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carmina 2013. 12. 5. 17:04

 

방글라데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 한다. 그럼 첫 째는 어디인가?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방콕에서 직항로가 있지만

서류 작성이 늦어 어쩔 수 없이 다른 국가를 거쳐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홍콩에서 인도를 거쳐 네팔로 가서 네팔에서 다시 방글라데시로 들어 간다.

 

인도에서 탄 네팔 여객기는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허름한 비행기다.

비행기 좌석 밑 바닥으로 육지가 보인다.

세상에 이러다가 내가 밑으로 폭 빠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짧은 비행동안 무척이나 불안하다.

 

그러나 네팔 상공으로 들어가며 스튜어디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에베레스트.

마치 구름처럼 백년설이 뒤 덮힌 에베레스트가

비행기의 고도 만큼의 높은 산 봉우리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다.

생전 가 보지 못할 곳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기회이다.

 

비행기가 내려가면서 보이는 네팔의 카트만두의 거리 모습은

도시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이다.

공항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잠시 화물이 옮겨 질 동안 터미날에 있으니

이 곳에서 수 많은 산악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구멍가게보다 작은 면세점 선반에 주류가 있는데

한국의 고려 인삼주가 끼어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일부러 사다 놓은 것인지 혹은 한국 산악인이 놓고 간 것인지 모르지만

인삼주 하나 달랑 서 있는 모습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한다.

단지 인삼주병 하나로 이렇게 뿌듯할 수 있다니…

 

짐을 옮겨 싣는 모습을 정말 가관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가방들을 손 수레에다 옮기고 태그를 확인해

다른 비행기로 옮겨 싣는데 언뜻 보니

내 짐들이 전혀 다른 국적의 비행기로 옮겨 지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출장이 허사가 될 뻔 했다.

 

서둘러 공항 직원들을 찾아 내 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습을 하고 보니

‘이런!’ 현지의 우리 직원 에게 주기 위해 가지고 가는 고추장과 된장이 터져 버렸다.

간신히 봉투하나 구해 옮겨 싣고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함을 무척이나 아쉬워 하고 네팔을 떠났다.

 

무수히 많은 짐을 가지고 방글라데시의 다카공항을 내리니

세관에서 나를 좀 보자며 짐을 모두 펼쳐 보라고 지시한다.

모두 서류라 해도 믿지 않는다.

그 중 하나를 꺼내 보이고 확인시킨 후

선물로 가지고 온 볼펜 한 셋트를 주었더니 그대로 통과되었다.

 

공항을 벗어 나오니 무수히 많이 보이는 릭샤 (자전거를 개조하여

뒤의 짐칸에 수레를 매달고 두명 정도의 손님을 실어 나르는 운송도구) 가

온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내가 탄 차가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창가를 두드리는 손목 없는 팔 들, 다리 없는 불구자들,

눈이 애꾸고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 잠깐 사이에 까맣게 차에 달려 들고 자비를 요청한다.

 

그러다 신호가 바뀌면 얼른 도망가고…

그들의 처량한 눈 빛들을 보니 금방이라도 같이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처음부터 구걸을 가르치기 위해 손목을 자르거나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방글라데시,

국민의 97 %가 거지고 단지 3 %만이 지나치게 부자라는 나라.

 

릭샤가 온 거리를 헤집고 다닐 때 BMW나 벤츠가 가끔 거리를 지나친다.

정부 관리들의 부정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모든 공사에 관리들을 위한 별도의 로비자금을 준비해야 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정부 관리들은 출근할 때는 보기에도 투박해 보이는 작업복을 입지만

일단 퇴근만 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고 한다.

 

다카시는 릭샤가 운행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즉 언덕이 없다는 것이다. 맨발로 열심히 페달을 밟는 그 들의 얼굴은 늘 검게 그을려 있다.

지저분한 수건을 머리에 혹은 목에 두르고

주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그 들의 모습은 거의 생존경쟁이다.

 

지사 근처에 3층 정도의 주택을 짓고 있는데,

그 곳에서 일하는 일군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후진국의 모습은 가히 상상을 넘는다.

2층으로 벽돌을 나르는 일군은 머리에 벽돌 2 개 혹은 3개를 메고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다.

우리는 등에 질통을 지고 몇 십 개를 지고 올라가 한꺼번에 내려 놓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의 행동이 이러하니 생산성은 도저히 한국인들의 노동력과 비교할 수 없다.

임금이 싸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대개 가정부 운전수 정원사 등등 해서 4 ? 5 명의 하인을 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네 사고 방식으로는 운전수가 시간 있을 때 정원도 다듬고,

요리를 하는 가정부가 집안 청소도 해야 하는데 반해

이들은 운전수는 오로지 주인의 차만 운전하고 요리사는 오로지 요리만 한다.

 

어느 고객을 만나기 위해 골프장으로 찾아갔다.

골프장에는 멋지게 차려 입은 부유층 사람들이 여유있게 골프를 즐기고 있는 반면

늪지 주위에는 공이 늪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맨발로 기다리고 있고 골프장 외곽에 둘러 쳐 있는 담장에는

공이 담 넘어 가기를 기다리는 꼬마들이 위험하게도 담 위에서 놀고 있다.

 

주일 날 한국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있는 곳을 찾았다.

조그만 가정 집에서 몇 명이 모여 오손 도손 예배를 드리고 있다.

목사님은 이웃의 국가로 부흥회를 다니기도 하는 둥

거의 국제적으로 예배의 교류가 이루어 지고 있다.

그 곳에서 특별히 찬양을 하는 축복이 주어졌다.

 

업무로 인해 관광할 시간이 없어 자세한 것을 보지 못했지만,

방글라데시에 대한 기억은 가난, 질병, 지저분함,

조잡한 기념품 등 별로 안 좋은 추억만이 맴돌고 있다.

 

이러한 나쁜 추억은 공항을 나설 때 더욱 고조가 되었다.

출국시 공항 검사대에서 내 짐에서 무언가 이상스러운 것을 발견할 것처럼

나에게 엄포를 놓으며, 지갑을 보여 달라는 관리에게 지갑을 보여 주었더니,

‘돈이 많다’며 ‘50불을 주면 검사하지 않고 그냥 보내 주겠다’라고 요구하는

부패한 관리의 모습에서 이 나라가 왜 이렇게 가난한 나라로 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사실에 쓸쓸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파키스탄

 

사우디에서 수많이 보아 온 파키스탄인들.

 

수북한 콧수염이 멋있고, 훤칠한 키에 원피스 비슷한 옷을 입어서 더욱 이국티가 나는 민족이다.

업무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업무편지가 오고 텔렉스, 팩스 등 교신을 많이 해 보았지만

실제로 가 볼 기회가 없던 중,

여러가지 업무가 겹쳐 한 번 다녀 오기로 생각하고 스케줄을 잡았다.

 

마침 어느 파키스탄 업체 두 세 곳에서 우리 회사를 만나고 싶다고 하여

공항 픽업이나 일정은 제법 빡빡하게 챙겨져 있었다.

 

태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에 내린 시각은

이제 막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

전혀 이국의 땅에 짐 2개를 들고 내리자 마자

어느 꼬마가 짐을 나꿔 챈다. 도와 주겠다고…

말릴 사이도 없이 꼬마는 호텔 셔틀 버스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무조건 나를 인도하고

나에게 호텔 이름을 묻더니 쉐라톤 호텔 버스 앞에 짐을 내려 놓고 처분만 바란다.

 

아차 일 불 짜리를 준비하지 못했구나. 잔돈이라고는 5불짜리 뿐이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5불짜리를 줄 수 밖에 없었다.

 

한 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운전사도 없고…

한 30분이 지나서야 기사가 도착하더니

더 이상 손님이 없는지 나 혼자만 태우고 호텔로 달린다.

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파키스탄의 집들.

 

마치 예수님 시대에나 있음직한 하얀 집들이 길가에 빼곡하다.

호텔 인근에 마땅히 식사할 곳을 찾지 못해 후론트에 알아 보니

인근에 한국 식당이 있다 한다.

걸어 갈 만한 거리에 있어 그럭 저럭 저녁은 때웠다.

 

호텔방에서 창문에 무언가 자꾸 어른 거려 밖을 보니

수 없이 많은 까마귀떼가 호텔 주위를 맴돌고 있다.

도시가 지저분해서인가? 아니면 이곳에선 까마귀가 길조인가?

 

저녁에 밖에 나가기도 안심이 안되어 호텔 로비로 나가니

3인조 밴드가 열심히 사이몬.카펑클의 귀에 익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고

한 무리의 네델란드항공사 직원들이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로비에서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맥주 한 잔을 시켜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미세스 로빈슨’이라는 흥겨운 노래가 연주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항공자 직원들 남녀 두 쌍이 로비를 무대삼아 서로 부둥켜 안고 멋지게 춤을 추고 있다.

흥겨워하는 그 들의 모습에서 놀이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유럽사람의 기질이 무한히 부러워진다.

 

다음 날 오전에 나를 찾아 오기로 한 현지 업자의 사장을 만난 순간

난 그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 사람의 치아가 온통 파랗게 썩어 있는 것이 아닌가?

냄새도 무지하게 나고…

난 도무지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귀에 하나도 안 들리고

어떡하면 빨리 이 사람과 헤어질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어 버렸다.

 

다행이 그 사람하고 상담한 내용은 금액이 상당한 차이가 있어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 상담은 내가 직접 그 회사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

나를 데리러 온 사람과 같이 조그만 차를 타고 골목 골목을 찾아

회사 같지 않은 어느 흰 빌딩을 들어가니 금방이라도 서 버릴 것 같은

쇠 창살 달린 구닥다리 엘리베이터가 있고

나이 든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안의 의장에 앉아서 발가락으로 단추를 누르고 안내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 밖의 안내를 받고 찾아 간 회사와 상담 후 점심시간이 되어

사장실 옆에 있는 사장 전용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 곳은 밖의 세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음식이나 그릇이 아주 고급스럽고, 테이블 매너 또한 정통 웨스턴 스타일이다.

카라치에서 주일을 보내느라, 잠시 관광할 여유가 있어

택시를 하나 대절하여 안내를 부탁했지만

가이드가 영어를 잘 모르고 유적지를 찾아 갔는데

내가 미처 이 곳 역사와 유적지에 대해 상식이 없어 무척이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카라치에 이어 비행기 편으로 파키스탄의 두 번 째 큰 공업도시인 라호레를 찾아 갔다.

제법 큰 회사를 방문하고 소기의 성과를 얻은 후 마침 현지에서 상담한 회사의 직원이

나보고 저녁에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하기에 없다 했더니

오늘 저녁에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가야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선뜻 응했다.

 

저녁에 치루어지는 결혼식 피로연.

외국인은 나 혼자 뿐으로 대환영을 받았다.

너도 나도 나에게 와서 영어를 하지는 못하지만 친근함을 표시했고,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마 결혼식은 다른 곳에서 치루었고,

이 곳에서는 야외에서 하객들에게 축하 음식을 제공하는 자리인 것 같다.

커다란 천막이 쳐 있고 알록 달록한 색 등불로 주위를 휘황찬란하게 장식해 놓았다.

 

천막 안에는 조금 높은 단이 있고,

신랑과 신부가 무척이나 화려한 파키스탄 전통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신랑 신부 옆의 빈 의자에는 하객들이 번갈아 가며 같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고 난 후

간단히 볼 키스를 주고 받는다.

 

나에게도 찍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마다할 내가 아니다.

볼 키스는 못하고 사진만 같이 찍었다.

사진을 거의 다 찍었는가 싶더니 옆 마당에 줄로 막아 놓았던 곳으로 안내한다.

그 곳은 긴 탁자 위에 파키스탄 전통 음식들을 가득 차려 놓았다.

그리고는 부페 식으로 모두 접시하나씩을 들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다.

 

마치 우리 나라의 깻잎처럼 나뭇잎으로 포장한 음식을 자꾸 나에게 권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내 옆에 와서 음식 먹기를 즐겨하고,

아이들도 무척이나 신기한지 내 곁으로 온다.

 

영어를 조금 아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나에게 와서 인사를 건네고

나 또한 약간의 무슬림 인사를 알기에 그 들과 무수히 많은 인사를 했다.

인사만으로도 친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고

서로를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는 것을 느끼며

우리가 너무 서로의 마음들을 닫고 있구나 하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건네 주는 어떤 음식들은 입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고 배가 터지게 먹었다.

내가 맛있게 먹으니 그들도 무척 좋아한다.

 

비록 사우디 근무시에는 이 들을 노무자로 고용하고 있어 마치 기계같이 부려 보기도 했지만,

그러한 주종관계를 떠난 지금의 나는 이 들과 한 형제됨을 알 수 있었다.

 
 
 

인도로 가는 길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인도의 뉴델리로 가는 비행시간은 불과 50분. 마치 옆에 동네를 가는 것 같다.

‘시티 오브 조이’의 나라 인도가 가고 싶어

귀국하는 길에 비행기 갈아 타는 몇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에 카라치의 호텔에서 나와 인도로 가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자 기다렸으나

무슨 일인지 보딩패스만 주고는 감감 무소식,

2-30분 정도 늦을 수 도 있겠지. 1시간이 지났다.

금방 탑승 안내 방송할 테니까 주의깊게 방송을 들어야 겠구나.

이상하게 손님도 별로 없다.

 

2시간이 지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네.

어 점심을 사 먹으려면 이 곳 대기실을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12시가 넘으니 빵과 종이 팩 음료수를 가지고 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나누어 준다.

 

맛은 없지만 배가 고프니 먹어 두어야지.

내가 너무 배가 고팠나? 그만 빵을 먹다가 체했다.

자꾸 배가 아프고 머리 뿐만 아니라 오실 오실 춥기도 하다.

 

비행기는 4시간이나 연발하였다.

기다리다가 지치고, 체해서 지치고 몸이 완전히 엉망이다.

 

공항을 내리고 입국 수속을 밟으니 비자가 없단다.

하긴 비자가 없지. 이곳은 단지 스쳐 지나갈려고 계획했었으니…

이따 밤 비행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잠시 시내를 둘러 보기를 허락해 달라 하니,

여권을 맡겨야 한단다.

 

갑자기 망설여 졌다. 이런 후진국에서 여권을 맡기면 회수가 가능할까?

에라 일은 저지르자. 여권을 맡기니 보관증을 하나 써 주고 사인을 주욱 긋는다.

 

짐을 맡길 데도 없고,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아

공항을 나와 공항 근처에 있을 법한 에어포트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니

공항 바로 앞에 허름한 호텔로 데려다 준다.

 

후론트 데스크의 안내가 배꼽이 보이는 인도의 전통 사리를 입고 무표정하게 묻는다.

예약이 되어 있느냐고.. 안했다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며칠 묵겠느냐고 묻는다.

오늘 밤에 떠나겠다고 하니 알았다며 방으로 안내하는데

숙박비가 저렴해서 그런지 호텔룸 또한 저렴해 보인다.

 

냉방은 천정에 돌아가는 커다란 선풍기로 대신한다.

바닥은 갈색의 지저분한 색갈이고 침대 또한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들어가자 체한 것부터 해결해야 겠기에

명함 수첩에 끼고 다니는 바늘 하나를 꺼내고

손가락을 묶을 선을 찾으니 마땅한 것이 없어 전화선을 뽑아 엄지 손가락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 손톱 밑의 살을 바늘로 콕 찌르니 너무 약하게 찔렀는지 피가 나지 않는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쿡.. 까만 피가 동그랗게 나온다.

다시 오른 쪽 엄지손가락을 전화선으로 감고 바늘로 쿡. 다시 까만 피가 맺힌다.

 

그렇게 양 손가락을 피를 내니 긴 트림이 나며 소화가 되는 듯 했다.

잠시 침대 위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왜 이리 덥지?

 

한 시간 정도 쉰 뒤에 후론트데스크로 내려가 하프데이투어를 하고 싶으니

택시를 하나 불러 달라 했다.

잠시 후 연락이 와 호텔 마당으로 내려 가니

얼굴이 검고 늙으수레한 아저씨가 늙으수레한 노란 색의 차를 가지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델리는 옛 델리와 뉴델리가 있다. 제일 처음 간 곳은 인디아 게이트.

그 곳을 가기 위해 차가 도로를 지나는데 과연 인도의 실제 모습이 보인다.

차와 하얀 소가 뒤범벅이 되어 도로를 지나고 있고.

어느 곳에서는 소가 도로 한 복판에 앉아서 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클락션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가 미안했던지 천천히 일어나 자리를 비켜 주면

차들은 그 틈을 이용하여 얼른 지나간다.

길가의 차들은 온통 하얀 색 일색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인도인을 내 차에 태운 적이 있다.

한국에선 차를 보통 몇 년 정도 사용하느냐 묻기에 대개 4 ? 5 년이면

구모델로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차를 구입해야 한다고 하니

인도에서는 보통 20년 정도 탄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인도에 와서야 알았다.

길을 주행하는 차들의 모습이 똑 같다.

인도의 국민차인가? 이렇게 차 들의 모양이 똑 같으니 새로운 차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길가에 지나가는 버스들은 한결같이 웬 치장을 그리 많이 했는지…

 

차가 본래의 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갖 형형 색색의 액세서리들을 차에 붙여 놓았고,

차에 에어컨이 안되어 있는지 창문은 모두 열려져 있다.

차에 사람을 가득 채워서인지 아슬아슬하게 문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보인다.

 

길가의 주택들은 마치 전쟁을 막 치룬 나라처럼 엉성하기 그지 없고,

길가는 소똥들로 군데 군데 검은 것들이 너저분해보이며,

까마귀들이 도시를 하늘을 덮듯이 떼를 지어 날라 다닌다.

그 사이로 영화 간판들이 수없이 많이 보인다. 이들은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가?

 

마치 개선문 처럼 하얀 색의 우뚝 솟은 건물인 인디아 게이트가 있는 광장에 내려 주고는

한 참을 쳐다 보게 한다.

인디아 게이트를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단다.

게이트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소풍나온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 릭샤꾼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 주위에 몰려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아주 오래된 성을 보여 준다.

성은 돌로 쌓여 있고 내부에는 인도의 전통 신들이 조각된 벽들,

그리고 오래된 건물들 주위로 관광객들이 천천히 돌아 다니고 있다.

 

성을 보고 밖으로 차를 타기 위해 나오는데

성 앞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른 사람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앞에 호리병을 놓고 열심히 피리를 불고 있다.

 

드디어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나오는 뱀을 볼 수 있구나 하는 기대감에 카메라를 들이 대고

뱀이 나오기를 기다리면 사진을 찰칵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도대체 뱀이 나오지를 않는다.

한 참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그냥 가려 하는데 피리를 불던 사나이가 그만 다급했던지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사진 찍은 값을 달라 한다.

무슨 얘기냐, 나 사진 찍지 않았다. 뱀이 나오면 찍으려 했는데 뱀이 안 나와 포기했다’

‘그럼 뱀을 보여 줄 테니 사진 찍고 돈 내라’

그러면서 호리병에서 뱀을 손으로 꺼내 내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질겁을 하고 뒷걸음을 치니 나를 안내하던 기사아저씨가 제지한다.

너무 어이가 없어 한 참을 웃었다.

아마 그 뱀은 그 날 주인한테 혼이 났을 것이다.

 

다음은 간디 기념 박물관을 찾았다.

그 곳에는 간디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들 특히 옷을 짯던 물레가 눈에 금방 뜨였고,

각종 사진과 간디가 보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간디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대형 동판이 조각되어 있어

간디의 영혼의 얼마나 인도인들의 가슴에 깊이 박혀 있는지 알게 한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여행가이드는 반드시 선물파는 곳에 여행객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늘 같은 물건들, 보석류, 자수정류, 등 전통 공예품, 한국에 가면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다.

기사아저씨에게 미안하지만 하나도 사지 않고 밖으로 나와 하프데이투어를 끝마쳤다.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인도 음식이 워낙 지저분해 보였고,

오늘 아침에 음식 때문에 체해 고생을 한 아픈 경험이 있는지라

시내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공항에 나가 때우기로 했다.

 

호텔에서 곧바로 짐을 싸고 공항으로 나와 식당을 찾으니

한 밤중이라 그런지 도대체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음료를 파는 가게가 있어 우유를 한 잔 달라 했더니

날 이상하게 쳐다 본다.

 

아차 이 곳은 소를 신성시 하는 나라구나 하고 미안해 하는 눈치를 보이니

외국인에게 우유파는 날이 정해져 있어 지금은 안 된다고 설명해 준다.

 

여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는데 출국 수속을 밟으니

잠시 기다리라며 여권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공항 첵크인 할 때 많은 공항세를 물어야 했다.

 

잠시 갈아타기 위해 나온 것인데 왜 공항세를 받느냐 하니

그래도 밖으로 나왔으니 물어야 한단다.

비싼 인도 관광을 한 꼴이다.

 

인도. 도를 닦기 위해 간다 하는 곳.

인생이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간다 하는 곳.

그 도시의 지저분함 속에 인생이 있을까?

그 하얀 소들이 삶의 진리를 말해 줄까?

난 도시 알 수가 없다.

다음에 올 때는 무언가 도를 깨달을 만한 것을 보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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