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 삼성 한우리 합창단 12회 정기공연

carmina 2015. 9. 13. 23:29

 

 

2015. 9. 13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바리톤 솔리스트 노대산씨나 소프라노 김순영씨의 첫음이 나올 때는

전문성악가이니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익히 듣는 그들의 볼륨감과 청아함.

그건 아마츄어 노래꾼들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다

 

그런데 오늘 순수 아마츄어 합창단인 삼성 한우리 합창단의 첫음이

나올 때는 그만 나는 입이 저절로 벌어져 버렸다.

어? 이 소리가 한우리 합창단 소리가 아닌데..

세상에..마에스트로에게 얼마나 조련받았을까?

 

한우리의 끼를 알고 있고, 그 들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 내게

이건 쇼킹한 일이다.

이제까지 듣던 목소리...

아니...같은 지휘자로 지난 해 연주할 때도 이 목소리의 색깔을 아니었다.

불과 1년 만에 한우리가 변했다.

 

나는 늘 한우리의 공연을 기대한다.

올해는 무엇을 보여줄까?

노래와 춤이 되는 합창단으로 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전의 한우리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우리를 오랜동안 지휘하셨던 순천시립합창단의 이병직선생님과

최근 몇 년간 지휘하신 광주 시립합창단의 임한귀 선생님의 대를 이어  

오랜동안 수원시립합창단의 지휘봉을 맡아 온 민인기선생님의

두번때 한우리 합창단 지휘..

음악의 고향인 수원시립합창단의 전임 지휘자라면 이미 얘기는 끝난거 아닌가?

그리고 몇 년간 나영수 선생님이 맡으셨던 울산시립합창단의 바통을 이어받은 상임지휘자.

한국을 대표하는 합창지휘의 거두들이 아마츄어를 지휘하지만

비록 단원들이 아마츄어라도 절대 양보하지 못하는 음정과 소리의 색깔.

 

오늘 소리가 그랬다.

모텟트나 미사곡 등 고음악합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내 귀에

비록 소리의 색깔은 프로성악가들과 같은 선상에서 놓을 수는 없었지만

외국 고음악을 전문으로 합창단들의 청아함을 듣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고음악 발성과 절제 그리고 80명 정도의 인원이 토해낸 그 묵직함...

브람스 레퀴엠의 제 1곡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레퀴엠은 라틴어의 일반적인 가사를 사용하지 않고

성경에서 모든 대사가 인용되었다.

 

아마츄어 합창단이 가장 하기 힘든 합창이 피아니시모의 합창이다.

피아니시모는 평소 노래할 때 쓰지 않는 두성을 써야 나오는 소리다

특히 인원이 많을 때는 피아니시모의 합창이 더 어렵다.

모두 똑같이 그 피치에 맞는 소리를 내야 하기에..

 

그런데..지금 이 들이 해내고 있다.

저렇게 만들기 위해 연습도중 가르치는 이가 얼마나 컷! 컷! 했을까?

나도 합창단 생활 40년동안 그런 과정을 모두 겪어 보았기에

뻔히 상상할 수 있는 연습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주로 유행가를 즐겨 부르는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젊은 합창단에서.

또한 성악 전공을 하지않은 이들이 거의 99.9 프로인 한우리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테너들이 언제 저렇게 멋진 팔세토를 연습했을까?

도무지 헛웃음만 나온다. 도대체 얼마나 노력한거야?

 

나도 한우리 생활을 오래 전에 그들과 같이 1년을 노래했었다.

그러나 도무지 바쁜 업무와 잦은 해외출장으로 연습일수를 채우지 못해

내 공연무대는 한 번으로 끝내야만 했다.

연습 참석율이 적으면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 스스로 공연에 서지 않는 전통이 있다.

공연을 앞두고는 기흥, 수원, 서울 등 각 지역마다 모여 파트연습에 힘쓰고

오늘같이 익숙하지 않은 독일어 가사는 정말 프로답게 발음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는 그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서지 않는 휴직단원들의 헌신적이고 조직적인 뒷바라지도

잘 알고 있고, 공연 수익금은 모두 희귀난치병 환우들을 위해 기부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도 잘 알고 있다.

 

노는 일에도 뜨겁고, 의기투합하면 강남의 뒷골목에서 밤이 넘도록

맥주와 노래를 즐기는 그들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연습하고 2차없이 그냥 집에 가는 날도 규칙으로 정했을 정도이니 말하랴 무엇하랴..

 

삼성이라는 이름.

최고를 추구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업무를 떠나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서도 삼성의 이름답게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합창단이 공연곡을 정할 때 지휘자가 알아서 정하지만

한우리는 그 해의 임원진이 많은 토의를 거쳐서 곡을 정해 지휘자에게

올해 이 공연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이상한 조직이지만 이 또한

그들의 열정을 잘 아는 지휘자도 모두 이해한다.

 

오늘도 공연 전에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고 곡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앞서서

대개 이런 공연에 사전안내 없이 연주로 바로 들어가는데

오늘은 단원들이 이렇게 미리 설명을 부탁했다면서 양해를 구하고

곡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곡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박수도 중간에 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다.

대개 관객의 수준이 음악애호가들이 아니고 곡을 잘모르는 가족이기에

이런 안내를 미리 해 줌으로서 애호가들의 음악감상에 대해서 배려해 주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래서 제대로 음악을 감상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전문연주자들도 아니고 인터미션없이

레퀴엠 전곡을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연주한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알기론 단원 중에 나이든 단원들이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6번째 곡이 연주될 때 여자 단원 한 명이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이해하자..보면대를 사용했다면 조금 서서 있어도 편했으련만

악보를 손에 든 채로 1시간 넘게 연주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내와 고통의 싸움이다.

 

앵콜송으로 몇 년 전 우리 합창단에서 공연했던 작곡가 조혜영씨의 '못잊어' 합창

많은 인원에 한 목소리되어 그 가사의 간절함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익히 아는 고참단원의 오페라 투란도트 삼중창.

부럽다. 부럽다. 세종대강당에서 넬라판타지아를 부르는 영광을 누렸다.

 

공연 후 무대인사에 크게 부라보를 외쳤다.

 

로비에서 많은 단원들고 인사하고 그 들이 공연 후 전통적인

한우리 합창단가를 준비할 때 쯤 슬며시 세종대강당을 빠져 나왔다.

 

보고픈 얼굴들 봤으니 그걸로 족하지..

내가 내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들과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조용한 광화문의 밤거리에 가을바람이 상쾌하게 불어 오기에

합창단가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비바 한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