리 처럼 관광을 나왔는지 그 쪽도 우리보고 신기해 한다.

오늘은 도쿄 디즈니랜드 관광이다. 친구가족은 도쿄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텔 앞에서 도쿄 역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타자 마자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에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운전기사가 미터기를 좀체로 꺽지 않는다. 아니 이전에 탈 때는 분명히 손님이 타자 마자 미터기를 손님이 보는 앞에서 꺽었는데 왜 안 꺽는건가? 호기심은 금방 풀렸다. 운전기사는 신호가 바뀌어 차가 출발해서야 미터기를 꺽는 것이 아닌가? 오! 이런!, 이렇게 친절할 수가 ... 누가 시켜서 이렇게 하는 것인가? 혹은 자의로 하는 행동인가?

이 모습은 나를 한참이나 부끄럽게 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 손님이 타자마자 행선지가 어디인지 물어 보지도 않고 미터기 주행단추를 누르는 우리 방식하고는 도무지 차이가 있다.

호텔에서 역은 가까운 거리다. 아들만 없으면 걸어가도 될 거리인데 비싼 엔화를 사용했다. 표를 파는 곳은 별로 넓지 않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상당히 넓고 노선이 하도 많으며 왕래객 또한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아 혼자서 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옆에 커다란 도장이 끈에 매달려 있다. 도쿄 방문 기념 도장이다. 아주 조그만 것에도 신경을 썼다. 전혀 돈이 들지 않으면서 관광객들에 도쿄 방문의 흔적을 남긴다.

도쿄 역에는 디즈니랜드로 가는 별도의 열차가 준비되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를 타기 위해 가족의 손을 잡고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와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기차역사를 잔뜩 공명시키며 몰려 가고 있다. 반대 편에는 이미 디즈니랜드를 다녀오는 사람들인지 손에는 풍선을 비롯한 갖가지 디즈니랜드 기념품들을 온 몸에 치렁 치렁 달고 내려 오고 있다.

그다지 붐비지 않는 기차는 동화의 나라로 가는 꿈을 실은 공간이다. 기차는 거의 자기 부상열차 같이 고가철로를 다니며 별로 서는 정거장 없이 신나게 달리더니 어느 곳에 와서는 모두 내린다. 열차를 내리니 이미 눈 앞에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시야에 커다란 성이 눈에 들어오고 입구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표를 사기 위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토록 사람들이 많건만 자가용을 타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길에 다니는 차가 별로 없다. 넓은 광야라 그런지 바람이 몹시 세고 추위를 느낀다.

다리를 넘어 디즈니랜드 입구에서 온 가족이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는 기념 사진을 찍는다. 수 없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때문에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마치 우리 나라의 에버랜드를 연상케하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표사는 모습, 그리고 미키마우스와 그 일당들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사진 찍기에 바쁘다.

자유이용권의 일인당 금액은 약 5000엔에 달하니 한화로 계산하면 5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모두 다 자유이용권을 구입하지 않고 애들 것과 어른표 하나만 거액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입장권으로 대신했다. 매표소에는 세계 인종전시장 같이 전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완전히 뒤 범벅으로 섞여 있다. 표를 구입하여 들어 서는 순간 눈 앞에는 신데렐라의 성이 우리를 반긴다. 사람들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여념이 없고 우리도 그 중 하나가 되어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애들은 그 것보다 벌써 무언가 탈 것을 찾느라 눈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다.

우선은 구경거리를 시작하기 전에 애들에게 주의부터 주었다. '이곳에서 엄마 아빠손을 놓치면 워낙 사람이 많아 너희들은 집을 잃고 한국에 돌아 가지도 못하게 되니 반드시 잘 따라 다녀라'하고 신신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른 쪽 부터 돌아야 하나 왼쪽 부터 돌아야 하나 망설이다 왼쪽부터 돌기로 하고 표를 살때 받는 약도에 표시되어 있는 '카리브의 해적'을 첫 번째 사냥터로 한다. 그러나 이미 그곳도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고. 입구로 부터 계속 지그재그로 이어 있는 줄의 맨 끝에는 이 곳에서부터 몇 분안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표시가 적혀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마치 롯데 월드같다. 애들만 보내기가 조금 걱정이 되서 나혼자 애들 셋을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데 다른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면 언제 이 많은 것들을 다 보나 그리고 평생에 한 번 이렇게 이런 곳에 애들 데리고 오기가 쉽지 않은데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부터 한다. '카리브해의 해적'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애들 수준에 맞는 물건들이 여기 저기 있고 어른들은 단지 보호자 격으로 따라 다니는 수준밖에 안된다.

보는 것은 잠깐이고 기다리는 시간은 보는 시간의 거의 5배 내지는 8배 시간이 소요되는 바람에 친구와 우리 가족의 어른들은 그때 부터 공동 작전을 폈다. 우선 두 패로 나누어 한 쪽에서는 줄을 서고 있다가 애들이 다른 곳을 보고 나오면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에 애들을 교체하는 작전을 사용하니 우리 다움이가 금방 반기를 든다. 그건 비겁하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녀석아 이렇게 해야 이것 저것 볼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비싼 돈 들여 이곳에 와서 한 두개 밖에 안보고 갈거냐'고 큰 소리 쳤지만 영 맘이 안내키는지 그때부터 다움이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애들만 '톰소여의 모험'이라는 코스에 집어 넣어 뗏목을 타게하고 눈 앞에 보이는 섬을 한 바퀴 돌고 우리들은 그냥 애들 즐거워하는 모습만 보고 디즈니랜드를 즐기고 있다.

불과 두 세개 시설 정도 밖에 이용하지 않았는데 벌써 배가 출출하다. 구수한 통닭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남들 시켜 먹는 닭다리를 보니 다리 하나가 무척 커 보이고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아 두개를 시켜 애들에게 하나씩 주니 애들은 하나도 다 먹지 못하고 어서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졸른다. 애들에겐 먹는 것보다 어서 빨리 돌아다니고 싶은가 보다.

잠시 후에 사람들이 길거리에 하나 둘 앉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많은 사람들이 길 거리의 양쪽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행진이 있구나' 하고 서둘러 앞 쪽으로 나아 가고자 했으나 이미 늦고 말았다. 멀리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더니 신데렐라, 알라딘 등 온갖 디즈니랜드 만화의 주인공들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고 신나는 밴드도 앞장을 서서 흥을 돋구고 있다. 끝이 없어 보이던 가장 행렬이 사라질 때 쯤 사람들은 또 어디론가 열심히 탈 것을 찾아 뿔뿔이 흩어 진다.

어느 모형 비행기 타는 곳에선가 애들만 줄을 서게 하고 다움이보고 동생을 잘 보라고 하고 나서는 우리 끼리 줄 밖에 서서 노닥거리고 있다가 다움이가 있는 곳을 보니 다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동생 어디에 있느냐고 다그치니 '자기가 어떻게 계속 동생만 지켜 볼 수 있느냐'며 무척 기분이 나빠하더니 갑자기 줄에서 뛰어 나와 어디론가 마구 달아 나고 있다. 저 녀석이 저러다 돌아 오겠지 하고 쳐다 보다가 갑자기 내가 겁이 더럭 나서 쫓아 가기 시작했다. '저러다 미아 될라' 걱정은 하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하고 다움이 몰래 멀리서 계속 쫓아 가니 다움이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한 참을 뛰어 가다가 걷기도 하고 또 뛰어 가다가 이젠 걱정이 되는지 뒤를 돌아 본다. 얼른 나도 숨어 다움이의 행동을 지켜 보니 어느 나무 옆의 화단에 앉아 한 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더니 별안간 일어나 오던 길로 다시 뛰어 가고 있다. 다움이는 이제서야 본인이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렸는지 자꾸 오던 길로 다시 달려 가고 있으나 그 길은 다른 길이었다. 그 길로 그대로 달려가면 전혀 다른 곳이 나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아빠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움아'하고 불렀더니 이제는 머쓱함에 더 놀라 달아나고 있다. 겨우 쫓아가 잡아 놓고 '지금 네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느냐'고 했더니 고개만 숙이고 있다.

잠시동안의 속상함은 애들은 금방 잊어 버렸다. 시간마다 벽을 뚫고 나오는 세계인형들의 행진곡에 모두 신나서 쳐다 보기도 하고 애들을 놀이터에 보내 놓은 채 어른들은 군것질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놀다 보니 꼬박 하루 해가 저물었다. 밤에는 각종 전자시설을 이용한 테마관들이 인기를 끌고 그 곳조차 들어가는 행렬은 길기만 하다. 모두를 포기하고 선물가게에 들러 이것 저것 다움이 다해 친구들 줄 선물을 사고 이젠 어두워진 귀로를 피곤한 몸으로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저녁은 도쿄역 지하의 상가에서 해결하려고 내려가 이리 저리 둘러 봐도 도대체 마땅히 애들 먹을 만한 장소가 없다. 애들과 같이 다니다 보니 늘 애들 입맛에 맞추어야 하고 일본의 깔끔한 음식을 먹을 만한 기회가 없다.

오늘도 다해는 친구 집으로 가고 다움이와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함께 샤워 후 그대로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일본 가족 여행 4일째..

오늘의 공짜 아침식사는 아들과 아내가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방을 흐론트에 맡겨 놓았다.

오늘은 아끼하바라 그리고 아사쿠사 신사를 가기로 했다. 우선 아사쿠사부터 방문하기로 하고 어제와 다름없이 도쿄역에서 아침에 친구를 만나 아사쿠사가는 기차를 타니 친구는 미리 겁부터 준다. 사람이 워낙 많을 터이니 잘 잡고 다녀야 한다고...

아닌게 아니라 기차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일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정초에 신사참배를 하고 일년의 소망을 기원한다고 한다.

아사쿠사 지하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조차 사람이 지나 가지 못할 정도로 빼곡이 들어서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기가 힘이 들어 겨우 겨우 올라가니 눈 앞에 희한한 모습이 펼쳐진다. 넓은 거리에 도대체 차가 한대도 없고 사람들이 모두 차도 인도를 메우고 있다. 아마 명절만큼은 차 없는 거리로 제정하나 보다. 가끔 커다란 깃발을 들고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있어 궁금하게 여기니 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믿으라고 소리치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로 치면 절 입구에서 찬송가를 불러 대는 꼴이다. 모양은 보기 안 좋지만 기독교 신자인 내게는 그래도 저런 전도자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토속신앙이 판치는 나라에서 과감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비신자들의 앞에 당당히 나서고 있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다 그렇겠지만 온갖 먹을 거리, 볼 거리, 선물가게, 야바위꾼, 그리고 세일을 전문으로 하는 상점들이 판을 친다. 아내와 아내 친구도 신사 방문하는 것보다는 그런 것이 더 관심이 있는지 자꾸 시야에서 멀어진다. 아무래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7명이 계속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기에 만날 장소를 미리 말해 주고 사람들 틈을 애 들 손을 잡고 천천히 사람들에 밀려 걸어 간다.

신사입구로 조금 들어가니 양쪽에 커다란 화로가 있고 그 곳에서 흰 연기가 가득 피어 오르고 있다. 지나 가는 사람들이 손으로 그 연기를 거두어 품에 담는다. 마치 향기를 맡듯이 그 들을 그런 동작하나 조차도 진지하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만원전철을 방불할 정도로 겨우 겨우 떠밀려 신사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신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는 신전을 향해 동전을 던지고 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커다란 철창이 가로 막혀 있고 사람들은 손 만을 사람들 머리위로 올리고 자꾸 자꾸 동전을 집어 던지고는 양 옆으로 밀려 난다.

애들을 몸으로 보호하며 겨우 왼쪽 옆으로 빠져 나오니 신사 뒷마당에 각종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무언가를 굽기도 하고 끓이기도 하며 메뉴를 적어 놓은 종이들을 천막 끝에 가득히 걸어 놓고 '이랏샤이 마세'(어서 오세요)하고 소리치느라 정신이 없다.

우선 먹음직 스러워 보이는 꼬치가 있어 친구랑 하나씩 사들고 길거리에 서서 먹으니 입안이 새까맣다 그것도 재미있어 깔깔거리며 아내와 친구들을 기다렸으나 도대체 올 생각을 안 한다. 마침 친구가 핸드폰이 있어 연락이 오겠지 하고 어느 가게에 들어 가니 잡채 비슷한 것에 밥을 넣고 볶고 있다. 애들도 그것이 먹고 싶다고 해 천막 안에 들어가 시켜 놓고 먹고 있으니 가게 아줌마가 김치를 가져다 준다. 애들은 김치가 무척 반가운지 잡채밥 한 그릇을 금방 비우고 더 달라 한다.

우리 애는 아무래도 가게 아줌마가 한국 사람 같다면서 물어 보고 와야 겠단다. 그리고 쪼르르 달려 가더니 실망하고 돌아 온다. 그런 모습들이 귀엽기만 하다. 아내쪽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합류하여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 옆 골목을 들어서니 온통 점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마 신년 운세를 보나 보다. 그리고 그 곳에도 역시 온갖 물건들을 세일하느라 복잡하기만 하다. 아내와 아내 친구들은 아무래도 이 곳에 더 있어야 겠다며 여기서 헤어졌다가 나중에 집에서 만나잔다. 하긴 여자들이 그런 전자제품이나 전기제품에 관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엔화를 다 털어 주고 마음대로 쇼핑하라고 보냈다.

다시 차가 다니지 않는 황량한 도로 한 복판으로 나와 멀리 높은 빌딩위에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아들을 사진 찍어 주고 우리는 모두 아끼하바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처음 온 것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신기한 것들이 많아 이곳은 나에게는 꿈의 동산 같다. 많은 것들을 갖고 싶고 만져 보고 싶고 이곳에 와 물건을 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진다.

전철에서 내려 우선 공중전화로 한국에 계신 애들의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게 해 주니 애들은 신이 났다. 전화를 잡고 동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재잘 재잘 대며 '할머니 잘 놀다 갈께요' 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공중전화 옆에 씨디 가게에 사람이 가득하다. 조그만 빌딩하나가 완전히 씨디만 팔고 있다. 씨디는 조금 비싼 것 같아 마침 LD 를 싸게 파는 것이 있길래 두개를 챙겨 넣는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인 '7인의 신부' 와 산악영화 'K2'를 챙겨 넣고 또 다른 가게를 들러 28,800 bps의 외장모뎀을 카드로 구입했다. 그리고는 애들과 이런 저런 전자제품들을 보는게 이번 아키아바라 방문시에는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이 GPS 즉 자동항법장치이다. 일본의 택시에도 장착이 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도로 안내 장치가 온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다. 이제 한국에도 곧 이 바람이 불겠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다. 또한 각종 오디오 기계에 탐이 나 애들이 지루해 할 정도로 각종 기계에 빠져 있다가 애들의 성화에 그냥 나오고 말았다.

날씨가 조금 쌀쌀했던지 애들이 추위를 느끼고 조금 어둑해 지는가 싶더니 아키하바라시장은 벌써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왜 이리 빨리 철시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귀로에 올랐다. 애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장난감 게임기를 많이 보아서인지 흐뭇해 했고 나는 많은 전자 제품들을 보고 포만감에 차 버렸다.

호텔로 다시 돌아 가 짐을 찾은 뒤 피곤한 몸으로 애들 손을 잡고 이제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집에 돌아 오니 아직도 여자들은 돌아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가하게 친구와 둘이 그간의 얘기를 차근차근히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앞으로 남은 유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애들 교육,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생활들에 대해서 한 참을 이야기 하고 있으려나 아내가 신이 나서 문을 열고 들어 오고 있다. 손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많은 일제 물건들을 보고 왔음에 만족해 하는지 아까 헤어질 때 주었던 엔화를 도로 내민다.

그 날은 두 가족이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집 안에 묵혀 둔 술과 여러가지 안주 거리 그리고 일본 고유의 음식과 애들을 위해서 한국음식도 차려 놓고 맛있는 먹거리를 즐겼다. 그리고 밤 늦게 까지 옛날 한국에서 그러했듯이 노닥거리며 정담을 나누었다. 내일은 헤어지는 날이니 오늘은 잠을 안자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겨우 겨우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좁은 방안에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99년 6월 일본 여행

일본이라고는 늘 동경이나 인근 대도시밖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출장은 일본에서 제법 외진 곳으로 여정이 잡혀 있다.

규슈지역에 있는 노베오카라는 소도시로, 후쿠오카에서 국내선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야자와라는 곳에 내려서 또 기차로 1시간을 넘게 가야 한다.

외국 여행시 잘 타지 않는 아시아나로 후쿠오카 공항에 비행기가 꼭 올림픽 체조경기시의 한국선수처럼 불안하게 착지하고, 공항에 내리니 벌써 한 눈에 들어오는 깨끗함,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어느 구석하나 흐트러짐이 없어 보인다.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으로 갈아 타기 위해 찾아 간 국내선 청사도 마찬가지, 어느 곳이나 정결함이 보인다. 청사 내의 스낵코너나 선물 용품 코너에는 일본 거개의 상품의 그렇듯이, 포장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과자 하나 하나 모두 포장하고, 창호용지 비슷한 포장재에서도 일본 특유의 맛이 보인다.

공항 내 쓰레기 통에도 분리 수거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또한 심술이 난다. 왜 이리 이들은 이런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일까? 귀찮지도 않을까? 이것 저것 가려서 행동하는 것들이 우리들은 무척 불편하고 제약을 받는 것만 같은데…

탑승시간이 조금 안되었을 때 항공사 직원이 미리 눈 여겨 보았던지 내 옆에 앉아 있는 소년 탑승객에게 와서는 먼저 탑승하라고 안내한다. 절대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이들의 문화는 이런 곳에서 잘 보여 준다.

야마자키로 가는 기내에서 바라다 보는 일본의 자연이 멋진 해안과, 숲 그리고 작은 집들이 잘 조화가 되어 상쾌함을 더해 준다. 공항에 내리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의 대기업 상사 직원들, 두 시간을 기다렸단다. 자기들은 동경에서 왔는데 비행기 시간이 그렇게 밖에 안 되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공항 청사가 기차역이랑 같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니 3개 정도의 차량을 매단 빨간 색깔의 기차가 마치 동화의 나라로 가는 열차같이 보인다. 기차의 이름도 ‘Red Express’, 일본국기가 빨간 색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기차 색깔이 그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일본의 주택가를 통과하기에 조용한 휴일의 가정집들의 겉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어느 집이건 간에 베란다에 내건 이불들. 태양빛을 좋아하는 것일까? 혹은 바닷가라 늘 습한 공기 속에서 생활한 탓일까? 빨래를 고정시키는 커다란 집게가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인다.

기차는 계속 해안 도로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바닷가의 흰 파도가 계속 작은 모래 밭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으나 아무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없다. 가끔 해안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 만이 유일하게 그 파도들을 맞이하고 있다.

해안가에 당연히 있어야 할 횟집이나, 위락시설, 콘도미니엄이나 여관 등이 보이지 않으니 무언가 빠진 것 같음을 느끼는 것은 늘 보아 오던 것들에서 일탈하는 관념때문일까?

기차가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사람 많지 않음은 오늘이 주일이라 그런가? 우리가 오늘 묵어야 할 호텔이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 해서 다들 여행가방을 끌고 가게들 마저 문을 닫은 조용한 휴일의 거리를 무리 지어 지나 간다.

겨우 한 사람이 잘 만한 여유밖에 없는 호텔 방에 여장을 풀고, 한국인 5, 일본인 4명이 모두 저녁식사를 위해 거리를 헤매이다가 휴일 날 저녁에 문을 연 일식집(?) 아니 횟집에 들어 가 사시미를 즐겼다.

자리 잡고 앉으니 제일 먼저 내오는 애피타이저는 일본식 오징어 젓이다. 소금으로만 젓을 담았는지 하얀 오징어가 더 하얗게 빛나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갖은 요리들은 음식의 맛보다는 어떻게 모양있게 만들었으며 어떤 그릇에 내오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음식 맛을 알기에 앞서 우선 보기에 좋다. 그릇이라는 이미지는 동그란 것 혹은 길쭉한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벗어나서, 산 모양, 강모양, 계곡 모양이 연상하게 된다.

삼치인 것같은 회가 금방이라도 건드리면 툭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으로 상위에 올라 와 있는데 살은 살대로 굵게 회를 쳐서 조그만 발에 무 생채를 얹어 내 놓고 머리와 뼈는 둥그렇게 말아 회 옆에 두니 더욱 회 맛이 동한다.

오사케라는 일본 정종이 일본 특유의 독구리에 담아 내 오는데 안이 안보이니 한 독구리를 다 비우면 상위에 쓰러뜨려 놓아 빈 병임을 알게 한다.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산책했다. 호텔 주위로 강이 흐르는데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서 강물을 쳐다 보았다. 도대체 비닐 쪼가리 하나 없는 강둑이나, 강 사이의 풀 숲들, 빈 깡통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강 뚝에 마련되어 있는 앉을 만한 조그만 공간에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집집 혹은 가게마다 앞에 내어 놓은 비닐 쓰레기 봉투는 쓰레기가 넘쳐 나지 않을 정도로 여유있게 담고 묶어 놓아 쓰러 져도 주위에 지저분한 것은 없다. 쓰레기 청소차는 오히려 다른 차보다 외관이 더 깨끗해 보이고 쓰레기를 올리는 즉시 안으로 집어 넣어 천천히 가도 쓰레기가 길거리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애들이 아침에 등교를 하고 있다. 노란 모자를 모두 쓰고 있고, 건널목에서는 어머니인 듯한 분이 교통 정리를 하는데, 인도에서 애들과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들이 횡단 보도를 건널 때는 깃발을 들고 차도의 한 가운데로 들어 가서 차도를 몸으로 막고 애들을 지나가게 한다.

중학교 정도의 아이들은 대개 남녀를 불문하고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고,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안장에 앉아 자전거로 무리지어 등교한다.

일본의 공장을 방문 하는 길에 탄 택시에서 조그만 서비스 도구가 눈에 들어 온다. 운전석과 뒷 좌석의 손님 사이에 은행에서 돈을 내 줄 때 사용하는 조그만 접시가 있다. 손님은 이곳에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다. 늘 택시를 타고 나서 목적지에서 거스름 돈을 받을 때 택시 기사와 뒷 좌석의 손님사이에 느끼는 불편을 이 들은 불편으로 알고 그것을 해결하였다.

화장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어 일부러 공장 직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가 보고 역시 이 들의 화장실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하얀 색깔로 페인트칠 한 화장실에는 거미줄 하나 없을 정도로 평소 손을 많이 본 듯 하다. 자동 좌변기와 일반 변기가 있는데 일반 변기는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좌변기에는 약식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온수 냉수를 구분하게 되어 있어 상쾌함을 더해 준다.

계속되는 회의로 식당으로 가지 않고 도시락을 시켜 주었는데, 도시락이 마치 새마을호에서 파는 도시락처럼 포장이나 메뉴가 아주 정갈하게 되어 있고 밥도 어떤 틀에다 모양을 내었는지 먹기 좋게 다듬어져 있다.

공장에서 회의를 마치고 다시 도쿄 근처의 도시인 카와사키로 가는 비행기가 자주 있지 않아 3시간정도 여유가 있어 공항이 있는 도시인 미야자키의 명물인 43층에 전망대가 있는 오션타워를 방문했다. 오셔타워는 바로 옆에 오션돔이라는 거대한 실내 수영장이 있어 실내에서 바닷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는 우리나라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같은 시설이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43층의 전망대는 한산하기 그지 없다. 500 엔을 입장료로 내고 급행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에 내리는 순간 아직 전망대의 개관을 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내부에 시설의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선물코너 하나, 테이블 그리고 의자 몇 개,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동 사진관, 고배율 망원경 몇 개, 흡연실, 캐리커처를 그려 주는 아가씨 한 명,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회. 고작 이것들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기분을 만족하게 할까?

그러나 창문으로 보이는 밖의 풍경은 가히 대형 그림이다. 끝없이 이어진 해변으로 부딪히는 파도들, 하얀 모래밭, 해안선을 따라 길게 달리는 고속도로, 그리고 더욱 장관은 오션타워와 오션 돔의 주위로 펼쳐져 있는 36홀 정도의 골프 코스, 그러나 난 잠시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골프장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 넓은 골프장에 골프치는 사람은커녕, 캐디 한 명, 잔디를 다듬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월요일이라 해도, 아무리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조금 안 좋은 날이라 해도, 아무리 오후 4시정도 되는 늦은 시간이라 해도, 이렇게 아무도 골프를 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 오늘이 월요일이라 골프장이 휴장하는 날인가 하고 물어 보았으나, 그것도 아니라 한다. 궁금증은 도무지 풀지 못했다.

이런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음식점이나, 스낵코너는 어디에 있는가 확인하니 그 곳은 전망대와는 별도로 운영된다 한다. 그러니 이 곳 전망대가 깨끗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단지 이 곳에 와서 전망만 즐기고 내려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렇게 아무 시설 없는 것이 본인에게는 섭섭하기는 하지만 이 곳을 찾는 많은 방문객들을 위해서는 차라리 이런 편이 나을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깨끗함도 대도시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저녁에 도착한 도코 근처의 대도시 카와사키의 도로는 여기 저기 지저분한 물건이 널려져 있고 담배꽁초, 빈 캔, 광고 전단 등 서울의 어디나 전혀 다름이 없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밤거리에는 수없이 많은 빠찡코 게임점만 성황이었고, 그 안에는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뿜어 내는 뽀얀 담배 연기와 구슬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 음악, 빠찡코 돌아가는 소리에 정말 살아 있는 세상에 온 듯하고 그와 동시에 악마의 속삭임들이 들이는 듯하다.

‘다음에는 분명히 큰 것이 터질거야’

‘계속해 봐, 넌 오늘 부자가 될 수 있다. 넌 행운아가 틀림없어.’

‘이것만 터지면 넌 오늘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온갖 음악적이지 않은 소리뿐만 아니라 악마의 꼬임에 자꾸 빠져들 것 같아 그 곳을 얼른 나왔다.

밤 10시가 넘은 거리엔 회식을 마치고 나온 듯한 샐러리맨들의 그룹이 군데 군데 모여 있고, 야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들이 술집 광고인 듯한 쪽지를 나누어 주고 있다. 까만 정복에 나비 넥타이를 맨 젊은이가 자꾸 유혹한다. 인근에는 밤새 영업을 하는 대형 사우나가 있어 한 참을 서서 내부 시설을 소개하는 사진을 보니, 각종 사우나 시설과 잠시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모두 갖추고 있고 또한 저렴한 가격에 숙박도 가능하다고 써 있으나, 몸에 문신이 많은 사람은 입장사절이라고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침식사를 위해 일본에 오면 늘 먹고 싶은 덴뿌라 우동을 찾기 위해 직장인들이 많이 지나다닐 만한 거리를 찾아 가니 역시 나이 든 아주머니가 ‘이랏샤이마세’라고 우렁차게 외치는 우동점을 찾아 갔다. 하얀 까운과 하얀 모자를 쓰고 덴뿌라 우동을 시키니 문가를 가리킨다. 문가에는 식권을 파는 자판기가 있다. 일본어는 말은 잘 못해도 글을 읽는 덕분에 쉽게 돈을 넣고 표를 끊어 주고 주방을 유심히 보았다.

끊임없이 행주를 들고 닦아 대는 아줌마 덕분에 주방에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그릇 하나도 설거지 통에 있는 순간을 찾아 보기 힘들다. 덴뿌라를 담아 두는 큰 스텐 그릇도 그냥 종일 넣고 팔면 될텐데, 밑에 고여 있는 기름을 닦기 위해 다시 또 꺼내 닦고 있다.

물을 따라 먹는 생수기에도 물기가 없다. 식당에 있는 동안 유심히 아줌마를 보니 열심히 손님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고, 쉴 새 없이 온갖 곳을 닦아 대며, 수시로 음식 재료를 점검하고 있다.

아침 회의가 조금 늦게 시작하기에 식사 후 전철 역 근처로 가 보았다.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어대며 앉아 있는 도심지의 가로수 사이로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바삐 오가는 역 앞의 후미진 곳에는 종이 박스로 이불을 삼고 밤은 지낸 듯한 걸인들이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아직 깨어 나지 못하고 있다. 그 곳의 바로 앞에 파출소가 있는데도 전혀 단속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는 듯, 역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자전거 주차장이 대 성황이다. 거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전거가 빼곡히 들어 서 있고 자전거를 정리하고 주차표를 정리하는 아저씨의 손길이 너무 바쁘다. 시내의 대로변에도 자전거 주차장이 도심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하여 별도로 준비되어 있고 주차태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80엔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종일 주차하는 비용인가?

학생들,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 짧은 치마 입은 아가씨, 잠시 일보러 나온 할머니, 아주머니 등 모두 자전거를 타고 이 곳으로 나오고 주차를 시키고 기차를 타니 거의 모든 주차장이 만차이다

호기심에 기차역을 중심으로 큰 도로를 한 번 넓게 돌아 보았더니 무수히 많은 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때로는 오토바이 주차장도 보인다. 자전거도 대부분 이동만의 목적을 위한 간편한 사양을 보니, 우리 나라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들이 타고 다니는 몇 단기어가 달린 고급 자전거와 사뭇 비교된다.

일본 거래처 직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택시를 불러 호텔로 돌아 오는데 좁은 길에 비는 조금씩 오고 회사에서 나오는 길은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는 좁은 소로에 차가 겨우 하나 지나 갈 만한 거리인데 길 한 복판을 퇴근 길의 아가씨 하나가 우산을 쓰고 차 길을 가고 있다. 웬일로 내가 탄 택시기사는 아가씨보고 비키라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뒷 좌석에서 천천히 아가씨의 뒤를 한참을 저속으로 따라가는 택시 기사의 행동을 바라다 보는 우리들이 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아가씨는 큰 길로 나가도록 자기 뒤에 택시가 따라 옴을 눈치 못 채고, 기사는 큰 길로 나가서야 아무 말 없이 속도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이없어 하고 말았다.

무엇이 옳은가?

조금 늦게 가더라도 길 가는 아가씨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이 우선이냐? 혹은 빨리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셔 드리고자 아가씨보고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는 행동이 옳은가?

한국의 기사들 같았으면 어떤 행동과 어떤 말을 그 아가씨에게 던졌을까?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집이 부천이라 지역에 상관없이 운행하는 모범택시를 잡았다. 짐을 싣고 부천을 가자 하니 기사 아저씨 어이 없는 표정으로 망연 자실 아무 소리 없이 갈 생각도 안 하고 앞만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전 11시에 공항에 들어 와서 지금껏 5시간이나 기다렸는데 겨우 부천가는 손님을 태운 자신이 오늘 너무 일진이 나빴다고 생각했는지 그 때부터 기사의 말이나 태도는 완전히 금방이라도 나에게 싸움을 걸 듯한 자세다. 그럼 어찌하겠는가? 서울 시내 택시는 부천을 안 갈려 하고, 가더라도 상당액의 웃돈을 주어야 하고…

보통의 경우 공항에서 탄 손님들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 보니 시내 호텔까지 가면 적어도 2만 5천원정도는 나온다고 한다. 그럼 부천까지 가면 보통 만원정도 나오니까, 불과 만 오천원 때문에 이렇게 손님에게 불친절해야 하는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말도 통하지 않지만 친절이 눈에 보이는 일본의 택시 기사의 서비스를 받다가 말이 통하는 내 나라에 와서 택시를 타니 더욱 말이 통하지 않아 불친절을 겪어야 하는 이 현실을 어찌 생각하여야 하는가?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
남의 눈치를 보기 보다는 내 형편에 맞게 사는 사람들,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한국은 무엇이 바뀌어야 일본같은 대국이 될 수 있는가?
한국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일본같은 친절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한국기업은 어떻게 고객을 대해야만 세계 일류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

일본 여행을 하고 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는가?

아니, 우리 후손이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는가?

일본의 택시 (1999년 10월 7일  동경에서…)

 

일본에 온 김에 친구를 만나 그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아침에 업무에 참석차 택시를 탔다. 콜택시를 부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무작정 거리로 나오니 마침 빈 택시가 눈에 보여 타보니 택시기사가 여자다. 여자가 기사니 무척 조심스러운 운전을 하겠구나 그리고 또 아침 출근시간이니 내가 비록 여유있게 나오긴 했지만 잘못하면 늦을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우려가 내심 앞섰다.

목적지의 지도를 보여 주니 금방 어느 곳인지 알겠다며 차를 능숙하게 운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목 골목을 누비며 차가 달린다. 왜 이러나, 내가 가는 곳은 도쿄에서 무척 번화가에 있는 곳이니 큰 길이 있을 법하고 그 길로 달려야 빠를 것 같은데 차는 계속 차 한대 겨우 지나 갈 만한 골목길로만 달리고 있다. 이러다가 골목길이 막히면 어떡할려고…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일본의 택시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하고, 절대 손님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가만히 두고 보았다.

그런데 이 골목길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도대체 그 좁은 골목길을 전혀 속도도 늦추지 않은 채 고속으로 달리고 있다. 이건 말이 안돼. 골목길에 다른 차들이 주차 되어 있으면 그걸 피해가는 것만해도 위험한데 이런 고속 운전이라니…

그러나 나의 이런 기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오던 보통의 사고방식에 젖은 편견이었다. 그 좁은 주택가 골목길의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하나도 없다.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가 없단 말인가? 아니다. 분명히 차는 있었다. 그 모든 개인 승용차들은 집의 조그만 앞 마당에 겨우 주차되어 있어 주행하는 차량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이러한 법이 있기로서니 모든 주민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지킬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누구하나 복장에 흐트러짐이 없고 좁은 길이지만 차도로 나와 걷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좁은 길을 택시가 달려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골목길마다 일방통행로가 지정되어 있는 듯, 비록 좁은 길이지만 반대 방향으로 오는 차량은 없다. 함부로 길을 가로 질러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길거리에 장사하기 위한 입간판이나 물건을 내 놓은 사람도 없다.

가끔 도로변에 정차되어 있는 차를 보지만, 지나치면서 보니, 손님을 태우고 있거나 혹은 물건을 내리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차가 어느 정도 달리다 큰 도로로 나왔지만 교통신호에 잠시 정차하는 것 외에는 역시 차가 별로 막히지 않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고 수 많은 학생들을 지나가지만 모든 것이 조용히 행해 질 뿐이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들어가는 지하도 입구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밀려 들어가고 밀려 나오고 있다.

택시 기사는 신호등을 만났을 때 결코 횡단 보도 안에 차를 세우는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외국인인 나에게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인가? 또한 그 복잡한 출근시간인데도 합승할 사람을 찾기 위해 머뭇거리는 것도 없다. 원래 합승이라는 것이 없나 보다.

차의 실내를 한 번 주의 깊게 둘러 보았다. 자동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 뒷좌석의 문. 앞 좌석의 뒤에 조그만 광고 전단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고, 혹시나 실내가 더웁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을 위해 깨끗한 부채가 몇 개 비치되어 있다.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택시 강도로부터 운전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기사석의 머리 뒤에는 두꺼운 방탄 유리가 가로 막혀 있고 운전기사의 옷 차림도 무척 단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히 다듬어진 손톱을 보니 얼마나 깨끗한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 비록 뒷모습밖에 못 보긴 하지만 유니폼도 무척 깨끗하다.

사람들이 많이 타면 차의 시트가 지저분해지니 검은 색 계통의 시트로 하면 편하겠건만, 시트는 모두 깨끗한 흰색 일색이다. 시트를 매일 갈아 끼우는 것임에 틀림없다.

차의 통행이 우리와는 반대 방향이라, 운전석도 오른 쪽에 있다. 운전석 뒷좌석의 옆 문으로는 사람이 타지 않으니 별로 열일이 없는 듯, 문 고리에 플라스틱으로 카바를 씌워 덮어 놓고 비상시에는 옆으로 밀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운전석 옆에는 조그만 시내 지도가 비치되어 있어 혹 기사가 모르는 곳은 지도를 펴 주며 갈 곳을 지적하여 주도록 되어 있다. 라디오가 있건만,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니 라디오도 켜지 않는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기사는 얼른 미터기의 버튼을 눌러 더 이상 요금이 올라 가지 않게 하고 일반택시인데도 요금을 내니 금전등록기 같은 것으로 영수증을 끊어 준다. 비록 조금 비싼 감은 있지만 서비스를 고려할 때 결코 비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돈쟁반을 이용하여 요금과 거스름돈을 주고 받음으로서 손님과 기사간의 직접적인 접촉도 하지 않게 만든다.

일본에는 올 때마다 택시를 보고 늘 감탄한다. 친절과 청결의 상징, 고객이 왕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택시기사를 볼 때마다, 이런 사업을 한국에서도 하고 싶어지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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