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부천시립합창단의 '우리의 노래 평화의 노래'

carmina 2015. 10. 28. 00:23

 

 

2015. 10. 27, 예술의 전당

 

부천시립합창단의 특별 연주회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와 본 예술의 전당에 가을이 깊었는데도

음악분수는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지난 해 부천시민회관에서 부천시립합창단이 연주하는 헨릭 고레츠키의 공연을 보면서

이 멋진 음악이 작은 도시에서 적은 관객들에게 선보임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같은 대형 콘서트 홀에서 음악애호가들앞에서 연주되길 내심 바랬는데

1년도 훨씬 지난 오늘에야 그 연주가 이루어졌다.

 

우리의 노래, 평화의 노래라는 부제로 연주된 합창음악

1부는 올해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 제 2차대전시에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폴랜드의 유태인을 기리는 뜻에서 특별히 폴랜드 작곡가인 헨릭 고레츠키의

곡들이 선택되었고, 2부는 국내 작곡가인 이순교씨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칸타타를 초연하게 되었다.

 

유태인인 헨릭 고레츠키는 음악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받은 폴랜드 작곡가로

음악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단지 음표 몇개만으로 음악적 표현을 극대화하고 있기에

오늘 들은 음악도 아주 단순하고 지루한면이 느껴지면서도

그 어떤 커다란 교향곡보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마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이

하루 하루 생명을 유지하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환경속에서

아주 작은 몇 마디 대사로 자신들의 슬픔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노래 속에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작곡한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는

1991년 영국의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무려 31주나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당시에는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곡이다.

 

오늘 특히 슬픔을 겪은 폴랜드 유태인들의 호흡이 들리는 듯한 뜻깊은 곡들이

아카펠라 음악의 작은 소리를 더 또렷하고 크게 들을 수 있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완성됨으로써 지난 해 부천시민회관에서 공연의 감동의 배가 되었다.

 

낯설은 폴랜드 노래를 원어로 부르니 관객을 위해 무대에 자막이 보여졌다.

 

이미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유태인이 먼저 생각나서인지

평범한 가사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한 노래 나의 비스와 강, 잿빛 비스와 강.

강이 흐른다.

흐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숨죽이며 강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마치 벙어리가 울부짓듯이 외치다가

다시 허공을 향해 흩어지는 소리처럼 작아진다.

음악의 선이 보이고 선율속에 음산한 색이 보인다.

 

우리의 강 나레브.

우리의 땅에서 내 쫒지 말아달라는 숨막히듯 노래하는 간절한 애원이 스며있다.

포비쉴레에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하지만

그 추억조차도 깔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는 슬픔과

내가 좋아했던 쟈니를 부르면서도 역시

작은 낙엽이 떨어지는 슬픔이 가득 차 있어

미국 포크송같은 흥겨움을 찾을 수 없다.

 

아름다운 장미를 꺽으며 그 아픔을 생각해 보는 군인이 있을까?

내가 죽어 영혼은 연기로 날라가고 남은 육체의 재를

넓은 강에다 뿌려 주기만을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

 

피아니시시시모의 노래를 들으며 내 발밑에 놓은 가방을 피해

다리를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아 내 몸이 완전히 경직되어 버렸다.

이러다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루게릭병에 걸릴 것만 같다.

 

그러나 아주 가끔 객석에서 자주 들리는 기침소리와 누군가 핸폰의 알림소리가

들려 잠깐씩 거슬렸다.

 

이제 조금 가사가 익숙한 종교음악이 역시 피아니시시모로 흐른다.

Totus tuus, Maria.

멕시코의 성당 앞에 가면 성당 마당에서부터 성당까지 들어가는데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무릎으로 꿇고 기어 들어가는 성도들을 볼수 있다.

그 같은 간절함이 노래로 들려진다.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도 크게 벌리지 못하고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노래속에서 들린다.

 

그러다가 찬미가로 이어지며 조금 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듯 싶더니

아멘 송에 가서는 결국 다시 거의 들리지 않는 피아니시시시모의

거룩함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지난 번에도 이 아멘송을 들으면서 정말 감탄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아멘송을 들어야 했다.

 

고레츠키 곡 전부를 피아노도 이 피치파이프 하나로 음을 잡으로 아카펠라로

부르는 내내 난 그야말로 온 몸의 감각을 모두 초집중해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고레츠키 합창음악의 감동이 내 생활로 이어질 것 같다.

 

인터미션 후 갑자기 무대가 달라졌다.

합창석에 이미 단정하게 자리잡은 5개의 단체의 일반 합창단과

무대에 부천시립합창단, 카돌릭 대학교 합창단 그리고 부천필 오케스트라이 자리잡으니

마치 말러의 천인교향곡이 연주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순교 작곡가의 칸타타 '나의 조국, 대한민국'

총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을 악장별로 나누어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귀에 익은 멜로디들이 들린다.

동요곡, 민요, 그리고 월드컵 응원가까지..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외국 교향곡의 리듬들이 들려 이게 어느 곡에 있는

멜로디더라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듯 빨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소프라노 이춘혜씨의

가녀린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태동을 알리고

거대한 합창이 각종 불규칙한 리듬들로 무대로 쏟아진다.

노래에 맞게 자막에 노래 가사에 맞는 영상이 있었으면 혹시 더 극대화 되지 않았을까?

 

앵콜송을 아리랑으로 마무리하며

폴랜드 유태인의 아픔과 한국의 길고 찬란한 역사를 노래로 풀어낸

마에스트로의 커다란 몸짓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들

거의 400명 단원을 다 포용하는 듯 보였다.

 

바라기는 부천시립합창단이 올해 메르스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던

에릭 휘태커의 공연이 이 곳에서 연주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