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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이틀 (호스피스 병원 봉사)

carmina 2014. 12. 27. 21:25

 

 

2014. 12. 26 ~ 27

 

호스피스 병원 봉사를 다녀오며 부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리는데

그만 버스가 급정거하니 내릴려고 미리 일어섰던 사람들이 몸의 중심을 잃었다.

백암에서 부천까지 오며 내내 건너편 좌석에서 핸폰으로 채팅을 하던

이쁘고 잘 생긴 아가씨가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다 장갑을 떨어뜨리며

입에서 쌍소리를 내 뱉는다.

아...여긴 지옥이구나.

 

천국에 다녀왔다.

천국을 가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호스피스 병원

주로 2개월 시한부 말기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가 무의미해질 때 찾는 곳이

호스피스 병원이다. 

 

다른 곳을 어떻게 운영되는지 몰라도 내가 늘 가는 곳은

거의 종교단체의 지원으로 무상으로 지원되다시피하는 샘물호스피스 병원이다.

 

호스피스 병원에 오면 환자들은 치료를 하지 않는다.

단지 고통만을 덜게 할 뿐이다.

물론 오랜동안 누워 있어 욕창이 생기는 부분이나

갑작스러운 통증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들은 가능한 통증만을

덜도록 해 주고 있다.

 

올해 새해 벽두에 다녀온 뒤, 1년동안 잊고 있다가

년말에 두 차례의 계속되는 샌드위치 데이 휴가로 연휴가 생겨

한 번 정도는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아, 크리스마스를 지내자 마자

샘물호스피스 병원이 있는 백암행 버스를 탔다.

 

1년전에 거의 완공단계에 있던 추가로 지은 새 병동이 완성되어

본관과 새 병동을 연결하는 커다란 임시 터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나를 기억하는 분들 몇 분.

그리고는 모두 새로운 얼굴들이다.

방을 들어서자 마자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매주 금요일은 환자들을 목욕시키는 날인데

3명 1조로 하는 팀 중에 한 명이 없다며 급히 구원을 청한다.

 

비록 나는 정식 호스피스 교육받지 못했지만 옆에서 돕겠다고 하고

얼른 목욕보조원이 입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별도로 마련된 목욕실.

이런 환자들을 위한 목욕실 침대가 있다.

그 들을 침상위에 뉘운 채로 물을 담고 있으면 봉사자가 온 몸을 깨끗이 닦아 준다.

 

거의 말을 못하는 환자들이지만

따뜻한 물이 닿으니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누워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들이기에 봉사자가 옆으로 환자를 굴려가며

여기 저기 씼는다.

 

거의 70대 후반의 환자들.

옷을 벗으니 맨 몸을 통해 그 들의 인생역정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탄탄하던 근육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른나무처럼 딱딱한 뼈만이 있는

환자들의 살에 목욕타월로 문지르니 거의 촉감은 뼈만 느껴진다.

 

한 분 두 분 세 분, 뜨거운 물 속에 계속 있으니 땀이 흐른다.

비록 몸무게가 거의 없는 분들이지만 통나무같이 움직일 수 없는 분들이라

힘이 들기도 하고...그러나 도구가 잘 되어 있어 큰 힘은 들지 않았다.

 

어떤 분은 아직 육중한 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이동식 침대에서 목욕침대로

옮기는 것 조차 몇 사람이 힘을 합쳐야 겨우 옮길 수 있다.

목욕을 시키는데 아프다는 듯 신음을 하시기에 어디 불편하시냐고 물었더니

가느다란 목소리로 '좋다'며 엷게 미소 짓는다.

 

마지막으로 모시고 온 분은 이제까지의 삶동안 무척 부유하게 사셨는지

온 몸이 아직 윤기가 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급히 이 곳으로 왔는지

의아해 할 정도였다.

 

무려 7분이나 목욕을 시켜 드렸지만 어떤 환자는 그것도 싫다고 거부하는데

옆에서 간호하는 부인이 핀잔하는 모습이 아직도 집에서 티걱태걱 말다툼하는 부부의

모습같다.

 

어떤 분은 면도를 시켜드리니 혹시 이발까지 할 수 있느냐며 묻는다.

이발을 하는 날은 따로 있으니 미리 애기해 놓겠다고 했다.

 

내게 환자 한 분을 보호하라기에 병실을 찾아 가니

3인용 병실에 두분은 보호자가 있고 한 분은

내가 조금 전에 목욕시켜 드린 분인데 침대에 누워

검은 뿔떼 낀 안경 넘어 작은 눈으로 내게 시선을 준다.

 

다리를 주물러 달라기에 주물러 드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가져다 달라기에 가져다 드렸다.

휴지를 집어달라기에 휴지를 드리고

식사가 왔기에 생선 가시를 발라 드렸다.

 

아주 단순한 일.

그러나 환자에게는 너무 힘든 일.

그 분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이것 저것 돕고 있으니

갑자기 내게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개 이 곳에서는 환자들과 봉사자들간에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다.

나도 환자에게 무슨 병이냐고 묻지도 않고

신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그것이 봉사자들의 암묵적인 규율이다.

 

이 분의 침대옆에 영어로 읽는 메시지라는 책이 놓여 있어

분명 이 분이 읽던 책이라 생각하며 임종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

책을 읽는 인텔리인 것을 직감했다.

 

내가 하는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 분도 이 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자신이 얼마 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분은 관계를 새로 만들고 있다.

우린 환자와 봉사자의 사이를 넘어 인생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 되어 버렸다.

 

갑자기 다른 봉사자가 손길을 요청한다.

환자의 누운 채로 일을 봐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단다.

모든 것이 혼자서 되지 않는 곳이 이 곳이다.

특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보호자도 할 수 없는 일 들이 있다.

 

만약 이런 일들을 돈을 받고 한다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이 곳에선 누구나 다 기쁘게 일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고 않고

내 일을 다른 사람이 한다고 시기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고 스스로 정리 정돈하고 스스로 치운다.

식당에서도 반찬이나 밥을 남기지 않고 아무도 밥이나 반찬을 가지고

투정을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환자들이 거동을 할 수 없으니 아침이면 봉사자들이

환자들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다시 새것으로 채워야 하고

혹시 대변을 본 환자가 있다면 그 냄새나는 대변을 모두 치워내야 하고

다시 깨끗이 닦아 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어느 환자의 보호자가 남편의 대변을 치워달라는 부탁이 있어

전문 봉사자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환자가 꾸역 꾸역 밀어내는 대변을

모두 받아내는 것을 보고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의사도 간호사도 운영하고 관리하는 모든 분들도 지나치면 반드시 목례를 한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웃어주며 괜찮다고 인사한다.

이 곳은 천국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고 이미 여기가 천국이다.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본다.

보호자들이 예배시간에 불러달라고 하는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준비한다.

엄마가 간호하는 3남매가 찬양하고 제일 큰 누이에게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 한 마디 하라 했더니 누이가 피아노를 치고 나와

각 병실로 영상이 방송되는 마이크 앞에서 밝은 얼굴로 

"엄마"하고 부르더니 그만 더 이상 말을 못잊고 울음을 터트린다.

단지 엄마라는 말 한마디로 방금 밝은 멜로디의 찬양을 하고 돌아선

웃는 얼굴이 눈물로 변해 버렸다.

 

이 곳에서는 빨리 나아서 퇴원하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누이도 그렇게 인사한다. 천국가실 때 까지 편하게 계시다 가시라고..

 

저녁에는 여기 저기 환자들의 움직임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봉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할 일이 많다.

그리고 병실은 일찍 소등을 한다. 9시가 조금 넘으니 여기 저기

방이 조용해 진다.

 

내가 간호하는 환자분이 속이 아프다며 간호사를 불러 약을 먹었지만

그래도 상태가 안 좋다기에 주사로 처방하려했으나 워낙 살이 없어

주사를 놓기 위해 혈관을 찾으려다 실패했다.

환자는 힘이 드는지 내게 묻는다

혹시 기도하실 수 있느냐며...

그 분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밤을 편하게 보내게 해 달라고..

옆에 앉아 있으니 혼자 마지막 달 마지막 날이라며

중얼거리시기에 간호사에게 얘기했더니 환자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분이 많다 한다. 직감적으로 느끼시는 것 같다고..

 

결국 가능한 일찍 잠이 드는 것으로 해결하셨는지 안대를 끼고

주무시기에 밤늦게까지 그 옆을 지켜 보다가 봉사자들 숙소로  들어가

누웠더니 오늘 피곤했던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집에서라면 더 자고 싶었을텐데 환자들이 걱정이 되어

얼른 일어나 내려가 보니 간호사가 환자가 밤새 토했다고 내게 귀뜸해 준다.

그걸 다른 봉사자가 치웠나 보다.

환자는 아직 잠이 깊이 들고, 여기 저기 다른 방을 찾아 다니며 일을 하고

날이 밝으니 그 분도 잠이 깼다.

밤새 힘들었는지 눈도 겨우 뜨실 정도이지만 오히려 나보고 잘 잤느냐고 물으며

지난 밤 자기에게 무슨 기도를 했느냐며 묻기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니

선생님 마음 속에 있을테니 굳이 기억하지 말라했다.

 

애기를 하는 것도 힘들어 하실까봐 내가 찬송을 불러 드리겠다고 하여

옆에 앉아 찬송가를 들쳐가며 보이는 대로 작은 목소리고 불러드리니

매번 한장이 끝날 때마다 조용히 박수를 치시고 때론 따라 하신다.

그렇게 계속하니 양 옆의 환자들도 찬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고 있다.

내 찬송이 남에게 기쁨이 된다면 어느 자리인들 못하리..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보호자들이 몰려든다.

이 분도 아내가 오고 딸과 손주가 왔기에 슬며시 자리를 비켜 드렸다.

 

아침 예배를 시작했다.

목사님이 이 곳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산부인과라 했다.

천국으로 가는 새 생명이 날마다 태어난다고..

늘 슬픔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에선 기쁨이 있다.

매번 목사님은 그렇게 기쁨의 설교를 하신다.

때론 예배보다가 병실에서 운명하시는 분의 시신이 지나가도

천국가는 이를 보라며 모두 바라보게 한다.

이 곳에선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고 새 생명의 시작이다.

이 곳은 천국이다.

 

예배에 무려 8개팀이나 특송팀이 왔다.

아침 예배 시간에 맞추어 단체 봉사팀도 많이 왔다.

학생들, 교회 찬양팀들, 개인 음악재능 봉사자, 수화찬양단체 등등..

예배 후에 봉사자 교육을 마친 이들에게 수료증을 주고

소감을 말하게 했더니 많은 교육생들이 이 곳에서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이들이 봉사자의 교육을 받았다.

때론 보호자로 있으면서도 교육을 받은 분도 있다.

 

그 중 몇 분이 앞에 나와서 교육소감을 말하는데

모두 감동의 시간들이다.

이전엔 평일 날 며칠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이젠

토요일 2번 교육으로 수료증을 준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학생들이 구석 구석을 청소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쓸고 닦으니 구석 구석이 먼지하나 없다.

수 많은 빨래들을 정리하고, 신발장의 흙도 털어 낸다.

 

내가 보호하던 환자가 아내에게 내 얘기를 했는지

내 옆에 와서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자기들이 왔을 때 남편 옆에 있는

나를 보고 마치 천사가 앉아 있는 것 같았었다고 말씀해 주신다.

 

점심을 먹고 환자들을 그릇을 치우기 위해 옆에 병동으로 가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내 팔을 잡아 끌며 병실로 들어간다.

이제 막 임종을 하는 이가 있어 같이 찬송해야 한다고..

 

하나님이 한 생명을 부르고 있다.

환자의 아내인 듯 조용히 우리와 같이 찬송을 부르고 있다.

의사께서 환자의 숨을 확인하며 운명시간을 알려 준다.

 

그렇게 이 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이 공존하는 천국이다.

 

이틀 동안 천국에서 지내다 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곳을 떠나 복잡한 세속으로 떠나와

천국의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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