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부천시립합창단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 헨릭 구레츠키

carmina 2014. 3. 28. 13:04

2014. 3. 27 부천 시민회관

 

부천시립합창단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2)

미니멀리스트 헨릭 구레츠키


멋진 곳을 여행하고 왔거나, 감동있는 영화를 보았거나
도무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음악회를 보고 온 날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떻게 그 감동을 글로 표현하나 하는 걱정때문에..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이지만
그 감정을 오래 기억하고 싶기에 글을 써 두어야 한다.

 

대개 합창단의 공연을 보면
입모양만을 보아도 누가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데 어제는 그 통념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부천시립합창단의 기획연주인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2)로 연주된
폴랜드의 헨릭 구레츠키의 곡들.
이름도 생소하지만 음악계에서는 독특한 작품들로
얄려져 있다 한다.

 

열심히 합창음악씨디를 모으는 나도 소장중인 씨디를
뒤져보니 이 작곡가의 곡은 찾아볼 수 가 없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지휘자 조익현씨는
홀로 마이크를 들고 나와 곡에 대한 해설을 해 주는
고객 서비스로 여타 공연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계의 미니멀리즘.
대개 미니멀리즘이라 하면 회화나 건축 혹은 팻션에서
작고 단순함 속에서 미학을 찾는 것이라 알았는데
음악에도 미니멀리즘을 택한다는 것은 낯선 충격이다.
반복되는 리듬과 가사, 그다지 많지 않은 음을 사용하면서도
작곡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와 음악이 주는 감동이
모두 충족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무반주로 시작된 폴란드의 비스와강을 표현한 노래.
합창단의 첫음이 나올 때 순간 내 입에서 그 첫음보다
더 강렬한 탄성이 터진다.

어쩌면 이렇게 한 사람이 노래하는 것 같이 소리가 모아질까?
모두다 내로라 하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조련사의
손끝 하나에 모두 모아져 있다.

 

모텟트음악을 많이 들었기에 이런 음악을 처음 접해 본건 아니지만
비브라토 하나 없는 화음은 잔잔히 강물을 보는 것 같다.
오래전 폴랜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비스와강이
저 모습이었을까?

 

피아니시모의 음악이 끝도 없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단원들의 긴장된 모습만큼이나 나도 긴장하고 있다.

사람들도 모두 긴장한 듯 곡이 끝났는데 박수를 치지 않다가
첫곡이 끝나고 지휘자가 돌아섰을 때서야 박수를 치고
나도 그제서야 겨우 자세를 풀었다.

 

부천시립합창단과 2번의 공연을 같이 해 보았었다.
말러의 부활을 부천시민과 함께 연주한다기에
오디션을 보아서 한 달간 연습후에 무대에서 같이 합창했고
헨델의 메시야를 싱어롱으로 한다기에 아내와 같이
이상훈지휘자의 레슨을 받고 같이 연주를 했기에
그 들이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합창단원의 소리에 그만 고개가
설레 설레 흔들어진다.

 

이런 곡을 성당에서 연주하면 반향이 어떨지 짐작도 해본다.
천상에서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면 이런 소리로 들릴까?

첫번 강에 대한 노래 후 이어지는 폴랜드의 자장가 3곡
발음이 전혀 못듣던 폴랜드어라 생소하지만
번역된 가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로
곡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가 잠들도록 서서히 디미니엔도로 마무리되는 자장가
편한 노래라 짐짓 듣는 나도 졸릴 수가 있으련만
피치하나 떨어지지 않는 합창단의 긴장된 화음으로
도무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경청하고 있다.

 

다시 강에 대한 연가곡이 아카펠라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피아니시모, 피아니시시모의 음악들.
좋다. 참 좋다.

무반주로 연주되는 모텟트의 음악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하인리히 쉬츠의 합창음악과도 구별된다.

쇼팽 이후 처음 접한 폴랜드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나찌시대의 아우슈비츠가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보면서 폴랜드 유태인들의 숨죽이며 사는
생활들을 보아서일까?  그 들은 노래도 이렇게 숨죽이며 불렀을까?

무대에 한 켠에 있는 타악기 튜블러벨, 심벌즈, 실로폰, 큰북
그리고 두 대의 그랜드피아노와 포지티브올갠은 언제 연주되는 것일까?

 

인터미션 후 구레츠키가 작곡한 종교곡이 연주되었다.
일반 미사곡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종교곡들은
폴랜드의 성인들을 찬양하고 마리아와 찬미하는 노래들 역시
아카펠라로 연주되다가 튜블러벨의 간단한 타악기 하나와 함께
이루어지는 합창의 청아함이 벨소리와 공명을 같이 한다.

 

그리고 빈복되는 리듬으로 마치 우리나라의 굿처럼 혹은
언젠가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보았던 흑인들의 음악처럼
끝없이 지속되는 단순한 멜로디로 이어지고
때로는 거의 들리지 않는 저음으로 이어기기도 한다.

아멘이라는 곡은 아멘이라는 가사만으로 무려 8분을 연주하기도하고
어느 곡은 피아니시시모가 언제 끝나는지 모르게 이어지고
어느 곡은 극 베이스의 음과 하이 소프라노의 날카로운 음이
듣는 이늘 놀라게 한다.

 

다행히 관객들의 수준이 높은 것인지
아니면 지휘자의 연주에 폭 빠져든 것인지
곡이 끝남을 미리 짐작하고 박수치는 사람들이 없어
비록 지방에서 연주되는 곡이지만 연주감상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미사곡을 전곡연주하면 앵콜이 없는 것처럼
관객은 앵콜을 원했지만 지휘자는 곡의 성격상
앵콜의 부적절함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멋진 합창이 지방에서만 연주되는 것이 아까울 따름이다.

연주 후 가장 놀라운 것은 올림픽에서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수영선수들같이
단원들의 모두 누구 하나 튀는 음이나 표정없이 완벽한 합일화를
만들어 내는 지휘자의 능력에 새삼 올해 그 분과 같이 합창을 할
우리 합창단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