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오세아니아

호주

carmina 2013. 12. 5. 17:07

올해 어느 날 미국비자를 다시 발급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는데

최근에 미국다녀온 것이 언제냐고 묻는 항목이 있어

내 여권을 뒤져보니 어? 이런 2000년도에 전 직장을 명퇴한 후

미국을 가 본적이 없는데 2003년에 미국 방문 기록이 있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지금 나 놀리는거지?

그러고보니 괌도 미국이구나. 어쩌다 공짜여행표로 괌을 다녀 온 이후 해외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다.

 

올해 그간 하던 장사를 그만 두고 그래도 명색이 국내 최고라는

직장에 입사한지 2개월이 조금 안되었는데 어쩌다 부담없는 출장계획이 생겼다. 그것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호주

5대양 6대주 중에서 5대주를 가보았지만 마지막 한 곳은 이번을 위해 남겨둔 것인가?

 

사전지식을 위해 알아보니 9월인데 이제 막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있고, 시간차는 한국과 2시간, 그리고 면적이 한국의 80배인데 인구는 한국의 반.  넓은 자연에 적은 인원. 당연히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겠지.  미리 인터넷을 조회해본 내가 묵을 호텔의 풍경도 거의 그림 수준이다.

 

내가 가야할 곳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 혹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호주 서쪽의 제일 큰 도시 퍼스에서 몇 개 업체와 회를 하고 귀국길에 잠시 하루 인프라 조사차 들르는 시드니.

 

퍼스로 가는 직항편이 서울에 없어  싱가폴에서서 트랜짓해야 한다. 회사규정상 비행시간 10시간이 넘으면 비지니스클래스가 가능. 변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비행기 티켓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인 전산처리. 호주 비자도 인터넷상으로 발급받는다.

 

공항철도가 개통된지도 오래건만 아직도 타보지 못했다. 올해 말까지는 50프로 할인된 요금으로 직행열차를 탈 수 있다. 여름에 가을 양복을 입고 인턴공항행 첫차를 탔다. 거의 택시 수준으로 승객이 없다. 

 

미끄러지듯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철도가 서해를 가로질러 인천공항에 30분도 안되어 도착. 체크인하고 핸폰 밧데리가 갈아끼지 못해 충전기를 찾았으나 거의 20분이나 걸린다. 대충 충전하고...

 

일부러 창가자리를 찾아 앉았는데...그만 회사의 높은 분하고 같이 앉게 되어 버렸네. 아직 한 번도 업무 얘기를 해 보지 않은 분이라 여행 내내 서먹한 분위기.

 

비행기가 싱가폴 공항에 접근하는데 입이 딱 벌어진다. 그 넓은 임야를 나무로 질서 정연하게 심어 놓았다. 오래전에 심었을테고 앞으로  수 십년을 바라보는 조림정책이 부럽기만 하다.

 

싱가폴에서 몇 시간 체류후 다시 호주 퍼스로 5시간 비행. 한 밤중에 도착.  이곳이 봄이라 그런지 약간 서늘한 기운이 밀려온다.

낮은 주택들이 어둠속에 잠긴 긴 도시 마을을 지나 크류즈의 모습같은 인터콘티넨탈호텔에 투숙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둘쨋날.

 

한국과 시간차가 별로 안 나서 그런지 오래된 습관에 제시간에 눈을 떴다. 지난 밤 보이지 않던 호텔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아침의 어스름한 빛과 유리에 반사된 파란 골프장과 스완강의 모습이 탄성을 지른다. 참 좋다.

 

산책을 해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아침부터 미팅 준비를 해야 한다. 오랜만에 호텔 아침 식사가 좋긴 하지만 여러명이랑 같이 식사를 하니 무척 조심스럽다. 오전에 미팅, 오후에 미팅.

오후에 미팅을 위해 나가다가 문득 빌딩 앞에 있는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천막이 보였고, 높은 사람의 의지로 저녁에 특별한 일 없으니 서커스를 보자 한다. 우와.이런 찬스가..

한국에서 태양의 서커스 팀이 와서 "퀴담"을 공연했을 때도 가격이 비싸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는데..그걸 이 곳에서 보다니..

태양의 서커스는 사람이 일생 살면서 꼭 보아야 할 10가지 품목중에 하나가 들어 있다고 누군가 얘기한다.

부랴 사랴 호텔로 돌아와 당일티켓을 예약하려 하니 우리 일행 7명이 나란히 앉아서 볼 자리는 없고 모두 떨어져 앉아야 한단다. 아무렴 어떠랴..겨우 겨우 모두 예약하고 저녁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호텔의 중국식당에서 해결. 국수를 시켰는데 국물은 먹을 만 해도 면이 넓적하고 끈기도 없는 것이 도무지 맛이 없다.  

 

태양의 서커스 발레카이

 

발레카이 (보헤미안의 언어로  "   "이라 한다.). 내용을 인터넷으로 조사하니 곤충들의 사랑이야기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팜프렛을 비싸지만 하나 사고, 시야가 조금 안 좋은 자리에 앉았다.  인구가 150만밖에 안 되는 도시이고 공연 시작한지 20일 정도 지났는데도 객석은 빈자리가 없다.

 

안내원 복장을 입은 이들이 철저하게 교육받은대로 손님들을 한 명 한 명 지정석으로 인도하고 나는 차근 차근 무대의 꾸밈새를 본다.

텐트의 천정 바로 밑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마치 곤충들이 사는 숲 속의 나무가지처럼 구성되어 있고, 무대에도 풀잎이나 나무를 연상하는 긴 장대들을 빽빽하고 많이 세워놓고 중간 쯤에 멈추어 설 수 있도록 동그란 받침대를 만들어 놓아 그곳으로 기어 올라가는 서커스 단원들의 모습이 연상되니 오늘 공연의 재미가 벌써 느껴진다.

 

어느 서커스 공연에서나 그렇듯이 관객속에 포진한 남 녀 두명이 바람을 잡는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각종 도구로 손님들을 놀리기도 하고 짖궂은 장난을 즐긴다.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광대들의 모습에 빠져 있을 때 슬그머니 무대에 현란한 복장을 한 단원들이 나무숲 사이로 기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격적인 아크로바트, 줄타기 묘기, 그물을 가지고 부리는 공중묘기, 남자들의 군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네와 함께 텀블링 묘기들이 모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한 순간을 놓치기도 아까울 정도로 펼쳐지는 서커스는 어느 경제학자의 이야기처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블루 오션임에 틀림이 없다.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 퀘벡에서 만들어지고 현재 7가지의 테마 공연이 전세계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고 있고 라스베가스에도 몇 개의 공연이 매일 다른 메뉴로 펼쳐지고 있다 한다.

 

워낙 많은 서커스단원이 몰려 다니다 보니 작은 마을을 형성하여 단체생활을 하고 자체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시설도 있다하니 가히 그 규모가 짐작된다.

 

스토리가 있는 서커스라 하지만 스토리는 무척 단순하다. 어느 공연에나 비슷한 묘기이지만 그래도 공연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공연의 묘미를 우리 동춘서커스단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늘 어수룩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길려 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내 옆자리에 아이 셋을 가진 가족이 앉았는데 부인이 내 옆에 앉아 자꾸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말을 걸고 미소를 던진다. 호주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옆에 있음에도 그렇게 친절하게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내가 잘못된 태도인가?

 

공연을 보고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좋다..참으로 좋다..비 맞는 것도.. 

 

셋째날.

 

오전 미팅후 오후 미팅을 위한 장소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일반 식당보다는 이곳 직장인들같이 먹기로 하고 빌딩내의 일층에 있는 식당에서 일식, 베트남식 도시락을 싸들고 빌딩 옆의 공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맑은 햇살 아래서 점심을 즐겼다.

 

확실히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이런 장소도 별로 붐비지 않고 너도 나도 우리 같은 모습으로 점심을 마시고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우리의 젊은이들처럼 핸폰만 잡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핸폰을 가지고 있을텐데..그들은 핸폰으로 게임이니 티브이 보지 않나?

 

눈에 뜨이는 특이한 모습. 왜 그리 점심꺼리를 들고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먹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것도 선진 문화이리라. 영화에서 자주 보던 풍경들.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들른 "돔"이라는 카페에 사람들이 복잡하다. 주문받는 호주아가씨얼굴이 얼마나 바비인형같이 이쁜지 한참 바라보았다.  

 

오후미팅 후 저녁식사하러가기 전에 잠시 시간이 남아 퍼스에 있는 킹스파크를 돌아보기로 했다. 퍼스가 자랑하는 공원. 택시타고 공원에 내리니 퍼스 항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적은 것의 아름다움인가. 많지 않은 빌딩들, 붐비지 않는 사람들, 한적한 항구..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기에 손으로 만져보니 여기 잔디는 계속 자라지 않는 품종인것 같다. 잔디를 지속적으로 베어낸 자욱이 보이지 않지만 아스팔트와 잔디가 만나는 경계선은 예리하게 잘려나가 있다. 그러니 공원의 선이 깨끗하고 뚜렷하다.

 

잘 정리된 곧은 나무들, 눈에 거슬리지 않는 벤치와 기념물들. 많지 않은 산책객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삿군들. 호주는 어디가니 길거리 장삿군은 본적이 없다. 천천히 잔디위를 걸어 산책한다. 퍼스의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바다를 굽어 보고 있고, 공원 밑에 맥주공장이 있는 듯한데 공장이라기보다 건축물정도로 보인다.

 

아프리카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바오밥나무가 있고, 이름도 모를 꽃들 그리고 꽃의 색깔을 가진 새들이 온갖 노래를 하고 있다. 녹색색 양탄자를 덮은 공원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은 사람들, 우리같이 산책하는 외국인들이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어느 곳은 잔디가 조금 상해 있는지 방패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다.

 

그야말로 천국이 이런 곳인가? 이런 곳에서 세상의 근심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지금이 봄이라는데 봄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보이는 꽃에는 반드시 꽃의 이름과 학명을 적어 놓았다. 산책길의 큰 나무들 밑에 써있는 팻말. 군인의 계급과 이름 밑에 어느 작전중에 전사해 놓았는지 하나 하나 써놓았다. 수목장일까? 아니면 그냥 기념수일까? 

 

높은 나무들 사이로 앵무새같은 모습을 한 새들이 우리들 같이 여유롭게 가지위를 산책하고 있다.

 

공원 중간쯤에 불길이 타오르는 원형 축조물이 있는데 축조물 주위에 각종 대륙의 이름이 붙어 있다. 신기한 것은 원형호로 된 축조물 한켠에서 얼굴을 바짝대로 조그마하게 얘기하면 저 반대편에 똑같이 귀대로 앉은 자세로 있는 사람에게 똑똑히 들리는 현상이다.

나도 시험을 해 보았는데, 내가 조금 청력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저기 멀리서 조그마하게 말하는 직원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런 깨끗한 공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원이 깨끗한 것은 인구가 적어서이리라. 문제는 늘 사람임을 새삼 깨닫는다.

 

호텔로 돌아와 호텔 옆에 있는 카지노에 둘러 보자는 한잔하자는 상사의 말에 이것도 좋은 구경이려니 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면서 입이 벌어졌다. 어찌 이리도 넓을 수가...그리고 어찌 이리도 사람이 많을 수가..

 

라스베가스에 있는 카지노에도 들어가보긴 했지만 여기같이 사람들이 많이 있진 않았다. 물론 라스베가스에서는 카지노 선택의 여지가 많이 각 호텔마다 그리 붐비진 않았겠지만 이곳에선 통로를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카지노 딜러들이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손님들과 상대한다. 나는 카지노에는 전혀 문외한이라 무슨 게임을 하는지 모르지만 테이블 주위에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하긴 돈내고 돈 먹는 것처럼 신중한게 어디 있으랴.

 

어느 테이블은 한산하고 어느 테이블은 서서 게임에 참가할 정도 붐빈다. 일본이나 라스베가스에서 하던 빠찡코를 찾아보았으나 게임 방법이 다른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손님이 주사위를 던져 홀짝 게임하듯하는 내기 게임도 있고 구슬이 뱅글 뱅글 돌다가 어느 한 곳에 멈추는 룰렛 게임도 많이 보였다.

우수수 딜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여러가지 무늬의 칩들. 어쩌다 당첨되어 몇 배의 칩을 더 받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리 밝진 않을 걸보니 이미 많이 잃은 것 같다.

 

눈에 뜨이는 것은 왜 그리 카지노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지.. 거의 몸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각종 게임기 앞에서 한가롭게 칩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중국인들...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고...한국인도 보이지 않는다..

 

게임에 참가할 생각이 당초부터 없었기에 나오다가 바에 들렀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 경고가 붙어 있다. 술집에 와서 술 취하지말고 놀다 가라는 이야기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술집이나 하나 만들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술은 이야기를 즐기기 위한 도구일 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흑맥주 하나 시켜놓고 일행은 서서 이야기하다가 한잔씩 마시고 들어가고 나는 남아서 재즈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들어갔다.

 

  

넷째날

 

오늘은 오전에 업무 잠간보고 오후에 시드니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젯밤 자기 전에 일부러 기상시간을 1시간 앞당겨 놓았다.

어제 그제 미루어왔던 호텔 주변 산책을 위해..

 

눈을 뜨니 아직 도시가 어둠에 쌓여있다 조금 침대에서 뭉기적거리다가 밖을 나오니 헬스크럽을 통해 호텔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이 닫혀있다.

 

헬스관리인 아가씨가 나보고 "가이트, 가이트" 그런다. 가이트? 아하..게이트.. 호주 사람들은 영어 발음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들어 영어단어중  a 에 해당되는 발음을 우린 보통 "에이"로 발음하는데 이들은 모두 "아이"로 발음한다. 그러니까 today를 이들은 토다이로 발음하고 base 를 바이스로, maintain을 마인타인으로 발음한다. 처음에는 이 원칙을 몰라 알아 듣기 힘들었다. 호주를 떠나올 때 쯤에야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귀에 들렸으니 아무래도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아직 어스름한 호텔 주변 산책로를 따라 옷 조금 두툼하게 입고 걸어가는데 손이 시렵다. 그러나 내 주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클링 맨들. 남녀노소가 없다. 우리같이 보통 사용하는 자전거가 아니고 모두 전문 사이클이다. 옆에는 퍼스이 상징인 흑조 (黑鳥)가 많은  스완강이 여유롭게 흐르고 있다. 길거리 곳곳에 흑조상징물이 조형물로 보인다. 우리는 백조만 생각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구비 구비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스완강변 저편에선 눈에 뜨이는 높은 빌딩 몇 개가 보인다.  그러나...그게 이 곳은 그게 다다. 저곳 외에는 고층빌딩이 없고 굳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구가 적다. 강변을 끼고 아파트따위로 보이는 주거형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옆에는 아직 골퍼들의 발길이 없는 푸른 골프장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고, 그 중 몇 몇 조깅족들이 두툼하게 혹은 반팔을 걸치고 열심히 뛰어가며 눈인사를 나눈다.

 

나같이 여유로운 산책을 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콧평수를 늘릴 정도로 크게 숨을 쉬며 걷는다. 코로 들어오는 신선한 아침 바람. 풀 숲을 걷지 못함이 아쉽긴 하지만 눈이 즐겁다.

 

돌아 올 시간을 적당히 고려해서  멀리 다리 끝까지 가서 되돌아왔다.

 

닷새째, 시드니.

 

어제 퍼스에서 5시간 정도 비행후에 시드니에 도착해 한국식당에서 맛있는 김치찌게와 불고기를 먹고 마중 나온 여행사가이드가 APEC때문에 교통이 어떻게 통제되는지 알고 싶다며 우리 일행을 데리고 어느 곳으로 데리고 가는데 차량 통행이 거의 없으니 통제가 되고 있는 않는다며 신기해 한다. 거의 인적없는 공원에 들어가 바닷가로 나가니 멀리 오페라 하우스가 멀리 보이고 다리에 크게 원형으로 APEC조명이 걸려있다.

 

어제는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앞의 공원 산책했다. 공원을 가로 질러 천천히 걸어가는데 남자 둘이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공원을 가로질러 기분 좋은 얼굴로 내 앞을 스쳐간다. 분명 게이들이리라. 표현하고 싶은 사랑들. 남이 이상하게 보기에 더 다정하게 보일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비슷한 사람들의 무리.

 

공원은 조용하다 깨끗하고 잘 자란 나무들이 갖은 낙서로 가득 지저분해졌다. 그중 눈에 뜨이는 것이 한글 낙서. 누구랑 누구 사랑..코리아 등등..

 

분수대로 보이는 물가에 황새같이 생긴 새가 아침을 즐기고 있다. 저런 새가 도심지에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부슬 부슬 비가 쏟아진다. 카메라를 젖지 않게 가디건 속에 넣고 천천히 공원을 산책했다.

 

아침부터 스케쥴이 가득하다. 크라이슬러 리무진이 호텔앞에 기다리고 있다.  어젯 밤에 어둠속에 방문했던 곳을 다시 찾았다.  

 

저기 보인다. 오페라 하우스가.. 그리고 하버브릿지... 저런 형태의 다리로는 세계에서 2번째 긴다리라고 한다. 다리가 마치 옷걸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옷걸이 다리라는 별명도 있고..

 

이렇게 두 곳 명소가 잘 보이는 곳이라 하면 무척이나 사람이 많이 몰릴테고 지저분해야 할텐데, 마치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듯,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손때가 묻지 않았다.  늘 보아오는 것들에 대한 관심부족인가? 아니면 사람들은 저 오페라하우스만 들어가길 바라는 것인가. APEC 경비때문에 오페라 하우스 상공에 떠 있는 헬리콥터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애드벌룬 띄어 놓은 듯...

바다위에는 경비정 몇 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눈을 끄는 것은 바다만큼이나 시원스런 도심라인이다. 너무 빽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빌딩 숲과 잘 어울리는 스카이 라인. 난립하지 않은 빌딩들의 모습이 파란 하늘에 더 빛을 발한다.

 

호주 5대째 총독의 부인이 본국으로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며 앉았다던 큰 돌 의자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만들어 그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다시 차에 올라 찾아간 곳은 수족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수족관이 있는 바닷가에 멋진 요트들이 정박한 채로 가득하다. 마치 007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요트도 눈에 보이고, 어부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은 고급요트들이다.

 

막 수족관을 여는 시각에 거의 1착으로 입장했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따라 양 벽으로 각종 물고기들의 붙박이 어항안에서 놀고 있다. 각 어항에 물고기들의 이름들이 붙어 있건만 도시 알수가 없다. 그냥 우리 식대로 이해하는수 밖에..

 

물속에 있는 고기들은 저마다 색깔을 가지고 화려하게 살고 있지만 물에서 나오는 즉시 거의 모든 색깔을 잃어버린다. 조금씩 움직이는 산호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그 사이들을 비집고 다니는 조그만 열대어들이 얼마나 날렵한지, 한참을 서서 보고만 싶다.

 

커다란 흰 뱀장어가 마치 나무처럼 고정되어 있고 물뱀이 길게 걸쳐 있다. 짱뚱어처럼 생긴 것이 고개를 들고 있고, 커다란 악어가 수면위에 코만 내 놓고 미동을 하지 않는다. 몇 백년살았음직한 거북은 정말 나이가 많은걸까?

 

몇 층 지하로 내려가니 터널식으로 된 상어수족관을 지나는데 양 옆그리고 머리위로 상어들이 무서운 이빨을 내 놓고 스쳐 지나간다.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지 세기도 어렵고 어떤 상어들은 유리판에 몸을 기대고 자고 있는 듯 보인다. 상어의 아가미가 마치 회칼로 눈옆을 친것처럼 날카롭게 금이 가있고, 숫컷과 암컷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그림도 있어 그 녀석들의 부끄러운 부분도 볼 수 있다.

 

다른 물고기들도 같이 있는데 잡아 먹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하긴 동룸은 배고프지 않는 한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는 않으니 얼마나 신사적인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이런 동물과 비교할 때 가장 추악해 보인다.

 

정말 많은 어류들을 보았지만 다 기억하고 적지못함이 아쉽다. 그곳에 인어는 있었던가?

 

수족관을 나와 크류즈투어를 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해가는 길도 우리나라 선착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깨끗하다. 아침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크류즈투어를 하게되었다. 투어에는 커피투어가 있고 런치, 디너투어가 있는데 선상에서 부페를 할 수도 있다. 우린 커피투어를 선택하고 안내한 자리로 가니 모든 것이 깨끗하다. 어찌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텐데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을텐데, 눈에 닿는 모든 곳이 깨끗하다. 우리 옆에 APEC 관계자들의 부인들인지 인도네시아 여자들이 왁자지껄하다.

 

시드니 항은 샌프란시스코 (혹자는 나폴리항을 꼽기도 한다), 리오데자네이로 항과 함께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꼽힌다.

 

배가 천천히 항구를 떠나 조금 가니 하얀 조개껍질을 세워놓은 듯한 오페라 하우스와 그 옆에 하버브릿지가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커피과 쿠키를 마시며 선내에서만 보고있다가 갑판위로 올라갔다. 바람이 불고, 머리칼이 휘날린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노래를..

 

멀리 하버 브릿지의 교각 위에 사람들이 다닌다. 계단이 200개나 되는 저곳을 올라가는데 무척 힘들다는데, 그리고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하던데 저 위의 사람들은 배짱이 대단한 사람들인가보다.

 

배가 반대편 서큘러항에 정박해서 또 손님들을 태우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 간다. 선상에서 모두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득 떨어진다.

 

배에서 내려 점심식사를 위해 찾아간 곳은 선착장의 노천 식당이었다. 물론 노천이긴 해도 비를 피하게 만들어 놓아 야외식사의 기분을 살려준다. 와인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랍스터, 꽃게, 왕새우 굴 등이 모양도 좋게 차려 내놓는다. 흠..맛있어라..

 

한국에서 랍스터 한 번 먹을려면 보통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곳에서 포식하네. 분위기 최고로 좋은 곳에서..  식사 내내 비가 많이 쏟아지더니 식사 후 뜸해진다. 

 

자. 잘 보고 잘 먹었으니 이제 이동. 맨리비치로..

 

길가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리무진을 타고 가니 거의 모든 이들이 차에 눈길을 주고 대개 이 차는 신랑신부가 웨딩세르모니 후 타는 차라는 인식때문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다.

 

노스헤드전망대. 미리 읽어본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 곳에서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장면이 촬영되었다 한다. 진짜일까? 워낙 고급차인지라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차 바닥이 손상될까봐 범프를 조심 조심 지나간다.

 

갑자기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보인다.

섬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 이런 것을 바다라고 하는구나. 영화 남태평양에서 보았던 바다가 이곳에 있다. 멀리 시드니시내에 우뚝 솟아있는 빌딩들이 보이고 그 위에 먹구름이 몰려 있는 모습이 그 쪽은 비가 오나보다.

 

시드니 항 근처에 요트들이 그림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고 그 중 몇 몇은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노스헤드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는 남태평양. 아주 멀리 정박되어 있는 배도 보이지만 어느 배더 어선은 아닌 것같다. 그러니 바다앞에 깨끗하겠지.

 

파도가 끝없이 몰려온다. 수직의 절벽밑에 흰 포말이 부서지고 있다. 빠삐용은 저 파도에 야자나무꾸러미를 던져보고 자기 몸을 던졌겠지?

 

여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무것도 없음의 아름다움이란 것이란 이런 것인가? 텅빈 공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아니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창조자의 위대함을 아는 것일까?

 

또 다른 뷰포인트로 걸어가니 가파른 절벽의 단층이 잘보여진다. 용암이 녹아내리다가 바닷물에 부딪혀 바위에 용암의 물결이 선명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단층이 내려앉아 저렇게 깍아지른 절벽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갔을까?

 

대개 어느 산에는 그렇듯이 높은 곳에 있는 나무들은 나무 밑부분이 모진 바람에 견디다 못해 바싹 말라 있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가 절벽위에 있는 나무들의 밑부분이 모두 죽은듯한 색깔이나 윗부분은 멀쩡히 살아 있다.

 

그렇게 노스헤드의 장관에 취해서 천천히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오는데 이런 놀라울 데가..  드라이버인 친구의 동서가 우리 차 옆에 조립식 테이블을 마련하여 깨끗한 테이블보위에 과일과 와인을 준비해 놓았다. 같이 간 임원들이 모두 나같이 놀랐다.

 

모두들 싱글벙글..조립식 컵으로 된 와인 잔이 더 신기하다.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맨리비치. 파도가 심하게 밀려오는 곳에 서핑하는 이들이 바다에 수박덩어리처럼 떠 있다. 멋지게 타는 이들도 있고 서핑하다가 물에 빠지는 이들도 있고..

 

순간, 하늘에 쨍하고 무지개가 생겼다. 그것도 쌍무지개가...

감탄 또 감탄..

 

새로운 사업을 위해 찾은 곳인데 징조가 좋은걸까?  아무튼 기분은 좋다.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커피한 잔 하자하고 밖에 있는 커피샵을 몰려갔는데 순간 비가 쏟아진다. 이 비가 노스헤드에 있을 때 왔으면 멋진 장관을 놓쳤을텐데...모든 것들이 우릴 도와주고 있다.

 

간단히 쇼핑도 하고..

저녁은 멋진 일식 레스토랑에 가서 최고급 소고기도 구워먹고...

 

이렇게 호주의 하루가 지나갔다..

 

비도 부슬 부슬 오는 밤은 아직 멀었다.

8시..이정도면 새로운 밤을 시작해도 될 시간 아닌가?
맞은 편 방에 있는 직원에게 전화. 혹시 시내 걸어나갈 생각없어?

그치 않아도 자기도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더란다.

 

시내는 우리 호텔 바로 지척에 있다. 미리 전화를 오늘 가이드한 여행사에게 시내의 안전도를 파악했다. 걱정없단다.

 

어둠속의 공원옆을 지나 시내로 나갔다. 빗소리가 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진 것 같다. 구석구석 모여 서있는 젊은이들. 역시 여기도 핸폰에 목매달아 있는 젊은이들은 찾아 볼 수 가 없다. 패스트푸드 점에 젊은이들이 가득하고, 맥주바에 옹기 종기 몰려있다.

 

비가 많이 와 지하에 있는 어느 곳를 가니 전세계의 식료품들이 전열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넓은 마트가 있다. 한국산 라면은 물론 일본, 태국 등 아시아 사람들을 위한 음식도 가득하고, 각종 잡다한 물건들, 유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가격도 비싸지 않은 것 같고..

 

젊은 시절에 이렇게 외국에서 생활하는 법을 배운 이들에게 세계는 그다지 먼 나라가 아닐 것이다. 내 아이들도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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