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1999년도에 써 놓은 글

carmina 2014. 6. 28. 10:24

 

99년을 보내며

 

년초부터 멕시코에 나가서 꼬박 보름을 살았다.  수십억불의 공사 입찰에 회사가 전력질주하기 위해 20명이 넘게 멕시코에서 밤새워 일을 하느라,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트럭 2개 분량의 서류들, 단 한 페이지라도 실수하면 수많은 노력이 헛수고가 될지도 모르며, 그로 인한 책임은 단순한 과실이 아닌 역적이라는 사실. 이러한 스트레스가 같이 간 직원들을 더욱 억눌렀고, 급기야는 서로 주먹이 오가는 싸움도 불사했다.

 

그리고 한국정 아줌마의 추태로 졸지에 민망하게된 나의 입장, 그 이후로 한국정 가기를 무척 꺼렸는데 마침 멕시코시티내에 여러 개의 한국 음식점들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었다. 꼭 한국 음식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론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어찌 보면 단순노동자가 해도 될 만한 일들을 하나의 실수라도 없게 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경력의 엔지니어들이 그 비싼 비행기를 타고 와 호텔에 묵으며 하나 하나 마무리 짓고 있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 회사 뿐만이 아니었다. 현대와 삼성 그리고 LG의 직원들이 우리와 똑 같은 일을 같은 지역에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로 방대한 서류들의 내용을 요구사항에 맞게 제대로 작성했나 점검하고 일련 번호를 매기고 또한 사인을 해야 하는 일은 자칫 잘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하여야 한다는 명제 때문에 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하루의 3식을 모두 도시락으로 해결하거나 혹은 간단히 라면으로 때우고 종일 사무실에 틀어 박혀 잉크를 묻혀가며 일하기를 10일 정도 첫 번째 입찰이 순조롭게 제출되자 그제서야 일이 편해졌다. 나머지 두개의 일은 첫번째와 거의 유사한 일이었으므로 같은 수순을 밟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비록 가격이 금방 밝혀져 당락이 졀정지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류상에 하자가 없는 것만이 이번 출장의 최대 목적이었다. 나머지 경쟁사들에 비해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우리 팀들은 나머지 일도 일사 천리로 해 내어 마지막 입찰일은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회사에게 제공해 준 전세 버스를 타고 멕시코 시내를 구경다닐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힘과 공을 들인 입찰은 우리 회사가 3개 프로젝트를 모두 수주하였으나 한 개 프로젝트만이 계약 되었고 나머지 두개는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재입찰한 끝에 삼성과 계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