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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사 다니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

carmina 2015. 6. 26. 12:26

 

 

1987년도에 어느 대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대리로 입사해 과장까지 다니다 그만 두었는데

그만 둔 사연이 기가 막힙니다.

 

요즘 케이블TV에서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라는데

아마 그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을겁니다.

 

키가 작은 부서장.

능력 많았지만 성격이 남과 달라  타 부서의 부서장들이

우리 부서장과 도무지 화합이 안되어 항상 독단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늘 본인의 능력을 우리가 따라오지 못함을 질책했고

우리같은 직원들이 자기 밑에 있는 것을 불평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어슬렁거리며 직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나 늘 감시하며

업무 도중에 간섭하기 일쑤였고

다른 임원에게 불편한 부탁하러 가는 것은 늘 아랫 사람을 시켰고

높은 직급의 임원에게 결재받으러 가는 것도 역시 아랫사람 몫이었습니다.

 

바로 아래 직급의 부장에게 과장 대리들을 혼내며 일시키라고 강요하였는데

마음 모질지 못한 부장님들이 그렇게 하지 못해서 늘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그게 도가 지나쳐 착한 부장에게 아랫직원 누구를 사퇴시키라고 종용하여

결국 착한 부장 한 명은 그 스트레스를 못이겨 먼저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봐도 그만 둔 부장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출신에 뛰어 난 머리로 여러 개의 기술사이고

모든 업무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죠.

 

그러다가 내가 승용차를 부서장보다 먼저 구입했는데

마침 부서장 집이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부서장은 해외출장이 잦았는데 당시 공항까지 내 차로 데려다 주고

귀국하면 내가 공항나가서 모시고 오곤 했습니다.

 

당시 집에서 공항가는 길은 두 코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부간선도로로 가는 길

또 하나는 시흥대로 이용하는 길

그런데 대개 공항가는 시간이 오전시간이고

귀국하는 시간이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길로 가도 막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 길을 선택하여 가다 막히면 

다른 길로 가지 왜 길로 왔느냐며 꾸중.

다른 길로 가면 왜 이 길로 가느냐며 꾸중.

나중엔 어느 길로 갈까요 라고 해서 가면

또 혼자..중얼 중얼.. 다른 길로 갈 걸 그랬어..

정말 운전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같이 동반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부서장이 차를 하나 사고 나서는

한 달 내내 차 얘기만 하는 겁니다.

우리들은 억지로 들어줘야 했고..

 

어느 날 낮에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회사 앞에서 불법유턴하다가 경찰에게 잡혔는데 벌금 스티커 안끊고

막무가내로 도망왔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더니 한참 있다가 겁이 났던지

직원에게 자기 운전면허증을 주면서 하는 말이

경찰 아직 거기 있을테니 딱지 끊고 오라고..

우리 직원이 기가 막혀서 나갔다 오더니...

직접 오시라는데요? 하고 면허증을 내밀었지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늘 업무 얘기로 꾸중을 하니까

직원들이 같이 먹기를 꺼려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부서장 없을 때 우리끼리 살짝 가서 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혼자 내려와 자리에 앉아 먹더군요.

그리고는 사무실로 돌아와 모두 불러 놓고 대판 혼을 내더군요.

자기 두고 우리끼리 갔다고..

 

1990년 제 아버님이 질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경조휴가를 받아 5일 초상을 다 치르고 와서 근무한 며칠 뒤

이번에는 그간 둘째를 임신중이었던 아내가 해산을 하게 되어

하루 휴가를 내야 한다고 결재 올렸더니 축하 인사는 커녕 빈정대며 하는 말.

"가지 가지 하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인원이 미국으로 해외출장을 갈 일이 생겼고

당시는 법인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이라 

호텔비와 경비를 원화로 지급받아 달러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10명 정도 인원이 갔으니 며칠동안의 호텔비와 일당의 금액이 상당히 많았죠.

그런데 문득 부서장이 그 돈을 다 자기에게 가지고 오면

달러로 환전해 주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달러를 집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죠.

그 달러는 내가 부서장 집에 가서 사모님에게 받아왔습니다.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졌습니다.

이런 거액의 외화가 어디서 났을까?

그러나 물어 볼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의심만 가지고 있었지요.

 

내가 결국 그 곳을 떠나 온 사건은

어느 날 부서 전체가 중장기 전략을 협의하고자

올림픽회관을 빌려 1박 2일 MT를 가서 회의를 하는데

당초 회의에는 부서장이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 후 우리끼리 어느 정도 결론을 낸 뒤

부서장이 들어오더니 우리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

일장 훈시를 하는데

"니네들 같은 돌머리에서 무슨 전략이 나오겠느냐"

"이걸 이제까지 회의라고 했느냐"

 

그 얘기를 듣고 아무리 직장이 좋아도

더 이상 이 사람 옆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과감히 MT 끝나고 다음 날 사표를 던졌습니다.

아내가 이전부터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만 두라는 조언을 자주 했었죠.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경쟁업체에 새 직장을 얻어

입사원서에 필요한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회사를 갔더니

나를 보며 하는 말이..

"내가 너 거기 간줄 아는데 거기 내 친구가 있으니

직장생활이 편치 않을거야"

정말 내게 안좋은 성질이 있었으면 대판 싸웠을 겁니다.

 

다행히 새로 잡은 직장의 그 사람 친구는 내 업무와 관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후 해외프로젝트에 사업주로 부터 깨끗하지 못한 돈을 받은 것이

다른 직원의 투서로 발견되어 자기를 잘 따르는 직원 하나 동반하여

이름도 없는 임시 부서로  좌천되었지만 인생이란 것이 참 묘하더군요.

임시 부서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어 몇 년 뒤에 또 진급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그 부서에 있던 사람들이 무척 많이 사표내고

최종적으로 세어보니 27명 정도였지요.

그 뒤 각 사로 흩어진 우리끼리 따로 모여 정기적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나는 새로 옮긴 회사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직장생활하고

회사가 안좋아 명퇴할 때까지 약 10년을 근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