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첫 번째 호스피스 봉사

carmina 2015. 12. 1. 11:17

 

 

2009년 8월

 

M-2.

말기암이나, 특별한 병 혹은 에이즈 등 회생불가 선고 2달이 남았다면
병원에서도 대개 치료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남아 있을 때까지 진통제로 인생을 마무리하지요.
그런 이들을 위해 호스피스병원이 있습니다.

   

여러 곳의  단체나 개인들의 후원자들이 이 들에게 마지막 생의 두 달을 후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있지요.   
합창단의 오랜 고참 부부가 그런 호스피스 병원에서
아내는 의사로  그리고 남편은 자원봉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들도 나이 칠순이 넘었으면서..
한 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쟁쟁한 자리에 있었으면서..   

 

그곳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 부터 하다가
이번에 회사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일주일 휴가를 써야 하는고로
3일은 아내에게 봉사하고  2일은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런 봉사는 호스피스 단체에서 주관하는
특수 교육을 일정기간 받는 자만 가능하지만
그곳에 계신 분의 빽으로 교육없이 이틀간만 봉사하기로 하고
월요일 아침 일찍,  막히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먼길을 찾아갔습니다.   

 

깨끗한 호스피스 병원 병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20대에서 70대까지 환자가 있고요 20대 환자가 들어오면
대개 일주일만에 하나님옆으로 가고 70대  환자가 들어오면 대개 한 두달은 견딘답니다.   

나는 교육받지 않은 봉사자기에 우선  청소를 했습니다.

병실   구석 구석 그리고 병원 밖 구석 구석에 자리 잡은 거미줄을 모두 제거하고
여기 저기 걸레빨아 여자들 하기 힘들었던 청소하느라
땀흘리고 오후에 병실에 들어가 췌장암으로 그리고 위암으로
하나님이 부를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무슨 부탁을 중얼거리면서 하시는데 도무지 알아듣기도 힘들정도이고
겨우 겨우 의사소통하여 간호를 하곤 했지요.

온 몸이 퉁퉁 부어 주사바늘 들어갈 자리도 없고
앉아 있기도 힘들고 너무 누워만 있어 누워 있기도 힘든 환자들.
말이 잘 안되니 글로 쓰시겠다고 볼펜을 달라하고 종이를 대 주었지만
그마저 손에 워낙 힘이 없어 겨우 겨우 선만 긋다 맙니다.   

 

한 분은 나이 68, 또 한 분은 나이 57세 위암.
57세지만 얼마나 병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얼굴은 거의 70대 같고 피골이 상접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거구나 할 정도였죠.   

교회에서 단체로 와서 봉사하느라 쓸고 닦고, 식당일 하고, 
모여고 선교중창단이 와서 예배시간에 찬양도 드리고 2박 3일 봉사도 합니다.   

이곳 환자들은 압니다. 자신의 병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 발간된 자료 중 하나를 읽어보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팔 다리에 감각이 없어져 썩어 버리는 한센병(나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오지에서 봉사를 하는 어느 날 잠을 자다가
너무 일을 많이 해 다리가 저려 오더랍니다.
그리고는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이상하다 싶어 자기 살을 꼬집어 보았더니
전혀 통증이 없어지기에 이제 자기도 한센병도 걸렸구나 하고 심히 걱정을 했는데
아침이 되어 혹시나 하고 바늘로 자기 다리를 바늘로 찔러 보았더니 
따끔하는 고통이 오기에 얼마나 그 고통이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고통이 오기에 감사하다. 아파서 감사하다.   

 

내 불행은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갖고 싶어 하나 하나 세어볼 때  오는 것이고
내 행복은 남이 가진 것과  관계없이
내 가진 것을 하나 하나 헤아려 볼 때 온다고 하네요.   

 

내일도 가서 종일 봉사할 겁니다.
무슨 일이던 시키는대로 해야죠.
내 가진 것을 감사하기 위해..